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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7일 수요일

대통령님, 제가 쓴 희망의 메시지 보셨습니까?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2-26일자 기사 '대통령님, 제가 쓴 희망의 메시지 보셨습니까?'를 퍼왔습니다.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의 취임식 참가기

▲ 취임식 ⓒ 변창기

▲ 취임선언문 ⓒ 변창기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지난 2월 25일 오전 11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마당에선 제 18대 대통령 이취임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울산을 떠난 지 11시간 만에 대통령 취임식 현장에서 취임선언문을 들었습니다.

취임식이 있기 한 달 전 박근혜 당선인 인수위원회에서는 인터넷이나 우편으로 제 18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 사람들을 접수받는다고 공고를 냈습니다. 사연을 보내면 검토하고 당첨자를 뽑아 초청장을 보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강원도 평창 산골에서 태어나 부모따라 6살때 울산에 와서 살았습니다. 오십평생 대통령 취임식에 한 번도 못 가보았습니다. 그래서 한 번 가보고 싶어 신청합니다.'

저는 그 공고가 뜨자마자 박근혜 당선인 인수위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 신청을 하였습니다. 취임식을 며칠 앞두고 다시 인수위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초청 신청에 당첨되었고 곧 초청장이 도착할 거라 했습니다. 이틀 후 진짜로 초청장이 배달되었습니다. 저는 그다음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취임식에 어떻게 다녀오면 좋을까?'

저는 '박근혜를 사모하는 모임'을 떠올렸습니다. 전국 조직이라면 울산에도 있을 것이고 분명히 취임식에 갈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카페가 있었습니다. 카페 가입하고 '초청장을 받았습니다. 취임식에 같이 가보고 싶습니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어느 분이 '같이 갈 수 있다'고 하면서 전화가 왔습니다. 

"회비는 10만 원이구요. 24일 밤 12시에 남목서 출발하니 꼭 시간지켜 나오세요."

혼자 헤매면서 갔다오는 거 보다는 관광버스로 대절해서 다녀오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겐 거금 10만 원을 준비하여 그날을 기다렸습니다. 24일 밤 11시 30분경 저는 집을 나섰습니다. 관광버스가 정차한다는 곳으로 가니 통화한 그분이 어서 타라고 했습니다. 중간중간에 같이 갈 사람들을 태워 간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박사모 회원들 12명이 간다고 했는데 고속도로에 오를 즈음 모두 30여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오늘 예상 인원보다 많이 탔습니다. 여러 조직에서 같이 올라가지만 모두 박근혜를 사모하는 마음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박사모 회원은 10만 원 회비를 걷겠습니다. 그리고 게스트로 오신 분들은 5만 원 회비를 받겠습니다."

취임식에 가기위해 박사모 관광버스를 얻어탔습니다. 저는 5만 원을 회비로 냈습니다. 밤 12시에 출발한 버스는 아침 6시경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중간중간 휴게소마다 쉬기도 하고 마지막 휴게소에선 아침을 사주어 먹는다고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그리고 6시 30분경 취임식을 하는 국회의사당 앞으로 갔습니다. 행사를 준비하는 분들이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며 기다리라 했습니다. 우리는 물어물어 초청장에 씌여진 5문을 찾아갔습니다. 

"지금부터 입장이 가능합니다. 초청장과 신분증을 제시하십시오."

1차로 출입문을 들어가니 다음엔 검색대가 있었습니다. 검색요원들은 몸검색 기기를 몸에다 이리저리 훑었고 한쪽에선 가방 속을 검사했습니다. 검색대를 통과한 우리는 기념품과 기념배지를 받고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기념품은 무릎 덮개를 주었습니다. 

무대는 계단식으로 꾸며졌고 무대 앞으로 열십자형으로 자리배치가 되어있었습니다. 중간쯤 단상에서부터 차량이 2대나 지나가도록 넓게 길을 내 놓았고 그 길로는 경찰이 경계를 서면서 못들어가게 했습니다. 처음엔 왜 못 들어가게 하는지 이해를 못했는데 취임식이 다 끝난 후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나갔습니다. 

▲ 새벽부터 취임식에 몰려든 시민들 ⓒ 변창기

취임식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았습니다. 의자가 엄청 많았습니다. 나무가 우거져 무대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의자가 많이 놓여 있었습니다. 무대 쪽에도 의자가 놓인 끝 뒤에도 방송국과 언론사들의 취재장소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언론사 기자들은 모두 '취재'라는 완장을 차고 있었습니다. 

의자 배열은 빼곡히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중간쯤에 차선 하나의 넓이로 길이 만들어지고 그 뒤부터 다시 의자가 빼곡히 배치되었습니다. 저는 중간에서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워낙 많이 오다보니 의자가 모자랐고 뒤에서 또 우리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안 보인다고 좀 비켜나라고 아무리 고함을 외쳐도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무대 앞 박근혜 신임 대통령의 의자가 보이는 앞에 소나무가 한 그루 있어서 무대 쪽 상황을 잘 볼 수가 없었습니다. 

▲ 나의 희망 메세지 ⓒ 변창기

▲ 박근혜 대통령이 보신다기에나의 희망메세지 적어 꽂아 놨어요. ⓒ 어느시민

임시 화장실이 양 옆으로 많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한참을 기다려 볼일을 보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께 희망 메시지를 쓰세요. 박근혜 대통령께서 일일이 다 보신다고 합니다."

화장실 다녀오는데 진행요원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각의 색종이에 희망의 글을 써서 사각 꽂이에 꽂아 놓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현대자동차 10여년 다니다 정리해고된 지 3년 되어가는저는 저의 바람을 거기다 적었습니다. 

'대통령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10여년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로 다니다가 3년 전 정리해고 당했습니다. 그래서 네 가족 먹고 살기 힘듭니다. 정규직 전환 복직 좀 되게 해주세요. 울산에서 온 변창기 드림.'

저는 그렇게 3장을 써서 꽂아 두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볼까요? 본다고 저의 희망사항을 들어 줄까요?

