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1일 화요일

강기갑 사퇴, 그리고 이정희의 대선 출마 시사


이글은 미디어스 2012-09-10일자 기사 '강기갑 사퇴, 그리고 이정희의 대선 출마 시사'를 퍼왔습니다.

▲ 통합진보당 탈당 및 대표직 사퇴를 선언한 강기갑 대표 ⓒ연합뉴스
통합진보당 강기갑 대표가 10일 통합진보당 탈당하고 당 대표에서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 ‘강달프’라는 애칭과 ‘공중부양’의 악명 사이에서 그는 지난 10여 년 동안 가장 인지도 있던 진보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특히 그가 18대 총선에서 여권 최고 실세인 이방호 전 의원을 꺾고 지역구 의원이 됐던 장면은 한국 진보정당사에 길이 남을 ‘계급 투표’의 한 정점이었다.
꼿꼿한 수염과 도포 자락으로 상징되던 그의 존재감은 진보정치가 대중에게 각인되던 한 방식이기도 했다. 유시민의 캐주얼 차림 등원이 이른바 ‘자유주의 세력’의 국회 입성을 상징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면 그의 개량 한복은 그보다 진한 농도의 계급적 증표였다. 그는 이제 다시 “농민의 삶”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그는 여의도에서도 줄곧 농민의 한 사람이었다.
강 대표는 마지막 정치의 변을 밝히며 “민심을 무시하고 국민을 이기려 하는 진보는 결코 대중정당으로 성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에서 통합진보당으로 이어지는 진보정치의 한 흐름에서 그가 늘 역동적인 선택을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역사의 반동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끝으로 정치인 생활을 마감한 것이다.
그의 마지막 국회 기자회견에는 이른바 ‘신 당권파’라고 불리는 이들이 함께했다. 유시민 전 대표를 비롯해 노회찬, 강동원, 김제남, 박원석 등 현역 의원 그리고 참여계와 인천연합 출신의 최고위원들도 자리를 지켰다. 그들은 조만간 거취를 결정해, 탈당 후 분당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강기갑 의원의 기자회견이 있기 몇 시간 전,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는 라디오에 출연했다. 이 대표는 여전히 “잘못된 진상조사보고서로 여론몰이가 만들어졌고 그것으로 당이 큰 타격을 받았고, 이것이 지금 검찰의 유례없는 대대적인 표적수사 등을 통해서 통합진보당이 완전히 무너지고 힘을 찾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침묵의 형벌’을 받는 동안에도 그의 인식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이 대표는 대선 출마 의사를 묻는 질문에 “당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고, 거기서 무엇이라도 해야 된다면 무엇이든 함께 논의해야 된다”고 답했다. 사실상, 출마 입장을 밝힌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태가 발발 6개월여 만에 대장정의 막을 내리고 있다. 이 당은 이제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질 것이다. 문제를 제기했던 ‘신 당권파’는 ‘셀프 제명’이라는 세계 정당사 초유의 집단행동을 통해 새로운 진보정당 창당을 천명하고 있다.
반면, 수세에 몰렸던 ‘구 당권파’는 이정희 전 대표의 대선 출마를 통해 새로운 반전을 도모하고 있다. ‘구 당권파’는 이 대표가 후보단일화 협상 등에 나서면 일정 정도 이미지 제고가 이뤄질 것을 기대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정작 이제 국민들은 구 당권파의 통합진보당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떠나는 강 대표도, 그리고 돌아오는 이 전 대표도 모두 진보정당의 존립 필요성을 강조하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진보정당 운동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별다른 울림은 없다. 상반된 두 진보정치인의 행보에 관한 기사 댓글의 경우, 소름끼칠 정도로 모욕적이거나 혹은 서늘할 정도의 냉소뿐이다. 지난 총선에서 13석을 얻으며 가장 높은 곳까지 올랐던 진보정당은 그러나 통진당 부정경선 사태를 겪으며 불과 6개월 여 만에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가장 처참한 신세로 전락한 셈이다.
통진당 사태의 책임에 관한 논의는 그간 무수하게 있어왔다. 공학적 득실만 따진 무책임한 통합, 헤게모니를 둘러싼 통합 주체들의 갈등, 구 당권파로 대변되는 경기동부연합의 패권적 행태와 비민주적 당 운영, 경선 부정을 인정하지 않는 독특한 세계관, 특정한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 확대한 과잉 등 무수하게 많은 이야기꺼리를 낳았다.
이 이야기들 가운데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해결된 것은 별로 없다. ‘구 당권파’와 ‘신 당권파’로 갈려진 당 내 세력들은 서로의 진영을 향해 무수한 비수를 날렸지만, 정작 왜 그들이 진보정당을 하느냐에 관한 근본 질문에는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 통합진보당을 만들 당시 그 기획의 무리함에 대한 비판이 빗발쳤었다. 하지만 당시 ‘구 당권파’와 ‘신 당권파’는 당장 합치기만 하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말했었다. 끝내 부끄러워야 할 것은 그 무모함, 치기 그리고 무지함이지만 정작 그것에 대해 그들은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다.

▲ 이른바 '침묵의 형벌'을 셀프 종료하고 대선 출마를 시사한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연합뉴스
이정희 전 대표의 대권 출마 시사가 불편함을 넘어 안쓰럽기까지 한 까닭이다. 피선거권이 있는 이 전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겠단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자유다. 하지만 그 과정에 또 다시 욕보이게 될 ‘진보’의 개념과 ‘진보정당’의 실존은 그만의 문제가 아닌 이른바 진보개혁세력 모두의, 진보정당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 건전한 상식인 모두에게 ‘모욕’이 될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정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단 지적에 대해 “당이 오물을 뒤집어써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분들과 달리 당이 문제를 극복하고 살아날 수 있는 기초를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그에게 진보는 통합진보당이 사는 것이고, 통합진보당을 하고 있는 세력이 사는 것일 뿐이다. 그 세력은 아무리 넓게 잡아도 진보 진영 전체의 한 줌도 안 되는 정파 세력일 뿐이다.
진보적 신념과 상식적 지향을 지닌 다수의 이들에게 모욕감을 던지는 정치는 어떤 의미일까? 얼마 전 있었던 셀프 제명과 강 대표의 탈당, 이 전 대표의 대선 출마 선언이 겹쳐지는 풍경은 진보정당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 건전한 상식에 또 다시 잿빛 의문을 던지고 있다.
‘노동자성이 중심이 되는 계급정당’,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동등하게 대접받는 평등세상’의 지향을 대중과 나누려는 꿈을 다시 만나기 위해선 또 얼마를 기다려야 하고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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