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5일 토요일

[사설]외국인학교 비리로 드러난 부유층의 민낯


이글은 경향신문 2012-09-14일자 사설 '[사설]외국인학교 비리로 드러난 부유층의 민낯'을 퍼왔습니다.

부유층이 대거 연루된 외국인학교 입학비리가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재벌가 며느리, 대기업 전문경영인, 병원장, 유명 로펌 소속 변호사 등 60~70명의 학부모가 검찰 소환 대상에 올라 있다고 한다. 이들은 브로커에게 거액을 주고 중남미나 아프리카 국가의 국적을 취득한 것처럼 위조 서류를 꾸며 자녀의 부정입학에 동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부모 중 1인 이상이 외국인이거나 학생의 해외 체류기간이 3년 이상이면 외국인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는 규정을 악용한 것이다.

우리는 이번 사건으로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탐욕스러운 민낯을 또다시 목도하고 있다. 일부 학부모는 검찰에서 “브로커에게 속았다. 진짜 외국 국적을 주는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이틀에서 1주일 만에 위조 여권이나 시민권증서를 얻었다는데, 어떤 나라에서 이토록 짧은 기간에 국적을 주겠는가. 게다가 브로커가 끼었다면 의심부터 할 일이다. 돈이면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금전만능주의와 도덕불감증을 턱없는 변명으로 가리려는 행태가 더욱 가증스럽다.

학부모들만 탓할 수는 없다. 이번 사태의 뿌리는 외국인학교 제도의 근본적 모순에 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을 위해 설립한 학교가 내국인으로 채워지고, 입학 과정에 갖가지 부정이 동원된다는 얘기는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조기유학을 줄일 수 있다는 명분으로 외국인학교 설립·운영 요건을 완화했다. 설립 자격을 비영리 외국법인과 국내 학교법인으로까지 확대하고, 내국인 입학한도도 높여줬다. 국어·사회 과목을 연간 102시간 이수하면 국내 정규학력도 인정해주는 쪽으로 규정을 바꿨다. 외국인학교가 조기유학의 대체수단으로 부상하면서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까닭이다. 연간 학비가 2000만~4000만원에 이르는데도 상당수 학교에선 내국인 비율이 50%를 넘어 외국인학교라는 명칭이 무색할 지경이 됐다고 한다.

이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할 때다. 검찰은 엄정하고 철저한 수사로 부유층의 도덕적 해이를 심판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다른 외국인학교로도 수사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외국인학교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기 바란다. 내국인 입학 규정을 강화하고 위법 사례가 다수 드러난 학교에 대해선 폐쇄 등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번에 부정입학이 적발된 학생들의 입학 취소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 돈도 없고 배경도 없는 학부모들은 분노하고 있다. 이들의 분노는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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