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9일 일요일

경매에서 만난 적대적 공생관계, 하우스푸어 vs 하우스리스


이글은 한겨레21 2012-09-10일자 제927호 기사 '경매에서 만난 적대적 공생관계, 하우스푸어 vs 하우스리스 '를 퍼왔습니다.
[표지이야기] 대출금 못갚는 하우스푸어가 절망한 경매시장에서 희망을 찾는 하우스리스, 그 사이에 끼인 세입자… 하우스푸어 급증으로 커진 경매시장에서 서로의 불행을 먹고 사는 이들의 어긋난 만남 속으로

철저하게 닫힌 세계였다. 아파트 경매시장에는 ‘시장’이란 말이 붙는 것도 어색했다. 막장인 이곳에까지 내몰린 이들은 사업에 망하거나 보증을 잘못 선 극소수 채무자였다. 어쩌다 시장에 나온 물건은 전문 경매꾼들에게로 떨어졌다. 가격이 저렴하다 해도 ‘재수 없는 집’을 사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그러던 경매시장이 2~3년 전 바뀌었다. 요즘엔 바짝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에서 그나마 움직이는 건 경매시장뿐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쪽에선 무리하게 집을 샀다가 빚을 감당 못해 파산한 ‘하우스푸어’들이 시장으로 이끌려나온다. 다른 쪽에선 아직도 높은 집값에 발을 동동 구르는 ‘하우스리스’(무주택자)들이 값싼 아파트를 구하려고 시장을 찾는다. 이들의 도우미를 자처한 컨설턴트들도 시장 주변을 기웃거린다. 모두 부동산 광풍이 휩쓸고 간 흔적을 끌어안고 사는 이들이다. 경매시장에 타의 또는 자의로 참여하게 된 사연들을 들어봤다. 집을 잃은 쪽도, 얻으려는 쪽도 모두 가명을 원했다. _편집자

최정택(39)씨도 무리인 걸 알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경기도 일산의 105.6m²(32평) 아파트는 2008년 당시 4억5천만원이었다. 그가 가진 돈은 1억5천만원이 전부였다. 그래도 포기가 안 됐다. 자고 나면 주변 아파트 가격이 수백만원씩 뛰어 있었다. 손해 보는 것 같아 조급했다. 은행에서도 곧 대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예고했다. 집을 장만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이 셋을 번듯한 아파트에서 키우고 싶었다. 그는 결국 3억원의 대출을 받아 원하는 아파트를 손에 쥐었다. 그러나 그가 계약서에 서명한 가격이 꼭지였다. 그날 이후 아파트 가격은 계속 떨어졌다. 그래도 이자를 내는 날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한 달 300만원의 이자가 생활을 짓눌렀다. 수입이 모두 빚 갚는 데 들어갔다. 빚을 내 생활비를 댔다. 이자가 밀려도 더 비싼 빚을 내서 메꿨다. 날마다 여기저기서 빚 독촉을 했다. 가족들은 모르는 전화는 받지도 않았다.

전체 경매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을 정점으로 정체하고 있는데도 수도권 아파트 경매시장만은 계속 커지고 있다. 경매정보업체 부동산태인의 자료를 보면, 올해 들어 지난 8월28일까지 수도권에서만 2만690채의 아파트가 경매에 부쳐졌다. 감정가로 따지면 9조원이 넘는 규모다.

하우스푸어에서 ‘하우스리스푸어’로

지긋지긋했다. 그래도 아파트는 팔리지도 않았다. 이자라도 감당하려고 아파트를 월세 110만원에 내주고 처가로 들어갔다. 눈치가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월세마저 제때 안 들어와 늘 속을 끓였다. 이자가 6개월 정도 연체되자 더 이상 참지 못한 은행은 아파트를 경매로 넘겼다. 지난 7월 아파트는 3억2천만원에 팔렸다. 경매가 악몽의 끝은 아니었다. 빚은 아직도 5천만원이나 남았다. “내 잘못된 판단으로 가족들만 고생시켰다. 정말 고통스러웠다. 은행에 여러 번 주택담보대출을 다른 신용대출로 돌려주거나 상환 기간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다 거절당했다. 모든 게 내 책임이니까 자책하다가도, 문득 억울한 마음이 든다. 10년의 시간을 아파트 하나로 다 빼앗겼다.”

