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9일 일요일

백여 명의 수도자들, 밀양을 위로하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현기자 블로그 휴심정 벗님글방 2012-09-05일자 기사 '백여 명의 수도자들, 밀양을 위로하다'를 퍼왔습니다.
여자수도자 장상연합회, '밀양 희망방문단' 꾸려..
"여생을 걸고 투쟁하시는 그분들 뵈면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9월 3일 정오, '전국 수도자 밀양 희망방문단'을 이름으로 여자수도자 100여 명이 밀양시청 앞에 모여 섰다. "살려 달라", "살던 대로 살게 해 달라”는 주민들의 애끓는 목소리에 응답하기 위해서다. 32일째, 송전탑 건설 반대를 위한 단식이 진행되고 있는 천막 앞에서 수도자들은 기도를 드렸다.

시청 앞 기도를 시작으로 수도자들은 한국전력 밀양지사, 경남 밀양 부북면 송전탑 건설 현장, 밀양댐 인근 공사자재 야적장을 거쳐, 밀양 가르멜 수녀원을 방문하고 '송전탑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지향으로 미사를 봉헌했다.



▲ 한국전력 밀양지사 앞에서 기도하는 참가자들 ©정현진 기자



▲ 한전이 주민, 지역과 함께한다는 것은…… ©정현진 기자

목숨 걸고 싸우는 밀양의 현장에 위로와 힘을 보태기 위해

"우리가 이 모든 일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었습니다."

현장을 돌아보면서 주민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은 수녀들은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밀양 주민의 호소에 눈물을 흘리고, 주민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드리는 기도는 더욱 간절하고 구체적인 간구가 됐다.

"저희를 통해 이 땅에 정의와 평화가 바로 서게 하소서.
이 땅에서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부당하게 행해지는
모든 공권력의 비리와 폭력에서 저희를 구원하소서.
이 나라의 귀중한 세금이 개발세력의 욕심을 채우는데 쓰이지 않게 하시고,
이 땅의 국민들에게 폭행을 행하기 위한 용역들을 고용하는데 쓰이지 않게 하소서.
이 나라의 모든 권리는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엄연한 진리가
폭력배들에 의해 무시당하지 않게 하소서."

수도자 희망방문단의 이번 밀양행은 '밀양 765㎸ 송전탑 반대 고(故) 이치우 열사 분신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준한 신부(부산교구)의 요청으로 계획보다 앞당겨졌다. 지난 8월 13일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의 이름으로 방문한 수도자들은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탤 것이라 선언하며, 두 번째 방문을 계획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 상황에 김준한 신부의 간곡한 타전이 전해졌다.

김준한 신부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이라는 교회의 정신과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공고히 하는 차원에서 전국 수도자들의 밀양 희망방문을 제안한다"면서 "지금 밀양의 싸움은 보상이나 지역 이기주의에 기반한 싸움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선한 눈빛을 가진 이들의 많은 도움의 와중에 종교인들의 결합도는 조금 미진한 것이 사실이며, 더 큰 틀의 연대사업이 절실하다"며 "전국 수도자들의 희망방문이 이루어진다면 실질적인 공사 저지를 포함한 어르신들의 얻게 되는 위로와 위안이 클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수도자들은 이에 기꺼이 응답했다.

"정부의 꼼수를 읽고 혈세를 낭비할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원전 없는 나라, 자연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서라도 송전탑 건설은 반드시 중단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그분들께 힘을 실어드려야 합니다." (여자수도자 장상연합회 탈핵 자연에너지 위원장 오경길 수녀)



▲ 경남 밀양 부북면 현장에서 만난 주민을 한 수녀가 꼭 안아 주고 있다. ©정현진 기자



▲ 부북면 현장. 시공사에서 벌목한 흔적과 지난 탈핵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심은 영산홍이 함께 있는 곳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정현진 기자


김준한 신부 "송전탑은 생명을 끊어 내는 행위.. 생명을 지키는 싸움에 함께해 달라"

주민들의 투쟁 현장을 돌아본 수도자들은 현재 수녀원 인근 350m 거리로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밀양 가르멜 수녀원을 찾았다. 가르멜 수녀원은 봉쇄 수도원인 탓에 대리인을 통해 송전탑 건설 저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한전과 시공사 측은 최근 밤을 틈타 수녀원 뒷산을 몰래 벌목했다. 이 때문에 가르멜 수녀원 수녀들은 근심이 더욱 깊어졌다.

