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8일 목요일

정부의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하는 운동을 조직하자


이글은 레프트21 2013-02-27일자 제98호 기사 '정부의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하는 운동을 조직하자'를 퍼왔습니다.
과제를 남긴 제65차 전교조 대의원대회 보고

2월 23일 전교조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은 일제히 고용노동부의 전교조 ‘규약시정’ 압박과 전교조 법외노조화 가능성을 보도했다. 때마침 검찰은 ‘새시대 교육운동’을 이적단체로 기소했다.
이는 명백하게 대의원들과 조합원들을 위축시키려는 시도였다.
이번 대의원대회는 참석률이 높아 어느 때보다 빠르게 개회됐다. 대의원들의 관심은 온통 해고자를 노조에서 배제하라는 ‘규약시정명령’에 노조가 어떻게 대응할지에 쏠려 있었다. 그래서 대의원 88명이 이 안건을 먼저 다루자는 회순 변경 요청에 찬성했다.
하지만 지도부가 제출한 ‘규약시정명령 등 전교조 탄압 대응 투쟁 계획’ 안건의 원안은 진정한 쟁점을 회피한 ‘총력투쟁안’이었다. 즉,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할지 말지를 정하지 않은 채 ‘총력 투쟁을 하자’는 안이었다.
그래서 많은 언론들이 전교조가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하고 총력 투쟁하기로 했다고 보도했지만, 이것은 부정확한 보도다. 언론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희미한 그림자만 봤기 때문에, 대의원들의 실제 문제 의식과 이를 둘러싼 진지한 논쟁을 보도할 수가 없었다.

진실을 말하자면, 지도부의 ‘총력투쟁안’은 규약시정명령 거부 입장과 규약 변경 입장을 절충해 놓은 것이다.

게다가 우려스럽게도, ‘총력투쟁안’은 규약 변경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정부가 노조결격사유시정명령을 내리는 시점에 다시 임시 대의원대회를 소집해 규약을 유지할지 변경할지를 결정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의원대회에서 규약시정명령 거부 입장을 분명히 결정하고 이에 따라 총력 투쟁을 포함해 행동 통일을 하는 것이었다.

18명의 대의원들이 규약시정명령 거부를 위한 수정안을 제출하다

그러나 지도부가 제출한 ‘총력투쟁안’은 핵심 문제를 회피하는 모호함과 어정쩡함 때문에 정부 공격에 맞서 효과적으로 투쟁을 벌일 수 없는 내용이었다. 이런 문제 의식에 공감한 대의원 18명이 수정동의안을 제출했다(대의원이 아닌 조합원 82명도 함께 서명했다).
수정안의 핵심은 “해고자를 배제하라는 노동부의 규약시정명령은 단지 해고자만의 문제로 협소하게 바라볼 수 없다. 이는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것이자, 무엇보다 전교조의 투쟁력을 약화시키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해고 조합원 배제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하고 총력투쟁을 하자”는 것이었다.
(아직까지는) 비록 소수였지만, 이 수정안은 대의원대회에서 규약시정명령 거부의 목소리가 존재함을 알리는 계기였다.(대의원대회 현장에서는 (벌떡교사들)과 ‘경기교사현장모임’이 각각 리플릿을 통해 규약시정명령을 분명하게 거부하는 입장을 냈다.)
나는 대표 발의자로서 수정안을 설명했다. 나는 ‘정부의 규약 개악 압박을 거부해야 하는데, 지도부의 총력투쟁안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다. 이는 2010년 8월 대의원대회 결정에서도 후퇴한 것이다’ 하고 지적했다.
위원장은 2010년 대의원대회에서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한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당시에 분명히 해고자들의 조합원 자격을 계속 인정하기로 결정했다.(정부는 다섯 가지 조항의 개정을 요구했는데, 그중 세 가지는 당시 대의원대회에서 개정했고 나머지 한 가지는 법원 판결에서 승소했으며, 지금 쟁점이 되고 있는 해고자들의 조합원 자격은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이런 지적을 하자 일부 대의원들은 듣기가 불편했는지 야유를 보냈다.
위원장은 지도부의 원안과 우리의 수정안이 ‘기조가 다르다’는 이유로 수정안을 별도 안건으로 분리시켰다.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수정안을 발의한 대의원들과 상의도 없었고, 회의 규칙에도 없는 무리한 결정이었다.
위원장은 수정안이 표결에 붙여지면 교육노동운동의전망을찾는사람들(이하 교찾사, 지난해 12월 선거에서 지도부를 배출했다)이 분열할 가능성과 규약시정명령을 둘러싸고 존재하는 전교조 내의 의견 대립이 드러나는 것을 우려했던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지도부가 내놓은 총력 투쟁안의 모순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투쟁을 강조하는 전교조 내 좌파 의견그룹인 교찾사는 안타깝게도 규약시정명령 문제를 놓고 규약을 개정하자는 쪽과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갈렸다.
그러나 대다수 교찾사 성원들은 존재하는 이견을 일단 덮자는 입장으로 수렴했다. 이를 통해 교찾사의 ‘단결’을 유지하려고 한 것이다. 진지하게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하던 동지들도 최종 순간에 이런 압력을 받아 이번 대의원대회에서는 결국 지도부의 안을 지지했다. 이것은 민감한 정치 문제를 회피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매우 안타깝게도, 교찾사가 이 중요한 문제에서 좌파답게 당당하게 정부의 방침을 거부하는 선동을 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사실상 무기력해진 것이다. 그리고 지도부는 비민주적이고 관료적인 회의 진행 방식으로 이 무기력을 메웠다.
결국 국가 탄압에 맞서 운동의 대의를 지키는 정치적 원칙보다 노동조합 조직 보존을 앞세우는 노동조합주의의 약점이 이런 안타까운 결과를 빚어낸 것이다.
그러나 신임 지도부가 이런 중요한 정치 문제에서 계속 모호한 태도를 취하면 지지자들이 실망하게 될 것이다.
수정동의안을 발의한 대의원들은 원안 찬반 토론 시간에 원안의 맹점을 지적했고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수정안 발의에 서명한 조수진 대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원칙을 분명히 정하고 행동 통일해서 정부의 탄압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가 입장을 정하지 않고 분회ㆍ지회로 돌아가서 무엇을 주장할 수 있습니까? 두 입장을 모두 말하며 조합원들에게 선택하라고 하는 것은 지도부도, 대의원대회도 무책임한 것입니다.”
지도부는 이런 비판들이 나오는 것을 피하고자 수정안을 별도 안건으로 분리시킨 것일 테지만, 이것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쟁점이었다. 대의원들의 머릿속을 사로잡고 있는 쟁점은 바로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할지 말지였기 때문이다.
치열한 토론이 종료되고 표결에 들어갔다. 재석 대의원 2백33명 중 1백87명이 원안을 찬성했다.
뒤이어 별도 안건으로 분리된 수정안을 다룰 차례였다. 수정안을 제출한 대의원들은 이미 ‘총력투쟁안건’에서 규약 개정 찬반 토론이 충분하게 됐으므로 “바로 표결에 부쳐 줄 것”을 요청했다. 여차하면 정족수 미달로 대의원대회가 유회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표결에 부담을 느낀 대의원들이 ‘심의보류동의안’을 내놨다. 이 안건을 반대할 수도, 그렇다고 찬성할 수도 없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있던 대의원들이 있었던 것이다.
재석 대의원 2백31명 중 1백88명이 찬성해 수정안은 최종 심의 보류됐다.