» 부동산 광풍의 끄트머리였던 2008년 지금의 하우스푸어들은 아파트에 인생을 걸었다. 빚으로 손에 넣은 아파트는 결국 경매시장에서 빚잔치로 사라진다. 사진 한겨레 김정효

최씨는 집을 산 순간부터 4년을 하우스푸어로 살았다. 경매로 집을 잃고 나서야 그 꼬리표는 떨어져나갔다. 대신 그에겐 ‘하우스리스푸어’(집 없는 빈곤층)라는 더 참담한 딱지가 붙었다. 최씨처럼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하우스푸어가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정부의 공식 통계는 없다. 2010년 기준으로 159만6천 가구(부채 원리금 상환으로 생계에 부담을 느끼는 주택 보유자)라는 현대경제연구원의 추정이 거의 유일하다. 10가구에 1가구꼴이다. 지난 2년간 부동산 경기 침체와 가계 부실화가 가속화해 지금은 200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1천조원의 가계부채 가운데 절반 정도가 아파트 따위의 주택에 묶인 탓에 이들은 한국 경제를 수렁에 밀어넣을 원흉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도 2~3년 전에는 중산층으로 불렸다. 수도권 지역의 아파트는 그 증거였다. 중산층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려고 그들은 빚도 마다하지 않았다.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던 투자는 2009년부터 부동산 가격이 고꾸라지기 시작하자 비수가 돼 돌아왔다. 금리가 올라 빚을 감당할 수 없었지만 집을 내놔도 팔리지 않았다. 집이 가진 전부였던 이들은 곧바로 하우스푸어로 추락했다. 인심 좋게 대출해주던 금융회사들에 인내심은 없었다. 이자를 3~4개월만 밀려도 담보로 잡은 아파트를 경매로 넘겼다. 실제 전체 경매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을 정점으로 정체하고 있는데도 수도권 아파트 경매시장만은 계속 커지고 있다. 경매정보업체 부동산태인의 자료를 보면, 올해 들어 지난 8월28일까지 수도권에서만 2만690채의 아파트가 경매에 부쳐졌다. 감정가로 따지면 9조원이 넘는 규모다. 수도권 아파트 경매는 부동산 활황기인 2007년 4조3천억원(1만5382건)에서 지난해엔 14조8천억원(3만779건)으로 4배 이상 급증했다. 빚을 갚지 못한 하우스푸어들이 은행 등 채권자에 이끌려 강제로 집을 처분당한 흔적이다.
화려한 투자 이력도 하우스푸어라는 신분 앞에선 전혀 쓸모없었다. 투자에 끌어다 쓴 빚이 많을수록 몰락은 빠르고, 깊었다. 인테리어 회사 직원이던 박승철(42)씨는 2005년 부동산 투자에 눈을 떴다. 우연하게 재개발 지역에 빌라 한 채를 낙찰받은 게 시작이었다. 그의 돈 700만원에 나머지는 대출을 받아 3500만원짜리 빌라를 손에 쥐었다. 석 달 만에 팔아 300만원을 남겼다. 한 달 수입이 100만~300만원으로 들쑥날쑥하던 그에겐 꽤 괜찮은 수입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부동산 투자에 올인했다. 재개발 지역에서 급매물로 시세보다 20~30% 싸게 나온 빌라나 아파트를 사들였다. 부동산 시장이 활활 타오를 때라 1년에 한 채만 제대로 팔아도 2500만원의 수익이 났다. 자기 돈 1억5천만원에 대출금 5억원을 종잣돈으로 굴리며 아파트나 빌라 서너채를 사고 팔았다. 위험한 곡예였다. 그러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자 보유하던 아파트 2채는 바로 애물단지가 됐다. 매달 이자만 450만원을 감당해야 했다. 아이가 셋이었지만 일을 그만둔 터라 수입이 없었다. 사채로도 빚을 감당할 수 없자 결혼 예물까지 팔았다. 결국 올해 초 아파트는 모두 경매로 넘겨졌다. “살던 집까지 경매에 부쳐질 때는 아파트에서 밑만 내려다보며 살았다. 돈 때문에 죽어야 하나 생각했다. 지금은 움켜줬던 미련을 놓아버리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그는 잔금을 치르는 날 주민센터에 가서 임대차 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았다. 그러나 새 건물에 등기부등본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전입신고는 나중으로 미뤘다. 보름 뒤 은행은 등기부등본이 생기자마자 근저당을 잡았다. 그는 뒤늦게 전입신고를 했지만 이미 임차인으로서 대항력을 잃은 뒤였다. 결국 집 주인의 빌라가 지난 2월 경매로 넘겨지자 그는 전세금 1억5천만원을 모두 잃게 됐다. 가족의 전 재산이었다.
경매의 또 다른 피해자, 세입자

