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4일 화요일

[사설] 흉악범죄 근절 대책이 고작 경찰권 강화라니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03일자 사설 '[사설] 흉악범죄 근절 대책이 고작 경찰권 강화라니'를 퍼왔습니다.

경찰청이 어제 성폭력과 강력범죄에 총력대응하겠다며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과 서울 여의도 ‘절망살인’ 등 흉악범죄가 잇따르자 경찰 차원의 대응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경찰이 본분인 치안활동을 통해 범죄를 줄이겠다는 건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대책은 대증요법의 성격이 농후한데다, 지나친 경찰 권한 강화로 인권침해 등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교각살우’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까 매우 염려스럽다.무엇보다 경찰이 2년 만에 은근슬쩍 부활시킨 불심검문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조처로, 흉악범죄를 이유로 선택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3조에 규정된 불심검문은 죄를 저질렀거나 저지르려는 것으로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을 경찰이 정지시켜 질문을 하고 소지품을 검사하는 행위다. 자연히 경찰의 임의적 판단에 따라 국민 누구나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될 수 있다. 이는 신체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헌법에 정해진 영장주의에도 위배된다. 우리 사회의 인권시계를 과거로 후퇴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당장 취소돼야 마땅하다.오는 10월3일까지 한달 동안 모든 경찰력과 장비를 동원해 특별방범 비상근무를 벌인다는 계획은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다. 다른 업무를 뒷전으로 미루고 비상근무에 나서면 일시적으로 흉악범죄가 주춤할지 모른다. 하지만 총력활동 기간이 끝나면 그뿐, 범죄는 다시 예전처럼 발생하기 마련이다. 경찰의 피로도만 높아져 범죄 대응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게다가 권총이나 테이저건 등 강력한 장구를 허용한 상태에서 특진 등 전폭적인 인센티브까지 약속했으니, 일선 현장에서 경찰의 과잉단속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열 포졸이 도둑 하나 못 잡는다’는 말처럼 경찰권을 강화한다고 성폭력이나 강력범죄가 뿌리 뽑히진 않는다. 물론 경찰도 지금보다 치안활동에 더 분발해야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폭력 등의 발생이 최소화되도록 사회·문화적 토양을 개선하는 일이다. 성범죄와 관련해선 우선 외국보다 훨씬 느슨한 아동 음란물 제작·수출입·배포·전시·소지 등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 성폭력 범죄사건의 실형선고율을 높이고 친고죄 규정(형법 306조)을 폐지해 성범죄는 확실히 처벌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왜곡된 성문화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을 강화하고, 성범죄의 손쉬운 표적이 되는 소외계층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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