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5일 화요일

박근혜, '사과'는 던졌다…이제부터 문제는?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24일자 기사 '박근혜, '사과'는 던졌다…이제부터 문제는?'을 퍼왔습니다.
[대선읽기](19) '장준하·정수장학회' 문제, 박근혜의 '리트머스' 시험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입장 표명으로 대선 구도는 전기를 맞았다. 과거사 논란의 종결이 아니다.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다.

박 후보의 24일 기자회견문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깔끔한 내용"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박 후보의 사과 회견 내용이 특정한 사건을 연상시키는 점은 한계로 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적적인 성장의역사 뒷편에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고"라는 대목에서는 최근 전태일 재단 방문 실패를 떠올리게 되고, "북한에 맞서 안보를 지켰던 이면에 공권력에 의해 인권을 침해받았던 일도 있었다"는 대목에서는 "두개의 판결"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인혁당 사건 유가족들을 떠올리게 될 수밖에 없다.

사과 대상을 특정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유신을 통해 영구집권을 꾀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뇌는 진심"이었다고 평한 부분 등 '반박' 성향 유권자들에게 꼬투리를 잡힐 요소도 없지 않다.

▲ 28일 전태일동상을 찾은 박근혜 후보가 헌화하려고 하자, 이에 반발하는 쌍용차해고노동자를 수행원이 멱살 잡는 사건이 벌어졌다. ⓒ뉴시스

그러나 야권에서도 "환영할만 하다"는 반응들이 쏟아져 나왔다.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규정하며 사과문에 상당히 '포괄적'인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사 논란의 핵심을 박 후보는 잘 짚고 있었다. 박 후보는 기자회견이 끝난 후에 "제 진심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실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천'의 중요성을 본인 스스로 언급했다. '정치인의 말'을 종교처럼 여기는 박 후보는 자신이 연설문에 어떤 내용을 담아 대중 앞에 공표했는지, 그 말들의 무게를 잘 알 것이다.

박 후보는 이 연설문에 5.16으로 인한 '부일장학회 사건', 유신 비판의 선봉에 섰던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등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를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아버지에 대한 객관화'를 넘어, 5.16과 유신 과정에서 발생해 현재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숱한 과거사 문제들을 전향적으로 취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이같은 연설문 내용에 박 후보의 실천이 뒷받침 된다면 '역사 논란'은 박 후보의 약점이 아니라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에 박 후보를 만난 자리에서 그를 "화합의 적임자"라고 평했다. 김 전 대통령은 알고 있었다. 박 후보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의 '약점'이 오히려 야권에 치명적인 '무기'로 화할 수 있음을.

이를테면 민주당이 "국회 차원에서 유신 헌법 무효화 결의안을 내자"고 한 제안을 박 후보가 받아들인다면 신문지면은 "민주당의 요구 관철"이 아니라 "박 후보의 실천력"에 관한 기사로 도배가 될 것이다.

사과는 던져졌다…실천 통해 미래로 갈 수 있을까?

문제는 박 후보 스스로 말했듯 "실천"이다. 현재 민간에서는 장준하 의문사 진상 규명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이 한창이다. 야당은 장준하 의문사 재조사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다. 장준하 선생의 유가족은 청와대에 진상 규명을 위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장 선생의 두개골 함몰 관련 미스테리가 촉발시킨 범사회적 움직임이다.

박 후보는 지난 2007년에 장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를 만나 사과의 말을 전했다. 소소하게 화제가 됐던 일이지만 이후 박 후보가 장 선생 유족들이나 기념사업회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사과'가 선거를 앞두고 진행된 '이벤트'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버린 셈이다.

부산일보 편집국장 대기발령 사태를 몰고 온 정수장학회 문제는 5.16쿠데타 직후 일어난 '부일 장학회 강탈 사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의 '주인'이다. 5.16쿠데타 당시 고 김지태 씨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후 몰수 당한 부일장학회는 이후 5.16장학회로 다시 태어난다. 5.16장학회는 다시 박정희의 '정', 육영수의 '수'를 딴 정수장학회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 김지태 씨의 유족들은 강탈당한 재산의 사회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박 후보는 "이사장에서 물러난지 오래"라는 이유로 해결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

그 외에 박 후보의 아버지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사안은 많다. 이를테면 30년 넘게 고통을 당해온 인혁당 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받아야 할 보상금 이자는 2011년 대법원 판결로 대폭 삭감됐다. 국가가 책임을 유기했고, 대법원은 국가의 '논리'를 옹호했다. 그러나 박 후보가 몸 담고 있는 국회에서라면 적절한 보상에 대한 해결 방법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박 후보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박 후보는 이날도 세계 2차대전 당시수상이 된 윈스턴 처칠의 말을 빌려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고 했다. 당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됐을 때부터 그는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본인이 미래를 강조한다고 해서 '미래'가 자연스럽게 주목받는 것은 아니다. 만약 박 후보가 과거사 문제 관련 해결의 매듭을 짓는다면, 미래에 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나오게 된다.

박 후보는 '전기'를 열었다. '터닝 포인트'를 짚어냈다. 이날 발표한 문장들에 실천의 날개를 달고 추석 밥상 위에 오를지, 본인 스스로 선거를 앞두고 내놓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는 점을 입증해 보일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대세론이 죽은 상황에서 박 후보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이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추석을 앞두고 내 놓은 '빅 카드'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실천' 해야 한다.

 /박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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