경매는 불행의 도미노다. 하우스푸어의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세 들어 살던 이들의 생활도 조각난다. 다만 불행의 깊이는 세입자가 전세 계약을 하기 전 대비한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선순위 세입자로 충분한 대항력을 갖춰놓았다면 전세금을 지킬 수도 있다. 가급적 근저당이 잡히지 않은 아파트를 고른 뒤 전입신고 때 확정일자를 동시에 받은 경우다. 물론 이때도 경매가 진행되는 수개월 동안 채권자와 경매 입찰자 등 낯선 이들이 집을 들락날락하고 법원 서류가 수시로 날아드는 번거로움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대항력이 없는 세입자라면 경매 앞에 속수무책이다.

고미영(32)씨는 2010년 11월 중순 서울 광진구의 전셋집으로 이사하면서도 내 집인 것처럼 기뻤다. 남의 손때를 타지 않은 신축 빌라였다. 곧 태어날 아이에게 좋은 선물이 될 터였다. 흠이 하나 있긴 했다. 집주인에겐 빚이 13억원 넘게 있었다. 찜찜했지만 곧 갚겠노라는 말을 믿었다. 그는 잔금을 치르는 날 주민센터에 가서 임대차 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았다. 그러나 새 건물에 등기부등본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전입신고는 나중으로 미뤘다. 보름 뒤 은행은 등기부등본이 생기자마자 근저당을 설정했다. 그는 뒤늦게 전입신고를 했지만 이미 임차인으로서 대항력을 잃은 뒤였다. 결국 집 주인의 빌라가 지난 2월 경매로 넘겨지자 그는 전세금 1억5천만원을 모두 잃게 됐다. 가족의 전 재산이었다. 그는 “올해 안에 집을 비워줘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며 “모든 일에 짜증만 난다”고 말했다.
하우스리스들은 하우스푸어가 절망한 경매시장에서 희망을 찾는다. 하우스푸어들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아파트는 하우스리스에겐 여전히 오랜 꿈을 이룰 희망봉이다. 경매시장까지 내몰린 하우스푸어가 많을수록 하우스리스는 더 좋은 기회를 잡는다. 반대의 공식도 성립한다. 경매시장에선 하우스리스가 많아야 하우스푸어에게도 도움이 된다. 계속 늘어나는 경매 아파트를 사줄 수요자가 필요한 탓이다. 하우스푸어들은 강제로 경매를 당하긴 했지만 일단 입찰이 흥행해야 아파트를 제값에 팔아 최대한 빚을 갚을 수 있다. 절망과 희망이 등을 맞댄 적대적 공생이다.
어찌 보면 잔인한 이 경매 사슬은 부동산 광풍이 만들어낸 결과다. 2000년대 중반 정부와 투기꾼이 만들어놓은 부동산 거품에 지금은 하우스푸어가 된 이들이 가세하자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워낙 당시 꼭지가 높아 이후에 가격이 떨어졌다고 해도 하우스리스들이 넘볼 수준은 아니다. 아직도 직장인들이 수도권에 있는 아파트를 사려면 10∼20년은 허리띠 졸라매고 돈을 모아야 한다. 부동산 시장 널뛰기에 지친 하우스리스들은 하우스푸어들이 내놓은 아파트를 따라 경매시장으로 흘러들었다. 이들은 경매시장에서라면 아파트를 시세보다 10%라도 싸게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올해는 그 꿈을 이룰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갈수록 공급은 늘어나고 수요는 줄어 경쟁률이 떨어진 덕분이다. 지난 8월28일 기준 수도권 아파트의 낙찰가율은 74.1%다. 평균적으로 감정가의 74.1% 가격에 아파트를 낙찰받았다는 뜻이다. 입찰 경쟁률이 낮아 경매가 한두 차례 유찰된 덕이다. 2007년 낙찰가율이 91.8%에 이르렀던 것과 비교하면 그만큼 아파트를 낮은 가격에 낙찰받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서울 강남과 경기도 용인·분당 등 거품이 많이 낀 지역은 낙찰가율이 70% 선까지, 나머지 신도시 지역에선 50~60%까지 떨어진 곳도 있다.

