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3일 일요일

‘추방지’에 유폐된 우리 시대의 유령들


이글은 한겨레21 2012-09-24일자 제929호 기사 '‘추방지’에 유폐된 우리 시대의 유령들'을 퍼왔습니다.
[특집] 10년 전 영구임대아파트 살던 6명의 오늘을 추적하다… ‘추방자들의 게토’에서 죽거나 죽음을 기다리는 늘 가난해서 외로운 ‘내부 난민들’

» 26m²짜리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암에 걸린 딸과 20년째 사는 김순자(가명)씨. 딸 수술비를 벌려고 두 달여 전부터 간병일을 하고 있다. 24시간 붙박이 간병을 하는 김씨가 병원 휴게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한겨레21

그들은 죽어서야 비로소 목소리를 얻었다. 오랜 세월 안 보이고 안 들리는 불가산(不可算)의 운명을 감내해온 그들에게 이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난 100일, 그들은 문고리에 목매고 복도에서 몸 던지고, 그도 아니면 건조한 구강에 약봉지를 털고 세상과 돌아누웠다. 이렇게 마감한 인생이 도합 여덟이다. 모두가 메갈로폴리스 서울의 한 공동주거단지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들이 살아온 이 공간을 사람들은 ‘영구임대주택단지’라고 부른다. 애초 조력과 돌봄이 절실한 약자들을 위해 지어졌으나, 어느 순간 국가와 사회로부터 내쳐진 ‘추방자들의 게토’가 돼버렸다. 그들을 괴롭혀온 것은 알려진 대로 ‘빈곤’이란 질병이다. 이 질환은 단순히 경제적 결핍이란 증상만을 갖지 않는다. 관계의 결핍은 빈곤의 또 다른 증상이었다. 둘은 하나의 순환고리로 이어져 경제적 궁핍은 관계의 결핍을, 관계의 결핍은 다시 경제적 궁핍을 산출하고 강화했다. 은 지난주 서울의 한 영구임대주택 단지를 찾아 어둡고 습한 침묵의 공간 속에 유폐된 우리 시대의 유령들을 만났다. 노력은 진지했으나 그들을 위한 정교한 복화술이 되기엔 많은 것이 부족함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_편집자

‘가난한 사람들은 모여서 산다.’ 이 먹먹한 말에는 담장이 있다. 가난한 이들은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그 전에도 자기들끼리 모여 살았다. 산동네에 사는 아버지도, 그 아들도, 어머니도, 그 딸도 가난했다. 넘을 수 없는 가난이었다. 20여 년 전 국가가 나섰다. 대단지를 조성해 흩어져 살던 가난한 사람들을 그러모았다. 영구임대아파트는 언뜻 희망처럼 보였다. ‘자격’만 된다면 죽을 때까지 싼값에 자기 집처럼 살 수 있었다. 영구적인 가난만이 자격이었고, 가난했던 아들과 딸, 그들의 아들과 딸이 자격을 얻었다.