▲ 취임식 끝나고 나가는 박근혜 대통령.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접근 불가. ⓒ 변창기

오전 9시가 넘자 사물놀이패가 "좋다. 국민대통합 제 18대 대통령 취임식"이라고 말하면서 길놀이를 시작으로 문화공연이 이어졌습니다. 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개그맨이 사회를 보았습니다. 1950년대부터 알려진 대중가요 대표곡을 요즘 가수들이 나와 불렀습니다. 그렇게 80년대까지 유행한 노래를 부르고 특별공연으로 개그콘서트에서 인기있는 용감한 녀석들이란 개그가 취임식에 맞게 공연되었습니다. 그 후 90년대와 2000년대 대표곡을 여러 가수가 부르고 마지막으로 자칭 국제가수로 불러달라는 가수 싸이가 나와서 자신의 노래 챔피언과 싸이를 국제가수로 만든 강남스타일을 불러 흥을 돋구었습니다. 그리고 공연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본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대통령은 바뀌었는데 아직 국무총리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17대 정부의 국무총리가 식사를 간략하게 했습니다. 모양새가 좀 그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박수를 받으며 나와 취임선서를 했습니다. 그리고 군악대 행진과 예포가 발사되었습니다. 그 후 박근혜 대통령은 미리 준비한 취임사를 낭독했습니다. 제 기준에서 이해 못할 단어도 들렸습니다. 경제성장이라하면 될 것을 경제부흥으로, 문화발전이라하면 될 것을 문화융성으로 글을 조합했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잘 못했습니다. 

국민대통합을 강조해 왔는데 국민대통합에 대한 의미도 뜻도 와닿지 않았습니다. 새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 듣고난 소감이 왜 70년대라는 생각만 떠도는지 모르겠습니다. 취임사 중 또 생각나는 말이 "학벌위주에서 능력위주로 바꿔가겠다"는 것입니다. 능력없는 사람이 어떻게 학벌을 가질 수 있을까요?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학벌도 있는 게 아닌가요? 저처럼 능력없는 사람도 사람이잖아요. 그냥 보통 사람. 단순 노동으로 먹고 사는 대한민국 수많은 노동자들은 사람답게 살면 안 되는 것일까요? 

▲ 취임식이 진행될 동안 쌍용차 노동자들은 밖에서 시위를 했습니다. ⓒ 변창기

취임사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는 말이 이 말이었습니다. "힘이 아닌 공정한 법이 실현되는 사회, 사회적 약자에게 법이 정의로운방패가 되어 주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현대차에 비정규직으로 10년 다니다 3년 전 정리해고 되어서 잘 아는데요. 현대차는 법 위에 군림한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바로 좀 잡아 주시기를 학수고대 합니다. 

대법원에서 2010년 7월 22일 현대차는 불법파견 주식회사라고 판결한 데 이어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은 최종판결을 내렸습니다. 현대차는 불법파견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간접고용하고있는 대기업이라고요. 취임식장에선 못봤는데 창피하지도 않는 지 10년 넘게 불법을 저지르고 있고 대법 판결 이후에도 여전히 불법파견 노동을 중단하지 않고 있는 현대차 정몽구 회장도 내빈석에 참석하고 있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왠지 그 사진을 보면서 떨떠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임식이 끝나고 다시 울산 가려고 밖으로 나오는데 쌍용차 노동자가 피켓을 들고 걸어왔습니다. 취임식장에선 몰랐는데 밖에선 쌍용차와 장애인 단체에서 시위와 집회가 있었던거 같았습니다. 저는 미안해서 그냥 사진 몇 장 찍고 말았습니다. 박사모와 다시 울산 내려오는데 "박근혜 대통령님 넘 멋지다. 취임사도 잘하시고" 하면서 나이든 분들이 많이들 행복해 했습니다. 저는 아직 어떤 특정한 사람에 대해 영웅시, 숭배시 해 본 일이 없어서 그분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내일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취임식을 다녀온 7만여명 가운데 극소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일상생활 하겠지요. 그곳에서 누구는 주인공이었고 누구는 들러리에 불과했습니다. 중요한 건 자신의 인생일진대 말이지요. 

▲ 현대차는 불법파견이나 중단하면 좋겠네요. ⓒ 변창기

변창기(byun21c)

2012년 10월 29일 월요일

[사설] 언제까지 ‘안전 타령’만 하고 있을 것인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0-28일자 사설 '[사설] 언제까지 ‘안전 타령’만 하고 있을 것인가'를 퍼왔습니다.

울진원전 2호기가 어제 새벽 고장으로 가동이 정지됐다. 올해 들어 13번째 고장이고, 이달에만 벌써 세 번째다. 지난 2일에는 하루에 신고리 1호기와 영광 5호기가 잇달아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처럼 원전 고장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당국은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언제까지 당국자의 이런 말만 듣고 있어야 하는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사소한 고장이라도 대응을 잘못하면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한국수력원자력은 어제 고장 정지된 울진 2호기도 원자로 안전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고장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고장 난 기기를 신품으로 바꾼 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재가동할 예정이라고 했다. 원전 고장이 날 때마다 듣던 판에 박힌 말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런 소리를 듣는 국민은 불안하다. 이달 초 고장 난 신고리 1호기와 영광 5호기도 점검을 마치고 재가동했으나 또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고장 난 부품만 바꿔 낀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특히 고리원전 1호기 정전은폐사고에서 보듯 원전당국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없다. 지난 2월 고리원전 1호기의 냉각기능이 상실된 사고가 있었는데도 한 달간이나 은폐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원전당국이 자신들한테 불리한 내용을 숨기거나 진실의 일부만을 공개해도 국민은 알 수가 없다. 원전당국은 국민에게 ‘안전하니 믿으라’는 말만 하기 전에 투명한 정보 공개부터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원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려면 원전 운영 정책을 가동률 위주에서 안전성 위주로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원전당국은 우리나라 원전의 가동률이 90%가 넘어 외국보다 훨씬 효율적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거꾸로 원전에 대한 안전의식이 그만큼 낮다는 것과 다름없다. 어떻게든 원전 가동률을 최대한 높여 수익을 올리려 할 게 아니라 안전점검 기간과 횟수를 늘려 고장 가능성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궁극적으로는 원전 위주의 전력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 지난해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세계 각국은 탈원전 쪽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추가 건설하고, 원전 발전 비율을 59%로 높이겠다고 하고 있다. 원전은 언뜻 값싼 전기를 공급하는 것처럼 비치지만 수명이 다한 원전의 폐쇄 비용이나 대형 사고 때 입을 피해를 고려하면 결코 발전 단가가 낮지도 안전하지도 않다. 더 이상 시대착오적인 원전 위주 정책을 고집할 때가 아니다.

2012년 7월 7일 토요일

피 흘리는 고래... 이제 그만합시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7-06일자 기사 '피 흘리는 고래... 이제 그만합시다'를 퍼왔습니다.
[주장] 포경 재개 밝힌 정부...과학연구용? 본질은 고래사냥

▲ 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환경운동연합 주최로 열린 포경재개선언 취소 요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고래 모형을 해체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정부는 5일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국제포경위원회(IWC) 연례회의에서 '과학연구용' 포경 계획을 IWC위원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사회는 지난 1986년부터 협약에 따라 멸종 위기에 놓인 고래 12종에 대한 상업적 포경 활동을 유예(모라토리움)하기로 했다. 한국은 1986년부터 IWC가 포경을 유예한 12종을 포함한 모든 고래에 대한 포경을 금지해왔다. 따라서 이번 발표는 사실상 20년 넘게 금지했던 포경을 재개한다는 공식 선언이다. 