하우스리스 딱지를 떼 이들도 있지만

보험회사에 다니는 박창훈(32)씨는 요즘 아파트 경매 입찰에 참여할 ‘때’를 엿보고 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2년 동안 꾸준히 경매 공부를 해온 덕에 경매의 기본인 등기부등본상 권리 분석에 자신이 있다. 최근엔 경매정보 사이트에 나온 아파트와 현장 시세를 비교하며 적당한 낙찰 가격을 추정해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직은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가 찍어둔 서울 대방동의 중·소형 아파트는 경매시장에서도 4억원이 넘는다. 전세금 1억5천만원이 전 재산이라 3억원 가까이 대출을 받아야 하는 게 부담이다. 그는 원하는 아파트가 3억원대로 떨어지면 실행에 옮길 생각이다. 지금 5살인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집을 마련하는 게 목표다. “5년 전 결혼할 때 9천만원 전세에서 시작했다. 아이가 둘이라 1~2년 안에는 집을 마련하고 싶다. 남들처럼 일반 매매로 집을 사는 것은 엄두가 안 난다. 내 돈과 대출금을 반반으로 해서 아파트를 살 정도가 되면 입찰에 들어가려고 한다.”
경매로 하우스리스의 딱지를 뗀 이들도 적지 않다. 실수요자들이 선호하는 85m² 이하 소형 아파트는 경매시장에서도 인기다. 올해 들어 5월 말까지 경매 절차가 완료된 아파트에서 84.96m² 이하 아파트의 평균 낙찰가율은 91.77%에 이른다. 감정가에 낙찰되거나 한 차례 유찰된 뒤 곧바로 새 주인을 만난 셈이다. 2009년 73.68%에서 크게 높아졌다. 반면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스러운 중·대형 아파트의 낙찰가율은 몇 년째 70% 중반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8월 중순 서울중앙지법 경매법정에서 만난 자영업자 김상수(43)씨는 막 서울 성북구의 108m² 아파트를 낙찰받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는 경매로 결혼 이후 17년간의 ‘전세 메뚜기’ 인생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고 기뻐했다. 거저 얻은 행운이 아니었다. 2년 동안 독학으로 경매를 공부한 그는 올해 들어 경매로 나온 여러 아파트를 직접 돌아보며 지금의 아파트를 낙점했다. 현재 살고 있는 생활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다 아이들 교육 환경도 맘에 들었다. 감정가 3억4천만원에서 한 차례 유찰돼 2억7천만원까지 떨어지자 입찰에 들어갔다. 그는 그 가격에 35만원을 더 써 냈다. 경쟁자는 없었다. 그는 곧바로 아파트를 낙찰받았다. 전세금 2억원에 그동안 모은 돈을 보태면 빚을 지지 않고도 감당할 수 있는 규모다. 그는 “17년 동안 6번 이사를 다녔다. 이번 전세 기간은 오는 10월에 끝나는데 더 이상 이사를 다니기 싫었다”며 “올해 들어 3번 경매 입찰에 참여한 끝에 오늘 성공했다. 나는 담담한데 아이들이 무척 좋아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부분 경매 브로커들은 전문 지식이 없고, 하자 있는 주택을 모르는 척 의뢰인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경매는 낙찰자가 위험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투자이기 때문에 손해를 보아도 사기죄로 고소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변호사법 위반 정도로 고소를 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정도다” -정충진 법무법인 열린 변호사

 
» 은행들은 부동산 경기가 고꾸라지기 직전까지도 공격적으로 주택담보대출 영업을 벌였다. 2009년 말 한 은행 창구에서 직원이 주택담보대출 상담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자료

