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9일 일요일

사학 재단 돈벌이와 재산 빼돌리기에 날개 달아주기?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10일자 제927호 기사 '사학 재단 돈벌이와 재산 빼돌리기에 날개 달아주기?'를 퍼왔습니다.
[초점] 교육용 기본재산 수익용 용도 변경 등 허용하겠다는 정부의‘대학 자율화 추진 계획’… “비리 사학에 날개 달아주는 격”

‘대학 구성원이 아닌, 대학 운영자만을 위한 자율화다.’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가 지난 8월27일 경쟁력을 강화한다며 발표한 ‘대학 자율화 추진 계획’을 두고서 나오는 말이다. 대학 재정 운영 및 캠퍼스 내 건축 규제 완화 등을 골자로 한 정부의 이번 조처로 학교 법인은 지금보다 더 손쉽게 수익 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국가 간 인재 확보 경쟁이 심화되는 등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 대학이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마련한 조처라고 설명한다. 전국 4년제 대학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도 이런 계획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사립대 재정 운영의 투명성과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가 담보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할 때, 정부의 이번 조처가 학생 등 대학 구성원들을 위한 ‘교육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기보다는 사학 재단의 돈벌이 및 재산 빼돌리기에 악용될 소지가 높다는 우려가 많다.

» 서울시내 한 사립대 캠퍼스 안에 외국계 커피전문점 등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다. 지난 8월27일 교육과학기술부는 재정 운영과 대학 내 건축 규제 완화 등이 포함된 ‘대학 자율화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이 모두 현실화할 경우 사학 재단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높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교육용 기본재산, 수익용 용도 변경 허용

대학을 운영하려는 학교법인은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법에 명시된 교육 여건을 갖춰야 한다. 교육에 직접 사용되는 토지·강의실·실험실습설비 등이 교육용 기본재산이다. 학교법인은 교육에 직접적으로 사용되진 않지만 재원 마련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수익용 기본재산을 확보할 의무도 지닌다. 학교 운영을 등록금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학교법인에도 일정 수준의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수익용 기본재산으로 거두는 소득을 기반으로 법인이 학교에 보내는 법인전입금이 늘어나면, 학교 운영에서의 등록금 의존도가 낮아질 수 있다. 사용 목적이 다른 교육용·수익용 기본재산을 엄격하게 분리하도록 한 건 법인이 학교 재산에 마음대로 손대지 못하게 하려는 장치 중 하나다.
정부의 이번 조처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것으로 지적되는 대목은, 그동안 엄격히 제한해온 교육용 기본재산을 수익용으로 용도변경하는 것을 허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법인이 교육용 기본재산을 수익용으로 변경하려면 그만큼의 액수를 학교 운영비용(교비회계)으로 채워넣어야 했다. 그러나 앞으로 정부 계획대로 사립학교법이 개정되면 법정 기준을 초과한 교육용 기본재산에 대해선 용도 변경을 아무 조건 없이 할 수 있다. 또 교과부 장관의 허가 없이도 사후 보고만으로 수익용 기본재산 처분이 가능해진다. 사학 재단의 수익사업에 날개를 달아주는 셈이다.
교과부는 이번 조처와 관련해 법정 기준을 초과해 사용하지 않는 캠퍼스 땅 등을 수익용 기본재산으로 바꿔 처분하고 그 수익금을 다시 대학에 주면 학교 운영 재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대학의 현실을 외면한 사학 재단 편향 조처라는 비판이 많다.
사립대학회계정보시스템에 공시된 자료를 보면, 2011년 기준으로 사립대가 보유한 수익용 기본재산은 법정 기준의 51.3% 수준에 머문다. 연간 수익률은 법정 기준에 미달하는 보유액의 3.1%에 불과하다. 수익용 기본재산의 64.5%를 수익률이 떨어지는 토지가 차지한 탓이 크다. 토지 수익률은 건물·신탁예금 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연간 보유총액의 0.6%에 불과하다. 지난 10여 년간 사립대 수익용 기본재산에서 토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큰 변동이 없었는데, 이는 사립대 법인이 수익 증대를 위한 자구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음을 방증한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이수연 연구원은 “현재 사립대의 수익용 기본재산 연간 수익률은 법에서 요구하는 기준인 3.5%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어, 이번 정책안이 학교 재정에 가져올 이익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수익용 기본재산에서 나온 많은 수익이 학교 운영에 제대로 투입되지도 않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12월 감사원이 발표한 ‘대학 등록금 책정 및 재정운용 실태’를 보면, 2010년 기준으로 조사 대상 148개 학교법인 가운데 80개 학교가 수익용 기본재산에서 발생한 소득을 학교(교비회계)에 넣지 않았다. 일부 법인에서는 교과부 보고 때 운영 수익의 일부를 임의로 누락했다. 많은 사립대 학교법인들이 부담 여력이 있는데도, 법인이 내야 할 법정부담금을 등록금이나 기부금으로 조성된 교비회계에서 가져다 쓰고 있었다.

