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3일 일요일

‘옛다 저널리즘’과 ‘고객만족 서비스’의 상처 입은 공존


이글은 한겨레21 2012-09-24일자 제929호 기사 '‘옛다 저널리즘’과 ‘고객만족 서비스’의 상처 입은 공존'을 퍼왔습니다.
[기획] 온라인 뉴스 편집기자와 네이버 뉴스캐스트 담당자들의 가상 대담

온라인 뉴스 편집기자와 네이버 뉴스캐스트 담당자들을 가상으로 합석시켰다.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는 온라인 편집기자의 말을 직접 들어본 기획이 없었고, ‘욕심쟁이’ 거대기업 네이버의 뉴스캐스트 담당자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보는 자리도 없어서다. 각 인물의 말은 전자우편·전화 인터뷰와 대면 인터뷰, 보내온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대부분 가명 처리를 원해 최락선 (사)한국온라인편집기자협회장에게도 B라는 이름을 주었다. 기자 본인 또한 온라인 편집기자 이력을 앞세워 ‘생소리’를 내는 것으로 했다. 이 계통 없는 ‘포스트모더니즘’ 대담이 자신을 쫓는 추격자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다. 온라인 뉴스 편집기자들은 왜 지옥도를 그리고 있는가, 왜 네이버는 이쪽저쪽 아무것도 못하고 엉거주춤해 있는가. 질문에 답은 있으나, 스포일러하자면 늪으로 향하는 추격전을 멈출 해답은 없다.


A: 네이버에서 ‘수원 성폭행 여대생 사망 원인이… 경악’ 기사를 클릭했다. 내용은 정말 충격적이다. 사망 원인이 대체, 어떻게 한 줄도 없을 수 있단 말인가. 나도 낚시꾼이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편집자가 이 따위 제목 다는 이유는… 경악’이라고 댓글이라도 달까 했는데, 이미 뭐 욕으로 넘쳐나고 있어서 참았다.

충격이란 말이 ‘제목 마침부호’쯤 되나

B: 한 선배가 한국온라인편집기자협회 사이트에 ‘○○닷컴, 이건 제목이 아니므니다’란 글에 이 사이트의 네이버 제목들을 모아놓고 있다. 선배는 이 사이트 제목의 성격을 네 가지로 요약했다. ① ‘충격’ ‘경악’ ‘헉’ 등의 자극적 단어 사용 ② 말줄임표나 의문부호 사용 ③ 주어나 서술어 등 생략 ④ 팩트나 주제와 상관없는 곁가지 내용에서 제목 추출. 선배가 쓴 글에 따르면, 보통 이 두 가지 유형이 결합돼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이트는 문법이 맞지 않는 사례도 속출한다. ‘갑자기’ ‘바로’ ‘그만’ 등의 부사로 끝나거나 뜬금없이 목적어나 보어로 마무리를 하기도 한다. “양궁 미녀 3총사 ‘충격 고백’, 영국 가기 전 사실” “‘노장투혼’ 유도 金 송대남, 감독 보자 돌발행동을” ‘“北 20대 세련女, 김정은 손잡고 여기저기서” “‘강남 굴욕’, 은마아파트마저… 그 가격도 겨우”… 사례가 끝이 없다.
C: 네이버 뉴스캐스트 모니터링 게시판을 가보면 네티즌이 ‘제목에 많은 것들’이라며 모아놓은 게 있다. ‘인터넷 신문기사에 들어가는 수식어 모음집 v2.0’이란다. 열거하면 이렇다. 왜?, 충격, 발칵, 알고 보니, 속보, 이럴 수가, 헉, 허걱, 아찔, 깜짝, 경악, 사연은?, 이유는?, 무슨 일이?, 파문, 일파만파, 시끌, 글쎄?, 돌연, 논란, 아뿔싸, 설마!, 글쎄?, 폭로, 섬뜩, 화들짝, 끝내, 멘붕, 멘탈붕괴, 이유가…, …말이, …보니, ~더니. ‘기업비밀’ 다 들키고, 밑바닥까지 다 보인 거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낚시질이 된다는 걸 기자들도 아는 모양이다. 어떤 기자가 전화해서 이러더라. “기사 제목을 ‘뭐뭐 ~해보니’ 하면 안 될까요?” 젊은 기자였다. 우리끼리는 ‘감각 있다’고 했다.
A: 온라인 제목은 지면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문처럼 한눈에 제목·부제·사진을 보여줄 수도 없고, 오직 한 줄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해야 하는 온라인에서는 지면과 뭔가 다른 제목을 붙여야 하는 게 맞다. 문제는 요즘 온라인 제목들이 너무 ‘충격과 경악’으로만 몰아가거나, 어떻게든 두루뭉술 배배 꼬아서 독자가 클릭하도록 ‘구라’를 친다는 거다. 예를 들어 ‘“내 딸이 강남서…” 여자친구 엄마 전화에 충격’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다. 무슨 사건이 벌어졌나 싶어 클릭해보니 신혼부부 예단에 관한 기사였다. ‘성폭행범 범행 자백… 엄마와 ‘충격’’ 등에서 보듯 충격이란 말이 ‘네이버 제목 마침부호’쯤 되는 건가. 문장 끝에 충격만 붙이면 제목이 되는 줄 아나 보다. 또 웬 성폭력 기사가 이렇게 많은지. 네이버 사회 뉴스의 반이 성폭행으로 덮여 있는 건 아무래도 입맛이 쓰다.

