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8일 금요일

대통령이 ‘비밀사찰 총책’이라면?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5-17일자 기사 '대통령이 ‘비밀사찰 총책’이라면?'을 퍼왔습니다.
19대 국회가 탄핵 소추 논의해야

지난 16일 검찰(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을 통해 확인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라는 문건은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의 진원지가 청와대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지 5개월 뒤인 2008년 7월 21일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출범한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의 진경락 기획총괄과장이 작성했다는 그 문건에는 조직을 신설한 목적이 ‘VIP(대통령)의 국정수행 차질 타개’이며, 지휘체계는 ‘VIP께 일심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을 통해 총괄지휘하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총리에 대한 보고와 별도로 ‘VIP에 대한 보고는 공직윤리지원관실-BH(청와대) 비선-VIP(또는 대통령 비서실장)로 한다’고 되어 있다.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진원지는 청와대
지난 4월 초,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이 청와대에 195회나 사찰 관련 보고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청와대 관계자는 ‘민정수석의 지휘를 받는 지원관실 입장에서는 (청와대 방문이)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에 확인된 문건의 내용은 지원관실이 민정수석에게만 보고한 것이 아니라 ‘비선’을 통해 대통령에게 사찰 내용을 일일이 보고하고 ‘하명’을 받았음을 분명히 알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총리실 산하에 합법적으로 설치된 지원관실이라는 조직을 대통령 직속의 ‘비밀사찰기구’로 운영했음이 밝혀진 것이다. 


▲ 이명박 대통령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문제의 문건에 들어 있는 ‘VIP께 일심으로 충성하는 친위조직이 비선에서 총괄지휘한다’라는 대목을 들어, ‘일심회(一心會)라고 불러야 마땅한 조직’이라면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는 말은 명패뿐이고 실제로는 일심회 조직이 이 정부를 주무르고 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히틀러에게는 게슈타포, 동독에는 슈타지, MB에게는 일심회가 있다고 불러야 할 것’이라면서 ‘이제 대통령과 청와대가 수사 대상이 되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고 말했다.
 MB의,  MB에 의한,  MB를 위한 지원관실
한국일보가 지난 15일 보도한 내용을 보면, ‘진경락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 등 지원관실 직원들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400여 건의 사찰문건이 새로 발견됐다’고 한다. 그 문건에는 새누리당 정두언·현기환 의원, 민주통합당 이석현·백원우 의원을 비롯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비판적이었던 정치인들과 전직 관료들, 그리고 공기업 사장 등의 명단과 사찰 내용이 들어 있었다. 한국일보는 “지원관실은 형식만 총리실이었을 뿐, ‘MB의, MB에 의한, MB를 위한 지원관실’이라는 말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민간인 불법 사찰을 바탕으로, 자신과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적대적인 개인 또는 조직을 탄압하고 공직과 기업체의 임원 자리에서 추방하는 일을 주도했다 하더라도 현행법으로는 그를 처벌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헌법 제84조가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당이나 언론이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대통령 자신이 불법사찰을 스스로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사죄하라’거나 ‘국기를 뒤흔든 사건에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대통령이 주도한 불법사찰' 
주권자인 국민들이 볼 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대통령이 주도한 불법사찰’에 대한 심판은 제19대 국회가 개원한 뒤 탄핵 발의를 통해 실현할 수밖에 없다. 헌법 제65조는 이렇게 되어 있다. “대통령·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소속을 포함한 국회의원 모두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불법 사찰을 통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는지를 논의하고, 그렇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마땅히 헌법재판소에 탄핵 소추를 제기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2004년 3월 12일 제16대 국회에서 통과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과 이명박 대통령의 ‘불법사찰’ 사건을 비교해 보자.
2004년 5월 14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일부 위반했으나 그 위반 정도가 탄핵의 사유가 될 정도로 중대하지는 않다고 판단한다’면서 탄핵 소추안을 기각했다. 기자회견 등에서 야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은 공직선거법상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했으며, 신임투표를 제안한 것과 공직선거법을 폄하한 것 등은 헌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새천년민주당 등 야당이 주장한 대통령 당선자 시절의 부정 의혹, 그리고 불성실한 국정 수행이나 경제 파탄 등은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대통령의 탄핵 결정을 위해서는 그 중대성에 비추어 국민의 신임을 저버리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적극적으로 위반한 사실이 입증되어야 하는데 노 대통령의 행위는 소극적인 위반으로 그치고 있어 탄핵 소추를 기각한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탄핵 소추를 당한다면, ‘국민의 신임을 저버리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적극적으로 위반’했는지 여부를 헌재가 판단할 것이다.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겠다"는 박근혜 위원장 MB 심판할까

▲ 권재진 법무장관
오는 6월 5일에 개원하는 19대 국회가 이명박 대통령 탄핵안을 심의한다 해도 기간이 오래 걸릴 것이고, 여당인 새누리당이 반대하면 탄핵소추안조차 상정될 수 없다는 이유로 탄핵 발의를 반대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임기가 9개월밖에 남지 않은 대통령을 탄핵해서 퇴직시킨다 하더라도 ‘국가적 혼란’만 일어날 뿐이지 국민들에게 돌아올 이익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형태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드러났다면, 거기 대한 심판을 퇴임 이후로 미루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설령 임기가 두서너 달이 남았다 하더라도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 앞으로 대통령직을 맡게 될 사람들에게 준엄한 경고를 보내는 차원에서라도 탄핵 논의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만 맡기는 것도 옳지 않다. 검찰을 지휘하는 권재진 법무부장관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보고를 수시로 받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유권자들은 오는 12월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 탄핵 발의에 대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태도를 날카롭게 주시할 것이라고 본다.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겠다’고 여러 번이나 강조한 그가 이 사건에 대해서도 추상적인 언사만을 계속할 것인지, 국회에서 적극적인 자세로 진상 규명에 앞장설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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