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9일 화요일

성추행 교사 수사 협조했더니 '파면'... 억울합니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5-28일자 기사 '성추행 교사 수사 협조했더니 '파면'... 억울합니다'를 퍼왔습니다.
[제보취재] 경기도 양주시 H고 파면 교사 김민원씨

▲ 김민원 교사가 H고 앞에서 파면의 부당함을 알리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김도균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20년 동안 성실히 근무했던 제가 하루아침에 무단 조퇴와 지각을 일삼는 '막장 교사'가 되어 파면 당했습니다. 저도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인데, 여학생들을 성추행하는 교사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경찰 수사에 협조해서 성추행 교사를 퇴출시킨 것이 죄인가요?"

지난 2월 말 한 포털 사이트 토론방에 '사립학교의 불편한 진실- 학교의 명예를 위해 교권도 포기하고 성추행도 눈 감아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학교측의 권리침해 신고를 받은 포털 사이트가 이 글을 세 시간 만에 삭제했지만, 교사에 의한 여학생 성추행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이 글에는 삽시간에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 글을 쓴 이는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사립 H고에서 파면된 김민원(46) 교사. 김 교사는 지난 1989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이 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쳐 왔다. 와 만난 김 교사는 수 년간에 걸쳐 여학생들을 성추행해온 남성 교사에 대한 경찰 수사에 협조했다는 것을 문제 삼아 학교재단이 '학교 및 학교장 명예 실추'라는 이유로 자신을 파면했다고 주장했다.

"딸 재시험 치르게 해달라"는 학부모 요구 거절하자...

김 교사의 주장에 따르면,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08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교사는 한 학부모로부터 '딸의 일본어 과목 수행평가 점수가 낮으니 시험을 다시 치르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이미 성적 확인까지 끝난 상태에서 있을 수 없는 무리한 요구였다. 수행평가 재시험은 있을 수 없다고 거듭 이야기하자 이번에는 수업태도 점수 감점을 인정할 수 없다고 억지를 부렸다. 그 후에도 이 학부모는 여러 차례 학교를 찾아와 딸의 낮은 점수에 대해 항의를 하고 민∙형사적 책임을 묻겠다며 김 교사를 압박했다. 이 학부모는 또 학교 홈페이지에 김 교사를 비방하는 글을 올리고 학교재단과 교육청에 김 교사의 징계를 요구하는 민원을 냈다.

"이 학부모가 여러 차례 찾아와 반복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자 학교가 시끄러워졌다. 교장은 업무를 제대로 볼 수 없다며 학부모가 원하는 대로 해줄 것을 지시했고, 만약 학교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내게 묻겠다고 질책했다. 너무 억울해서 학교 내부 전산망에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는 글을 써서 올렸다. '내가 이렇게 학부모의 억지 요구 때문에 시달리는데, 교장, 교감 선생님은 오히려 자리를 피하기만 했다'는 게 글의 요지였는데 이것이 교장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다. 이때부터 학교 측에서는 오히려 학부모에게 자신의 민원 내용을 문서로 제출하게 한 다음 이것을 빌미로 갖가지 명분을 날조해 나를 공격하는 데 이용했다."

양심상 학부모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 줄 수 없었고, 이로 인해 교장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는 게 김 교사의 주장이다.

결국 학교 당국은 학부모와의 마찰을 문제 삼아 학교명예 실추 등의 사유로 2009년 2월 김 교사를 직위해제했다. 직위해제 상태에서 재단으로부터 사표를 강요받았고, 재단 이사장은 일단 병가 휴직의 형태로 쉬면서 퇴직할 것을 종용했다고 김 교사는 말한다. 반년 이상 학부모와 갈등을 겪으면서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휴직 상태로 쉬고 있던 김 교사는 2009년 9월경 동두천 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이아무개 경위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이 학교 이아무개 교사가 당시 2학년에 재학 중이던 한 여학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정황이 포착됐으니 수사를 도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경위는 앞서 교장에게 수사 협조를 요청했지만 '근거 없는 표적 수사'라며 강하게 반발해 수사 자체가 종결될 처지에 있다며 김 교사의 협조를 구해온 것. 법률상 성폭력∙성추행은 친고죄에 해당돼 피해 당사자의 진술이 없으면 죄가 성립되지 않는데, 피해자 진술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 이 경위의 하소연이었다.

