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근혜, 인혁당 사건에 대한 분명한 입장 밝혀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10일자 사설 '[사설] 박근혜, 인혁당 사건에 대한 분명한 입장 밝혀야'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뒤틀린 역사인식이 점입가경이다. 박 후보는 어제 유신체제와 인혁당 사건에 대한 평가를 두고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인혁당 사건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나.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퇴행적 답변을 내놓았다.박정희 정권 시절 대표적인 ‘사법살인’으로 꼽히는 인혁당 사건은 2007년 법원이 재심을 통해 관련자 8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희생자 8명은 1975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된 뒤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됨으로써 나라 안팎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박 후보가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한 것은 유신하의 ‘꼭두각시’ 사법부가 내린 애초 판결과 2007년 재심 판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두 개의 판결을 병렬로 놓고 옳고 그름을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인 셈이다.박 후보는 2005년 인혁당 사건이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작·과장됐다는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 발표가 나오자 “한마디로 가치가 없는 것이며 모함”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그는 당시 “인혁당 문제는 증거는 없지만 정황이 이렇다는 식”이라고 거칠게 비판했다.박 후보가 인혁당 사건을 두고 두 개의 판결이 있다며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얼버무리는 것은 결국 5년 전의 재심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일 터다. 하지만 재심 판결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 덕에 대한민국 법원이 32년 만에 재심을 통해 과거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은 것이다. 공당의 대선후보가 이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과연 그가 민주국가를 이끌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박 후보는 자신의 발언의 근거와 재심 판결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유신체제 평가에 대해 박 후보는 “역사의 몫이고 국민의 몫”이라고 했다. 그는 “유신에 대해 당시 아버지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그렇게까지 하면서 나라를 노심초사했다. 그 말 속에 모든 것이 다 함축돼 있다”고도 했다. 이는 역사의 평가에 맡기면 된다는 종전 논리보다 한걸음 더 나가 유신 역시 박정희의 ‘구국의 결단’이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이다. 김황식 국무총리까지 얼마 전 “유신은 자유민주주의에서 벗어난 체제”라고 하는 마당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겠다고 나선 그가 이토록 국민 다수의 인식과 괴리된 역사인식을 갖고 있는 것에 솔직히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박 후보가 진정 이 나라를 이끌고 싶다면 역사 뒤에 숨는 비겁한 행동을 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