거부 운동을 건설하자

지도부의 ‘총력투쟁안’이 다수의 지지를 받아 통과됐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일부 대의원들은 원안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총력 투쟁을 하자면서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어 결정하자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또, 지도부가 제시하는 다음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규약변경’, ‘규약유지’를 결정하겠다는 것에 물음을 던지는 대의원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대의원대회가 아니라 총투표를 통해 규약 유지 또는 변경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대의원 80퍼센트가 ‘총력투쟁안’을 찬성했지만, 그 안에는 규약 변경에서부터 규약 유지까지 다양한 입장이 뒤섞여 있다.
그래서 ‘총력 투쟁안’은 우리 내부의 이견과 분열이 말끔히 정리된 사화산(死火山)이 아니라 휴화산 같은 것이고, 이것은 머잖아 격론의 활화산이 될 공산이 크다.
지금도 현장조합원들 중에 만만치 않은 수가 거부 입장일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도,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거부 입장으로 돌아설 조합원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수정안 발의자들은 그 안건이 심의 보류됐다고 실망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지금부터 규약시정명령을 통해 정부가 노리는 술수를 폭로하며 규약시정명령 거부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대의원대회 때 많은 대의원들이 규약시정명령 거부 주장을 진지하게 들었다. 신경전이 대단했던 대의원대회장에서 거부 입장을 선동하는 (벌떡교사들)이 1백50부나 판매됐다. 한 대의원은 “수정안 덕분에 거부 입장의 근거들을 명확히 알 수 있었어요. 현장에서 그 주장을 전할게요” 하고 말했다.
이번 대대는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할 것인가 수용할 것인가를 둘러싼 첫 전투였다. 그리고 수정안 발의자들은 전교조의 투쟁력을 약화시키려는 정부의 규약시정명령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운동의 초석을 놓았다.
앞으로 정부와 우파는 압박 수위를 더한층 높이는 공격을 시도할 것이다. 대의원대회 이후 우파 언론들은 ‘전교조가 법을 어기고 있다’고 비난하고, 우익은 ‘노조설립을 취소하지 않는 고용노동부를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우리가 동요하고 후퇴하는 조짐을 보일 때가 저들에게는 공격의 기회가 될 것이다.
따라서 규약 개악을 거부하는 광범한 운동을 통해 거부 입장을 조합원들 속에서 확산하고, 조만간 있을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규약 변경이 아니라 정부의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하고 총력 투쟁하자는 명확한 결정이 내려질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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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오 (전교조 전국대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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