김 교사와 경찰 관계자, 관련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당초 성추행 사건의 발단은 이아무개 교사가 2008년 담임을 맡았던 한 여학생의 일기장에서 시작됐다. 여러 달 동안 담임 교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지속해온 이 여학생은 이런 내용을 자신의 일기장에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이듬해 여학생들간의 다툼 과정에서 이 일기장이 외부로 유출되었고 이 일기장의 존재를 파악한 경찰이 내사에 착수했던 것. 그런데 경찰이 내사에 들어가기 전 이미 이 일기장은 학교 안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아무개 교사와 일기를 쓴 여학생, 여학생의 보호자를 불러 조사를 한 학교 당국은 '담임 교사를 일방적으로 좋아한 여학생이 자신의 상상 속에서 일기를 썼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일기장의 내용이 사실무근이라고 결론 내린 학교측이 경찰의 수사 협조 요청에 대해 반발한 것으로 김 교사는 추정했다.

경찰의 성추행 수사 협조 요청에 반발한 교장

직위해제 전까지 학생부 담당 교사로 여학생 생활 지도를 맡았던 김 교사는 이 경위의 전화를 받고 고민을 했다. 직위해제를 당하고 퇴직을 종용받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의 수사에 협조한다면 신분상 불이익이 가중될 것은 충분히 예견됐지만 학생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선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게 김 교사의 설명이다. 또 평소 학생들로부터 이 교사가 여학생들을 밖에서 따로 만나 이상한 짓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던 터라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고 했다.

김 교사는 학교 밖에서 학생들을 만나 혹시 이 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학생들이 있는지 수소문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학생들이 하나, 둘 나타났고 김 교사는 이들 여학생들이 피해자 진술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여학생들로부터 피해자 진술을 확보한 경찰의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동두천경찰서로부터 사건을 이첩 받은 관할 양주경찰서는 현직 교사에 의한 여학생 성추행이라는 점에서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 강력팀에 사건을 배정했다. 검찰은 이 교사를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부는 1심에서 이 교사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2심에서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제자들과 단둘이 있을 때 학생들을 무릎에 눕히거나 신체적 접촉을 시도하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며 "이씨와 학생들의 관계와 연령 등에 비춰 여학생들이 이를 쉽게 거부할 수 없었던 만큼 성적 수치심을 해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김 교사가 예상했던 대로 이 사건의 여파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왔다. 2010년 2월 학교 측으로부터 파면 처분을 받은 것. 학교 측이 내세운 징계 사유 중에는 김 교사가 '비밀리에 학생들을 선동하여 성추행했다는 진술서를 확보, 고소를 종용하여 급기야 언론매체에 게재되었다'고 적시되어 있다. 즉, 경찰 수사에 협조한 김 교사의 행위가 학교 명예 실추 및 학교장 비방∙음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성추행 수사 협조가 학교 명예를 실추시켰다?

"성추행을 자행했던 이 교사를 비호하던 학교는 긴급회의까지 열어가면서 성추행 사건을 무마시키려고 했고, 마치 내가 학교와 교장에게 앙심을 품고 사건을 일으킨 것처럼 피해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찾아다니면서 설득했어요. 그 과정에서 당초 피해 진술을 했던 5명의 여학생 중 2명이 자신의 진술을 번복했고, 이로 인해 추행 교사는 여학생들의 거짓 진술과 이를 뒤에서 선동한 나에 의해서 마치 누명을 쓴 것처럼 상황이 반전됐어요."

이 교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당초 진술을 했다가 자신의 말을 뒤집었던 한 여학생은 기자와 만나 자신이 진술을 번복하게 된 경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여학생의 당초 진술서에는 이 교사가 자신을 불러내서 드라이브를 하면서 치마 속으로 손을 넣는 등 성추행을 했다고 쓰여 있다.