아픈 딸에게 고기 먹이면 휘청거리는 가계

가난한 사람들은 모여서 산다. 10년 전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2002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서울시 영구임대주택 주민의 생활’(김수현·김소임·김성희·김연정)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서울의 대표적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2곳에서 40명을 심층 인터뷰해 그들의 삶과 일상을 추적했다. 은 당시 조사를 도운 사회복지관의 협조로 이 가운데 6명의 행방을 추적했다. 그들은 이미 죽거나 여전히 가난했으며,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서울 강북의 한 병원에서 김순자(59·가명)씨는 24시간 간병일을 하고 있다. 80살 넘은 폐암 환자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하루 6만원을 받는다. 간병일을 시작한 지는 두 달이 조금 넘었다. 경쟁이 심해 한 달에 열흘이나 보름을 채워 일하기가 쉽지 않다. 쥐꼬리만 한 소득이지만 이마저도 혹시나 드러나면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떨어질 수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김씨는 29살 된 딸과 영구임대아파트 10×동 1×××호에 살고 있다. 1992년 12월에 입주했으니 20년째다. 현관·주방·화장실·방이 일체형으로 다닥다닥 붙은 전용면적 26m²의 좁은 공간이 익숙하다. 다 큰 딸은 하루 종일 집에 있다. 아무 일도 못한다. 16살 어린 나이에 암이 발병했다. 이제까지 수술만 5번을 했다. 다른 곳으로 전이된 암 때문에 앞으로 2번을 더 수술해야 한다. 간병일도 3천만원이 넘는 수술비 때문에 시작했다. 김씨는 무릎관절이 아파 10년 가까이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했다. 당뇨도 있다.
10년 전 인터뷰에서 김씨는 “세상천지 아무도 모르는 곳에 딸과 둘이 이사 오게 되었다.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했을 때만 해도 몇 년간은 안정적인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입주 전 알코올중독으로 술만 마시면 자신을 때리던 남편이 갑작스레 숨졌다. 딱 그 정도의 ‘안정’이었다. 2000년 딸에게 암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해준 것 없는 남편 쪽 유전이라고 했다.
1993~99년 김씨는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관광버스 5대를 청소하는 일을 했다. 월 30만원을 받았다. 2000년에는 주유소에서 청소하고 직원들 밥 해주는 일을 했다. 월 50만원을 받았다. 그 뒤로는 가끔씩 취로사업으로 월 60만원 정도를 버는 게 전부였다. 2012년 현재 김씨는 딸과 자기 앞으로 구에서 지원해주는 월 77만원을 받고 산다. 지역 복지관에서도 월 5만원을 보태준다. 임대료·관리비·수도요금·전기요금·가스비로 다달이 15만원 정도 나간다. 매달 쌀 20kg 한 포대를 6만5천원에 사서 먹는다. 부식은 별거 없다. 하루 ‘두 끼’를 날오이 무쳐 먹고 무생채로 때운다. 몸이 허한 딸에게 고기를 사 먹이면 그달은 가계가 휘청한다. 옷과 신발은 다 1만원짜리다. 저축은 없다. 대부업체에서 돈 1천만원 대출받은 것도 걱정이다.

» 약간의 정신지체장애가 있는 이성진(가명)씨는 정말로 부지런히 일한다. 부인·달과 함께 18년째 살고 있는 좁디좁은 영구임대아파트 현관문을 이시가 나서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몇 년 전에는 옥상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뛰어내렸다. 술병에 걸린 젊은 남자도 술김에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처음에 왔을 때는 고맙고 희망도 있었다. 20년 살다 보니 지금은 이웃이, 동네가 너무 험하다. 더 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나갈 방법이 없다.