일본은 과학연구용 포경을 허용하는 협약의 허점을 이용해 포경활동을 계속했다. 매년 1천 마리를 잡고 있으며, 이중에는 IWC의 협약부표에 등재된 포획금지종 밍크고래도 포함되어 있다.

1985년에서 2009년까지 일본이 포획한 총 고래수는 1만1389마리로 이 중 밍크고래는 1만443마리였다. 우리나라는 포경이 금지되어 있음에도 사실상 혼획에 의한 고래의 상업적 유통은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탓에 밍크고래와 혹등고래 등 12~15종의 고래가 매년 혼획되어 왔다. 현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혼획 고래는 매년 1000여 마리 정도이며 밍크고래는 60~70여 마리 잡히고 있다.

정부의 이번 발표는 새로운 정책 방향이 아니다. 정부의 포경재개 의지는 그동안 언론을 통해 종종 표출됐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2009년 5월 19일 '신개념 수산발전 10대 프로젝트'를 발표했는데, 이 안에는 '고래자원의 효율적 이용 방안'이라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는 "포획된 고래의 투명한 공급기반을 구축하는 등 고래 고기 식(食)문화 유지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정부는 2009년 4월 22일~23일 동경에서 열린 '고래류 지속적 이용에 관한 대표자회의'에 참석해 "고래류가 전통적으로 식용으로 활용되는 다른 해양생물자원 또는 육상생물자원과 다르지 않다"며 과학적 이용을 명목으로 한 포경 뜻을 사실상 밝혔다.  

또한 정부는 당시 "지속가능한 연안지역사회, 지속가능한 생계, 문화적 전통의 보전, 식량안보, 빈곤의 감소에 기여하기 위해 풍부한 고래자원의 지속적 이용 원칙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래를 식량자원으로 보고 있으며, 사실상 상업적 포획과 유통을 지지한다는 견해다.

표면적으로 과학연구, 본질은 고래사냥

지금까지 과학적 연구를 명목으로 포경을 하는 나라는 일본이 유일했다. 일본은 추적기 등을 이용해 살아있는 상태에서 고래 연구를 할 수 있음에도, 고래를 죽여 극히 일부분의 시료만 채취한 후 99% 이상을 고기로 유통시켰다. 이 탓에 국제사회는 "고래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고 일본을 비난해왔다. 

▲ 6월 27일 오후 9시20분께 충남 태안군 근흥면 격렬비열도 서쪽 15마일 해상에서 45t급 안강망어선 J호가 쳐놓은 그물에 길이 7.4m, 둘레 4m 크기의 밍크고래 1마리가 잡혔다. ⓒ 연합뉴스

과학자들은 DNA 샘플링과 원격 모니터링의 시대에 고래를 죽여 연구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IFAW(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 International fund for animal welfare)의 자료에 따르면 샘플은 고래의 허물, 고래기름, 분변으로부터 수집할 수 있으며, 일부 과학자들은 고래가 숨구멍으로 숨을 내쉴 때 샘플을 채집하여 병원균 탐지에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육안 관찰과 각 개체의 사진, 음향 조사 등의 연구 기술로도 고래 개체수와 추세를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정부와 울산시의 포경 허용 방침에 대해 그린피스 국제본부는 2009년 5월 20일 성명을 내고 "현재 고래 개체수가 회복되고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없는 상황"이라며 "(고래가) 어류 자원을 고갈시킨다는 주장은 딱다구리가 산림자원을 훼손한다는 말과 같다. 고래가 어족 자원을 고갈시킨다는 근거를 제시하라"고 밝혔다.

그간 한국에서 과학적 명분의 고래 포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6년에만 과학연구 목적으로 밍크고래 69마리를 잡았으며, 과학적 용도를 소명할 정보는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돼 있다.
  
2010년 개정된 고래자원의 보전과 관리에 관한 고시 개정안에도 고래류 포획의 예외조항에 과학적 조사를 위한 포획과 교육용, 전시용, 공연용 목적을 위한 포획이 명시되어 있다. 문제는 과학적 연구라는 용어의 애매모호성이다. 고시의 5조에 따라 사업계획서 등 간단한 서류를 제출하고 고래 포획 허가를 받는다고 해도 연구의 목적을 검증할 수 없다. 또한 포획한 고래를 과학적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아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다른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정부는 고래포획 금지 조치 이후 우리나라 연근해 수역의 고래가 급증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

정부는 5일 포경재개 허가 보도에 따른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설명자료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정부 자료의 한 부분을 보자.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 모라토리움 시행 이후 국내 고래 자원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국내 어업인들은 고래에 의한 피해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솎음포경' 등의 대책 마련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2004년부터 연근해에 분포한 고래자원의 조사 평가 실시 중에 있으나 대부분 목시조사(눈으로 관측)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으로 어업 피해에 대한 조사에는 한계가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상 고래 개체수가 늘어났다는 주장은 일부 어업인들의 주장이고, 정부 역시 이를 뒷받침할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못함을 시인한 것이다. 그린피스는 어족 감소는 고래가 원인이 아니라 무분별한 남획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논리에 따르면 개체수를 측정하고 피해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고래를 죽여야 한다. 가장 정확한 개체수 조사는 바다에 사는 고래를 모두 죽이면 알 수 있으니까. 

1946년 포경협정의 '과학적 목적으로 포경을 허용하는 방침' 자체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실상 과학을 가장한 상업적 포경이 수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포경을 하는 국가의 포획 허용치는 국제포경협회가 아닌 해당 국가 스스로 결정하고 있다. 일본은 자신들의 과학적 포경 허용치를 외부 검토 없이 스스로 승인하고 있다. 또한 과학적으로 허용된 포경은 고래 고기의 소비를 요구한다. 사실상 과학적 포경은 고래 고기 판매 면허보다 조금 나은 것에 불과하다.

고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에 속한다. 즉 고래를 잡아 죽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포경업자들은 고래를 포획하여 끌어내기 위해 폭파작살을 사용하고, 고래를 죽이기 위해 고출력 소총을 이용한다. 고래는 일단 작살에 맞기 직전까지 탈진할 지경에 이르도록 쫓기게 된다. 폭파작살은 대개 치명적이지 않아 일부 고래는 죽기 전까지 몇 번이나 작살에 맞는다. 작살에 맞아 상처를 입은 고래들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더 많은 작살 혹은 고출력 소총에 맞아 포경선으로 끌려 나온다. 꼬리쪽에 작살을 맞은 고래는 살아 있는 채로 포경선뱃머리에 들어 올려지게 되고, 결국 머리가 물에 강제로 잠긴 채 질식사하게 된다.