"이 선생님이 엄마한테 전화해서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OO이가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사과를 드리겠다'고 했어요. 엄마가 처음에는 막 야단을 치셨는데, 나중에는 마음이 풀리셨는지 굳이 이렇게까지 관여를 하면 나중에 문제가 커질 수도 있으니 고소를 취하하고 나는 빠지는 게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 사건이 나고 나서 어차피 전학을 준비하고 있던 때라 다시 나에게 연락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 선생님 변호사 사무실에서 진술서를 다시 써줬습니다."

그런데 학교 측은 김 교사가 교장과 학교의 이미지 실추를 목적으로 성추행 문제를 제기했다는 입증자료로 이 학생의 진술서 말고도 학부모 1명, 교생과 임시사서 교사가 쓴 진술서 등을 제출했다. 이 진술서들에는 공통적으로 '김 교사가 학교 측에 피해를 주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동참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어왔다'거나 '김 교사가 학교에 앙심을 품고 있어 학교의 이미지 실추와 교장을 타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김 교사는 학부모와는 전화통화를 한 사실도 없을 뿐더러,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학교장을 타격할 목적으로 일을 꾸미고 있다'는 등의 말을 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학교 측은 또 일부 학부모들에게 김 교사가 성추행 문제를 학교측에는 알리지 않고 외부기관에 먼저 알리는 절차적 잘못을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학교에서 하는 얘기는 그 문제(성추행)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김 선생이 아이들을 선동해서 학교에다 먼저 알리지 않고 교육청이나 경찰서에 먼저 갔다는 얘기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되는 문제를 교직자가 먼저 학교에다 얘기를 하지 않고 절차를 무시했다는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전 학교운영위원장 이 아무개씨)

그러면 김 교사는 왜 학교 내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을까? 또 다른 학부모의 증언이다.

"그때 나는 김 교사를 알지도 못했고, 성추행 이야기는 학교 내의 다른 선생님을 통해서 전해 들었다. 성추행 교사에 대한 아이들의 증언이 계속 나오는데 자신이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 그 문제에 대해선 학교 안에서 공론화시키기 힘든 분위기였다. 그 선생님이 나에게까지 그런 얘기를 하셨을 때는 교내에서 정상적인 절차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학부모 선에서 문제를 제기해주었으면 하는 것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1∙2심 법원 모두 학교 측 손들어줘

교원심사소청위원회에서는 학교 당국의 파면처분이 과하다고 판단, 정직 3개월로 처분을 경감해 김 교사는 2010년 6월 학교로 복직했다. 하지만 김 교사는 자신이 없었던 사실을 꾸며내 교장과 학교의 명예를 실추했다는 누명을 견딜 수 없었다. 허위진술의 부당함을 밝히고자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학교 측도 맞소송을 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학교의 손을 들어줬다. 1, 2심 재판부 모두 학교 측의 파면 처분이 과하나 사립학교인 H고가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볼 상당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1심 판결 직후 김 교사는 "매년 동일한 시험 문제를 내는 등 직무에 태만했고, 잦은 지각과 조퇴로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한 '막장교사'"로 일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김 교사는 학교측이 법원에 제출한 성실 의무 위반, 복종 의무 위반, 품위 유지 위반 등의 사례가 성추행건과 마찬가지로 학교측이 자신을 파면하기 위해 말맞추기 식으로 교묘하게 짜놓은 음해라고 반발하고 있다.  

학교측은 지난해 11월 25일 김 교사를 재 파면했고, 김 교사는 대법원에 항소해서 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김 교사는 "사립학교의 재량권이라는 것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단이 학교의 명예를 운운하며 파면이라는 중징계를 행사한 것에 대해 법원마저 그 진실을 외면했다"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 교사는 "성추행 교사에게는 법정에 탄원서까지 제출하고 (파면보다 가벼운) 해임 처분을 내린 학교 측이 정작 경찰 수사에 협조했던 나를 파면한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H고 교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미 다 지나간 일인데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 학교 행정실장은 여러 차례의 기자의 통화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김도균 (capa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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