2012년 9월 25일 화요일

'쇼' 하던 우탄이는 이제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9-25일자 기사 ''쇼' 하던 우탄이는 이제 이 세상에 없습니다'를 퍼왔습니다.
상업적 동물원에 반대하는 '동물을 위한 행동'이라는 단체를 만들며

우탄이를 처음 만난 것은 2009년 가을이었습니다. 경기도의 한 동물원 낡은 창살에 매달려 있던 우탄이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TV 스타였다고 합니다. 당시 (주주클럽)이라는 방송에서 우탄이는 한복이나 운동복을 입고 온갖 재롱을 부렸다고 합니다. 

우탄이는 오랑우탄으로 고등영장류에 속합니다. 고등영장류란 원숭이, 비인류 유인원, 인류 셋으로 나뉘고, 비인류 유인원은 두 종류의 고릴라, (서부고릴라, 마운틴 고릴라), 침팬치, 보노보와 두 종류의 오랑우탄(수마트라 오랑우탄, 보르네오 오랑우탄)으로 구성됩니다. 오랑우탄은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과 매우 흡사한 동물이죠. 

▲ 2012년 5월 만난 우탄이 ⓒ 동물을 위한 행동

비글호를 타고 간 긴 연구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다윈은 처음으로 오랑우탄을 보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교만에 차서 스스로를 위대한 작품이라 여기고 신과 미물의 중간자적 위치에 합당하다고 여긴다. 그보다는 더욱 겸손하게 나는 사람이 동물로부터 만들어진 존재라고 여기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인간도 동물이고, 동물과 인간이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동일한 면이 있음을 밝혀낸 다윈 시대 이후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물도 인간처럼 고통을 느끼고 감수성이 있다고 본다면, 우리 인간과 거의 흡사한 유인원류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겠죠. 

내가 우탄이를 만났을 당시 2009년부터 우탄이는 쇼를 더 이상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은퇴한 우탄이는 그 이후 3년간 3평 남짓한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사육사들이 산책이라도 시켜주려고 했지만 덩치가 크고 포악해진 우탄이를 아무도 제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쇼를 하고 은퇴하는 그 과정에서 사실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그 사랑이 우탄이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했던 사랑이 진정으로 우탄이를 위한 것이 아니었겠죠. 우리는 우탄이를 보고 즐겼을 뿐,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제 우탄이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2012년 8월 동물원을 방문한 저는 우탄이가 더 이상 그 방에 살지 않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우탄이의 행방에 대해 동물원 측에 공문을 보냈고 동물원 측은 9월 20일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우탄이의 임상진단명은 악성림프육종. 지난 6월 8일 사망했습니다. 종양 비대에 따른 호흡곤란에 의한 심장마비로 악성림프 육종 종대에 의한 기관지 압착 및 전신 장기 전이가 주 원인입니다. 오랑우탄에 대한 연구가 극히 미비한 상태에서 원인을 따지기는 매우 어려우나 우탄이가 1997년 생이고 오랑우탄이 40년 이상 살 수 있다는 점, 림프육종 등이 노년에 주로 발생하는 질병이라는 점을 볼 때 종양이 발병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임에는 분명합니다. 

우탄이의 손을 보면 우리 인간과 거의 흡사해 참 놀랍죠. 오랑우탄은 인도네시아어로 '숲에 사는 인간'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털 없는 원숭이)를 쓴 데즈먼드 모리스는 (또다른인류 유인원)이라는 책에서 자극을 받았을 때 지능적으로 대처하는 오랑우탄의 놀라운 능력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오랑우탄의 머릿속은 이런 저런 궁리로 가득하다고 합니다. 그냥 멍하게 가만히 있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시각일 뿐이죠. 

▲ 우탄이를 구경하는 아이들. ⓒ 동물을 위한 행동

2012년 5월 우탄이를 만나러 갔을 때, 한참 소풍 기간이어서 그랬는지 아이들이 참 많았습니다. 철장에 매달려 있는 우탄이를 보고 신기해하면서도 아이들이 우탄이를 보고 지나치는 시간은 지극히 짧았습니다. 일부 어른들은 "굴러봐. 하하하" 소리치며 우탄이를 놀리기도 했죠. 사람들이 오랑우탄이나 침팬지 같은 유인원을 쇼에 이용하는 심리는 우리 인간과 거의 비슷한 표정과 손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이 시키는 것을 쉽게 따라하는 것이 재미있어서겠죠. 

아이들도, 그 아이들을 데려온 어른들도 우리 인간에게 너무나 소중한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있고 그 숲에서 사는 인간 오랑우탄이 매년 천 마리씩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밀렵꾼들이 희귀한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팔기 위해 어린 야생동물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우탄이가 살아온 과정 그리고 우탄이의 고향에는 눈물나는 사연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무엇보다 한 번쯤 생각해보았으면 하고 바랍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자구요. 우탄이는 정말 행복할까? 우리에게는 한 순간의 즐거움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우탄이는 과연 즐거울까? 

