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7일 수요일

“친구 끊고 공부해” 우정파괴 메가스터디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2-26일자 기사 '“친구 끊고 공부해” 우정파괴 메가스터디'를 퍼왔습니다.

서울 시내버스 등에 붙은 대형 입시업체 ‘메가스터디’ 광고의 문제점을 지적한 누리꾼의 사진. 사진=클리앙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 주지 않아” 문구
새학기앞 경쟁 부추기는
왜곡된 현실 보여줘
사교육업체 ‘비교육적 광고’ 논란

벚꽃 흐드러진 길에서 교복 입은 두 소녀가 웃고 있다. 다정한 친구 사이로 보인다. 그 왼편, 편지지 바탕에 적힌 11줄짜리 글이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으니/ 넌 우정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질 거야/ 그럴 때마다/ 네가 계획한 공부는/ 하루하루 뒤로 밀리겠지/ 근데 어쩌지?/ 수능 날짜는 뒤로 밀리지 않아.”대형 입시업체 ‘메가스터디’의 2013년 캠페인 광고는 경고성 메시지로 끝맺는다. “벌써부터 흔들리지 마/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주지 않아.”새 학기를 앞두고 내놓은 이 광고는 26일 현재 서울 시내·마을버스 등에 붙어 있다. 이를 퍼나르는 누리꾼들을 통해 광고를 본 학생들도 많다. 자신을 10대라고 밝힌 한 누리꾼(@Tiffanis****)은 “우리 학교에선 이미 ‘우정파괴 광고’로 유명하다”고 전했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시험 잘 치려면 친구를 버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부여하려는 것”이라며 개탄했다.입시경쟁 속에서 청소년들은 가뜩이나 ‘친구’를 잃어가는 상황이다. 2011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분석보고서를 보면, 36개 나라 청소년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 지표에서 한국 청소년들은 35위를 차지했다. 특히 ‘관계 지향성’과 ‘사회적 협력’ 부문에서 모두 0점을 기록했다. 또래와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걸 보여주는 지표다.지난해 4월 서울시교육청이 초·중·고교생 26만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를 보면, ‘친구들과 사이가 원만해서 좋다’는 문항의 만족도 지수에서 고등학생은 5.0 만점에 3.20점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 4.42점, 중학생 4.24점과 비교된다. 입시경쟁이 본격화할수록 동급생을 친구가 아닌 치열한 경쟁자로 인식한다는 방증이다.이영탁 서울 수락중 교사는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을 통해 인생에서 진짜 배워야 할 것을 배운다고 지적한다. “교육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협력·협동에 있고,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해서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융합·통합 수업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조상식 교수는 “이 광고는 인간관계를 끊는 게 시험 전략으로 제시되는 것이 우리 교육의 수준이란 걸 반영하는 동시에 학부모·학생들이 학교를 ‘좋은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한 도구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사교육업체의 ‘비교육적인’ 광고가 논란이 된 게 처음은 아니다. 2008년 사교육업체 ‘대교’는 ‘이등병의 편지’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입영통지서를 받아 든 것처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놀이터와 이별하는 초등학교 입학생의 모습을 광고로 내보냈다. 경쟁 교육에 휘말린 사회 분위기가 이런 광고를 재생산하고 있는 셈이다.메가스터디 쪽은 “새 학기가 됐으니 열심히 공부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10대들에게 가장 와닿는 소재인 ‘친구’를 차용했다. 캠페인 광고인 만큼 속뜻을 이해해 달라”고 해명했다. 김승현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정책실장은 “학생들의 불안을 이용하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상술”이라고 반박했다.

엄지원 박수진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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