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9일 화요일

"자본가는 피를 빨고 진보정당은 표를 빨았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29일자 기사 '"자본가는 피를 빨고 진보정당은 표를 빨았다"'를 퍼왔습니다.
[길 잃은 '노동정치', 좌표는?] 울산에서 바라본 노동자 정치 세력화의 오늘

울산, 창원, 거제는 노동자 밀집 지역으로 꼽힌다. 선거 때 진보진영에서 이 도시들에 주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4.11총선 결과, 진보정당을 자임한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모두 이 도시들에서 패했다. 확장하기는커녕 기존의 2석(울산 북구, 창원 성산)마저 잃었다.

충격 탓일까. 4.11총선 후 '진보정치의 위기'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진보정치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더 커졌다. 진보정당에서 노동 중심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위기, 그리고 노동 중심성 강화. 진보정당 운동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후 뭔가 일이 생길 때마다 제시된 단골 메뉴다. 이젠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어야 하지 않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울산으로 내려갔다. 한국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이곳의 현장 활동가 및 노동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다. 은 지난 21~22일 울산 곳곳에서 만난 이들에게 4.11총선과 노동자 정치 세력화의 오늘에 대해 물었다.

[총선 이야기] "울산연합의 오만함이 패배 불렀다"

4.11총선 때 통합진보당은 울산의 지역구 후보 결정 과정에서 내홍을 겪었다. 초점은 북구와 동구였다. 논란 끝에 북구 현역 의원(재선)이던 조승수가 남구갑에, 동구청장을 역임한 김창현이 북구에 출마했고, 동구에서는 시의원을 사퇴한 이은주가 노옥희를 누르고 후보가 됐다. 김창현-이은주는 울산연합 계열로 분류되고, 조승수-노옥희는 진보신당을 탈당하고 통합진보당에 합류한 사람들이다.

총선이 끝난 뒤, 후보가 적절했는지에 대해 다시 말이 나왔다. 이에 대해 방석수 통합진보당 울산시당 부위원장은 이렇게 평가했다. "패배 원인을 한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후보 선출 및 결정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는 비판적으로 평가할 대목의 하나이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다른 요소들과 함께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방 부위원장이 제시한 다른 요소는 "반MB(이명박)라는 방향성의 문제, 통합진보당 창당 과정에서 불거진 정체성 논란, 야권연대만 하면 된다는 안일함, 영남에 분 박근혜 바람" 등이다.

방 부위원장 말대로 선거 패배 원인을 후보 문제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울산의 활동가들은 대부분 후보 문제가 선거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진단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울산 노동계 인사 A씨는 "울산연합의 오만함이 패배를 불렀다"고 평가했다.

다른 후보였다면 반드시 이겼을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보다는 후보 결정 과정에서 드러난 무리수와 내홍이 심각한 분열로 이어졌으며, 후보 문제가 새누리당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됐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후보가 김창현이라고 해서 현장 분위기가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정적인 목소리도 적잖게 나왔다. 제일 많이 나온 건 '왜 북구로 왔나'였다. '김창현이 욕심이 많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 새누리당의 선거 운동은 단순 명쾌했다. 이런 식이다. 시장에서 한 사람이 '조승수 북구 의원은 어디로 갔나요'라고 외치면 다른 사람이 '남구로 쫓겨갔대요'라고 받았다. 다시 '그럼 지금 있는 사람(김창현)은 어디서 왔나요'라고 외치면 '동구에서 왔대요'라고 했다." (김호규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정치인의 사퇴 등 때문에 재보선을 치르게 되면 그 비용을 물어내게 해야 한다던 통합진보당에서 시의원을 사퇴한 이은주 후보를 내세웠다. (울산연합의) 전형적인 조직 이기주의, 패권주의였다. 평조합원들 사이에서는 그래도 야권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현장 활동가들은 후보 선출 과정의 문제점 때문에 힘이 빠졌다. 새누리당도 이은주 후보의 시의원 사퇴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현대중공업 노동자 김형균-정병모)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을 사실상 '배타적 지지'한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선거 때 범한 아주 큰 실수는 반MB에 몰두한 것이다. 민주노총도 마찬가지다. (……) 선거 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5곳 중 4곳에서 통합진보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대자보가 여러 개 붙었다. 나도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라는 대자보를 붙였다. 하지만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정규직 노조)는 통합진보당 후보를 지지했다. 그 결과 실질적으로는 울산연합 그룹만 적극적으로 선거 운동을 했다고 본다." (김호규 전 부위원장)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지부는 "민주노총 방침을 따랐을 뿐"이며 통합진보당 문제와 관련해서는 "(지금으로선) 따로 입장을 내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진보정당을 자임하면서, 비정규직을 양산한 노무현 정부 인사들과 당을 함께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래도 (분당 이전)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우리 당'이라고 불렀지만 통합진보당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현장의 많은 여론 주도층(활동가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편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 국민참여당 계열에 대해 반발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울산 노동계 인사 B씨)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프레시안(김덕련)

[총선 그 이상의 이야기] 1석이라도 건졌으면 위기가 아닌 걸까?

