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1일 화요일

박근혜, 5.16·유신…박정희 시대 무조건 긍정평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10일자 기사 '박근혜, 5.16·유신…박정희 시대 무조건 긍정평가?'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0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황우여 대표, 서병수 사무총장 등 지도부와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박, 독재시대 판결-민주화뒤 재심 ‘동급’ 규정…뒤틀린 법인식
“인혁당 두개의 판결” 파장

유신시절 재판 정당화 
“두개의 판결” 판단유보 발언
“독립유공자들 명예 회복도
섣부른 판단이냐” 비판 일어

사법체계 이해 부족 
재심에서 판결 확정되면
기존 판결은 정당성 잃어
“잘못된 재판 바로잡은 것”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10일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답한 것은 역사와 법에 대한 박 후보의 잘못된 인식을 보여준다.박 후보가 말한 두 개의 판결이란 1975년 4월8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한 유신독재 시절의 대법원 재판과 2007년 1월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의 재심 판결을 가리킨다. 같은 사안에 대한 두 판결 내용이 다르니 어떤 게 옳고 어떤 게 그른지 판단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게 박 후보의 발언이다.형식적으로는 판단 유보인 듯하지만, 사실상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재판과 이에 따른 피해자들의 사형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두 판결이 지닌 정치적 맥락이나 사회적 환경이 다른데도 동일한 잣대로 비교함으로써 교묘하게 허위를 진실로 호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역사학자인 전우용 박사는 “박 후보의 논리대로라면 일제 때 독립운동하다가 유죄 판결을 받고 옥살이하거나 억울하게 사형당한 선조들을 해방 이후 독립유공자로 명예회복시킨 것도 섣부른 판단이 아니냐”며 “판결이 두 개니까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형식논리”라고 말했다.‘1975년’ 판결과 ‘2007·2008년’ 재심 판결을 ‘동급’으로 규정한 박 후보의 발언은 기본적으로 사법체계에 대한 이해 부족 또는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형사소송법은 원판결의 증거물이 위·변조된 것으로 증명될 때 등을 재심 청구 사유로 하고, 청구 이유가 인정되면 재심 개시를 결정한다. 따라서 법원은 극히 엄격하고 명확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만 재심을 받아들인다. 재심에서 판결이 확정되면 원래 판결은 효력을 잃게 되고 자연히 정당성 또한 사라지게 된다. 법원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 ‘2007·2008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것은 ‘1975년’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은 것으로 봐야 한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서 “1975 사형 판결에 대해 2007년에 재심으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판결 내린 것”이라며 “원심판결에 대해서는, 사법부도 가장 오욕스런 판결로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박 후보의 논리대로라면 군사독재 정권 시절 비정상적인 사법체계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에 대한 재심 결정은 모두 정당성을 잃게 된다. 서울지역의 한 판사는 “어떤 사건에 대해 법원의 ‘두 가지’ 최종 판결은 없다”며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는 유신정권 때 나온 판결의 오류를 재심을 통해 ‘무죄’로 시정한 것 하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지역의 다른 한 판사는 “재심은 판결의 하자를 인정해서 다시 심리해 판결을 내린 것으로, 정치적 견해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한 관계자는 “재심은 대단히 엄격하게 개시 결정을 해서 판단을 한 것인데, 재심 판결을 존중하지 않는 건 사법부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법원의 재심 판결 확정은 법치주의 사회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으로, 역사적 판단에 맡긴다는 건 무책임한 처사”라고 말했다. 앞서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은 2008년 9월 대한민국 사법 60주년 기념식에서 “과거 우리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드린 데 대해 죄송하다”며 사법부의 과거사를 공식 사과한 바 있다.더구나 박 후보의 발언은 유신독재정권 때의 사법부는 사법부 독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권에 예속돼 있었던 점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신헌법은 대법원장 이하 모든 법관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등 사법부를 사실상 정치권력 아래로 복속시켰다. 시국사건 재판에서 대부분의 법원 판결이 ‘정찰제 판결’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검찰의 구형대로 나왔던 것은 유신 시절 사법부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신독재 권력의 통제 아래 있었던 재판부의 잘못된 판결과 민주적 정통성이 확보된 재판부의 재심 판결을 어떻게 동일하게 비교할 수가 있느냐”고 지적했다.박근혜 후보의 발언은 유신정권 자체를 정당화하는 논리로도 해석될 수 있다. 조윤선 새누리당 대변인은 “박 후보의 발언 취지는 두 가지 상반된 판결이 다른 정권에서 내려진 결론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가 유신 군사독재 정권과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 정권에 동등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종철 김정필 기자 phillkim@hani.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