정신지체장애 부부와 14살에 죽은 아들

10년 전 인터뷰에서 김씨는 “옆집 사람이 내 또래라서 말이 통한다. 전부 노인들이라 옆집을 빼면 왕래가 거의 없는 편”이라고 했다. 이제 김씨는 “딸이 아프고 나서 옆집과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했다. “다들 사는 게 힘들어서 그런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산다. 술 마시고 행패 부리는 사람도 많다.” 그러다 보니 바로 옆에 붙은 일반분양 단지 주민들은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을 “거지 취급”한다고 했다. 몇 년 전에는 옥상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뛰어내렸다. 술병에 걸린 젊은 남자도 술김에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처음에 왔을 때는 고맙고 희망도 있었다. 20년 살다 보니 지금은 이웃이, 동네가 너무 험하다. 더 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나갈 방법이 없다.
이성진(52·가명)씨는 새벽 5~6시에 전철을 타고 서울 가락시장에 간다. 두 바퀴가 달린 커다란 ‘딸딸이’를 끌고 역에 들어서면 역무원들은 “이거 가지고 타면 안 되는데요”라며 난감해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물건 떼오려면….” 회기역·왕십리역·잠실역에서 갈아탄다. 지나가는 역만 18개다. 18~20kg들이 양파 5포대를 받아서 낑낑거리며 딸딸이에 싣고 다시 전철로 돌아온다. 왕복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일부러 한가한 시간을 고른다. 한 포대에 1만4천원씩 받아온 양파를 집 근처 전철역 앞에 풀어놓는다. 실한 양파 열댓 개를 2천원에 팔다 보니 셈 빠른 아주머니·할머니들이 한 봉지씩 사들고 간다. 워낙 싸게 팔아서 양파를 다 팔아도 하루 벌이가 2만원도 되지 않는다. “이렇게 팔아야 그나마 사간다”고 한다.
이씨는 말과 행동이 약간 어눌하다. 정신지체장애 3급이다. 아내는 이씨보다 심한 2급이다. 이씨는 18년 전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했다. 그 전에는 서울 봉천동에 살았다. 함께 입주한 어머니는 6년 정도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아내 사이에는 딸과 아들이 있다. 선천성 심장병을 달고 태어난 아들은 지난해 4월 한식을 앞두고 14살 나이로 죽었다. 수술만 7번을 받았다. 딸은 건강하다.
그는 10년 전과 사는 것은 똑같다고 했다. “지난해까지는 아들 때문에 힘들고 올해는 딸 때문에 힘들어요.” 딸은 재수를 하고 있다. 학원비만 매달 80만원 정도 들어간다. 딸은 대학에서 복지를 공부하고 싶어 한다. 지난 5월부터 양파 장사를 시작했다. “애 학원비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하루 1만원 정도 남겨서 딸에게 3천원 교통비로 줘요.” 구에서는 세 가족 앞으로 다달이 생계급여 96만원, 주거급여 23만원을 지원해준다. 두 부부 앞으로 장애수당이 18만원씩 나온다. “알뜰하게 살면 살 수 있어요. 그런데 딸이 재수를 하면서 문제가 생겨버렸어요.” 대학 등록금은 어쩔 거냐고 했더니 “선생님 말이 장학금을 받으면 된다고 한다”며 쉽게 대답한다.

이웃과 교류? “그런 거 없어”

