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31일 목요일

[사설]민주주의 소양 없이 국회 선진화는 요원하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5-30일자 사설 '[사설]민주주의 소양 없이 국회 선진화는 요원하다'를 퍼왔습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어제 19대 국회 원구성 협상과 관련해 “통합진보당은 몇몇 의원들의 정체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은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의 상임위원회가 18개인데 150석인 새누리당 의석수를 감안할 때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위원장 배분은 10 대 8이 맞다며 한 말이다. 앞서 한 최고위원은 ‘외교통상위와 국방위 등 국가기밀을 들여다볼 수 있는 상임위에 통진당 의원들을 배치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개원 협상에 임하는 여당의 원론적 입장 표명이겠거니 하면서도 국회 운영을 책임진 여당 원내대표가 한 말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문제의 발언은 통진당에 상임위원장 1석을 배분하느냐 마느냐를 떠나 통진당 사태를 바라보는 여당의 편협한 시각을 대변한다고 본다. 몇몇 의원 때문에 상임위원장을 줄 수 없다는 것은 통진당을 범죄집단화하는 21세기형 연좌제적 발상이다. 통진당의 이석기·김재연 의원이 경쟁부문 비례대표 경선에서 부정을 저질러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나 두 사람의 문제로 통진당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통진당은 두 사람의 제명을 추진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인정하고 싶든 말든, 통진당은 4·11 총선에서 230만표를 받은 정당이다. 재적 300석의 딱 절반인 150석을 차지한 새누리당과 야당의 몫이 10 대 8이어야 한다는 논리도 수긍키 어렵다. 자신들의 150석과 민주당 127석만 의석이고, 비교섭단체 의석 23석은 유령이라는 얘기인가. 소수의 목소리 존중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만 이해해도 고집부릴 수 없는 억지다.

이에 대해 강기갑 통진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헌법의 4·19 정신을 부정하는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에서 중요 역할을 한 사람, 내란죄로 규정된 12·12 쿠데타에 참여했던 사람은 3부 요인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면 어떠냐고 되받았다. 그는 “나는 그런 법안에 반대한다”면서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고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헌법정신이 무자격자를 솎아내고 싶은 단편적 마음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제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끌만 쳐다보는’ 새누리당의 편협성에 대한 일침으로 들린다.

이석기·김재연 의원은 지금이라도 의원직을 내놓아야 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통진당 사태가 두 사람의 사퇴와 당 쇄신으로 나가야지 통진당의 이념적 정체성 문제로 확대돼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올해는 폭력과 날치기로 얼룩진 18대 국회의 교훈을 되새겨 여야가 합의로 처리한 국회 선진화법을 시행하는 원년이다. 국회 선진화는 비단 폭력이나 날치기 해소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굳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11조 1항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민주주의 소양을 갖추지 않는 한 국회 선진화는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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