등록금 인하 강제 뒤 사학 달래기용?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가 교육용 기본재산의 수익용 용도 변경 허용을 강행하려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이수연 연구원은 “정부가 여론에 밀려 등록금 인하를 강제한 대신, 이번엔 사학 달래기용으로 내놓은 정책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앞으로 학생 수 감소 등 탓에 존폐의 기로에 놓일 일부 지방 사립대의 재산 빼돌리기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립대 교수는 이런 분석을 내놨다. “학교법인 재산은 개인이 가질 수 없고 교육사업을 하는 다른 법인에 기부 밖에 할 수 없도록 돼 있지만, 국내 사립학교는 사유화돼 있는 게 현실이라 학교 문을 닫게 되면 재산 처리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어날 것이다. 학생 정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지방 사립대의 경우, 교육용 기본재산이 법정 기준을 넘어서게 될 것이고 이를 수익용 재산으로 전환해 허가 없이 처분이 가능하도록 하면 학교 설립자나 친·인척이 학교 재산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는 ‘출구’로 활용될 수 있다.”
정부는 또 대학 내에 호텔이나 국제회의산업 관련 시설 건설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2005년 이후 캠퍼스엔 학생들의 지갑을 노리는 식당·영화관·편의점 등 상업시설이 속속 늘어만 가고 있다.
교과부는 사학 재단의 ‘수익 사업’에 날개를 달아주는 한편으로 사학 내부의 감시망을 약화시킬 조처도 함께 내놨다. 사립학교법에 규정된 총장 임기 4년 초과 제한(중임은 가능) 제도 폐지를 이번 조처에 포함시킨 게 대표적이다. 한국교원대 장수명 교수(교육학)는 “그나마 총장 임기가 있어 중간 평가의 의미도 있는 것인데, 그런 과정을 너무 경시하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시내의 한 사립대 교수는 “비리 사학은 이번 조처를 더욱 환영할 것 같다”며 “총장 선거가 있을 때마다 교수들의 견제가 귀찮을 수 있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대다수 사립대 총장의 명줄을 학교법인이 쥐고 있고, 학교법인 설립자나 이사장 친·인척이 총장과 법인 이사회를 오가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재정 지원하고 사회적 규제 가해야

정부의 이른바 ‘대학 자율화’ 정책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988년 노태우 정부가 ‘등록금 자율화 정책’으로 사립대가 등록금을 마음대로 인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뒤 지속돼온 정책이다. 역대 정부는 국가 재정 부족을 이유로 대학 교육을 민간 자본에 의존해왔고, 그 결과 전체 대학생 중 사립대 학생 비율이 78.6%(2011년 기준)에 이르게 됐다. 정부가 재정 지원과 일정한 사회적 규제를 가하는 방식으로 대학 교육 정책의 큰 틀을 수정해, 그동안 외면해온 교육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는 조언이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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