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1일 화요일

[사설]‘인혁당 판결이 두 개’라는 박근혜 후보의 법치 인식


이글은 경향신문 2012-09-10일자 사설 '[사설]‘인혁당 판결이 두 개’라는 박근혜 후보의 법치 인식'을 퍼왔습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인혁당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며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는가라는 그런 답을 제가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박 후보가 어제 한 방송에 출연해 박정희 정권 시절의 대표적 공안 사건인 인혁당 사건 피해자에 대해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내놓은 답이다. 박 후보의 역사 인식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인혁당 판결이 두 개’라는 법치 인식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그의 발언 맥락으로 볼 때 한 가지 판결은 인혁당 관련자들에게 사형을 선고한 유신 시절의 1975년 재판이고, 다른 하나는 재심 끝에 무죄를 선고한 2007년 1월의 판결인 것 같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박 후보의 발언에 대입하면 인혁당 사건에 대해 사형과 무죄 선고가 엇갈리는 만큼 최종 판단은 역사에 맡기자는 얘기로 들린다. 그렇다면 큰일이다. 재심이 뭔가. 유죄 확정 판결이 났으나 중대한 사실 오인 등이 드러나면서 과거의 판결을 시정하는 비상구제 절차이다. 인혁당 사건의 경우 1975년 사형 선고에는 문제가 있어 무려 32년 만에 무죄로 바로잡은 것이다. 똑같은 사건을 놓고 사형에서 무죄로 입장을 바꾼 사법부가 부끄러워할 일이지 유무죄를 놓고 다툴 일은 아니라고 본다.

박 후보가 말실수를 한 것 같지도 않다. 그는 2007년 1월 당시에도 “지난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이고, 이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인데 그러면 법 중 하나가 잘못된 것 아니겠느냐”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새삼 강조할 필요도 느끼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 인혁당 사건이 무죄라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법적인 사실이다. 유신 시절 인혁당 관련자들에게 사형을 선고한 재판이 하나의 역사적 기록일 수는 있어도 법적 효력은 없다. ‘인혁당 사건 무죄’는 1심인 서울중앙지법이 선고하고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 확정됐으나 유신 시절의 대법원 판결을 취소하는 효력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것이 우리의 사법제도다.

박 후보는 지금 ‘100% 국민’을 외치며 국민대통합 행보에 주력하고 있다. 대통합이야말로 누가 주체가 되느냐의 차이일 뿐 사과나 용서, 화해를 바탕으로 한다. 그 출발점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법적으로 정당한 심판이 이뤄지지 않은 사건을 비롯해 역사의 심판에 맡겨야 하는 일들은 있을 터다. 그러나 법적으로나 드러난 사실관계로나 무죄가 분명한 인혁당 사건 판단을 역사에 맡기자면서 대통합을 운위하기는 어렵다. 대통합은 피해자의 가슴에서 우러나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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