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5일 화요일

박근혜 사과, '현실인식 결함' 드러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25일자 기사 '박근혜 사과, '현실인식 결함' 드러냈다'를 퍼왔습니다.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박근혜 역사관 ① '역사의 판단'은 누가 하는가?

유력 대선 후보 박근혜의 '역사인식 결함' 문제가 몇 달째 제기되고 있다. 박정희의 쿠데타와 독재정치를 옹호하거나 심지어 미화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급기야는 인혁당사건 판결의 재심 결과를 묵살하는 발언으로 많은 사람을 격분시키기에까지 이르렀다. 정치적 학살 희생자들의 명예나마 힘든 곡절 끝에 회복시켜 놓았는데 그 명예를 태연히 짓밟는 사람이 대통령 자리를 넘보고 있다니, 민주화의 역사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격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박근혜의 역사인식을 문제 삼는 이들은 대개 '정당성' 차원에서 이를 비판한다. 물론 의미 있는 비판이다. 그러나 정당성은 가치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경제개발을 절대적으로 중시하고 인권의 가치를 경시하는 사람들은 그런 비판에 공감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박근혜는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나는 정당성보다 '타당성' 차원에서 이 문제를 따질 필요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말이 되는 소리냐?" 따진다는 것이다. 도둑질하다 잡힌 놈이 "아이들을 굶길 수 없어서" 변명할 때 "아무리 그래도 도둑질은 나쁜 짓이야!" 하기보다 "너한텐 아이가 없잖아!" 따지는 편이 더 효과적일 수 있는 것이다.

박근혜는 비판을 회피하기 위해 '역사의 판단'이란 말을 상투적으로 쓴다. 역사의 판단은 누가 언제 어떻게 하는 것이란 말일까?

'누가' 하는 것인지부터 생각해 보자. 역사학계를 우선 생각할 수 있다. 판단의 주체는 물론 학계가 아니라 사회 전체다. 하지만 사회 안에는 서로 다른 생각이 많으므로 될수록 많은 사람들이 합의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학계에 있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군사독재의 정당성을 따지기 위해서는 그 시기 세계경제의 흐름과 냉전의 역사, 그리고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 이해를 학계가 도와주지 않으면 역사적 판단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합의가 어렵다.

"박근혜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중 이런 학계의 역할을 맡으러 나선 사례가 있다. 뉴라이트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을 때 그들은 역사교과서를 바꾸려고 달려들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자기네처럼 생각하도록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정부의 공권력까지 자기네 책동에 이용했다.

그런데 이 책동에 역사학자의 호응이 거의 없었다. 참여자 중 역사학자 비스무리한 사람이 몇 있었지만, 이 책동을 통해 본색이 드러나 버렸다. 예컨대 안병직과 이영훈 같은 이들이 역사 공부 하는 사람들인 줄로 나도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일에 대해 역사학자 중에는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박근혜처럼 생각하는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분명하다.

다음으로 역사의 판단이 '언제' 이뤄지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 역사의 판단이란 사회적 합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사회적 합의란 언제나 변할 수 있는 것이므로 역사의 판단 역시 불가변의 완벽한 형태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질서가 잡힌 사회에서는 안정성 높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 그리고 역사의 판단에 대한 폭넓은 합의가 사회의 질서에 공헌하는 측면도 있다.

독재정치 아래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자발적 합의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겉으로는 이견이 없는 것 같지만 의미 있는(질서에 공헌할 수 있는) 판단이 이뤄질 수 없다. 군사독재가 끝난 1987년 이후 자발적 합의가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현대사의 본격적 연구도 시작되었다. 역사의 판단이 제대로 빚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2012년 한국사회의 역사인식에는 아직 미숙한 점이 많지만 25년 전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발전한 것이다.

뉴라이트 책동은 우리 사회 역사인식의 발전에 대한 '반동' 현상이다. 물론 주류 역사인식의 발전 과정에 아직 허점이 적지 않고 뉴라이트 논설 중에는 이런 허점을 잘 지적한 내용도 없지 않다. 이런 지적은 역사인식의 변증법적 발전을 위해 가치 있는 것이지만 뉴라이트 책동은 그 가치를 정략적 목적에 이용하는 데 급급하기 때문에 사회를 위해서도 학계를 위해서도 공헌하는 자세를 갖추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 역사의 판단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생각해 보자. 질서가 안정된 사회에서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신경 쓸 필요도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사회적 합의가 형성-조정된다. 학계와 언론계, 교육계의 역할이 순탄하게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처럼 역사인식이 오랫동안 폭력으로 봉쇄되어 있던 사회에서는 역사인식의 급격한 발전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 어느 정도 역할을 정부가 맡는 것이 바람직하기도 하다. 정부가 역사인식 발전에 직접 작용한다는 것은 특별한 상황에서 예외적인 일이므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사회의 역사인식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자칫 정치적으로 악용될 위험이 있는 일이다.