» 연성 뉴스와 경성 뉴스를 동시에 운영하는 한 언론사의 ‘투톱 시스템’. 롤링되는 투톱 시스템에서 톱뉴스 중 하나는 유머 사이트에나 나올 법한 짤막한 기사다. 두 군데 다 네이버 뉴스캐스트 톱뉴스 운영 가이드라인에 맞춰 개편했다. 한 신문사의 뉴스캐스트. 경악, 허걱, 울화통, 무려 등 인터넷 ‘전용’ 제목들이 즐비하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더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실시간 조회 수 사이트에 중독되다

C: 뉴스를 보면 현재를 알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뉴스캐스트를 보면 지금이 어떤 때인지를 짐작할 수 없다. 철 지난 이야기를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재탕해서 올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최근 사진과 함께 오른 기사(사진 기사)가 재탕 기사라고 뉴스 모니터링 게시판에 누가 지적을 해놓았다. 5월11일에 올라온 기사 ‘북한 김태희 식당 납치 사건 발생?’이 9월11일에 올라온 기사 ‘北 해외식당 미모 女종업원 납치사건, 사실은…’과 동일하다. 똑같이 인턴기자가 작성했다. 온라인 편집국의 속보 양산 시스템의 경쟁이 지나쳐 네티즌을 자극할 수 있는 기사를 시기에 상관없이 양산해낸다. 뉴스 연성화의 지표다. 경성·연성을 판단하는 지표에 당일 다뤄야 할 만큼 시의적인가라는 ‘시의성’이 있다. 그 밖에 공적·사적 프레임이냐, 인간적 관심사와 감성적 반응을 유발하냐 그렇지 않으냐 등(‘김예란의 연성화 지표’)이 있다. 뉴스캐스트가 말랑말랑해도 너무 말랑말랑하다. 이미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졌으니까 제목을 최대한 자극적으로 달아 옛다 하는 느낌으로 던지고는 죄책감이 없다.
A: 왜 이렇게까지 되었나. 물론 페이지뷰 때문이다. 사실 제목에 ‘충격’이라고 쓰면 많이 보긴 한다. 언젠가 중요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기사가 있어 팩트를 정확하게 넣어 제목을 만들었다. 그런데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페이지뷰가 나오는 거다. 그래서 ‘결과봤더니… 충격’이라고 제목을 바꿨더니 원제목에 비해 4~5배 이상 페이지뷰가 올랐다. 단어 하나 바꾼 것만으로 마치 낚싯대 하나로 고기 잡다가 쌍끌이 어선으로 쓸어담는 효과를 보니 편집자들이 독한 단어를 골라 쓰게 된다. 솔직히 이런 선정성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헉, 충격, 이런 말들은 가능하면 안 쓰려고 하지만 ‘이렇게 바꾸면 엄청 볼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 조금만 더 세게 해볼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망설이다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타협점을 찾게 된다. 매체의 영향력이나 광고수익은 페이지뷰와 비례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실시간으로 페이지뷰를 확인하며 ‘쪼임’을 당하는 편집자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조회 수를 올리려고 별수를 다 쓰게 된다. 이런 상황은 인터넷 언론이나 메이저 언론이나 마찬가지다.
C: 기자들은 ‘실시간 조회 수’ 사이트를 끼고 산다. 처음엔 잘 들어가지 않았다. 선임이 “일주일쯤 뒤면 다를 것”이라며 이러는 거다. “좀 있으면 중독될 거다.” 아니나 다를까, 사이트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제목을 바꾸고 나서 반영되기까지 10분, 몇 번의 새로 고침을 한다. 예상외로 저조하다. 제목 바꾸기에 들어간다. 다시 새로고침을 한다. 기다리는 사이 다른 사이트에는 어떤 식으로 제목이 걸렸는지도 살핀다. 초조하니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사온다. 돌아와 조회 수 새로고침을 한다. 다시 제목을 고친다. 조회 수는 제목의 ‘점수’다. 이쯤 되면 중독이다.
B: 만약 신문사 기자들도 매일의 판매수익을 봐야 한다면 비슷한 압박을 느낄 것이다. 분단위 시청률이 PD들에게 끼치는 영향처럼. 그런데 이게 광고수익과는 무관하다는 주장도 있다. 조회 수가 고만고만한 차이가 나는 것으로는 광고 단가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검색어 기사를 쏟아내고, 네이버에만 적절한 기사를 양산하는 기자를 대거 채용하는 등 시스템적 변화가 주어지지 않는 한 광고 단가 상한선을 넘어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편집기자들을 돈 안 들이고 써먹고 있다?

