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일 토요일

[기고]유신체제, 고문·테러·암살·세계 최저임금의 독재체제였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8-31일자 기사 '[기고]유신체제, 고문·테러·암살·세계 최저임금의 독재체제였다'를 퍼왔습니다.

‘박정희 유신체제’는 전형적인 개발독재다. 개발독재라는 말은 그냥 독재보다는 용서받을 수 있는 명분이 인정되는 것처럼 생각하기 일쑤다. 국민을 먹여 살리기 위한 독재라고 하니까 그렇다. 박정희 독재 아래서 국민들은 ‘먹고 살기 위한 고육책’으로 불법구금, 고문, 테러, 강제해직, 암살, 그리고 일상의 감시들을 감수해야 했던 셈이다. 독재정권의 그런 체제 폭력은 1977년부터 3년여간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비델라에 의해 자행돼 ‘더러운 전쟁’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더러운 전쟁’은 1960년대부터 이어진 한국의 박정희 체제가 훨씬 선배였다. 체제 폭력에서 박정희 정권은 부끄러운 세계 최고였다.

새누리당 대선후보 박근혜 의원의 최측근인 홍사덕 전 의원은 그런 박정희 유신독재가 “자기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출 100억달러를 위해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박정희 정권 내내 수출신장과 경제개발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은 것과 같은 내용이다. 박정희는 3선개헌을 하면서도, 유신쿠데타를 하면서도 ‘선 경제성장, 후 민주주의’를 내세웠다. 그렇다면 성장 후에는 민주화를 했던가?

박정희 정권 아래서 연평균 경제성장률 10여%, 수출 100억달러 등과 같은 총량적 수치 외에 국민 실생활과 관련된 경제지표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경제지표에 관해 공신력을 가진 세계자료은행(WDB)의 자료를 보면 박정희 정권 아래 성장 수치의 허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첫째, 실제 국민의 생활경제와 직결되는 인플레 및 소비자 물가지수에서 박정희 정권 시기는 역대 정부 중 최악이었다. 정권 별 연평균 물가지수를 보면 박정희 유신정권(1973~79) 15.6%, 전두환 10%, 노태우 7.4%, 김영삼 4.8%, 김대중 3.6%, 노무현 3.3%이다.

둘째, 국민 생활의 실상을 알려주는 중요한 경제지표가 실업률이다. 국가경제의 총량지표가 좋아도 실업률이 높으면 국가경제와 아무런 연관성을 갖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전두환 정권기인 1980년부터 제공된 각 정권 별 연평균 실업률을 보면 전두환 4.11%, 노태우 2.8%, 김영삼 2.6%, 김대중 4.8%, 노무현 3.6%이다. 박정희 시기는 전두환 때보다 더 안 좋아 역시 역대 정부 중 최악이었다. 김대중 정부기의 수치는 IMF 관리 사태 때문이었고 그것이 전 정권에서 물려받았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셋째, 박정희가 수출 100억달러를 이루기 위해 유신을 했다는 그 수출도 매년 적자였다. 유신독재 7년간 무역수지 적자가 연평균 213만8137.7달러로 출혈 수출이었다. 이것도 IMF사태 직전인 1990년대 초·중반 외에는 역대 최악이었다. 기업들이 적자수출을 감행한이유는 무엇일까. 수출 총량만 올리면 정부가 정책 금융지원의 특혜를 주었기 때문이다. 특혜 금융지원이란 국민부담으로 기업을 키우는 결과가 된다.

이런 지표들은 유신독재가 애초에 경제개발과 국민의 가난 추방보다도 박정희 자신의 종신집권이 그 본질적 목표였다는 의미로 종합된다. 그 과정에서 고물가, 고실업, 출혈 수출, 세계 최장 노동시간, 세계 최저 임금 등으로 국민의 피와 땀 위에 키워진 대기업들이 오늘날 국민의 삶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 경제민주화와 사회경제적 신평등주의가 시대 과제로 등장한 대선정국에 ‘수출 100억달러’ 얘기는 참으로 시대착오적인 둔사(遁辭)가 아닐 수 없다.

김재홍 |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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