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3일 월요일

한국인 피랍 500일째, 정부는 뭐하고 있나


이글은 시사IN 2012-09-03일자 기사 '한국인 피랍 500일째, 정부는 뭐하고 있나'를 퍼왔습니다.
싱가포르 선박에 탄 한국인 선원 4명이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지 500일이 다 되어간다. 한국인 해적 피랍 사건 중 가장 길다. 1명은 수개월째 연락이 두절됐고, 3명은 건강이 악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인 4명이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지 벌써 1년4개월째이다. 9월3일 현재 피랍 493일째로, 오는 10일이면 피랍 500일을 맞는다. 이미 한국인 해적 피랍 사건 중 최장 기록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간 최장 기간 억류된 것으로 알려졌던 삼호드림호 선원들은 217일 만인 2010년 11월6일 풀려났다(16쪽 표 참조).

MT 제미니호(제미니호) 선원인 이들은 지난 2011년 4월30일 케냐 인근 몸바사항 남동쪽 193마일(약 310㎞) 해상에서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 제미니호는 싱가포르 글로리 십 매니지먼트(Glory Ship Management) 소속 선박이다. 피랍 당시 한국인 선장 1명·선원 3명과 외국인 선원 21명이 타고 있었다. 

피랍 7개월 뒤인 지난해 11월30일, 해적들은  외국인 선원 21명만 석방했다. 그러나 한국인 4명은 풀어주지 않은 채 소말리아 내륙으로 데리고 이동했다. 해적들은 한국인 인질을 잡고,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한국에 붙잡혀간 소말리아 해적들의 석방과 사살된 해적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고 외교통상부는 밝혔다. 

ⓒSomalia Report 소말리아 해적에 잡힌 한국인 선원들. 해적이 직접 찍은 사진이다.

이후 제미니호 사건은 한국 언론에서 종적을 감췄다. 외교부가 협상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보도 유예를 요청했고, 이를 외교부 출입 기자들이 수용했기 때문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기자들이 ‘제미니 건 혹시 진전 있나요’라고 물어보면 ‘기다리시죠’라고 답해왔다. 일단 연합뉴스, YTN이 (보도를) 안 하니 더 안 물어본다. 도 보도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한 일간지 기자는 “엠바고(보도 유예)를 지키면서도 취재는 꾸준히 해왔다. 1~3개월 전에는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까지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는 “가족들이 보도를 원치 않는 데다가, 언론 보도 이후 협상금이 몇 배로 뛴 전례가 있기 때문에 보도를 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제미니호 사건이 까맣게 묻힌 사이, 선원 1명의 연락이 몇 달째 두절된 사실이 취재 결과 확인됐다. 피랍된 한국인 4명은 부산의 한 선원 인력공급 업체에 부정기적으로 전화를 걸어오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안부와 함께 해적들의 요구 사항을 대신 전달해왔다. 그런데 이 중 선원 1명의 연락이 수개월 전부터 끊긴 것이다. 반면 선장 박 아무개씨를 포함한 나머지 3명은 한두 달 전까지도 연락을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연락이 끊긴 선원의 신상이나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지난 1월23일 소말리아 분쟁 전문매체인 (www.somaliareport.com)는 ‘(한국인) 납치 선원 4명 중 2명이 더운 날씨와 염분이 높은 식수 때문에 앓고 있으며, 나머지 두 명의 건강 상태는 괜찮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해적의 진술에 따르면, 고통을 호소한 선원 2명은 의사의 진료 등을 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선장 박 아무개씨와 8월에도 통화를 했다는 박씨 여동생은 “오빠뿐 아니라 4명 다 건강이 문제이지 않겠나. 그만한 시간 동안 있었으면 당연히 건강이 안 좋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 ‘불개입 원칙’만 고수

(소말리아 리포트)는 또 지난 4월23일 제미니호 한국 선원들이 억류돼 있는 하라데레 지역에서 인질을 서로 차지하려는 해적 간에 총격전이 벌어져 10명이 죽고 20여 명이 다치는 사태가 발생했다고도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사망자 중에는 한국 선원을 지키는 해적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2006년 동원호를 비롯해 그간 해적에게 장기간 납치됐던 선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이들은 현재 다양한 어려움을 겪으리라 추정된다(17쪽 석해균 선장 인터뷰 참조).

문제는 외교통상부가 소식이 끊긴 1명을 포함한 한국인 선원 4명의 정확한 소재와 건강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외교통상부 재외국민보호과 박 아무개 과장은 8월22일 (시사IN)에 “근처에 청해부대가 왔다 갔다 하긴 하는데 휴먼넷(정보원)이 없으니까 정보 수집이 물리적으로 힘들다. 그 때문에 4명이 다 같이 있는지, 이동 중인지 알 수 없다. 파악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하고 있다고만 말씀드리겠다. 나도 24시간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박 과장은 또 피랍자 4명의 생사 여부에 대해서는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해적들이 인질을 죽인 적도 없고, 목숨을 잃은 경우도 없다. 최근 1명이 피부 계통에 안 좋은 게 생겨 의사를 불러 치료했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한국인 피랍 사태가 이처럼 역대 최장 기간을 넘겼지만 한국 정부는 여전히 ‘불개입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어느 나라 정부도 해적과 같은 범죄 집단과 직접 협상에 나서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이다. 협상의 주체는 피랍자들을 고용한 해외 선박회사임이 명백하므로 한국 정부로서는 선박회사에 협상 노하우 등을 제공하는 등의 노력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현재 한국 정부는 싱가포르 주재 한국 대사관 직원을 통해 선박회사와 해적이 유선으로 주고받은 대화를 주 1회 간격으로 보고받는다. 

ⓒSomalia Report 한국인 선원이 탑승했던 제미니호. 싱가포르 글로리 십 매니지먼트 소속 선박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해적들은 최근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잡혀간 동료의 석방 요구를 포기하고 협상금만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협상금의 규모가 여전히 어마어마해 선박회사와의 협상이 앞으로도 장기화될 전망이다. 참고로 삼호드림호 사건의 경우 석방 협상에 든 금액은 100억원 안팎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사태가 500일 가까이 장기화된 만큼 선박회사의 협상 능력에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외교부는 여전히 선박회사를 신뢰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박 과장은 “2년 넘게 피랍이 지속된 사례도 있다. 선박회사가 일단 협상에 책임감 있게 임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선원 가족들이 더 잘 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글로리 십 매니지먼트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선박업계 종사자는 “21명이나 풀려났으면 할 수 있는 것 다 했다고 (선박회사가)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알기로 사장이 중국 사람인데, 한국 사람을 구하려고 얼마나 열심히 노력할까 싶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선박회사가 고용한 협상 전문가도 신뢰해서는 곤란하다고 경고했다. 삼호드림호 때도 협상 전문가가 중간에서 협상금 일부를 가로채기 위해 ‘장난’을 하는 바람에 협상금이 2배 이상 뛰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내륙이라 현지 구출도 쉽지 않아

8월24일 (시사IN)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제미니호 피랍 사건 장기화 소식을 보도하자 일각에서는 소말리아 현지에 군사력을 투입해 피랍자 4명을 구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 2008년 12월16일 채택된 안보리 결의 1851호에 의해 소말리아 내륙까지 한국군이 추적권을 행사할 수 있긴 하지만, 아덴만 여명 작전 때와 달리 피랍 선원들이 육지에 있는 만큼 자세한 위치 파악 등에 난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해군 관계자는 “내륙 군사작전은 사실상 어렵다. 그래서 시행한 나라가 없는 줄로 안다”라고 말했다. 


허은선 기자 | alles@sisain.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