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7일 수요일

대통령님, 제가 쓴 희망의 메시지 보셨습니까?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2-26일자 기사 '대통령님, 제가 쓴 희망의 메시지 보셨습니까?'를 퍼왔습니다.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의 취임식 참가기

▲ 취임식 ⓒ 변창기

▲ 취임선언문 ⓒ 변창기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지난 2월 25일 오전 11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마당에선 제 18대 대통령 이취임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울산을 떠난 지 11시간 만에 대통령 취임식 현장에서 취임선언문을 들었습니다.

취임식이 있기 한 달 전 박근혜 당선인 인수위원회에서는 인터넷이나 우편으로 제 18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 사람들을 접수받는다고 공고를 냈습니다. 사연을 보내면 검토하고 당첨자를 뽑아 초청장을 보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강원도 평창 산골에서 태어나 부모따라 6살때 울산에 와서 살았습니다. 오십평생 대통령 취임식에 한 번도 못 가보았습니다. 그래서 한 번 가보고 싶어 신청합니다.'

저는 그 공고가 뜨자마자 박근혜 당선인 인수위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 신청을 하였습니다. 취임식을 며칠 앞두고 다시 인수위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초청 신청에 당첨되었고 곧 초청장이 도착할 거라 했습니다. 이틀 후 진짜로 초청장이 배달되었습니다. 저는 그다음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취임식에 어떻게 다녀오면 좋을까?'

저는 '박근혜를 사모하는 모임'을 떠올렸습니다. 전국 조직이라면 울산에도 있을 것이고 분명히 취임식에 갈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카페가 있었습니다. 카페 가입하고 '초청장을 받았습니다. 취임식에 같이 가보고 싶습니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어느 분이 '같이 갈 수 있다'고 하면서 전화가 왔습니다. 

"회비는 10만 원이구요. 24일 밤 12시에 남목서 출발하니 꼭 시간지켜 나오세요."

혼자 헤매면서 갔다오는 거 보다는 관광버스로 대절해서 다녀오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겐 거금 10만 원을 준비하여 그날을 기다렸습니다. 24일 밤 11시 30분경 저는 집을 나섰습니다. 관광버스가 정차한다는 곳으로 가니 통화한 그분이 어서 타라고 했습니다. 중간중간에 같이 갈 사람들을 태워 간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박사모 회원들 12명이 간다고 했는데 고속도로에 오를 즈음 모두 30여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오늘 예상 인원보다 많이 탔습니다. 여러 조직에서 같이 올라가지만 모두 박근혜를 사모하는 마음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박사모 회원은 10만 원 회비를 걷겠습니다. 그리고 게스트로 오신 분들은 5만 원 회비를 받겠습니다."

취임식에 가기위해 박사모 관광버스를 얻어탔습니다. 저는 5만 원을 회비로 냈습니다. 밤 12시에 출발한 버스는 아침 6시경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중간중간 휴게소마다 쉬기도 하고 마지막 휴게소에선 아침을 사주어 먹는다고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그리고 6시 30분경 취임식을 하는 국회의사당 앞으로 갔습니다. 행사를 준비하는 분들이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며 기다리라 했습니다. 우리는 물어물어 초청장에 씌여진 5문을 찾아갔습니다. 

"지금부터 입장이 가능합니다. 초청장과 신분증을 제시하십시오."

1차로 출입문을 들어가니 다음엔 검색대가 있었습니다. 검색요원들은 몸검색 기기를 몸에다 이리저리 훑었고 한쪽에선 가방 속을 검사했습니다. 검색대를 통과한 우리는 기념품과 기념배지를 받고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기념품은 무릎 덮개를 주었습니다. 

무대는 계단식으로 꾸며졌고 무대 앞으로 열십자형으로 자리배치가 되어있었습니다. 중간쯤 단상에서부터 차량이 2대나 지나가도록 넓게 길을 내 놓았고 그 길로는 경찰이 경계를 서면서 못들어가게 했습니다. 처음엔 왜 못 들어가게 하는지 이해를 못했는데 취임식이 다 끝난 후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나갔습니다. 

▲ 새벽부터 취임식에 몰려든 시민들 ⓒ 변창기

취임식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았습니다. 의자가 엄청 많았습니다. 나무가 우거져 무대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의자가 많이 놓여 있었습니다. 무대 쪽에도 의자가 놓인 끝 뒤에도 방송국과 언론사들의 취재장소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언론사 기자들은 모두 '취재'라는 완장을 차고 있었습니다. 

의자 배열은 빼곡히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중간쯤에 차선 하나의 넓이로 길이 만들어지고 그 뒤부터 다시 의자가 빼곡히 배치되었습니다. 저는 중간에서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워낙 많이 오다보니 의자가 모자랐고 뒤에서 또 우리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안 보인다고 좀 비켜나라고 아무리 고함을 외쳐도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무대 앞 박근혜 신임 대통령의 의자가 보이는 앞에 소나무가 한 그루 있어서 무대 쪽 상황을 잘 볼 수가 없었습니다. 