울산 곳곳에서 지난 총선과 관련해 정파 간의 주도권 경쟁, 그로 인한 후보 결정 과정의 논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총선 때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1석이라도 건졌다면 진보정당 운동은 위기가 아닌 걸까? 노동운동가 출신(혹은 노조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인물)으로서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이가 늘어나면 노동자 정치 세력화가 성공 궤도가 올랐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울산 현지의 활동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 총선에서는 정파들이 단합해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면 아무 문제 없다'는 식으로 볼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 의석을 늘리는 것에 매몰되지 말고 짚어야 할 과제가 있다는 말이다.

핵심은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은 우리 편, 나의 정당'이라고 일상에서 인식하고 있느냐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 진보정당이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였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투쟁에 찬물 끼얹더니, 선거 때 찍어달라? 솔직히 웃긴 일"

이상수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전 지회장은 "진보정당이 잘되길 바라지만, 취하고 있는 모습들이 현장 노동자와는 거리가 멀다"고 잘라 말했다. 한마디로 "비정규직 투쟁 현장에서 진보정당의 존재감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진보정당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다. 단 1명이라도 국회에 가서 자기 싸움을 해주길 기대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러더니만, (선거가 다가오니) '소수라서 힘이 없다. 원내 교섭단체를 만들어달라'고 하는 건 솔직히 웃긴 일이다. 투쟁 현장에 얼굴만 비치고, 투쟁에 찬물을 끼얹은 것에 대한 반성도 하지 않으면서 선거 때가 되면 '대안은 우리밖에 없다. 노동자니까 진보정당을 찍어달라'고 하는 것 같다."

이상수 전 지회장이 이렇게 말하는 건 2010년 '25일 투쟁'의 기억 때문이다. '25일 투쟁'은 똑같은 일, 아니 더 힘들고 험한 일을 하면서도 차별받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긋지긋한 '출입증' 대신 '사원증'(정규직)을 쟁취하자며 공장을 점거한 투쟁이다. 노동자 이상수는 '25일 투쟁' 당시 지회장이었다.

이상수 전 지회장이 말하는 대표적인 '찬물'은 '25일 투쟁' 후반기에 나온 야4당 중재안이다. 중재안의 핵심은 '점거농성을 푼 후 교섭하자'였다. 정규직화에 관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분노했다. 이들에게 이 중재안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담긴 것이 아니었다. 투쟁을 줄곧 가로막고 심지어 "협박"까지 한 이경훈 당시 현대자동차지부장이 주장해온 방안을 국회의원들이 받아들인 것일 뿐이었다. 야4당에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포함돼 있었다. 노동자 이상수에게 이 일은 큰 상처로 남아 있었다.

"진보정당들의 목소리는 우리 요구와 어긋났다. 핵심이 정규직화인데, 그쪽에서는 '그래 이제 알았으니 투쟁은 접고 교섭하자'는 식이었다. 그건 우리에게 죽으라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그는 그때 받은 압박이 얼마나 심했는지에 관한 일화를 이야기했다.

"작년에 박유기 당시 금속노조 위원장을 만난 적이 있다. 박 위원장이 내게 그러더라. '안 미쳤네?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정상인데.'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정규직 노조(현대자동차지부), 금속노조, 정치권의 압박이 심했다. 무엇보다 연대 세력들의 압박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당원이었던 적도 없고 현장 정치 조직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함께하자는 권유는 많이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동료들에게도 "비정규직 투쟁이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는 정당이든 현장 정치 조직이든 가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런 이상수에게 이번 총선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 일이 일어났다.

"이경훈 전 지부장이 남구갑 후보 경선에 나오는 걸 보고 통합진보당에 대해 손 놨다. 통합진보당 쪽에서도 '이경훈 때문에 우리도 죽겠다. 그런데 당원으로서 하겠다는 걸 말릴 수도 없고...'라며 난감해하더라. 그게 말이 되나. 원칙도, 내부 정화 능력도 없다는 게 큰 문제다."

