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2일 토요일

미국 '남로당 프락치' 박정희를 모를리 없다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9-21일자 기사 '미국 '남로당 프락치' 박정희를 모를리 없다'를 퍼왔습니다.

▲ 언론인 김종철의 새책 <박근혜 바로 보기>
최근 언론인 김종철(68)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실체를 사실에 근거해 검증한 책을 펴냈다.
(박근혜 바로보기)에서 저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에 대해서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그간의 삶의 행적들을 소상하게 밝혀놓았다.
이 책 2장에는 박정희의 기회주의적 행적이 잘 드러나 있다. 저자는"1960년 '장면 정권의 무능과 부패, 사회의 혼란, 안보 위기'를 구실로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세력이 '반공'을 가장 강조한 것은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가지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지닌 미국을 안심시키기 위한 방책이었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쿠데타의 주동자인 박정희의 이력에 '남로당(남조선노동당) 프락치'라는 낙인이 찍혀 있음을 미국 정보기관이 모를 리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광복 이후 그의 둘째형인 박상희가 "친일의 죄를 씻으라"며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의 전신)'에 입교할 것을 권하자, 박정희는 1945년 9월 조선경비사관학교 2기생으로 입교해 단기과정을 마치고 12월 졸업했다.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군 중위로 복무하던 그가 신생 조국의 소위가 되었던 것이다.
1963년 제5대 대통령선거 유세 기간인 9월 23일 민주공화당 후보 박정희가 첫번째 라디오 연설에서 자신의 이념을 '민족적 민주주의'라고 부르자, 야당인 민정당 후보 윤보선은 같은 날 여수 유세에서 "여순반란 사건의 관계자가 지금 정부에 있다"며 박정희를 지목했다. 윤보선의 그 발언은 박정희가 여수·순천 반란사건에 깊숙히 관여했음을 세상에 고발한 것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저자는 언론인 정운현의 책 (실록 군인 박정희)를 인용했다.
"이런 민정당의 폭로로 공화당은 선거 코앞에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서인석 공화당 대변인은 즉각 반박 성명을 통해 '조작폭로 전술로 악랄한 인신공격'이라고 받아쳤다. 그는 이어 박정희 총재는 김창룡 장군에 의해 관제 공산당원으로 몰린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여순반란 사건과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결국 서 대변인의 해명은 여론을 잠재우기는커녕 도리어 박정희 후보가 한때 남로당원이었고, 또 그 때문에 재판을 받은 사실을 공개적으로 시인한 꼴이 되고 말았다."

▲ 일본군 장교 박정희와 남로당 간부 박상희 (자료: 최민희 의원실)

1948년 육군 소령으로 진급한 박정희는 육군본부 정보국에 근무하다가 '여수·순천반란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았다. 그는 11월 11일 군 수사당국에 체포되었다. 결국, 박정희는 반란기도 혐의로 기소되어 1948년 12월 20일 군법회의에서 '파면, 급료 몰수,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심사장관의 조치'에서 "징역 10년으로 감형하며, 감형한 징역을 집행정지함"이라고 통보받았다. 당시 확인장관은 육군 최고책임자인 참모총장 이응준이었다. 그는 일본군 대좌(대령) 출신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큰 의문을 제기한다.
좌익이 주도한 일련의 사건들(4·3제주항쟁, 10·2대구항쟁, 여수순천 반란 등)에 대해 무자비한 유혈진압을 하던 살벌한 남한 사회에서 남로당 당원으로서 '반란을 기도'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현역 육군 소령 박정희가 어떻게 집행정지로 풀려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이런 의문에 대한 답으로 김재홍 교수(경기대)가 쓴 (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라는 책의 내용을 소개한다.
"박정희는 자신이 알고 있던 군부 내 남로당원들의 이름을 군 특무대에 실토했다. 박정희는 '김창룡 특무대'에서 조사를 받던 중 동료를 밀고하는 진술서를 쓰고 그 대가로 풀려났다. 그 진술서에 기재된 리스트를 토대로 악명 높은 특무대의 고문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1천명 안팎의 장교가 숙정당하고 그중 상당수가 처형된 것으로 추산된다.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에서 신생 독립국인 대한민국의 장교로 변신했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동료를 배신한 기회주의자로의 행각은 끝이 없었다."

이경직 기자  |  mp97@naver.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