빚은 3천만원 정도 된다. 아내와 아들의 수술비 때문에 카드 대출을 받았다. 압류 통지는 계속 날아든다. 전기료를 못 낸 지 석 달째다. 아내와 딸의 휴대전화는 모두 끊겼다. 이씨 휴대전화 요금도 연체 상태지만 끊기지 않을 정도로 돈은 내고 있다. 지난달 이런저런 돈을 갚으려고 통장에 들어온 130만여원을 모두 인출하고 보니 통장에 찍힌 돈은 달랑 4천원 정도다.
이웃과는 전혀 교류가 없다. “술 마시고 우편함 때려 부수고 그래요. 일이 없으니까. 그나마 술 마시고 개판 부리던 사람들은 다 죽었어요.” 그는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 끊은 사람을 직접 보기도 했다. “예전에 봉천동에서 사글세 살 때는 그래도 이웃끼리 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파트는 야박하더라고요. 게다가 이웃들이 질서도 안 지키고 험해서. 개판 치는 사람들과 같이 못 산다는 거죠. 딸 키우기 겁날 때도 많아요.”
영구임대아파트는 그에게 잠시나마 희망이었다. “처음에는 사글세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 돈으로 딴 데서는 집 못 얻잖아요. 내 집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곳에 살다 보니 벗어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나라에서 영구임대아파트는 잘해놨어요. 나쁘다는 게 아니라 빨리 벗어나면 좋은데…. 돈 벌어서 여긴 면해야죠.” 그 역시 해답은 없다.
송만갑(가명)씨는 2002년 인터뷰 당시 46살이었다. 한 해 전에 시각장애인 아내와 결혼한 송씨 역시 다리를 못 썼다. 10년 전 그는 “아내는 남편의 다리가 돼주고 남편은 아내의 눈이 돼주기로 했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고 했다. 서울 행당동에 살던 송씨는 동네가 철거돼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하게 됐다. “처음 이사 올 때는 내 집이라서 기뻤다. 그런데 여기는 주저앉고 안주하게 만든다. 있는 돈도 다 써버리게 만든다. 이젠 어디 다른 곳으로 가지도 못한다”고 했다. 제대로 된 이웃도 없었다. “예전 동네에서는 이웃 간에 이야기도 하고 그랬다. 다른 단지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세금도 안 내고 돼지같이 피둥피둥 살만 찐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장애인이라 하루 종일 집에만 있기 때문에 옛날이 그립다.” 송씨는 2004년 칼로 다리를 그어 목숨을 끊었다.
“기운이 없어서 제대로 일어날 수도 없다. 나는 아파트 단지가 어떤지 잘 모른다.” 2002년 인터뷰 때 94살이던 김동수씨는 2년 뒤 노환으로 숨졌다. 복지관 쪽에서 신경 써서 그나마 쓸쓸한 죽음은 아니었다고 한다.
2002년 장애인 부모 밑에 살던 유영수(당시 12·가명)군, 소년가장이던 정윤식(당시 14·가명)군. 정군은 10년 전 인터뷰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너무 몰아두었다. 서로 지나치게 남의 일에 참견하고 소문을 낸다”며 불만을 토로했었다. 두 사람은 성인이 돼 영구임대아파트를 떠났다. 그 뒤로 복지관 쪽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
해당 지역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는 “좋은 환경에서 살아봐야 희망이 생긴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살게 되면 그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며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돌파구가 없다”고 했다. “삶에 의지를 가지고 빈곤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사회적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 서울 강북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9월13일 아파트에 장이 섰지만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보다는 바로 옆에 사는 일반분양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더 많이 보였다. 한겨레21 정용일

자기혐오와 절망, 죽음의 자유

가난한 자들이 모여 사는 집합적 주거 형태는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됐다. 가장 유토피아적 비전을 꼽으라면 19세기 중반 프랑스 파리에 지어진 ‘파밀리스테르’(Familistere)다. 푸리에주의자 장 밥티스트 고댕이 지은 이 집합주택은 독신자는 독신자대로, 가족은 가족대로 일정한 사생활이 보장되는 근대식 방들을 제공하는 한편, 방들이 테라스와 중정이 결합된 단일의 공동공간으로 집중되도록 했다. 사적 공간과 코뮌적 공간이 하나로 결합된 이 건물에 대한 이용자들의 만족도는 당대의 어떤 집합주택보다 높았다. 실험은 유럽 전체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1930년대까지 성공적으로 유지됐다.
이와 달리 한국의 영구임대아파트들이 겪는 참상은 예고된 것이었다. 처음부터 이 공간은 빈자들의 파밀리스테르가 되기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었던 탓이다. 이곳은 ‘삶을 위한 기계’라는 근대건축의 이상과는 동떨어진 ‘격리·추방의 기계’에 가까웠다. 목표량을 정해놓고 단기간에 완공하는 방식부터 ‘사회주택’에 적용돼야 할 원칙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부분 1천 가구 이상이었고, 2천 가구가 넘는 대단지도 다수였다. 단지 외부와의 사회적 단절, 지역의 침체는 불가피했다. 공급 단계부터 이미 사회적 배제의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지역과 입주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시설 공급도 문제였다. 입주자의 다수인 장애인·노약자를 위한 공학적 배려는 없었다.
행정 당국은 이 ‘더럽고 위험한 존재들’을 한곳에 수용하는 데만 촉수를 세울 뿐, 시설 관리나 취약계층에 절실한 복지서비스 제공은 관심 밖이었다. 슬럼화 우려는 초기부터 있었지만 당국의 대책이란 “설계 단계부터 견고한 주택이 지어지도록 하고, 최저소득층 입주자에겐 난방비·관리비를 추가 지원하는 방안”(1989년 3월 대한주택공사 토론회) 정도가 고작이었다. 이처럼 국가의 ‘적극적 방치’ 아래 동물적 생존을 유지하는 것 말고 일체의 시민적(사회적) 권리가 허용되지 않는 존재들에 합당한 호칭은 ‘내부 난민’이다. 추락할 바닥이 남아 있지 않은 난민에겐 현대인의 숙명이라는 불안조차 느낄 여유가 없다.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는 자기혐오와 절망, 죽음에 이를 자유뿐이다.