총선을 앞두고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이 이정희 당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집회 참석도, 연설도 거부한 데는 이렇게 다 이유가 있었다. "현장에서는 '통합진보당보다 차라리 정동영이 더 진정성 있어 보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김호규 전 부위원장)는 이야기도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 이상수 전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장. ⓒ프레시안(김덕련)
이상수 전 지회장은 해고자 신분이다. 물론 '25일 투쟁' 때문이다. 그는 "해고된 후 제일 힘들었던 건 현장에서 동료들과 부대끼며 다독이지 못한 것"이라며 미안해했다. 지금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해고무효확인소송을 진행하는 동시에 다른 사업장의 투쟁을 지원하고 있다. 인터뷰할 때도, 그는 "경기도 화성에서 전라도 광주까지 현대기아차 공장 3박4일 순회투쟁"을 앞두고 있었다.


이상수 전 지회장은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부터 비정규직을 완전히 없애는 방향으로 싸우고 그 성과를 전국으로 확산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을 조직하는 것이 "늙은" 민주노총을 역동적으로 만들고 진보정당의 노동 중심성을 강화하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투쟁하기가 훨씬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런 점을 감안하지 않고) '함께하려 하는데도 오지 않는다', '비정규직에게는 인식이 없다'는 식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선 곤란하다."

냉소하는 비정규직 활동가들, 관심 없는 평조합원들

이상수 전 지회장의 동료인 최병승(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씨도 '25일 투쟁' 때 진보정당들이 보인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중재할 거면 제대로 중재를 하든가, 아니면 비정규직 목소리를 정확하게 대변하든가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경훈이 이끌던 정규직 노조와 회사 쪽 요구를 담은 중재안이었다. 그럴 거면 왜 왔나. (의원들에게) 뭔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이경훈 전 지부장의 통합진보당 후보 경선 출마는 최 씨에게도 황당한 일이었다. "그런 게 활동가들의 냉소를 불렀다."

냉소를 부른 건 이것만이 아니다. 통합진보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국민참여당과 "야합"한 것도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활동가들의 냉소를 부추겼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정갑득 전 현대자동차지부장이 2005년 보궐선거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한 것도 이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정갑득은 지부장이던 2000년에 '사내 비정규직 사용 상한선 16.9퍼센트' 방안을 회사와 합의했다. 현대자동차에서 비정규직 확산의 물꼬를 튼 합의였다. "그런 정갑득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도저히 낼 수가 없어서 입장 표명을 한동안 미뤘었다."

최 씨는 "진보정당이든, 진보정치 세력이든 전혀 도움이 안 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지금으로선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차이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진보정당의 일상적 사업이 없다. 못 느끼겠다"는 것이다.

최 씨는 진보정당, 그리고 정치 문제에 대해 활동가 층과 평조합원들 사이의 인식 차이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활동가들과 달리, 평조합원들은 기본적으로 진보정당에 관심이 없다. 국민참여당을 끌어들인 것에 대해서도 별 논란이 없다. (그러니) '배신'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평조합원들은 그간 치러진 여러 선거에서 누가 되든 큰 차이를 못 느꼈다는 뜻이다. '차이도 없는데 또 밥그릇 싸움을 하는구나', 이렇게 느끼는 평조합원들이 훨씬 많다.

평조합원들은 나꼼수에 열광하고 대체로 야권연대를 지지한다. 나꼼수 방송을 CD에 담아 내게 가져다줄 정도다. 여소야대가 되면 비정규직 문제가 풀리고 재판 문제도 잘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4월 11일이 특근하는 날이었는데도 거의 투표했다더라. 활동가들은 투표를 덜 했지만 평조합원들은 적극적으로 했다."

진보정당에 대한 관심은 고사하고, 국민참여당 합류에 관한 논란조차 찾아보기 힘든 평조합원들. 그동안 진보정당이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 제대로 스며들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 씨는 "그동안 비정규직지회에서 진보의 정치 세력화에 대한 교육을 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정규직 노조와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교육을 할 시간과 계기를 마련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는 말이다.

