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9일 일요일

학살된 작가들을 구하라


이글은 한겨레21 2012-09-10일자 제927호 기사 '학살된 작가들을 구하라'를 퍼왔습니다.
[기획] 늘 고소를 각오해야 하는 전쟁터를 선택했던 (PD수첩) 작가들 하루아침에 내쳐져…900여 작가 대체 집필 거부, 드라마작가들도 ‘릴레이 기고’ 등으로 싸움 나서

 
» 방송작가들은 이번 해고를 ‘작가 학살’이라고 부른다. 지난 8월6일 방송작가들이 MBC 방송작가 전원 해고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 가운데 노희경 드라마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작가란 이렇게 하루아침에 내쳐질 수 있는 존재였군요.” MBC 의 이김보라(31) 작가가 결국 눈물을 떨구었다. 8월28일 MBC 노조 사무실에서 정재홍·장형운·이소영·이화정·임효주·이김보라 6명의 작가들을 만난 날은 그들이 작가 교체 소식을 접한 지 한 달을 넘기는 날이었다. MBC 파업 기간까지 합치면 그들이 제작 현장에 돌아가지 못한 지 8개월이 넘었다.

통보조차 없이… ‘구인’ 보고 해고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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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미 전 작가는 한 기고문에서 이 결방되던 날 김현종 시사제작국장이 사내 정책설명회에서 한 이야기를 공개했다. “김 국장은 작가를 전면 교체한 이유는 노조 파업에 작가들이 지지 성명을 냈기 때문이라고 재차 확인했다고 한다. …또 (정재홍 작가가 쓴) (한겨레21) 기사를 (PD들 앞에서) 읽어 내려가며, 작가가 편향돼 있는 증거라고 주장했다고도 한다.” 노동조합원이 아닌데도 ‘언론 정상화’를 위해 급여를 포기했던 6명의 작가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인터뷰하는 날도 한 PD의 도움으로 서울 여의도 MBC 사옥으로 들어가려는 그들을 경비가 급하게 제지했다. “누구십니까? 들어가면 안 됩니다.” 해고 통보조차 받지 못한 채 밥줄이 끊긴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가장 어린 신참 작가조차 MBC 시사교양국에서 5년 이상을 일해왔지만 하루아침에 계약이 해지됐다. 그것도 팀에서 다른 작가를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서야 자신들이 해고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작가가 되고 싶어서 방송작가가 되었다”는 이김보라 작가는 에서 일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파업을 맞았고, 해고됐다. 교양작가 5년차인 임효주(30)씨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이 프로그램”에 들어온 지 6개월 만에 해고됐다. 작가들이 자부심을 갖는 근거는 ‘PD 저널리즘’의 간판이 PD였다면 숨은 기둥은 작가였던 의 역사 덕분이다. 2009년 검찰이 ‘광우병 보도’ 수사에 나섰을 때 김은희·이연희 작가는 소환에 불응한 뒤 김보슬·이춘근 PD와 함께 체포됐다.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그래도 파업 기간 내내 빨리 돌아가고 싶었어요.” MBC 시사교양국에서 일한 지 10년차 되는 이소영(34) 작가는 2009년 3월부터 에서 일했다. 하루 12시간 노동은 기본. 방송 1~2주 전부터는 방송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틈틈이 선잠을 자는 일상이었다. 방송이 나가면 전화가 빗발친다. 제작진에게 은 늘 고소당할 각오를 해야 하는 전쟁터다. 특히 대본을 쓰는 작가들은 토씨 하나에도 송사 여부와 송사의 승패가 좌우되기 때문에 방송 일주일 전부터는 한숨도 자지 않고 눈을 부릅뜬다. 그렇게 청춘을 보냈다.