지역 단위 복지협의체 구성 등 시급

영구임대주택 문제에 대한 처방은 다양하다. 무장애 주거 공간 조성, 복지동 증축과 병행한 순환적 리모델링 같은 물리적 환경 개선은 더 미룰 수 없는 숙제다. 알코올의존자와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지원 체계 구축, 아동과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 확충 또한 시급하다. 복지관 예산과 인력을 늘리고 공공·민간이 함께하는 지역 단위 복지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할까. 시민적 삶의 토대인 일자리 문제에 국가와 사회는 진지하게 답할 준비가 돼 있는가. 그들을 불편해하고 위험시하며 견고한 감각의 장벽을 세우는 습속과 문화의 비열함은 또 어떤가. 도처에서 상연 중인 추방과 유폐의 잔혹극에서 우리는 과연 단순 관람자일 뿐인가. 비좁고 더러운 추방지의 골방에서 아홉 번째, 열 번째 죽음을 기획하고 있을지 모를 그들이, 이 순간 우리 앞에 던지는 물음이다.

영구임대주택의 역사와 현황

6공 때 서울·수도권과 광역시에 집중 건설

영구임대주택은 1989년 출범 1돌을 맞은 6공화국 정부의 서민층 주거 안정화 대책의 일환으로 입안됐다. 발표 당시 25만 가구였던 사업 규모는, 1991년 대규모 입주 미달 사태 등을 겪으며 19만여 가구 수준으로 축소됐다.
1989년 11월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640가구를 시작으로 그해 전국적으로 4만3253가구의 영구임대주택이 공급됐다. 공급 규모는 1990년 6만4가구로 정점을 찍은 뒤 1991년 4만9607가구, 1992년 3만6706가구로 내리막을 걷다 1993년 507가구를 끝으로 신축이 중단됐다.
전국적으로 19만77가구가 분포하는 영구임대주택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14만78가구(73.7%), 지자체의 도시개발공사 등이 4만9999가구(26.3%)를 관리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4만5828가구(26%)로 가장 많고 부산 2만6171가구(13.8%), 경기 1만9664가구(10.3%), 대구 1만8744가구(9.8%) 순으로, 수도권과 광역시에 집중 분포돼 있다. 면적별 분포는 26㎡(67.7%), 31㎡(27.7%), 40㎡(4.2%) 순이다.
입주민은 공급 초기엔 생활보호법에 의한 거택보호자와 자활보호자, 저소득 의료부조자만을 대상으로 했으나, 입주자 미달로 1992년 자격 요건을 완화해 저소득 모자가정, 청약저축 가입자까지 자격이 확대됐다.
입주민 구성(LH 보유 126개 단지, 2008년 3월 기준)을 보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 가구가 57%, 비수급 가구가 43%다. 수급 가구 중에는 의료1종(거택보호)이 63.6%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의료2종(자활)이 30.3%, 나머지는 보훈(3.05%), 새터민(2.4%), 모부자가정(0.6%) 순이다. 가구원수는 1인이 35.6%로 가장 많고, 2인 27.6%, 3인 21.2%, 4인 11.3%, 5인 이상은 4.4%다. 평균연령은 56.9살로 높은 편인데, 세대주가 65살 이상인 가구가 33%로 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세영 기자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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