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31일 목요일

“반도체 노동자와 삼성의 실상 알리고 싶었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5-30일자 기사 '“반도체 노동자와 삼성의 실상 알리고 싶었다”'를 퍼왔습니다.

ㆍ‘반올림’ 이종란 노무사, 성균관대서 거리 강연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이종란 노무사(36·사진)가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성균관대 캠퍼스에서 거리강연 강사로 나섰다. 이 노무사는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의 직업병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반올림’에서 상임활동가로 근무하고 있다.

이 노무사는 30일 오후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 앞에서 이윤정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본 삼성그룹의 근로실태와 노조 문제 등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윤정씨는 1997년부터 6년 동안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근무하다 뇌종양 진단을 받고 지난 7일 숨졌다. 이 노무사는 “삼성은 아직도 이윤정씨가 죽음으로까지 이르게 된 악성 뇌종양이 개인 질병이라고 몰아가고 있다”며 “그러나 진짜 원인은 전자파와 불량품 찌꺼기를 만지면서 묻은 유해성 화학물질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거리 강연장에 시선만 보낼 뿐 끝까지 자리를 지킨 학생은 10여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노무사는 담담하게 자신의 경험담을 40분간 풀어나갔다. 이날 거리 강의는 이 대학 류승완 박사 강의박탈 학생·동문대책위가 마련했다.


강연이 끝나고 난 뒤 이 노무사는 삼성과 악연을 맺기 시작한 사건을 먼저 떠올렸다. 그는 2005년 삼성SDI에서 노조 설립을 시도했던 노동자들을 만나 위치추적 의혹 등 삼성 노무관리의 실상을 접했다. 그는 “이때부터 인생이 꼬인 거죠”라며 웃었다. 

이 노무사는 2007년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고 황유미씨 사건을 다루면서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란 것을 깨닫게 됐다. 그는 “황유미씨의 부친께서 ‘삼성이 딸의 죽음을 산업재해가 아닌 개인 질병으로 몰아가려 하고 아무도 문제를 캐려고 하지 않았다’면서 한숨부터 쉬셨다”며 “‘삼성에 노조가 있었더라면 내 딸이 죽는 일까지는 없었을 것’이라고 얘기할 때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후 이 노무사는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꾸리면서 삼성과의 긴 싸움에 발을 들였다. 대책위는 다음해 반올림으로 전환됐고 이 노무사는 이 단체를 5년째 이끌고 있다.

이 노무사는 삼성과 상대하면서 가장 힘든 점에 대해 “삼성은 항상 직접 협상에 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정부기관을 앞세우는 방식을 쓴다”며 “또 피해자를 금품 등으로 회유하거나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 ‘삼성처럼 돈 많이 벌어다주는 회사를 왜 걸고넘어지느냐’며 반올림 등을 대기업 흠집내기만 하는 집단으로 보는 사회적 시선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반올림의 도움으로 김지숙씨(36)가 지난달 10일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은 근로자 중에서는 처음으로 산업재해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삼성전자 온양공장 반도체 조립 공정 등에서 5년5개월 동안 근무한 뒤 ‘혈소판감소증 및 재생불량성 빈혈’이란 희귀병에 걸렸다. 근로복지공단은 김씨가 근무 과정에서 벤젠이 포함된 유기용제와 포름알데히드 등에 간접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고 1999년 퇴사 당시부터 빈혈과 혈소판 감소 소견이 있었던 점 등을 인정했다. 

이씨는 “반올림은 산업재해 인정과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해왔다. 앞으로도 삼성뿐만 아니라 반도체공장 근로자들의 건강권과 인권을 반올림하기 위해서 반발짝씩 앞서나가겠다”고 말했다.

박효재·이효상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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