» 작가들은 “우리가 못 돌아가면 전례가 된다.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왼쪽부터 이소영·정재홍·장형운·이화정·이김보라·임효주 작가. 한겨레21박승화 기자

최악의 해… 검열관 두고, 기획안 찢어버리고

제작진 중 기혼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은 작가들 사이에서는 ‘연애의 무덤’으로 불린다. 서른 중반부터 마흔 중반까지의 작가들은 모두 “이 프로그램에 청춘을 반납했다”고 말한다. “순진하지만 이렇게 하다 보면 세상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매달렸다.” 이소영 작가의 말이다. “올해 초 파업 즈음에 PD와 같이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취재하고 있었다. 파업 기간 중에도 개인적으로 좀더 취재하고 방송이 재개되기를 기다렸다.” 장형운(35) 작가는 파업이 끝나도 취재를 진행할 수 없었다. “프로그램은 많다. 그러나 은 작가로서 자부심을 갖는 프로그램이다”라고 작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재홍 작가는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 장형운 작가는 ‘김종익씨 민간인 사찰’, 이소영 작가는 ‘기무사 민간인 사찰’, 이화정 작가는 ‘오세훈의 한강 르네상스’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작가로서의 자부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MBC 노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사이트 ‘파업채널M’은 2011년을 “ 최악의 해”라고 표현한다. “김재철 사장과 고등학교·대학교 선후배 사이인 윤길용 PD가 시사교양국장으로 취임한 이후 ‘검사와 스폰서’편을 제작한 최승호 PD가 다른 부서로 강제 발령을 받고 경질성 인사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작가들은 “MB 무릎기도가 시작이었다”고 기억한다. 당시 청와대 조찬기도회에서 대통령이 무릎 꿇고 기도한 해프닝을 ‘생생이슈’ 코너에서 다루려고 했지만 국장과 팀장이 막았고 항의하는 PD를 다른 부서로 전출시켰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편을 만든 이우환 PD는 장기 중단 상태인 남북 경제협력 문제를 취재하러 가던 중 팀장에게서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취재원을 5분 거리에 두고 고속도로에서 유턴을 해야 했다. 이우환 PD와 ‘황우석 고발’로 유명한 한학수 PD 등은 곧 지방 부서로 보내졌다. 남아 있는 작가와 PD의 전쟁이 시작됐다.
작가들은 “이전 팀장과 국장이 외압을 막는 방패였다면, 그때부터는 팀장과 국장이 감시자 역할을 했다. 김철진 팀장은 PD들의 책상과 컴퓨터를 몰래 뒤지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부터는 팩트체커팀장이라는 보직을 만들었는데 사실상 사전검열관 역할이다. 노동문제를 특히나 싫어했다. 기획안을 가져가면 ‘이런 기획 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자꾸 가져와!’ 하며 찢어버리기 일쑤였다.”(이소영) 이유는 그때그때 달랐다. “4대강 사업 현장에서 죽어간 노동자들이 18명을 넘을 무렵이었다. 이를 취재하겠다고 했더니 ‘18명이 뭐가 많이 죽었다고 방송하나? 노동자들이 잘못했겠지’ 하는 거다. 포클레인 불법 개조 등 노동자들이 잘못한 게 아니라 무리한 공사 감행 때문이라는 증거를 찾았다. 그랬더니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겠지’ 그런다. 불법·편법에 그럴 만한 사연이 없는 게 어딨나. 팀장이 그런 말을 하다니 믿을 수 없었다.”(정재홍) “희망버스로 나라가 들끓을 때도 카메라가 묶였다. 보다 못해 의 모든 작가와 PD들이 돌아가며 ‘김진숙 취재안’을 한 번씩 다 냈지만 회사 쪽은 취재 자체를 막았다.”(이화정)

