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7일 수요일

X파일 판결, 왜 그리 서둘렀나


이글은 시사IN 2013-03-2-27일자 기사 'X파일 판결, 왜 그리 서둘렀나'를 퍼왔습니다.
안기부 X파일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 시대에 뒤떨어졌고, 국민의 알 권리를 외면했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앞두고 서둘러 판결을 내린 점도 이해할 수 없다.

 
이제 노회찬 전 의원이 되었다. 다섯 번에 걸친 재판, 재판이 시작된 지 8년 만에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됐고, 의원직을 상실한 것이다. 기자회견을 하면서 미소를 지었지만 그 심정이 오죽할까 싶다. 노 전 의원은 1997년 당시 안기부 녹취록(이른바 ‘안기부 X파일’)을 바탕으로 2005년 삼성그룹에서 떡값을 받았다는 전·현직 검사의 명단을 작성해 기자회견을 한 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했는데, 검찰은 이런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다며 기소한 것이다. 

2005년 MBC 이상호 기자의 보도로 세상에 존재가 알려진 ‘안기부 X파일’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과 홍석현 사장이 대화한 내용을 담은 도청 테이프를 말한다. 여기에는 이건희 삼성 회장 등의 지시로 이회창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를 비롯해 정치권 및 검찰 고위직에게 수십억원을 추석 떡값으로 제공하기로 논의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해당 검사들이 실제로 떡값을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를 폭로한 이상호 기자와 녹취록 전문을 실은 김연광 편집장 역시 검찰 기소로 대법원에서 징역 6개월, 자격정지 1년의 선고유예를 받았다.

검찰은 불법으로 도청한 자료의 공개를 금지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을 근거로 노 의원을 기소했다. 1심에서는 유죄판결이 나왔지만 항소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고, 대법원에서는 “발표 내용이 허위사실이 아니라는 점과 보도자료 배포가 면책특권에 해당한다는 점”은 항소심 재판부와 같은 판단을 받았으나 인터넷 홈페이지에 해당 자료를 올린 것은 유죄라는 판단이 나와 파기 환송됐다. 그리고 2011년 10월 재항소심에서 유죄, 이번의 재상고심에서 최종적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두 가지 측면에서 납득하기 힘들다. 하나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시대 상황과 맞지 않게 해석한 잘못이 보인다는 점이다. 기자들에게 관련자의 명단을 배포한 것은 허용되지만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것은 금지된다는 것은 오늘날 통신매체의 활용 상황과 너무나 동떨어진 해석이다.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 금지된다면 이는 개인의 실명이 제한 없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미 기자들에게 명단을 공개한 상황에서 이러한 차별적 결론이 논리적으로 맞는지 의문이다.  

또한 노 전 의원이 당시 전·현직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것이 공공의 주요 관심사, 비상한 관심사가 아니라고 판시했는데, 그러나 당시 세상은 삼성그룹에서 돈을 받은 인사가 누구인지를 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할 정도로 관심이 컸다. 대상자들이 보통 시민이 아니고 이 나라의 법집행을 좌우하는 인사들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으로 취득한 자료였지만 권력과 재벌의 구체적 유착관계를 알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호기심 차원이 아니라 그야말로 국민의 진정한 알 권리가 실현되어야 할 상황이었다. 

여야 의원 152명이 법 개정안 발의한 상태였는데…

노 전 의원의 경우는 전·현직 검사 명단을 국회에서 보도자료를 배포해 공개했기 때문에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한 사후적인 공개행위 때문에 비로소 국민들이 이 내용을 알게 된 것도 아니다.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인 국회의원의 의사표현의 자유가 권력자에 의해 제한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이다. 허위사실이나 혹세무민하는 것도 아니고 대법원 스스로 발표 내용이 허위가 아니라고 인정하면서도 이를 제한하는 것은 더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법원 판결을 마지막에 왜 그리 서둘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제16조)은 이러한 행위에 대해 벌금형 없이 10년 이하의 징역형만을 두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까지도 상당수가 문제의식을 느껴서 여야 의원 152명이 지난 2월4일 벌금형도 선택적으로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마치 벌금형을 추가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에 선고를 하려는 것처럼 신속하게 노 의원의 유죄를 확정하고 의원직을 박탈했다.

노 전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불의가 이기고 정의는 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라며 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이 땅에 성숙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려면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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