경매에 성공한 기쁨도 잠시

경매에 참여한 하우스리스가 늘 해피엔드를 맞는 건 아니다. 섣불리 덤벼들었다가 거액을 손해 보는 ‘사고’도 종종 발생한다. 가장 큰 위험은 법원에서 아파트를 낙찰받은 뒤다. 한 달 안에 매각 대금을 치르고 소유권을 넘겨받더라도 채무자나 세입자로부터 아파트를 온전히 넘겨받지 못하면 경매에 실패하게 된다. 홍경숙(53)씨는 지난해 8월 서울 관악구의 145.5m²(44평) 아파트를 낙찰받았을 때만 해도 큰 행운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4억8천만원 아파트를 반값도 안 되는 1억9600만원에 손에 쥐게 된 것이다. 부족한 1억3500만원은 경락잔금대출을 받아 충당했다. 은행의 근저당보다 앞에 선순위 세입자가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전입신고는 돼 있었지만 확정일자가 없어 대항력이 없는 위장 임차인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잔금을 모두 치를 때까지 세입자는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제야 그는 당시 임대차계약서 등 관련 서류들을 찾아보고 세입자에게 대항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꼼짝없이 1억3500만원의 전세금을 물어주게 된 것이다. 법원에 인도명령 청구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명도소송에서도 졌다. 그는 궁지에 몰렸다. 세입자는 전세금을 당장 돌려주지 않으면 아파트를 경매로 넘겨버리겠다고 최후통첩을 해왔다. 그는 “당시엔 위장 세입자라고 볼 만한 충분한 정황이 있었다”며 “세입자가 1년 넘게 내 집을 점유하고 있어서 항소심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홍씨 같은 경매 초보에게 도우미를 자처하는 컨설팅 시장은 점점 커진다. 경매 물건 검색, 현장조사, 입찰 대리, 명도, 강제집행 등을 한꺼번에 처리해주는 원스톱 서비스라고 유혹한다. 이들은 아파트 낙찰을 도와주고 감정가의 1~1.5%나 낙찰가의 1.5~2%의 수수료를 받는다. 그러나 민사집행법에 따르면 입찰 대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변호사, 법무사 혹은 매수신청 대리인 교육을 받고 법원에 신고된 공인중개사뿐이다. 공인중개사라고 하더라도 법원에 신고되지 않았으면 불법이다. 법무법인 열린의 정충진 변호사는 “대부분 경매 브로커들은 전문 지식이 없고, 하자 있는 주택을 모르는 척 의뢰인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경매는 낙찰자가 위험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투자이기 때문에 손해를 보아도 사기죄로 고소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변호사법 위반 정도로 고소를 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정도다”라고 했다.
실제 경매시장에선 무자격 브로커가 고객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이 흔하다. “지난달 한 업체에서 고객에게 아파트 1채를 낙찰받아줬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선순위 세입자가 있어서 고객이 추가로 1억원 넘게 떠안아야 했다. 업체에선 책임이 없다고 발을 빼고, 경매를 주선한 컨설턴트는 잠적했다. 컨설턴트는 기본급 없이 건당 수수료를 받은 뒤 업체와 ‘7 대 3’ 또는 ‘6 대 4’로 나누기 때문에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게 된다.”(ㄱ업체 컨설턴트)

모두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아파트 경매시장에서 하우스푸어와 하우스리스의 어색한 만남은 이제 막 시작일 뿐이다. 하우스푸어들에게 더 큰 고난의 시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갚아야 할 빚이 지금껏 갚은 빚보다 훨씬 많다.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한 2009년 3년 거치 방식으로 받았던 대출금 상환이 가장 급한 불이다. 올해 일시 상환 대출금만 60조원, 분할 상환 대출금은 19조원에 이른다. 게다가 금융회사들마저 위험관리 명목으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초과한 대출을 적극 회수하고 나서 하우스푸어들을 압박하고 있다. 하우스푸어들에겐 선택지가 없다. 이들이 빚을 갚는 동안 기다려줄지, 경매로 넘길지는 채권자인 금융회사들이 결정한다. 하우스리스들이 경매시장을 기웃거릴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집값이 하강 추세라는데, 턱없이 비싼 값을 치르고 아파트를 살 의욕이 실수요자들에겐 별로 없다. 이들은 이미 부동산 매매 시장에서 발을 뺀 지 오래다.
정대홍 부동산태인 팀장의 조언은 이렇다. “하우스푸어들이 대출을 갈아탈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들이 보유한 아파트가 앞으로 1~2년간은 계속 경매시장에 나올 것이다. 낙찰 가격은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높아질 것 같다. 다만 부동산 매매 가격도 떨어지고 있는 만큼 매매차익을 노린 투자는 신중해야 한다.”
여러 정황은 당분간은 경매 시장의 규모가 커지리라고 예고한다. 팽창하는 경매시장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의 반사경이다. 정부의 부동산·금융 정책이 망가질수록 하우스푸어와 하우스리스는 경매시장으로 내몰린다. 그곳엔 희망도 있지만, 절망과 위험이 더 많다. 하우스푸어와 하우스리스의 신분 교환이 있을 뿐 대안은 없다. 세입자들은 그 틈에서 전세금을 지키려 처절한 전쟁을 치러야 한다. 정부가 이 ‘불행한 만남’을 줄일 정책 대안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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