“작가는 글로 싸워야 한다” 릴레이 기고

“아무에게도 해가 가지 않는 종교, 불륜, 살인사건 같은 아이템을 선호했다. 권력에 대해 비판적인 취재를 시작하면 ‘너희들은 나라 잘되는 꼴을 왜 못 보냐’고 했다”고 한다. “눈총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작가들은 벌써 벌집이 됐을 것”이라는 정재홍 작가는 “결과적으로는 무력화를 막으려던 내부전을 치열하게 치른 덕분에 오늘날 이렇게 한꺼번에 잘리게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 교체로 분위기를 쇄신하겠다”는 방송사 쪽의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지난 8월21일 방송 재개 예정이던 은 결국 결방됐다. 방송이 제작조차 되지 못하자 PD들은 MBC 사옥 앞에서 ‘ 정상화’를 촉구하는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 대체 집필 거부’를 밝힌 시사교양 작가는 900명을 넘겼다. 방송 4사 구성작가협의회를 이끄는 구성다큐연구회 최미혜 회장은 “방송 4사 교양국 소속 작가는 물론 외주사 소속 작가, 종편 작가조차도 연대 서명을 보냈다”고 밝혔다. 임정화 EBS 구성작가협의회장도 “작가 생활 18년 만에 이런 연대는 처음이다. 처럼 작가의 역할이 큰 프로그램조차도 쉽게 작가들을 갈아치운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크다”고 전했다. 작가들의 공분을 부른 것은 이번 사태가 노골적인 언론 탄압이자 작가라는 직업군에 대한 모욕으로 비쳐진 탓이 크다는 것이다.
방송작가들의 분노와 연대가 거세다. 교양부문 구성작가뿐 아니라 다른 장르 작가들도 ‘ 작가들의 원직 복귀’를 요구하고 나섰다. “작가는 글로 싸워야 한다”며 온라인 뉴스 사이트에서 전직 작가들이 릴레이 기고를 한 데 이어 (한겨레21) 등 지면에서는 드라마·예능 같은 다른 장르 작가들까지 연대와 지지를 호소하는 ‘릴레이 기고’에 나섰다. 한국방송작가협회 이금림 이사장은 “군사정권 시절에 작가들이 경험했던 외부의 압력보다도 더 굴욕적인 작가에 대한 박해”라며 “작가들이 원직 복직될 때까지 모든 작가들이 총력으로 이 사태에 대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작가들의 집단행동으로 프로그램이 결방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작가들을 핑계 대서 대선 국면에 이라고 하는 정권에 껄끄러운 방송을 내보내지 않으려는 방송사 쪽의 음모가 아닌가 의심한다”며 “일이 이렇게 돼가는데도 방통위는 작가협회와 면담을 거부했고 방문진은 8월27일 논란이 됐던 김재우 이사장을 여당 쪽 인사라는 이유로 연임했다. 다음 수순은 김재철 사장 유임이 아닐까 걱정스럽다. 이래저래 절망이 가까운 시절이다”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영전, 영전, 영전

파업이 한창이던 지난 4월 MBC는 ‘인사 쇄신’이라는 미명 아래 비판적 제작진 속아내기를 주도했던 김현종 전 시사교양3부장을 시사제작국장으로, 김철진 전 팀장을 교양제작국장으로, 배연규 전 팩트체커팀장은 시사제작3부장으로 임명했다. 임기 동안 세 차례 을 결방시켰던 윤길용 국장 또한 편성국장으로 영전했다. (한겨레21)은 방송 정상화 책임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들으려고 윤길용·김철진·김현종 국장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받지 않았다. 배연규 현 팀장은 “말해봐야 어차피 기사는 제대로 나가지 않을 것”이라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 PD수첩) 잔혹사 일지
2010년 8월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 편 방송 보류
2011년 1월 ‘공정사회와 낙하산’ 편을 두고 사전 심의 논란
2011년 2월 윤길용 시사교양국장 취임 직후 최승호 PD 강제 전출
2011년 3월 ‘MB 조찬기도회 무릎기도’ 취재 보류 항의하는 전성관 PD 인사 조처
시사교양국 PD들, 인사 조치 항의해 집단 연가 투쟁
2011년 5월 김철진 팀장, ‘남북 경제협력 중단’ 취재 중단 요구, 이우환 PD 퇴출 명령
2011년 7월 김철진 팀장 PD 사찰 논란
드라마세트 관리 담당으로 발령받은 이우환 PD, 경인지사로 발령받은 한학수 PD 부당 인사 가처분 신청 승소
2011년 8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다룬 ‘누구를 위한 한강변 개발인가’ 편 방송 직전 화면 긴급 수정
2012년 1월 ‘정치검찰’ 취재 중단 명령
2012년 2월 ‘FTA’ 촬영 중단 명령
2012년 7월 작가 전원 해고
2012년 8월21일 파업 중단 뒤 첫 방송으로 예정됐던 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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