▲ 포획어구 포항해경에 압수된 고래잡이 어구. 작살은 작살촉과 작살대가 분리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 김상현

고래는 스스로 호흡과 심박동을 느리게 조절할 수 있어 의식이 있더라도 죽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즉 업자들은 고래가 죽었다고 판단하지만 실제로 깊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자료출처 IFAW(International fund for animal welfare))

지역 이해 넘어 동물복지·환경 생각해야

울산환경연합이 2009년 6월 17일에서 18일까지 2일간 전국 만19세 이상의 남녀 7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67.9%가 고래잡이를 반대하고 고래를 보호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울산환경운동연합 오영애 정책실장은 인터뷰를 통해 "고래를 어업자원으로만 보는 농림수산식품부 어업정책과에서 고래 관련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포경재개를 끊임없이 주장해온 울산 남구청장은 5일, 포경 재개 정부 발표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 동해안에는 고래의 개체수가 포경 금지 이전의 개체수로 회복되었고 이는 동해안 어장 생태계의 불균형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조차 정확한 고래 개체수를 모른다는 마당에 구청장의 이런 발언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오히려 "국제포경위원회의 결정 때문에 우리 고유의 식습관과 전통을 포기해야 했다"는 발언은 지역 수산업계의 이해만을 대변할 뿐이다. 

울산환경운동연합은 "울산 남구 등 일부 자치단체들이 고래 해체장을 문화 복구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고래 식문화 활성화를 위해 고래 고기 요리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면서 "이번 정부 발표는 한국 내의 고래 고기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일부 수산업계의 왜곡된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래는 2~3년에 한 마리씩 새끼를 낳는, 매우 긴 생식주기를 가진 포유동물이다. 따라서 포획을 쉽게 허가하면 멸종 위기에 처할 위험이 크다. 사냥방식 또한 잔혹하다. 과학적 명목으로 포경을 계속하고 있는 일본은 이미 국제적으로 비난받고 있다.

영원한 산업이란 없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책의 방향을 잡고 소외되는 지역민의 생계대책을 세우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국내외적 비난이 쇄도하는 가운데, 정부의 정책이 동물복지와 환경이라는 미래적 가치를 담고 중심 잡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IFAW의 자료번역에 도움을 주신 이지영님께 감사드립니다.

 전경옥 (pigamojara)

2012년 5월 29일 화요일

"자본가는 피를 빨고 진보정당은 표를 빨았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29일자 기사 '"자본가는 피를 빨고 진보정당은 표를 빨았다"'를 퍼왔습니다.
[길 잃은 '노동정치', 좌표는?] 울산에서 바라본 노동자 정치 세력화의 오늘

울산, 창원, 거제는 노동자 밀집 지역으로 꼽힌다. 선거 때 진보진영에서 이 도시들에 주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4.11총선 결과, 진보정당을 자임한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모두 이 도시들에서 패했다. 확장하기는커녕 기존의 2석(울산 북구, 창원 성산)마저 잃었다.

충격 탓일까. 4.11총선 후 '진보정치의 위기'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진보정치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더 커졌다. 진보정당에서 노동 중심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위기, 그리고 노동 중심성 강화. 진보정당 운동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후 뭔가 일이 생길 때마다 제시된 단골 메뉴다. 이젠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어야 하지 않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울산으로 내려갔다. 한국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이곳의 현장 활동가 및 노동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다. 은 지난 21~22일 울산 곳곳에서 만난 이들에게 4.11총선과 노동자 정치 세력화의 오늘에 대해 물었다.

[총선 이야기] "울산연합의 오만함이 패배 불렀다"

4.11총선 때 통합진보당은 울산의 지역구 후보 결정 과정에서 내홍을 겪었다. 초점은 북구와 동구였다. 논란 끝에 북구 현역 의원(재선)이던 조승수가 남구갑에, 동구청장을 역임한 김창현이 북구에 출마했고, 동구에서는 시의원을 사퇴한 이은주가 노옥희를 누르고 후보가 됐다. 김창현-이은주는 울산연합 계열로 분류되고, 조승수-노옥희는 진보신당을 탈당하고 통합진보당에 합류한 사람들이다.

총선이 끝난 뒤, 후보가 적절했는지에 대해 다시 말이 나왔다. 이에 대해 방석수 통합진보당 울산시당 부위원장은 이렇게 평가했다. "패배 원인을 한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후보 선출 및 결정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는 비판적으로 평가할 대목의 하나이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다른 요소들과 함께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방 부위원장이 제시한 다른 요소는 "반MB(이명박)라는 방향성의 문제, 통합진보당 창당 과정에서 불거진 정체성 논란, 야권연대만 하면 된다는 안일함, 영남에 분 박근혜 바람" 등이다.

방 부위원장 말대로 선거 패배 원인을 후보 문제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울산의 활동가들은 대부분 후보 문제가 선거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진단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울산 노동계 인사 A씨는 "울산연합의 오만함이 패배를 불렀다"고 평가했다.

다른 후보였다면 반드시 이겼을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보다는 후보 결정 과정에서 드러난 무리수와 내홍이 심각한 분열로 이어졌으며, 후보 문제가 새누리당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됐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후보가 김창현이라고 해서 현장 분위기가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정적인 목소리도 적잖게 나왔다. 제일 많이 나온 건 '왜 북구로 왔나'였다. '김창현이 욕심이 많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 새누리당의 선거 운동은 단순 명쾌했다. 이런 식이다. 시장에서 한 사람이 '조승수 북구 의원은 어디로 갔나요'라고 외치면 다른 사람이 '남구로 쫓겨갔대요'라고 받았다. 다시 '그럼 지금 있는 사람(김창현)은 어디서 왔나요'라고 외치면 '동구에서 왔대요'라고 했다." (김호규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정치인의 사퇴 등 때문에 재보선을 치르게 되면 그 비용을 물어내게 해야 한다던 통합진보당에서 시의원을 사퇴한 이은주 후보를 내세웠다. (울산연합의) 전형적인 조직 이기주의, 패권주의였다. 평조합원들 사이에서는 그래도 야권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현장 활동가들은 후보 선출 과정의 문제점 때문에 힘이 빠졌다. 새누리당도 이은주 후보의 시의원 사퇴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현대중공업 노동자 김형균-정병모)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을 사실상 '배타적 지지'한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선거 때 범한 아주 큰 실수는 반MB에 몰두한 것이다. 민주노총도 마찬가지다. (……) 선거 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5곳 중 4곳에서 통합진보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대자보가 여러 개 붙었다. 나도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라는 대자보를 붙였다. 하지만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정규직 노조)는 통합진보당 후보를 지지했다. 그 결과 실질적으로는 울산연합 그룹만 적극적으로 선거 운동을 했다고 본다." (김호규 전 부위원장)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지부는 "민주노총 방침을 따랐을 뿐"이며 통합진보당 문제와 관련해서는 "(지금으로선) 따로 입장을 내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진보정당을 자임하면서, 비정규직을 양산한 노무현 정부 인사들과 당을 함께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래도 (분당 이전)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우리 당'이라고 불렀지만 통합진보당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현장의 많은 여론 주도층(활동가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편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 국민참여당 계열에 대해 반발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울산 노동계 인사 B씨)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프레시안(김덕련)

[총선 그 이상의 이야기] 1석이라도 건졌으면 위기가 아닌 걸까?

