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30일 수요일

[사설] 이 대통령, 여당 선거운동에 작심하고 나섰나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5-29일자 사설 '[사설] 이 대통령, 여당 선거운동에 작심하고 나섰나'를 퍼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연설은 민감한 현안 피해가기로 유명하다. 국민이 궁금하게 여기는 관심사를 허심탄회하게 설명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계기로 활용한 기억은 거의 없다. 이 대통령이 엊그제 91차 라디오연설에서 뜬금없이 ‘종북주의’ 문제를 들고나온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의 얄팍한 현실인식과 속보이는 국정운영 방식이 다시 한번 확인된 연설이다.
이 대통령이 그동안 사용하지 않던 종북주의라는 말을 처음으로 언급하고 나선 것은 최근의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 파문이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요즘 몇몇 보수언론이 대대적으로 색깔론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도 라디오연설 주제를 정하는 데 참고했을 것이다. 보수언론의 구미에 맞는 연설을 함으로써 친여매체들한테서도 점차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레임덕 대통령’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종북주의의 문제로 몰아가는 것은 매우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다. 진보진영 전체에 친북·종북의 색깔을 덧씌움으로써 올해 대선 구도를 여권에 유리하게 이끌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런 정치공학적 맥락을 이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종북주의를 들고나온 것은 대선 공정 관리라는 대통령의 막중한 책임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얘기다. 검찰의 통합진보당 수사가 논란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수사 가이드라인’으로 여겨질 수 있는 발언을 한 것도 부적절하기 짝이 없다.
더욱 쓴웃음이 나오는 것은 이 대통령이 국정운영 실패를 모두 종북주의자 탓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에도 좌파세력이 발목을 잡아 국정운영을 못한다는 말을 줄곧 해왔는데 이제는 한술 더 떠서 종북세력에 화살을 돌리고 나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실패는 자신의 무능과 정책 잘못 때문이지 남 탓을 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 국민은 무조건 종북좌파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로 국정운영에 임하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는 것이다.
지금 이 대통령은 공안몰이에 정신을 팔 때가 아니다. 통합진보당 사태가 시끄럽다고 해서 국민이 대통령 측근 비리와 이들의 국정농단 사태를 잊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대통령이 정작 라디오연설을 통해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은 종북세력 문제가 아니라 현 정권의 부패와 무능이다. 국민적 관심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계속 딴소리만 할 요량이면 라디오연설을 아예 중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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