A: 네이버의 책임도 크다. 지금 네이버는 ‘우리는 공간을 만들어줬을 뿐 모두 언론사 잘못’이라는 태도로 수수방관하고 있지만, 상황을 이렇게 만든 건 네이버다. 네이버의 첫 화면에는 수십 개 언론사가 들어가 있고, 모두 랜덤으로 돌아간다. 비슷비슷한 경쟁자들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어떻게든 독자의 눈에 띄려고 ‘무한경쟁’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더 선정적인 제목, 더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 더… 더… 야하게… 이런 진흙탕 상황을 만들어놓고 네이버가 오직 언론사만 탓할 수 있나? 잘 모르겠다.
B: 2005년 인터넷 저널이 강조되던 시기에 입사했다. 당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그런데 이후 뉴스캐스트가 도입되자 이런 성과들이 무화되고 ‘클릭 지상주의’가 되었다. 오로지 제목으로 커버하려고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클릭 나오는 제목 달기는 쉽다. 그러면 부정확한 제목이 되고, 그러고 나면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 많은 기자들이 자신의 일에서 소외돼 있다.


E: 네이버는 사악한 ‘보이지 않는 손’이다. 언론 자유 시장의 판을 연 듯하지만, 실제로는 언론시장의 판을 조종하고 있다. 신문사들은 네이버가 연 시장에 코딱지만 한 점포를 열고 손님을 끌려 애쓴다. 앞다퉈 독자의 관심을 끌려고 제목에 분칠·떡칠하고 조미료 푹푹 친다. 각 신문사 편집기자들이 자사 사이트의 제목보다 네이버 제목에 몇 배 더 공들인다. 신문사들은 이렇게 네이버 손바닥 안에서 경쟁한다. 이런 경쟁과 수고의 성과물의 상당 부분은 네이버가 챙긴다. 네이버 클릭 수가 엄청 올라간다. 네이버는 신문사들·편집기자들을 돈 안 들이고 써먹는 셈이다. 네이버가 선정성을 규제하는 척하며 방조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C: 네이버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내지만 편집기자들은 금세 익숙해진다. 톱뉴스와 네이버 톱뉴스가 일치해야 하는 가이드라인이 생기고 나서는 두 개의 톱을 가진 사이트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언론사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운영된다. 한 신문사에서 ‘인혁당 재심 판결 존중’ 기사와 ‘대학교수가 길가는 20대女 다리에 뿌린 건… DNA 분석 결과 정액’ 같은 기사가 함께 톱으로 걸린다. 또 경제지 사이트는 ‘상위 1% 평균소득… 연평균 소득이 어마어마…’ 기사와 ‘PC방 주인의 부탁… 팀킬당하지 않으려면’이라는 유머 사이트 글 같은 5줄짜리 기사가 동시에 톱에 오른다. 네이버의 톱뉴스에는 정액 뿌린 대학교수, PC방 주인 기사가 걸린다. 제목을 일치시키는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 뒤에는, 네이버로 간 제목에 맞춰 원래 기사 페이지의 제목을 바꾼다. 일이 하나 더 늘었을 뿐이라고 얘기한다. 가이드라인이 생긴 뒤 상황이 더 안 좋아지고 있다.