과거사위원회(2005-2010)는 사회의 급속한 민주화에 따른 역사인식의 변화에 부응한다는 절실한 임무를 가진 기구였다. 여야 합의에 의해 설치되고 구성된 과거사위원회는 정치적 중립을 바탕으로 민주화사회의 역사인식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업적을 남겼다. 다룬 범위가 제한되어 있고, 내놓은 결과에 더러 충분치 못한 점이 있다는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도 있지만, 전체적 방향 제시에는 성공했다고 본다. 국가정부의 도움은 방향 제시 정도로 충분하고, 그로부터의 발전은 학계와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역사의 판단'이란 어느 시점에서 완결되고 마침표 찍는 것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합의하는 역사인식이 이뤄진다면 그것이 그 시점에서 역사의 판단이다. 상황 변화에 따라 이 판단이 조금씩 더 다듬어질 수도 있고 때로는 크게 바뀔 수도 있다. 2012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사회가 합의하고 있는 역사의 판단이 5년 후나 50년 후에 어느 정도 바뀔 것을 내다보더라도, 당장은 지금의 합의를 인정해야 한다.

1987년 이후에는 그 이전에 비해 역사를 논의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크게 자유로워졌다. 5.16을 구국의 혁명으로 보는 사람들, 유신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이 공산당의 밥이 되었으리라고 믿는 사람들, 인혁당사건에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모두 의견을 얘기할 기회를 누렸다. 그런 조건 위에서 25년간 논의가 진행되어 온 결과 우리 사회의 역사인식은 많이 발전했고, 훨씬 안정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다.

5.16이 쿠데타였다는 사실, 유신의 목적이 독재 강화에 있었다는 사실, 인혁당사건이 사법살인이었다는 사실 등이 지난 25년 동안에 우리 사회의 합의사항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아직 상당수 남아있다. 하지만 군사독재 시대에 가려져 있던 이 사실들을 이미 대다수 구성원들이 확인했고, 민주화가 심화됨에 따라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이것이 시대의 흐름이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고 버티는 것은 시대를 거스르려는 반동이다. 이 흐름에 거스르기가 얼마나 힘들어졌는지는 독재를 옹호하려는 자들이 일본 식민지배까지 미화해야 하는 현실에서 알아볼 수 있다. 독재에 힘이 있어서 옹호가 필요 없을 때는 식민지배 욕하면서도 멋대로 독재를 행할 수 있었는데. 식민지배와 독재, 하나를 옹호하기 위해 다른 하나도 미화해야 한다는 데서 둘 사이의 연관성을 생각하게 된다.

▲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24일 오전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과거사 관련 발언을 수정했다. ⓒ연합뉴스

어제 박근혜의 기자회견을 보고 작성해 놓은 초고에 몇 줄 덧붙인다. 역사를 회피하려는 박근혜의 자세는 바뀌지 않는 것 같다. 그는 과거보다 미래를 얘기하자고 한다. 회견문 모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번 대선이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비전과 민생정책을 놓고 경쟁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런데, 과거사 논쟁으로 인해 사회적인 논란과 갈등이 지속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많은 고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말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서로 존중하면서 힘을 합쳐 더 큰 국가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증오에서 관용으로, 분열에서 통합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 국민 여러분도 저와 함께, 과거가 아닌 미래로 국민대통합의 정치로 함께 나가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 마치 상식적인 이치를 말하는 것처럼 스스럼없이 꺼내는데, 이것은 불리한 전쟁 상황 중 수상에 취임하면서 처칠이 한 말이다. ("If we open a quarrel between the past and the present, we shall find that we have lost the future.") 런던이 폭격을 당하는, 과거사를 따질 여유가 진짜 없는 상황이었다. 박근혜의 역사인식만이 아니라 현실인식에도 결함이 있는 것 아닐까?

과거와 현재의 싸움 없이 어떤 미래를 가질 수 있는가? 남이 만들어주는 미래일 것이다. 박근혜의 9월 24일 기자회견은 역사인식의 전환이 아니라 선거전 상황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김기협 역사학자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