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7일 금요일

안철수와 그의 낙후된 적들


이글은 미디어스 2012-09-07일자 기사 '안철수와 그의 낙후된 적들'을 퍼왔습니다.
[분석]박근혜, 정말 떨고 있나?

일단은 안철수 측의 ‘완승’이다. ‘불법사찰’을 당했는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두고 정치적 득실을 따지기란 면구한 일이긴 하지만 드러난 상황만 놓고 보면 그렇다. 안 원장의 대변인 격인 금태섭 변호사의 기자회견 직후 정준길 새누리당 대선기획단 공보위원은 사실상 내용을 ‘인정’했다. 다만, 통화의 성격을 두고 ‘협박’이 아닌 ‘친구 사이에서 시중에 떠도는 얘기를 전달한 것일 뿐’이라고 의미를 축소했을 뿐이다.
통화 목적이 ‘협박’이었는지 ‘농담’이었는지는 어쩌면 부차적이다. 정 위원이 농담으로 한 얘기도 안 원장 측은 협박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실제 협박을 농담처럼 할 수도 있다. 양 진영이 팽팽하게 맞서있는 상황에서 당사자들의 주장 외엔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탓에 이번 사건은 양쪽의 주장을 두고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지는 사건이 될 공산이 크다.

▲ 안철수 교수의 대선불출마 종용 문제로 6일 기자회견을 한 안철수 교수측 금태섭 변호사(왼쪽)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공보단의 정준길 공보위원.ⓒ연합뉴스

박근혜, 너 떨고 있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에서 읽어내야 할 메시지는 만만치 않다. 우선, 박근혜 후보 측에서 누굴 두려워하고 있는지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안 원장 측 기자회견 직후 정 위원은 사의를 표명하며 일개 공보위원으로 안 원장을 협박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몸을 낮춰 불리한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다. 하지만 검사 출신을 직무 적합성이 떨어지는 공보위원에 임명한 것 자체가 안 원장을 향한 네거티브 공세를 겨냥한 노림수였다는 것이 정가의 지배적 분석이다.
특히, 정 위원의 경우 지난 2002년 산업은행이 벤처기업에 투자하며 뇌물을 받은 사건의 담당 수사 검사였다. 증권가 정보지를 비롯한 ‘카더라 통신’에는 오래 전부터 ‘안철수 연구소’가 이 사건에 연루되었단 의혹이 나돌았다. 말하자면, 정 위원은 안철수만을 겨냥한 맞춤 인사였던 셈이다. 정 위원의 주장대로라면 중수부 출신의 촉망받던 검사였고 대기업의 상무를 지내기도 한 정 위원이 최근까지 안 원장 측과 관련한 험담을 트위터에 늘어놓는 것으로 소일했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가 얼마나 비생산적인 영역이고, 한 전문인의 역량을 얼마나 단적으로 후퇴시키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들이 안 원장의 사생활을 캐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박근혜 후보 측에서 안 원장에 대해 최상급의 긴장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안 원장 측의 의혹 제기는 단순한 주장이 아닌 검증의 대상이 된다. 안 원장 측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거대권력 차원에서 안 원장을 사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가기관이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정보들이 떠돌아다닌다는 것이 의혹의 뿌리다. 정부와 여당은 당연히 아니라고 펄쩍 뛰고 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런 생각을 해본적도 없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박근혜 의원조차 사찰 대상으로 삼았던 이명박 정부였다. 이 권력의 생리를 아는 이들은 정보기관이 안 원장의 사생활을 캐는데 사력을 다하고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성인군자’의 이미지를 갖춘 안 원장을 단박에 무너뜨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보기관뿐만 아니라 대기업에서도 안 원장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경제민주화’가 대선의 주요한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대기업 체제의 폐해를 몸소 체험한 중소기업 사장 출신 안 원장의 존재는 대기업들에게 실존적 불안의 문제로 애초에 싹을 잘라 버려야 하는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경제 민주화를 주창하는 것은 국민적 요구를 수용하는 매우 정치적 방식으로 대기업 입장에선 어느 정도 타협하고 때가 지나면 희석될 수 있지만, 안 원장은 다르다는 것이다. 안 원장은 대선 후보로 부각되기 이전부터 대기업 체제의 한국 경제에 날 선 문제의식을 보여 왔다. 기업을 경영하며 스스로 하도급 체제와 하청 관행의 ‘을’로 설움을 겪어왔기 때문에 실물 경제 차원에선 대기업의 급소가 어딘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 차원에선 추상적 개념의 ‘경제 민주화’보다 안 원장이 주장하고 있는 ‘공생 발전’이 더 무서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안 원장과 관련된 의혹이 몇몇 매체를 통해 돌출적으로 쏟아지는 상황은 대기업의 작품이라는 게 정가의 또 다른 시각이다.

