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9일 수요일

빚 못 갚겠으면 집 팔면 되지, 이게 대책이야?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18일자 기사 '빚 못 갚겠으면 집 팔면 되지, 이게 대책이야?'를 퍼왔습니다.
‘세일앤리스백’은 은행의 ‘꼼수’… 거품 떠받치기, 또 다른 폭탄 돌리기 될 수도

300만원의 월급을 받는 직장인 A씨는 아파트 대출 이자로 한 달에 90만원을 낸다. 월급의 30%다. 그만큼 다른 가계 지출을 줄여야 한다. 더구나 얼마간의 예금과 한 채뿐인 아파트 등 자산을 팔아도 대출금을 갚기 어렵다. 

여기에서의 A씨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현실 속에서 A씨 같은 ‘하우스 푸어’는 108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모두 가처분소득의 10% 이상을 한 채뿐인 아파트 담보대출 원리금으로 지출하는 이들이다. 가구원까지 합치면 약 374만 명 수준이다. 이들의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비중은 평균 41.6%에 이른다. 하우스푸어 중 38.4%는 지난 1년간 부채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었고, 향후 1년간 부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구도 22만5000가구(19.3%)나 된다. (관련자료: [하우스푸어의 구조적 특성], 현대경제연구원 2011.5.23)

▲ ⓒ현대경제연구원

은행이 집 사서 임대해준다?…“또 다른 폭탄 돌리기”

이처럼 하우스 푸어가 한국 경제의 ‘뜨거운 감자’로 지목되면서 관련 대책들도 쏟아지고 있다. 최근 하우스 푸어 지원책으로 묘사되는 ‘세일 앤 리스백’ 제도도 그 중 하나다. 은행이 아파트의 소유권을 넘겨받아 이를 다시 채무자에게 임대하는 방식이다. 채무자는 ‘골칫덩이’로 전락한 아파트를 은행에 넘겨 원리금 상환 부담을 더는 대신, 임대료만 지불하고 계속 거주할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다. 향후에 이를 다시 살 수 있는 조항(Buy back)이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기업들이 자금 확보를 위해 보유 중인 부동산 자산을 리스회사에 매각할 때 쓰이던 방식이다.

이와 비슷한 ‘트러스트 앤 리스’ 제도도 오르내린다. 우리은행이 최근 이 같은 상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5년간 아파트를 신탁회사에 넘기고, 은행은 채무자가 지불하는 임대료 중 일부를 지급받는다. 5년 후 채무자가 빚을 다 갚을 경우 아파트의 소유권을 찾아올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신탁회사가 이를 처분하여 수익금을 은행에 지급하는 방식이다. 새누리당은 금융권이 출연한 기금 형태의 특수목적회사(SPC)나 배드뱅크가 집을 사들인 뒤, 이를 임대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또 다른 폭탄 돌리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17일 국회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민주통합당 김현미 의원과 무소속 박원석 의원,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참여연대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다. (자료집 다운로드)

백주선 변호사는 “금융기관이 한 푼도 손실을 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의도가 저변에 깔려 있고, 5년의 환매기간 내지 신탁기간 동안 문제를 뒤로 미루자는 안일함이 배어 있다”고 비판했다. 5년 동안 채무자가 주택담보대출 금액을 다 갚을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자칫 모든 부담을 채무자의 ‘미래’에 떠넘기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 ⓒCBS 노컷뉴스

은행은 왜 책임 안 지나…“은행의 ‘꼼수’”