이어 "노동자 정치 세력화에 대한 공감대를 현장에서 다시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상층 노조에서 결정하면 따르는 식으로 조합원들을 수동화하는 게 아니라, 조합원들이 정치라는 것을 자기 문제로 풀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씨가 말한 재판은 '25일 투쟁' 때문에 걸린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이상수 전 지회장은 "함께한 200여 동지들에게 각각 500만 원 이상 벌금이 나온 것 같다"며 "나도 재판이 여러 개 걸려 있다"고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25일 투쟁'을 잊었지만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 씨는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 업체에서 일하다 2005년 해고됐다. 고용노동부가 불법파견으로 판정한 것에 맞춰 사내 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 후 7년간 법정 투쟁을 벌였다. 올해 2월 대법원은 "현대자동차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가 맞다"며 최 씨의 손을 들어줬다. 5월 초에는 중앙노동위원회가 "원청인 현대자동차가부당해고를 했다"며 원직에 복직시키고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 문제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요 관심사다.

"자본가는 피 빨아먹고 진보정치는 표 빨아먹는다"

진보정당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것일까? 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은 그렇지 않다고 우려했다. "'자본가는 피 빨아먹고 진보정치는 표 빨아먹는다.' 총선 때 조합원들에게서 들은 말이다. 섬뜩한 이야기다."

▲ 김호규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 ⓒ프레시안(김덕련)
김호규 전 부위원장은 지금과 같은 '배타적 지지' 방식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배타적 지지를 해달라고 요구하기보다는 '우리 노동자가 왜 당신들을 지지해야 하는가'에 대해 정당이 보여줘야 한다. ('상층에서 결정했으니 따른다'가 아니라) 조합원들이 '이 당은 이래서 좋구나'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안 그러면, 몸 대주고 돈 대주는 걸로 그치는 관계가 지속될 것이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이든 진보신당이든 이런 그림을 못 그리고 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정당, 노동정치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 근간인 노조운동의 방향과 관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운동, 정당운동이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노동자 개개인이 "자신을 개별 기업의 노동자로서만 생각하지 않도록 계기를 마련하고, 삶에 대한 다른 비전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 전 부위원장은 이를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본다.

"지난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2700시간이었다. 3000시간이 넘는 사람도 5000명 정도 된다. (일에 치여 사는) 이런 상황에서 지역 활동이든, 상향식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 분회 활동이든 할 수 있겠나. 강제로라도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자본가들에게 부역하는 노동운동"
하 전 본부장도 노동시간 단축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노조운동의 현 상황을 매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을 감안할 때, 현대자동차에서 과로사로 1년에 30명 정도 죽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동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조합 선거에서 누구도 이 문제를 못 꺼낸다. 제기하면 선거에서 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잔업, 특근을 줄이자고 하면 조합원들이 싫어한다."

하 전 본부장은 노조 활동가들도, 조합원들도 "기업별 노조라는 낡은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자들이 돈의 노예가 돼 왜곡된 경쟁을 하고 있다. 정의감은 실종되고 의식은 부패했다. 어떻게 민주투사라는 사람들이 '차를 한 대라도 더 만들게 해달라'며 천막 치고 농성할 수 있나. 그런데 1998년에 1만 명이 정리해고 등으로 구조조정된 후, 2000년대 들어 물량 확보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했다. 이게 다 조합원들을 과로사로 내모는 것 아닌가?

이런 식으로 물량 확보 투쟁을 하면서 비정규직 차별에 동조하는 건 자본가들에게 부역하는 노동운동이다. 어렵고 더럽고 힘든 일은 비정규직에게 떠넘기는 게 노동운동이 할 짓인가."

하 전 본부장은 19세이던 1977년 공고 실습생으로 현대자동차에 첫발을 디뎠다. 그로부터 45년. 다시 현장 노동자로 돌아온 하부영은 노조운동을 돌아보며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과거에 한창 조합원들을 만나고 다닐 때, 조합원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런데 다 불행하다더라. '가정을 버리고 일에 치여 사는 것, 우리도 좋아서 하는 게 아니다'라고 하더라. '하루 세 끼를 공장에서 먹는 난 집에서 기르는 개만도 못한 존재'라며 우는 조합원도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고민하고 반성했다. 결론은 87년 투쟁에 답이 있다는 것이다. 그때 대중이 요구한 건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였다. 이렇게 대중이 답을 줬는데, 나를 비롯한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잘못 이끌어온 것이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우리만의 기준이 없었다. 벌이가 줄어 소비 수준 낮추고 애들 학원 하나 줄여야 하더라도, 노동시간 줄이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려야 행복해지는 것 아닌가? 그러자고 노조 만들고 노동운동을 시작한 것 아닌가?

그동안 제대로 된 민주노조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없었다. '전투적 실리주의'와 '협조적 실리주의'(어용)가 있었을 뿐이다. 어용이 '우리는 성과급 300퍼센트를 따내겠다'고 하면, 민주파는 '그러면 우리는 600퍼센트를 하겠다'고 나서는 식이었다. 1998년 정리해고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이런 현상이 더 심해졌다."