▲ 나의 희망 메세지 ⓒ 변창기

▲ 박근혜 대통령이 보신다기에나의 희망메세지 적어 꽂아 놨어요. ⓒ 어느시민

임시 화장실이 양 옆으로 많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한참을 기다려 볼일을 보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께 희망 메시지를 쓰세요. 박근혜 대통령께서 일일이 다 보신다고 합니다."

화장실 다녀오는데 진행요원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각의 색종이에 희망의 글을 써서 사각 꽂이에 꽂아 놓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현대자동차 10여년 다니다 정리해고된 지 3년 되어가는저는 저의 바람을 거기다 적었습니다. 

'대통령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10여년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로 다니다가 3년 전 정리해고 당했습니다. 그래서 네 가족 먹고 살기 힘듭니다. 정규직 전환 복직 좀 되게 해주세요. 울산에서 온 변창기 드림.'

저는 그렇게 3장을 써서 꽂아 두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볼까요? 본다고 저의 희망사항을 들어 줄까요?

▲ 취임식 끝나고 나가는 박근혜 대통령.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접근 불가. ⓒ 변창기

오전 9시가 넘자 사물놀이패가 "좋다. 국민대통합 제 18대 대통령 취임식"이라고 말하면서 길놀이를 시작으로 문화공연이 이어졌습니다. 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개그맨이 사회를 보았습니다. 1950년대부터 알려진 대중가요 대표곡을 요즘 가수들이 나와 불렀습니다. 그렇게 80년대까지 유행한 노래를 부르고 특별공연으로 개그콘서트에서 인기있는 용감한 녀석들이란 개그가 취임식에 맞게 공연되었습니다. 그 후 90년대와 2000년대 대표곡을 여러 가수가 부르고 마지막으로 자칭 국제가수로 불러달라는 가수 싸이가 나와서 자신의 노래 챔피언과 싸이를 국제가수로 만든 강남스타일을 불러 흥을 돋구었습니다. 그리고 공연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본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대통령은 바뀌었는데 아직 국무총리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17대 정부의 국무총리가 식사를 간략하게 했습니다. 모양새가 좀 그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박수를 받으며 나와 취임선서를 했습니다. 그리고 군악대 행진과 예포가 발사되었습니다. 그 후 박근혜 대통령은 미리 준비한 취임사를 낭독했습니다. 제 기준에서 이해 못할 단어도 들렸습니다. 경제성장이라하면 될 것을 경제부흥으로, 문화발전이라하면 될 것을 문화융성으로 글을 조합했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잘 못했습니다. 

국민대통합을 강조해 왔는데 국민대통합에 대한 의미도 뜻도 와닿지 않았습니다. 새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 듣고난 소감이 왜 70년대라는 생각만 떠도는지 모르겠습니다. 취임사 중 또 생각나는 말이 "학벌위주에서 능력위주로 바꿔가겠다"는 것입니다. 능력없는 사람이 어떻게 학벌을 가질 수 있을까요?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학벌도 있는 게 아닌가요? 저처럼 능력없는 사람도 사람이잖아요. 그냥 보통 사람. 단순 노동으로 먹고 사는 대한민국 수많은 노동자들은 사람답게 살면 안 되는 것일까요? 

▲ 취임식이 진행될 동안 쌍용차 노동자들은 밖에서 시위를 했습니다. ⓒ 변창기

취임사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는 말이 이 말이었습니다. "힘이 아닌 공정한 법이 실현되는 사회, 사회적 약자에게 법이 정의로운방패가 되어 주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현대차에 비정규직으로 10년 다니다 3년 전 정리해고 되어서 잘 아는데요. 현대차는 법 위에 군림한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바로 좀 잡아 주시기를 학수고대 합니다. 

대법원에서 2010년 7월 22일 현대차는 불법파견 주식회사라고 판결한 데 이어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은 최종판결을 내렸습니다. 현대차는 불법파견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간접고용하고있는 대기업이라고요. 취임식장에선 못봤는데 창피하지도 않는 지 10년 넘게 불법을 저지르고 있고 대법 판결 이후에도 여전히 불법파견 노동을 중단하지 않고 있는 현대차 정몽구 회장도 내빈석에 참석하고 있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왠지 그 사진을 보면서 떨떠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임식이 끝나고 다시 울산 가려고 밖으로 나오는데 쌍용차 노동자가 피켓을 들고 걸어왔습니다. 취임식장에선 몰랐는데 밖에선 쌍용차와 장애인 단체에서 시위와 집회가 있었던거 같았습니다. 저는 미안해서 그냥 사진 몇 장 찍고 말았습니다. 박사모와 다시 울산 내려오는데 "박근혜 대통령님 넘 멋지다. 취임사도 잘하시고" 하면서 나이든 분들이 많이들 행복해 했습니다. 저는 아직 어떤 특정한 사람에 대해 영웅시, 숭배시 해 본 일이 없어서 그분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내일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취임식을 다녀온 7만여명 가운데 극소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일상생활 하겠지요. 그곳에서 누구는 주인공이었고 누구는 들러리에 불과했습니다. 중요한 건 자신의 인생일진대 말이지요. 

▲ 현대차는 불법파견이나 중단하면 좋겠네요. ⓒ 변창기

변창기(byun21c)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