가르멜 수녀원 수도자들과 만난 후, 수녀원 성당에서는 '송전탑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미사가 이어졌다. 가르멜 수녀원 수도자들과 주민들이 함께한 이 미사에서 '송전탑'이 이 시대에 의미하는 바에 대해 되새겼으며, 미사 후에는 밀양 주민들의 투쟁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되기도 했다.

김준한 신부는 "송전탑은 핵발전에서 비롯된 것이며, 핵발전은 생명과의 소통, 생명간의 흐름을 끊고 자연을 적대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밀양의 어르신들은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생명을 끊어 내는 행위와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이 싸움이 대도시에서 시작됐다면 벌써 끝났을 일이다. 그러나 땅과 생명의 의미와 가치를 아는 어르신들이기에 10억 손배소에도 꿈쩍하지 않고, 밀양을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한 신부는 "사제로서 이 자리에 머무는 것은 단순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민, 고통받는 이들 사이에 교회가 있어야 한다는 것 외에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 때문"이라고 전했다.



▲ '765㎸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공사 4공구' 사무소는 송전탑 건설 자재를 적재하고 현장 직원들이 숙소와 사무실로 사용하는 곳이다. 얼마 전, 이곳에서 민주통합당 문정선 밀양시의원이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열흘 전부터 주민들은 이곳에 적재된 송전탑 건설 자재를 헬기로 운송하지 못하도록 철야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정현진 기자



▲ 적재된 송전탑 건설 자재 ©정현진 기자



▲ 주민들은 열흘 전부터 건설공사 4공구 사무소 앞에 천막을 치고, 자재를 적재한 헬기가 뜨지 못하도록 온몸으로 막고 있다. ©정현진 기자

"밀양 주민들은 이 시대의 예언자..
예수가 가르친 지헤로운 방법으로 밀양의 예언 알아들어야"

김준한 신부는 "밀양의 싸움이 중요한 것은 이후에 벌어질 수많은 송전탑 싸움의 본보기가 될 것이며, 밀양의 어르신들은 이 시대 예언자의 모습이기 때문"이며 "누가 대신 막아 주거나 싸움의 논리를 개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몸으로 일어서는 것에서 예언자의 모습을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에서 예언의 상황은 비롯된다"면서 "우리는 밀양에서 예수님이 가르쳤던 슬기로운 방식으로 예언을 알아듣고 마주해야 한다. 그것이 밀양이 갖는 마지막 힘”이라고 역설했다.

김준한 신부는 "밀양의 어르신들을 가장 힘들게 하고, 이치우 어르신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것은 바로 '외로움'"이라며 "언제나 어디서나 밀양을 위해 기도해 달라. 또 시간이 되는 대로 밀양을 방문해 달라"고 호소했다.



▲ 김준한 신부는 미사를 통해, 밀양 싸움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전하며, 모쪼록 더 많은 이들이 밀양과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현진 기자


이번 방문은 여자수도자 장상연합회가 주관한 세 번째 공식 밀양 방문이다. 지난 4월 대표자 9명, 8월 13일 27명, 그리고 이번 '희망 방문단'은 100명이 넘는 수도자들이 밀양을 찾았다.

지난 2011년 제44차 총회에서 탈핵 활동에 집중할 것을 결의한 여자수도자 장상연합회는 현재 사회사목분과에 '탈핵 자연에너지 위원회'를 설치하고 핵발전 반대와 탈핵을 위한 교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를 위한 지지 방문과 활동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 수녀는 밀양의 성지와 연계해 되도록 많은 신자들이 밀양을 방문하도록 프로그램을 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고 제안했다.

현재 장상연합회 탈핵 자연에너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오경길 수녀(성 바오로 딸 수도회)는 이번 밀양 희망 방문단 초대 공문에 쓴 글에서 "여생을 걸고 투쟁하시는 그분들 뵈면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고 적었다.

강정에서 어떤 시인은 말했습니다.
"경험한 것이 그대로 생명을 위한 기도가 되는 곳"이라고요.
마지막 남은 여생을 걸고 투쟁하시는 그분들 뵈면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얼마나 치열하게 주님을 갈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너무 안일하게 살고 있지는 않는지,
이분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은 어떤 심정이실지,
투쟁의 현장에서 진리를 만나게 됩니다.
수녀님들 많이 성원해주시고
희망버스 한 번 아니라 여러 번
송전탑이 완전히 무산될 때까지 그렇게 희망을 해도 될까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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