울산 곳곳에서 지난 총선과 관련해 정파 간의 주도권 경쟁, 그로 인한 후보 결정 과정의 논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총선 때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1석이라도 건졌다면 진보정당 운동은 위기가 아닌 걸까? 노동운동가 출신(혹은 노조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인물)으로서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이가 늘어나면 노동자 정치 세력화가 성공 궤도가 올랐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울산 현지의 활동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 총선에서는 정파들이 단합해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면 아무 문제 없다'는 식으로 볼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 의석을 늘리는 것에 매몰되지 말고 짚어야 할 과제가 있다는 말이다.

핵심은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은 우리 편, 나의 정당'이라고 일상에서 인식하고 있느냐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 진보정당이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였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투쟁에 찬물 끼얹더니, 선거 때 찍어달라? 솔직히 웃긴 일"

이상수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전 지회장은 "진보정당이 잘되길 바라지만, 취하고 있는 모습들이 현장 노동자와는 거리가 멀다"고 잘라 말했다. 한마디로 "비정규직 투쟁 현장에서 진보정당의 존재감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진보정당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다. 단 1명이라도 국회에 가서 자기 싸움을 해주길 기대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러더니만, (선거가 다가오니) '소수라서 힘이 없다. 원내 교섭단체를 만들어달라'고 하는 건 솔직히 웃긴 일이다. 투쟁 현장에 얼굴만 비치고, 투쟁에 찬물을 끼얹은 것에 대한 반성도 하지 않으면서 선거 때가 되면 '대안은 우리밖에 없다. 노동자니까 진보정당을 찍어달라'고 하는 것 같다."

이상수 전 지회장이 이렇게 말하는 건 2010년 '25일 투쟁'의 기억 때문이다. '25일 투쟁'은 똑같은 일, 아니 더 힘들고 험한 일을 하면서도 차별받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긋지긋한 '출입증' 대신 '사원증'(정규직)을 쟁취하자며 공장을 점거한 투쟁이다. 노동자 이상수는 '25일 투쟁' 당시 지회장이었다.

이상수 전 지회장이 말하는 대표적인 '찬물'은 '25일 투쟁' 후반기에 나온 야4당 중재안이다. 중재안의 핵심은 '점거농성을 푼 후 교섭하자'였다. 정규직화에 관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분노했다. 이들에게 이 중재안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담긴 것이 아니었다. 투쟁을 줄곧 가로막고 심지어 "협박"까지 한 이경훈 당시 현대자동차지부장이 주장해온 방안을 국회의원들이 받아들인 것일 뿐이었다. 야4당에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포함돼 있었다. 노동자 이상수에게 이 일은 큰 상처로 남아 있었다.

"진보정당들의 목소리는 우리 요구와 어긋났다. 핵심이 정규직화인데, 그쪽에서는 '그래 이제 알았으니 투쟁은 접고 교섭하자'는 식이었다. 그건 우리에게 죽으라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그는 그때 받은 압박이 얼마나 심했는지에 관한 일화를 이야기했다.

"작년에 박유기 당시 금속노조 위원장을 만난 적이 있다. 박 위원장이 내게 그러더라. '안 미쳤네?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정상인데.'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정규직 노조(현대자동차지부), 금속노조, 정치권의 압박이 심했다. 무엇보다 연대 세력들의 압박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당원이었던 적도 없고 현장 정치 조직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함께하자는 권유는 많이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동료들에게도 "비정규직 투쟁이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는 정당이든 현장 정치 조직이든 가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런 이상수에게 이번 총선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 일이 일어났다.

"이경훈 전 지부장이 남구갑 후보 경선에 나오는 걸 보고 통합진보당에 대해 손 놨다. 통합진보당 쪽에서도 '이경훈 때문에 우리도 죽겠다. 그런데 당원으로서 하겠다는 걸 말릴 수도 없고...'라며 난감해하더라. 그게 말이 되나. 원칙도, 내부 정화 능력도 없다는 게 큰 문제다."

총선을 앞두고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이 이정희 당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집회 참석도, 연설도 거부한 데는 이렇게 다 이유가 있었다. "현장에서는 '통합진보당보다 차라리 정동영이 더 진정성 있어 보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김호규 전 부위원장)는 이야기도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 이상수 전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장. ⓒ프레시안(김덕련)
이상수 전 지회장은 해고자 신분이다. 물론 '25일 투쟁' 때문이다. 그는 "해고된 후 제일 힘들었던 건 현장에서 동료들과 부대끼며 다독이지 못한 것"이라며 미안해했다. 지금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해고무효확인소송을 진행하는 동시에 다른 사업장의 투쟁을 지원하고 있다. 인터뷰할 때도, 그는 "경기도 화성에서 전라도 광주까지 현대기아차 공장 3박4일 순회투쟁"을 앞두고 있었다.


이상수 전 지회장은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부터 비정규직을 완전히 없애는 방향으로 싸우고 그 성과를 전국으로 확산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을 조직하는 것이 "늙은" 민주노총을 역동적으로 만들고 진보정당의 노동 중심성을 강화하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투쟁하기가 훨씬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런 점을 감안하지 않고) '함께하려 하는데도 오지 않는다', '비정규직에게는 인식이 없다'는 식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선 곤란하다."

냉소하는 비정규직 활동가들, 관심 없는 평조합원들

이상수 전 지회장의 동료인 최병승(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씨도 '25일 투쟁' 때 진보정당들이 보인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중재할 거면 제대로 중재를 하든가, 아니면 비정규직 목소리를 정확하게 대변하든가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경훈이 이끌던 정규직 노조와 회사 쪽 요구를 담은 중재안이었다. 그럴 거면 왜 왔나. (의원들에게) 뭔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이경훈 전 지부장의 통합진보당 후보 경선 출마는 최 씨에게도 황당한 일이었다. "그런 게 활동가들의 냉소를 불렀다."

