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1일 화요일

유신 40년의 ‘흔적’ 그림과 퍼포먼스로 표현


이글은 경향신문 2012-09-10일자 기사 '유신 40년의 ‘흔적’ 그림과 퍼포먼스로 표현'을 퍼왔습니다.

ㆍ대안공간 풀 6부전 ‘유체이탈’ㆍ1부 ‘국가소리’전 26일까지

고문 피해자들의 환청에 시달리는 박정희가 메피스토펠레스와 함께 이승을 둘러본다. 미술가 김정헌(66·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이 대본을 쓰고 주연을 맡은 연극 (꿀꺽꿀꺽 낄낄낄-유신의 소리)의 큰 뼈대이다.작가는 이 연극 퍼포먼스를 평화박물관과 대안공간 ‘풀’이 유신 40주년을 맞아 기획한 전시 ‘유체이탈(維體離脫)’의 1부 ‘국가의 소리’에서 소개했다. ‘유체이탈’전은 ‘유신체제를 벗고 떠나다’라는 뜻으로 연말까지 이어지는 총 6부의 전시로 구성됐다. 유신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20~60대 작가 18명이 영상, 사진, 연극, 회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한다. 

김정헌 작가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패러디한 1막3장의 희곡을 만들었다. 검은 색안경을 쓰고 지휘봉을 든 박정희의 망령은 못다 이룬 ‘조국근대화’를 보고자 메피스토펠레스와 함께 한국을 찾아 박정희기념관(실제로는 김정헌 작가의 그림이 전시된 전시장)을 들른다. 그곳에선 고문 피해자들이 냈을 법한 ‘꿀꺽꿀꺽, 낄낄낄, 허억허억, 쏘오옥, 퍽퍽, 팍팍’ 같은 소리들이 계속 들린다.

연출가 윤한솔은 “새마을노래부터 군가, 국민교육헌장 암기소리 등 독재정권의 선전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소리가 독재를 증언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역전술의 단초가 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환청의 괴로움을 떨치지 못한 두 망령이 차라리 저승이 낫겠다고 떠나면서 연극은 끝난다. 

연극의 마지막 부분 중. 환청의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한 박정희(왼쪽·김정헌 분)는 메피스토펠레스(오른쪽·민정기 분)에게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1부 전시가 열리는 대안공간 ‘풀’에서 만난 김정헌씨는 “유신체제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을 미술로 해석하고 싶었다”며 “역사적인 과제를 안고 젊은 작가들이 기획하는데 이번 기회에 그림만이 아닌 연극 퍼포먼스로 참여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박정희의 대사인 “그림이 어떻게 역사와 현실을 그리겠다는 게야”라는 말에 반박하듯 “예술은 세상을 바꿀 힘을 갖고 있고 변혁의 언어를 지녀야 한다”고 했다. 

‘국가의 소리’에 함께 참여한 양아치 작가는 영상작품 ‘뼈와 살이 타는 밤’을 선보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손전등에 의지한 한 사내가 인적 없는 숲, 산, 강, 들판을 헤맨다. 계곡 물 안에 잠긴 사람, 하나씩 어디론가 끌려가는 사람들이 목격된다. 작가는 “영상은 어두운 동굴에서 시작해 어둠을 벗어나려고 여기저기 헤매지만 결국 다시 동굴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유신의 제도와 형식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우리의 내면에 있는 박정희를 표현했다”고 말했다. 

‘국가의 소리’ 전시는 이달 26일까지 이어진다. 22일 한 차례 남은 연극은 선착순 예약으로 볼 수 있다. (02)396-4805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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