백 변호사는 은행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소득능력에 다라 대출을 해줘야 한다는 금융의 기본원리를 망각하고, 마구잡이로 주택담보대출을 늘린 게 (하우스 푸어 문제의)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하우스 푸어를 108만 가구로 추정할 때, 그 10%인 10만 8000가구를 대상으로 전국 주택 평균가격 1억1812만원에 산다고 가정해도 필요한 자금은 12조7000만원에 이른다”며 “(여기에) 공적자금을 집어넣는 것은 무리한 대출을 해 준 은행은 전혀 손해 보지 않고 책임을 면제받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선 권정순 변호사(서울시 주거재생지원센터 갈등조정관)도 “어느 하우스푸어가 5년 후 원리금을 모두 변제하고 소유권을 회복할 수 있겠냐”며 “결국 위 제도는 현재의 위기상황을 5년 후로 미루는 것에 불과하며, 금융기관이 주도하여 논의를 진행하다보니 금융기관의 손실은 가급적 최소화하면서 담보채무자들이 주로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구조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채무자 입장에선 주택가격 상승이 유일한 ‘희망’인데,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같은 제도가 은행의 ‘꼼수’라고 지적했다. 은행이 ‘임대료’라는 명목으로 또 다른 ‘거치식 대출’을 유지하면서, 담보인정비율(LTV)을 초과한 부채에 대해 채무재조정을 지연시킨다는 것이다. ‘폭탄 돌리기’인 셈이다. 또 연체 중인 주택담보대출을 ‘거치형 이자납입식’으로 변경해 이를 장부에서 제거함으로써 사실상 ‘분식회계’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한국은행 김용선 거시건전성분석국 팀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LTV 평균이 48%이고, 80% 초과하는 대출이 0.1%밖에 안 된다”며 애초 제도가 도입됐던 미국의 경우와는 달리 “담보 가치가 충분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자기 집을 신탁회사에 맡기거나 은행에 파는 것보다 개인적으로 팔아 채무관계를 해소하는 게 훨씬 더 유리한 상황”이므로 “활성화 가능성에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라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자금시장과 이형일 과장은 “정부는 현재로서는 상황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4일"정부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채무자 ‘맞춤대책’ 필요…‘통합도산법’ 개정해야

백주선 변호사는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면서도 신속하게 채무조정을 통해 채무자를 경제에 신속히 복귀시키는 방안이 하우스 푸어에 대한 대책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는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내놨다. 소득에 비해 부채 규모가 크지 않은 경우, 기존의 3~5년 거치기간이 끝나면 원금을 일시에 상환하는 형태의 대출을 장기모기지론으로 바꿔 20~30년 동안 원금과 이자를 나눠 갚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 채권을 주택금융공사 같은 공기업이 매입할 수 있도록 자본금을 확충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 ⓒCBS 노컷뉴스

반면 소득으로 부채를 상환하기 곤란한 하우스 푸어도 있다. 백 변호사는 이 경우에는 주택을 공공이 매입하여 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방법이 해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우스 푸어의 대부분은 임대주택으로 전환이 어려운 아파트 소유자인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손해를 보더라도 아파트를 싼 가격에 내놓고, 일부라도 부담을 더는 게 방법일 수는 있다. 그러나 한꺼번에 이 같은 매도 물량이 쏟아질 경우 주택가격의 폭락으로 경제위기가 도래할 우려가 있다는 게 백 변호사의 판단이다. 

따라서 “원금과 이자를 한꺼번에 채무조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1가구 1주택자에 한해 개인회생 등 채무조정제도를 이용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백 변호사는 “정기적인 소득이 있는 채무자는 개인회생시 3~5년의 변제기간이 끝난 후에도 10년 동안 원금을 나누어 갚고 못 갚는 부분은 면책 받도록 하고, 변제기간 동안에는 채권자가 경매를 진행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채무자(신용소비자)를 보호하는 방안도 시급하다고 백 변호사는 제안했다. ‘주택담보 과잉대출규제법’ 또는 ‘공정대출법’을 제정해 만기일시상환 방식의 대출을 금지하고, 상환능력을 초과하는 대출을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법정 최고이자율 한도를 연 20%로 낮춰, 이를 초과하는 이자뿐만 아니라 원금에 대한 상환 의무도 ‘무효’로 해 은행과 대부업체들의 ‘약탈적 대출’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김효연 국회 입법조사처 금융외환팀 입법조사관은 “하우스 푸어가 도산으로 가기 전 단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우스 푸어가 채권채무 조정을 진행하기에 앞서 어떤 절차가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것인지 상담할 수 있는 상담제도가 도입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권정순 변호사는 2009년 도입이 무산됐던 ‘통합도산법’ 개정안을 19대 국회가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권 금융기관과 채무자의 이익을 공평하게 조정하면서도 채무조정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법정화된 도산절차”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관련 법안은 19대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박원석 의원 안, 박영선 의원 안, 정부 안)

허완 기자 | nin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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