냉소를 부른 건 이것만이 아니다. 통합진보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국민참여당과 "야합"한 것도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활동가들의 냉소를 부추겼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정갑득 전 현대자동차지부장이 2005년 보궐선거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한 것도 이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정갑득은 지부장이던 2000년에 '사내 비정규직 사용 상한선 16.9퍼센트' 방안을 회사와 합의했다. 현대자동차에서 비정규직 확산의 물꼬를 튼 합의였다. "그런 정갑득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도저히 낼 수가 없어서 입장 표명을 한동안 미뤘었다."

최 씨는 "진보정당이든, 진보정치 세력이든 전혀 도움이 안 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지금으로선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차이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진보정당의 일상적 사업이 없다. 못 느끼겠다"는 것이다.

최 씨는 진보정당, 그리고 정치 문제에 대해 활동가 층과 평조합원들 사이의 인식 차이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활동가들과 달리, 평조합원들은 기본적으로 진보정당에 관심이 없다. 국민참여당을 끌어들인 것에 대해서도 별 논란이 없다. (그러니) '배신'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평조합원들은 그간 치러진 여러 선거에서 누가 되든 큰 차이를 못 느꼈다는 뜻이다. '차이도 없는데 또 밥그릇 싸움을 하는구나', 이렇게 느끼는 평조합원들이 훨씬 많다.

평조합원들은 나꼼수에 열광하고 대체로 야권연대를 지지한다. 나꼼수 방송을 CD에 담아 내게 가져다줄 정도다. 여소야대가 되면 비정규직 문제가 풀리고 재판 문제도 잘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4월 11일이 특근하는 날이었는데도 거의 투표했다더라. 활동가들은 투표를 덜 했지만 평조합원들은 적극적으로 했다."

진보정당에 대한 관심은 고사하고, 국민참여당 합류에 관한 논란조차 찾아보기 힘든 평조합원들. 그동안 진보정당이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 제대로 스며들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 씨는 "그동안 비정규직지회에서 진보의 정치 세력화에 대한 교육을 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정규직 노조와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교육을 할 시간과 계기를 마련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는 말이다.

이어 "노동자 정치 세력화에 대한 공감대를 현장에서 다시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상층 노조에서 결정하면 따르는 식으로 조합원들을 수동화하는 게 아니라, 조합원들이 정치라는 것을 자기 문제로 풀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씨가 말한 재판은 '25일 투쟁' 때문에 걸린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이상수 전 지회장은 "함께한 200여 동지들에게 각각 500만 원 이상 벌금이 나온 것 같다"며 "나도 재판이 여러 개 걸려 있다"고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25일 투쟁'을 잊었지만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 씨는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 업체에서 일하다 2005년 해고됐다. 고용노동부가 불법파견으로 판정한 것에 맞춰 사내 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 후 7년간 법정 투쟁을 벌였다. 올해 2월 대법원은 "현대자동차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가 맞다"며 최 씨의 손을 들어줬다. 5월 초에는 중앙노동위원회가 "원청인 현대자동차가부당해고를 했다"며 원직에 복직시키고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 문제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요 관심사다.

"자본가는 피 빨아먹고 진보정치는 표 빨아먹는다"

진보정당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것일까? 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은 그렇지 않다고 우려했다. "'자본가는 피 빨아먹고 진보정치는 표 빨아먹는다.' 총선 때 조합원들에게서 들은 말이다. 섬뜩한 이야기다."

▲ 김호규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 ⓒ프레시안(김덕련)
김호규 전 부위원장은 지금과 같은 '배타적 지지' 방식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배타적 지지를 해달라고 요구하기보다는 '우리 노동자가 왜 당신들을 지지해야 하는가'에 대해 정당이 보여줘야 한다. ('상층에서 결정했으니 따른다'가 아니라) 조합원들이 '이 당은 이래서 좋구나'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안 그러면, 몸 대주고 돈 대주는 걸로 그치는 관계가 지속될 것이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이든 진보신당이든 이런 그림을 못 그리고 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정당, 노동정치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 근간인 노조운동의 방향과 관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운동, 정당운동이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노동자 개개인이 "자신을 개별 기업의 노동자로서만 생각하지 않도록 계기를 마련하고, 삶에 대한 다른 비전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 전 부위원장은 이를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본다.

"지난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2700시간이었다. 3000시간이 넘는 사람도 5000명 정도 된다. (일에 치여 사는) 이런 상황에서 지역 활동이든, 상향식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 분회 활동이든 할 수 있겠나. 강제로라도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자본가들에게 부역하는 노동운동"
하 전 본부장도 노동시간 단축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노조운동의 현 상황을 매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을 감안할 때, 현대자동차에서 과로사로 1년에 30명 정도 죽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동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조합 선거에서 누구도 이 문제를 못 꺼낸다. 제기하면 선거에서 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잔업, 특근을 줄이자고 하면 조합원들이 싫어한다."

하 전 본부장은 노조 활동가들도, 조합원들도 "기업별 노조라는 낡은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자들이 돈의 노예가 돼 왜곡된 경쟁을 하고 있다. 정의감은 실종되고 의식은 부패했다. 어떻게 민주투사라는 사람들이 '차를 한 대라도 더 만들게 해달라'며 천막 치고 농성할 수 있나. 그런데 1998년에 1만 명이 정리해고 등으로 구조조정된 후, 2000년대 들어 물량 확보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했다. 이게 다 조합원들을 과로사로 내모는 것 아닌가?

이런 식으로 물량 확보 투쟁을 하면서 비정규직 차별에 동조하는 건 자본가들에게 부역하는 노동운동이다. 어렵고 더럽고 힘든 일은 비정규직에게 떠넘기는 게 노동운동이 할 짓인가."

하 전 본부장은 19세이던 1977년 공고 실습생으로 현대자동차에 첫발을 디뎠다. 그로부터 45년. 다시 현장 노동자로 돌아온 하부영은 노조운동을 돌아보며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과거에 한창 조합원들을 만나고 다닐 때, 조합원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런데 다 불행하다더라. '가정을 버리고 일에 치여 사는 것, 우리도 좋아서 하는 게 아니다'라고 하더라. '하루 세 끼를 공장에서 먹는 난 집에서 기르는 개만도 못한 존재'라며 우는 조합원도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고민하고 반성했다. 결론은 87년 투쟁에 답이 있다는 것이다. 그때 대중이 요구한 건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였다. 이렇게 대중이 답을 줬는데, 나를 비롯한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잘못 이끌어온 것이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우리만의 기준이 없었다. 벌이가 줄어 소비 수준 낮추고 애들 학원 하나 줄여야 하더라도, 노동시간 줄이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려야 행복해지는 것 아닌가? 그러자고 노조 만들고 노동운동을 시작한 것 아닌가?