동물원과 동물쇼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동물원이 멸종위기의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시민들에게 동물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 동물원에 살고 있는 동물의 80%는 동물원에서 번식해 태어난 동물들입니다. 동물원을 방문하면 제한된 공간에 너무 많은 동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한정된 시간 동안 그 동물을 제대로 관찰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연상태에서 야생동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동물들이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며 먹이와 물을 구하는 한편, 짝을 찾고, 새끼를 키우며, 천적을 피해 다니고, 자신의 영토를 탐험하고 순찰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동물들은 평생 가족관계와 사회적 연대를 지키며, 유인원, 고래, 코끼리 같은 몇몇 종들은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나누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동물원은 동물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작은 전시 공간에 동물을 가두고 있습니다. 25년간 야생동물보호활동을 해 온 로브 레이들로는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라는 책에서 코끼리의 경우 야생에서 생활하는 공간보다 무려 1000배 이상 작으며, 야생북극곰이 바다표범을 사냥하기 위해 하루에 50km에서 100km를 여행하지만 동물원에서는 북금곰 영토보다 무려 100만 배 이상 작은 공간에 가두고 있음을 밝혀낸 조르디 카사미티아나의 연구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 철창 안 가둬진 동물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동물원의 존재이유에 대해 회의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 동물을 위한 행동

영국 브리스톨대학 연구자 지 로사(G lossa)는 'Are wild animals suited to a travelling circus life?'라는 논문에서 동물쇼를 하는 동물은 하루에 1~9%의 정도만 쇼를 하고 대부분 우리에 갇혀 사는데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의 복지 상태는 일반적으로 동물원보다 작고, 이런 행동제약 때문에 장기간 정형행동(stereotypies 목적없고 고도로 동기화된 반복적 행동을 의미, 고개를 까딱거리거나 우리를 왔다갔다 반복하는 행동으로 나타남)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0대를 감금상태(in captivity)로 산 야생동물조차 야생에서 보이는 행동에 대한 강한 동기를 보여주는 연구가 있는 것으로 볼 때 감금 상태가 동물의 정상적 인식발달과 사회성 발전에 해로울 가능성은 충분하죠. 동물원에서 태어나 사람들에게 길들여졌다고 해도 야생에서의 본능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죠. 호랑이가 지속적인 소음의 결과 위장염을 일으키거나 소음과 밝은 빛 때문에 인도왕뱀이 패혈증에 걸리거나 영장류, 곰, 유제류 등이 몸을 웅크리는 회피성 행동을 보이는 등 관객들 앞에서 공연함으로써 야생동물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연구도 많습니다.

▲ 쇼를 하는 동물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건강에도 무리가 가며 정형행동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는 많습니다. ⓒ 동물을 위한 행동

현재 한국의 동물원은 동물을 만지는 '페팅 주(Petting Zoo)'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철창 안에 있는 동물에게 먹이를 주고 만지고 공을 타는 사자를 보며 즐거워 하는 것이 과연 중요한가? 그리고 진정한 즐거움인가? 이제 우리는 이런 문제의식을 시작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동물을 사랑한다는 것

▲ 동물을 직접 만지고 먹이를 주는 petting zoo가 발전하고 있습니다. 동물의 건강에 대한 염려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동물을 쉽게 접근해 우리방식으로 다룰 수 있는 저열한 존재임을 가르쳐 왜곡된 동물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습니다. ⓒ 동물을 위한 행동

우리는 너무나 쉽게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동물을 사랑하는 방법은 함부로 소유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우리의 오락과 즐거움을 만족시키기에 우리의 자연과 그 자연에서 살고 있는 동물의 세계는 너무나 경이롭고 신비하죠. 우리가 그런 신비함에 대해 함부로 규정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과연 자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저는 아이들이 그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해 배우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자연의 동물들은 함부로 만지거나 소유하거나 보려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기를 바랍니다. 

최근 저는 '동물을 위한 행동(Action for Animals)'이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동물을 위한 행동은 상업적 동물원에 반대하며 잔혹한 동물쇼에 이용되는 동물들을 위한 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아직도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한 진리인 세상을 뒤흔드는 일에 첫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너무 큰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알면 사랑하게 되고,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무언가 행동하고 싶어지죠. 

우탄이와의 지키지 못한 약속, 그러나 새로운 약속을 합니다

▲ 2009년 우탄이와 손을 잡으며. ⓒ 동물을 위한 행동
저는 2009년 우탄이의 손을 잡으며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너는 앞으로 너의 고향 인도네시아의 울창한 숲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네가 노년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사람들을 설득해볼게."
 

우탄이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이제 새로운 약속을 합니다. 

"이제 우탄이 너의 친구들이 너처럼 슬프게 세상을 떠나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너의 이야기를 전할게."
 

우탄이는 세상에 없지만, 우탄이의 친구들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동물이 자신의 생태적 조건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직 할 일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대한민국 최초의 ZOO CHECK 프로그램에 참여하실 많은 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물을 위한 행동 Action for Animals 홈페이지: http://actionforanimals.or.kr 메일:mecsam0221@naver.com

전경옥(pigamoj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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