하 전 본부장은 "조합원들의 왜곡된 요구와 타협하지 않는 노동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렇게 노조를 바로 세우는 동시에 작업장을 넘어서 지역사회 및 소비-유통 영역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 전 본부장은 그 성과를 바탕으로 노조와 진보정당의 조직을 강화하는 것, 그게 노동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며 에피소드를 하나 이야기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당선자, 노동운동을 몇 십 년 한 나도 누군지 몰랐다. 이석기가 기획사 사장이라는 소식이 들리자, 현장에서는 '그럼 인쇄소 사장인가?'라는 말도 돌았다. 이런 식으로 갑자기 나타나서 표를 달라는 도깨비 당, 도깨비 표결은 더 이상 안 된다."

일터에선 노동자, 공장 밖에선 자본의 논리 추종

▲ 현대중공업 해고자 조돈희 씨. ⓒ프레시안(김덕련)
'기업별 조합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다른 이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현대중공업 해고자 조돈희 씨도 그중 하나다. 조 씨는 1990년 '골리앗 투쟁'의 주역 중 하나로 1999년에 해고됐다. 2000년대에는 민주노총의 '사회적 합의주의'에 반대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노동자 중심성, 현장 중심성, 계급성. 민주노동당은 애초부터 이런 문제들에서 한계를 안고 출발했다. 이것을 비판하며 사회주의 정당건설을 주장한 세력도 내용을 제대로 담보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전체가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노동자들의 운동은 여전히 잠재력이 있지만, 후퇴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노동자들의 상태가 정말 문제다. 조합주의에 갇혀 더 이상 행동하려 하지 않는 노동자, 이것에 바탕을 둔 진보주의는 개량화하고 운동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기억해야 할 건) 노동정치란 노동자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행동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울산 노동계 인사 B씨는 "진보정당에서 조직 확장 문제 말고 노동자들에 대한 정치 교육을 제대로 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 때문에 "새로운 노동정치의 상을 만들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노동자 정치 세력화의 오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를 B씨와 김호규 전 부위원장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과 각각 따로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아파트 경비 노동자(감시-단속 노동자)들은 대부분 파견업체 소속이다. 이중 착취를 당하는 셈이다. 거기다 최저임금 적용 예외 대상이어서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감시-단속 노동자는 올해부터 최저임금을 100퍼센트 받을 수 있게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대량 해고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최저임금 100퍼센트 적용 시점을 2015년으로 미뤘다. )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 중에 아파트 입주민 모임의 대표나 임원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있다. 상당수의 입주민이 대공장 노조원인 아파트들이다. 그런데 이런 아파트의 입주민 모임 대표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라고 해도 경비 노동자나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에는 별로 마음을 쓰지 않는다. 최저임금이 논란이 됐을 때 토론을 붙여보면 '(경비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지 말고) CCTV를 달자, 젊은 사람으로 교체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이들 중엔 노조 집행부로 활동했거나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노동운동을 했지만 노동자 의식은 빵점인 사례다. 한마디로 노동자들 머릿속에 이중의식이 있다. 일터에서는 회사 관리자와 맞서는 노동자이지만, 공장을 벗어나면 자본의 논리에 따르는 이중의식이다."

이대로 가면 돈 대주고 몸 대주는 일마저 끊길 수도

원칙이 정파의 이해관계에 짓눌리는 것을 방치하고 기업별 노조주의와 이중의식의 폐해에 눈감으면서, 진보정당과 노동자 정치 세력화라는 나무가 튼튼하게 뿌리내리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새로운 노동정치의 상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돈 대주고 몸 대주다 마음까지 다치는" 일은 또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계속되면, 돈 대주고 몸 대주는 일마저 끊길 수 있다.

울산에 있는 동안 '전태일 정신'이라는 말이 여러 차례 떠올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들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들을 때 더욱 그러했다. '전태일 정신 계승', 매년 열리는 노동자대회 같은 때 부각되는 구호다. 또한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자임하는 진보정당 활동가들 중 '전태일 정신 계승'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잊고 있는 건 아닐까. 전태일은 시다 노조, 재단사 노조를 따로 만들어 차별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태일에게 그들은 같은 노동자이자 사람일 뿐이었다. 노동운동과 노동자 정치 세력화에 불을 지핀 건 바로 그런 마음과 원칙이었다.

 /김덕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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