그동안 제대로 된 민주노조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없었다. '전투적 실리주의'와 '협조적 실리주의'(어용)가 있었을 뿐이다. 어용이 '우리는 성과급 300퍼센트를 따내겠다'고 하면, 민주파는 '그러면 우리는 600퍼센트를 하겠다'고 나서는 식이었다. 1998년 정리해고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이런 현상이 더 심해졌다."

하 전 본부장은 "조합원들의 왜곡된 요구와 타협하지 않는 노동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렇게 노조를 바로 세우는 동시에 작업장을 넘어서 지역사회 및 소비-유통 영역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 전 본부장은 그 성과를 바탕으로 노조와 진보정당의 조직을 강화하는 것, 그게 노동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며 에피소드를 하나 이야기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당선자, 노동운동을 몇 십 년 한 나도 누군지 몰랐다. 이석기가 기획사 사장이라는 소식이 들리자, 현장에서는 '그럼 인쇄소 사장인가?'라는 말도 돌았다. 이런 식으로 갑자기 나타나서 표를 달라는 도깨비 당, 도깨비 표결은 더 이상 안 된다."

일터에선 노동자, 공장 밖에선 자본의 논리 추종

▲ 현대중공업 해고자 조돈희 씨. ⓒ프레시안(김덕련)
'기업별 조합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다른 이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현대중공업 해고자 조돈희 씨도 그중 하나다. 조 씨는 1990년 '골리앗 투쟁'의 주역 중 하나로 1999년에 해고됐다. 2000년대에는 민주노총의 '사회적 합의주의'에 반대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노동자 중심성, 현장 중심성, 계급성. 민주노동당은 애초부터 이런 문제들에서 한계를 안고 출발했다. 이것을 비판하며 사회주의 정당건설을 주장한 세력도 내용을 제대로 담보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전체가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노동자들의 운동은 여전히 잠재력이 있지만, 후퇴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노동자들의 상태가 정말 문제다. 조합주의에 갇혀 더 이상 행동하려 하지 않는 노동자, 이것에 바탕을 둔 진보주의는 개량화하고 운동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기억해야 할 건) 노동정치란 노동자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행동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울산 노동계 인사 B씨는 "진보정당에서 조직 확장 문제 말고 노동자들에 대한 정치 교육을 제대로 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 때문에 "새로운 노동정치의 상을 만들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노동자 정치 세력화의 오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를 B씨와 김호규 전 부위원장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과 각각 따로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아파트 경비 노동자(감시-단속 노동자)들은 대부분 파견업체 소속이다. 이중 착취를 당하는 셈이다. 거기다 최저임금 적용 예외 대상이어서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감시-단속 노동자는 올해부터 최저임금을 100퍼센트 받을 수 있게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대량 해고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최저임금 100퍼센트 적용 시점을 2015년으로 미뤘다. )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 중에 아파트 입주민 모임의 대표나 임원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있다. 상당수의 입주민이 대공장 노조원인 아파트들이다. 그런데 이런 아파트의 입주민 모임 대표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라고 해도 경비 노동자나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에는 별로 마음을 쓰지 않는다. 최저임금이 논란이 됐을 때 토론을 붙여보면 '(경비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지 말고) CCTV를 달자, 젊은 사람으로 교체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이들 중엔 노조 집행부로 활동했거나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노동운동을 했지만 노동자 의식은 빵점인 사례다. 한마디로 노동자들 머릿속에 이중의식이 있다. 일터에서는 회사 관리자와 맞서는 노동자이지만, 공장을 벗어나면 자본의 논리에 따르는 이중의식이다."

이대로 가면 돈 대주고 몸 대주는 일마저 끊길 수도

원칙이 정파의 이해관계에 짓눌리는 것을 방치하고 기업별 노조주의와 이중의식의 폐해에 눈감으면서, 진보정당과 노동자 정치 세력화라는 나무가 튼튼하게 뿌리내리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새로운 노동정치의 상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돈 대주고 몸 대주다 마음까지 다치는" 일은 또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계속되면, 돈 대주고 몸 대주는 일마저 끊길 수 있다.

울산에 있는 동안 '전태일 정신'이라는 말이 여러 차례 떠올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들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들을 때 더욱 그러했다. '전태일 정신 계승', 매년 열리는 노동자대회 같은 때 부각되는 구호다. 또한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자임하는 진보정당 활동가들 중 '전태일 정신 계승'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잊고 있는 건 아닐까. 전태일은 시다 노조, 재단사 노조를 따로 만들어 차별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태일에게 그들은 같은 노동자이자 사람일 뿐이었다. 노동운동과 노동자 정치 세력화에 불을 지핀 건 바로 그런 마음과 원칙이었다.

 /김덕련 기자

2012년 5월 11일 금요일

‘진보정당 1번지’는 왜 줄줄이 무너졌나


이글은 시사인 2012-05-10일자 기사 '‘진보정당 1번지’는 왜 줄줄이 무너졌나'를 퍼왔습니다.
울산ㆍ창원ㆍ거제 등 ‘진보정치 1번지’라 불리는 남동 임해권 ‘노동벨트’에서 통합진보당은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고질적인 정파 간 자리다툼과 원칙 없는 공천이 가져온 결과다.

전멸이다. 전국 최초로 진보정당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을 배출해 ‘진보정치 1번지’라 불리는 울산·경남 창원을 비롯해 대단위 산업단지인 남동 임해권 ‘노동벨트’에서 통합진보당(통진당)은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자리만이 아니다. 명분도 잃었다. 진보 단일 후보를 둘러싼 정파 간 갈등과 잡음이 불러온 결과다. 

선거운동 개시일을 앞둔 지난 3월28일, 이 지역을 두고 “어떻게 해도 우세인 지역이다. 시작하면서부터 앞서나가는 곳으로, 큰 실수를 하지 않으면 안정적으로 가지 않을까 한다”라던 조준호 통진당 공동대표의 호언장담이 무색한 상황이 되었다. 텃밭으로 여겼던 지역을 새누리당에 몽땅 내준 셈이다. 

조짐은 있었다. 3월28일 이정희 공동대표는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에서 열린 비정규직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을 수 없었다. 비정규직 노조가 이 대표의 연설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통진당이 노동자를 외면했다는 정서가 강하다. 솔직히 지금 통진당은 노동자에 대한 전략도 고민도 없는 ‘민주통합당(민주당) 2중대’ 아닌가. 우리가 새누리당은 못 찍을 걸 아니까, 막 대하는 것 같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김흥구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출근 및 근무 교대를 위해 공장에 들어서고 있다.