▲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대학원장(좌)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연합뉴스

안철수는 더 이상 아마추어가 아니다


어찌되었건, 누군가가 안 원장의 뒤를 캐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도 안 원장이 두렵고 대기업들도 안 원장이 행여 대권을 거머쥘까 불안하다. 이 과정에서 안 원장에 관한 의혹을 적극적으로 중계하던 언론은 내심 안 원장을 아마추어 취급하며, 견딜 수 있는 ‘맷집’이 있는가를 관전하듯 했다. 안 원장이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으면 ‘링에 오르라’고 성화를 부렸고, 어떤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명하면 또 다른 의혹을 얹는 방식이 한 달여간 되풀이됐다. 이 과정에서 안 원장은 전반적으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고, 이런 과정이 전개되는 것 자체가 그에겐 '피로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6일, 안 원장 측의 기자회견은 상황을 일거에 뒤집었다. 기자회견장에는 대략 150여 명의 기자들이 몰려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뤘다. 현장의 한 기자는 “닭 잡는 칼이 나와도 이 정도인데, 정말 소 잡는 칼이 나오는 날에는 어떨지 기대 된다”는 농을 던질 정도였다. 많은 이들의 지적대로 안 원장은 단 한 번의 기자회견을 통해 박근혜 후보의 대항마 지위를 공고히 하고, 향후 전개될 네거티브 공세를 차단한 것은 물론 민주당 경선 여부와 상관  없이 대선 정국의 가장 중요한 2인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했다. 대선 정국 자체를 아예 뒤집었다. 

▲ 경선을 벌이고 있는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4인. 그러나 이 경선은 여론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고 있다. ⓒ연합뉴스

너무 낙후되어 있는 그의 적들
물론, 안 원장이 이런 ‘1타3피’의 세련된 정치 행위를 할 수 있게 된 데는 새누리당의 ‘뻘짓’을 하면서 ‘잔루’를 깔아준 탓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타’를 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결국, 실력과 역량의 문제다. 더욱이 안 원장은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인하기 어렵지만 민주당의 광주전남 경선이 있는 날을 기자회견일로 택하며 본의 아니게 민주당 경선을 ‘2류’로 밀어냈다. 광주 1위를 통해 대세론을 굳히려 했던 문재인 후보의 전략은 울타리 밖을 넘지 못하게 됐다.      
안철수는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이 강함은 상대성이다. 그의 적들이 너무 낙후되어 있다. 중원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한 선거라는 분석이 유효하다면, 상대방을 ‘협박’하고 ‘불출마를 종용했다’는 것은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끝내 박근혜 후보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쌍용차 지부장을 멱살잡이로 끌어낸 사진이 진보적 시민들로 하여금 ‘박근혜가 되는 것은 최악이다’는 정치적 강박을 소환한 ‘결정적 장면’이었다면, 흡사 유신 체제의 선거 행패를 연상토록 하는 ‘불출마 협박’은 개혁적 시민들로 하여금 ‘박근혜의 사람들은 중도가 되기엔 상식에 못 미친다’는 윤리적 각성을 호출하는 ‘결정적 사건’이 될지 모른다. 낙후된 적들이 안철수를 단련시키고 있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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