빨간 폰트 전자우편, 새벽의 전화…

D: 예전부터 언론사 사이트는 그대로 놔두고 네이버에는 낚시 제목을 보냈다. 자기 사이트를 그렇게 망가뜨릴 줄은 몰랐다. 지난해 트위터 유명인사가 네이버의 선정성 문제를 공론화해 사회적 책임에 대한 압력이 주어졌다. 그런데 선정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성이 들어간 단어가 몇 개까지 있으면 선정적인 것일까, 치마 길이는 몇cm까지일까. 미국의 포터 스튜어트 대법관이 남긴 유명한 판례가 ‘보면 안다’(I know it when I see it)다. 그래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시민모니터링단을 모집했다. 지난해 4월25일 YWCA, 언론인권센터, 인폴루션제로 등 3곳에서 뽑은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올해는 언론인권센터 대신 여성연합이 합류했다.
E: 시민모니터링단의 단속이 객관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주제 불일치나 사진 불일치 등은 제외 조처가 되지 않지만(오랫동안 수정이 없을 경우는 제외 조처된다), 시민 모니터링단의 의견은 절대적이다. 경고 뒤 바로 3시간 제외 조처가 이루어진다. 반박을 해서 들어준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게임의 점증하는 선정성을 지목한 기사의 사진이 야하다며, 박경신 교수의 표현의 논란을 보여준 사진이 야하다며 모두 제외 조처시켰다. 선정성 규제라는 규율은 명료하고 확정적이어서 누구든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네이버는 명확한 선정성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채 시민옴부즈맨의 임의적 판단에 의거하고 있다. 또한 신문사들 기사마다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 이러니 네이버에 선정적인 제목과 내용이 끊이지 않는다.


D: 제외 조처에 대한 항의가 많다. 솔직히 무리를 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전문성을 의심받을 정도로 과도한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이론의 여지가 있다면 네티즌들이 반발할 것이다. 신문사들은 “틀린 제목이 아니다. 이 이용자는 우리 신문의 안티다. 이용자 한 명의 의견에 왜 기사가 휘둘려야 하나”라고 말한다. 항의 강도도 세다. 전자우편 내용이 빨간색 25포인트의 글자로 날아온다. 열어보고 깜짝 놀란다. 전화를 웃으며 받으면 왜 웃느냐고 하기도 한다. ‘후배라 치고 하나 가르쳐주지’라는 비아냥거리는 전자우편을 매일 받는다. 새벽 2~3시에 항의 전화를 하기도 한다. 정신적 고통이 심하다. 현재 담당자들이 정신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회사에 요청한 상태다.
E: 뉴스가 세상을 보는 창이라면 뉴스캐스트의 창은 시궁창에 나 있다. 네이버 뉴스캐스트의 뉴스에는 저널리즘이 없다. 저널리즘이 없는 뉴스에 무얼 바라겠는가.

네이버가 경찰이 될 수 있겠는가

D: 네이버는 서비스 사이트다. 그런데 뉴스캐스트를 이용하는 사람의 60~70%는 네이버 페이지라고 생각한다. 신문사 뉴스 페이지의 선정적 광고도 네이버에 문의하곤 한다. 네이버가 좀더 강도를 높여 경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개 사기업이 언론 중재를 하고 기준을 정하고 편집권을 가질 순 없다. 페널티를 주는 식의 이야기도 나오고 있고, 기준만 정해지면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도 확보돼 있다. 하지만 기준을 어떻게 정할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일단은 언론사 설정이 쉽도록 하는 이용자 설정 서비스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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