통진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정파를 둘러싼 이해관계와 셈법이 복잡하다. 현대자동차가 있는 울산 북구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이는 통진당의 김창현 후보였다. 김 후보는 새누리당의 박대동 당선자에게 3634표 차이로 석패했다. 원래 이 지역구는 울산 남갑으로 지역구를 옮겼다가 단일화 경선에서 탈락해 본선에는 나가지도 못한 조승수 후보의 지역구였다.


창원ㆍ거제, 통진당과 진보신당 갈등

울산 동구청장 출신인 김 후보를 두고 지역에서는 “여기가 더 당선 가능성이 높아 보이니까 자기 지역구(동구)는 ‘2인자’에게 넘기고, 북구로 밀고 들어온 거다. 곱게 보일 리가 있나”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통진당 내 울산연합의 수장 격인 김 후보에 대한 좌파 계열의 반발도 컸다. 선거 기간 중 ‘한나라당(새누리당)은 찍어도 김창현은 찍지 말자’라는 문자가 노동자들 사이에 돌았다.

울산 동구에는 김창현 후보의 핵심 측근이 배치됐다. 김 후보가 옛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을 지냈을 당시 정책실장을 역임한 방석수씨의 부인인 이은주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것. 동구는 합당 당시 심상정·노회찬과 함께 통합연대 출신으로 합류한 노옥희씨가 출마를 준비하던 지역구였다. 그러나 최종 낙점된 후보는 이은주씨였다. 울산 지역에서 통진당 내 PD그룹 후보인 노옥희·조승수는 출마조차 해보지 못한 셈이다.

게다가 이은주 후보는 임기가 2년6개월 남아 있는 시의원이었다. 

통진당 전국운영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당의 승인 없이 총선 출마를 위한 선출직 공직자 사퇴는 적절치 않다’는 원칙을 정했지만, 허울뿐인 원칙이었다. 무엇보다 이 후보는 2011년 동구청장 재·보궐 선거 당시 새누리당에 보궐선거 비용을 부담하라고 압박한 전력이 있다. 그랬던 이 후보가 시의원을 사퇴하고 국회의원에 출마한 것이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김창현 후보는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인재풀이 부족한 진보정당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 어떤 사람도 내세울 수 있다”라며 이 후보를 방어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어긋났다. 이 후보는 새누리당 안효대 당선자에게 6362표 차이로 패했다. 이 후보가 물러나 치른 시의원 보궐선거 자리도 새누리당에 내줬다.

똑같은 상황은 권영길 의원의 지역구인 경남 창원 성산에서도 반복됐다. 통진당 손석형 후보는 도의원직을 사퇴하고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애초 창원 내 야권 단일 후보를 만들기 위해 결성된 야당과 민주노총, 시민사회단체 모임인 ‘진보 후보 발족위원회’ 내부에서는 현직 선출직 공직자의 출마를 반대해왔다. 그러나 통진당 내부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손 후보가 출마를 강행했고, 이후 민주당과 단일화 경선을 치렀다.



상황은 울산보다 더 복잡했다. 진보신당의 김창근 후보가 손 후보 출마에 강하게 반발하며 선거를 완주했기 때문이다. 김 후보는 “손 후보는 4년 전 새누리당 강기윤씨가 도의원직을 버리고 출마했을 때 재·보궐 선거 비용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본인 스스로 선출직이 임기 중간에 그만둘 수 없게 하는 조례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김 후보는 손 후보에게 ‘페널티’를 줘야만 단일화 경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김 후보의 요구는 거부됐다.

통진당 한 관계자는 “창원에서 손 후보가 사퇴할 경우 울산 동구의 이은주 후보까지 영향이 미칠 거라는 당권파의 계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당권파의 복잡한 셈법이 가져온 결과는 참담했다. 새누리당은 어부지리 효과를 톡톡히 봤다. 손 후보(4만6924표)와 김 후보(7630표)의 표를 합치면 새누리당 강기윤 당선자(5만2502표)보다 2052표가 많다. 단일화가 성사됐다면 이길 수도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지역 역시 손 후보가 사퇴하면서 치른 도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당선됐다.

창원 성산에서 불거진 통진당과 진보신당 간 갈등의 여파는 경남 거제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거제는 전국에서 드물게 진보신당까지 포함해 야3당 단일화 경선을 치른 지역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지역구로 새누리당의 텃밭이라 분류되는 지역이었지만, 단일화 성사로 야권의 당선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던 곳이다. 

그러나 야권 단일 후보인 김한주 진보신당 후보는, 새누리당에 이기고도 당선되지 못한 유일한 지역구 후보가 됐다.

민주당과 통진당 거제시위원회는 거제 단일후보 확정 뒤인 3월20일 “진보신당 거제시위원회와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된 김한주 후보 측이 경남 전역에서 성공적인 야권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줄 것을 촉구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창원 성산에서 손석형-김창근 후보 간의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김한주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지 않겠다는 결의였다.

거제에서 통진당은 ‘창원과 상관없이 우리라도 약속을 지키자’라는 쪽과 ‘창원이 단일화되지 않았으니 도울 수 없다’라는 쪽, 둘로 갈렸다. 결국 통진당 거제시위원회는 개인 자격으로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허용하되, 통진당을 상징하는 보라색 점퍼는 입을 수 없도록 방침을 정했다. “심지어 일부 통진당원은 무소속 김한표 후보를 돕기도 했다”라고 한 지역 관계자는 전했다.

김한주 후보는 “거제는 옥포에 대우조선해양, 고현에 삼성중공업을 비롯해 그밖에 하청업체들이 있는 조선소 도시다.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한 현장 조직의 선거가 10월에 예정돼 있다. 단순히 지역구 국회의원을 뽑는 것만이 아니라, 선거 결과가 사내 노조 선거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단일화가 됐어도 복잡한 구도로 치러질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결국 거제에서는 무소속인 김한표 후보가 당선됐다. 김 후보는 친(親)새누리 성향으로 분류된다. 

노동자 정치 블록은 이렇게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의 기반인 울산과 금속노조의 근거지인 창원, 조선소가 위치한 거제까지. 내부 권력싸움은 단일화에도 악영향을 미쳤고, 조정할 전략과 정치력은 부재했다. 통진당 한 관계자는 “2004년 원내 진출 이후 권력 지향이 정파 대립으로 나타나면서 선거 때마다 자리다툼에만 바빴다”라고 평가했다.

장일호 기자 | ilhostyle@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