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7일 수요일

박근혜 대통령님, 희망 복주머니에 '밀양'은 없나요?


이글은 미디어스 2013-02-26일자 기사 '박근혜 대통령님, 희망 복주머니에 '밀양'은 없나요?'를 퍼왔습니다.
[이용석의 노동자로 살며 읽기]공선옥의 ‘꽃 같은 시절’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이면 땅 값이 얼마나 될까? 삼성동 한전 본사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고 있는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 주민들을 병역거부자 친구들과 함께 찾아가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천막이 자리 잡은 넓이 정도면 밀양 땅을 몇 평이나 살 수 있을까? 천막 맞은 편 코엑스는 하루에 전기를 얼마나 쓸까? 밀양시민들이 쓰는 것보다 코엑스에서 쓰는 전기량이 더 많지 않을까? 확인해볼 도리는 없지만, 왠지 그럴 거 같았다. 땅 값에서도, 전기 사용량에서도 밀양은 삼성동 하나도 이길 수 없을 거 같았다.
천막 안에는 밀양 주민 두세 분과 우리처럼 지지하러 찾아온 분들이 몇 분 계셨다. 우리가 병역거부자인 것을 말할까말까 망설였다. 아무래도 시골에 사시는 나이 드신 분들이라, 병역거부에 대한 인식이 나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던 거다. 막상 우리를 소개했을 때, 우리의 걱정이 시골 사람들과 노인들은 보수적인 거라는 편견에 얼마나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 국가 폭력과 맞서 싸우고 있는 분들인데 우리가 저 분들을 그냥 시골 노인네로 본 것만 같아서 죄송한 마음에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 지난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앞에서 밀양송전탑대책위 주민들이 송전탑 건설 반대 촉구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익숙하지 않은 경상도 사투리여서 가끔씩 못 알아듣는 말도 있었지만,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분들은 이야기가 굉장히 고팠던 사람들처럼 청산유수로 말을 이어갔다. 송전탑 전선이 열이 많아서 이슬이 맺혀 물이 뚝뚝 떨어지기 때문에 그 밑에서는 밭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는 이야기, 주민들은 무작정 반대하는 게 아니라 송전선로를 고속도로를 따라 땅 속으로 짓는 것과 같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이야기, 이 송전탑이 밀양을 지나서 수도권까지 가려면 앞으로도 많은 지역에서 주민들과 갈등이 일 텐데 그래서 한전이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고 밀양에서 절대 양보를 안 하고 있는 거라는 이야기……. 환경부 장관이 따로 없고, 토목학과 교수가 울고 갈 정도로 전문용어들을 쏟아 내신다. 감탄하면 듣고 있는데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에서 만든 유인물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살던 곳에서 살다가 죽고 싶습니다.” 이 문구를 보는 순간 나는 책 한 권이 떠올랐다. 공선옥 소설 『꽃 같은 시절』에서 똑같은 구절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밀양 주민들의 싸움에 대해 맨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나는 『꽃 같은 시절』이 바로 떠올랐다. 오명순, 임애기, 노분례, 김공님 할머니가 밀양에 살고 있는 것만 같았고, 박석택, 김용택 할아버지가 상동면에 살고 있는 거 같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차마 외면하지 못해 위원장을 맡은 이영희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 사무국장 이계삼 선생님이 생각났다.
『꽃 같은 시절』은 젊은 시절 남편한테조차 큰소리 한 번 못 내보고, 소 팔고 논밭 팔아 대학 보낸 자식들 쫓아다니면서 데모하지 말라고 말리던 할머니들이, 데모하는 이야기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돌 깨는 공장이 들어와 불법으로 돌 깨는 공사를 하자, 소음과 먼지 때문에 살 수 없어진 늙은 농민들은 돌 깨는 공장과 군청을 상대로 데모도 하고 소송도 하고 데모하다 경찰서에 잡혀가 재판도 받는다. 도시 재개발에 밀려 철거민이 되어 쫓겨나 이 마을에 들어와 살게 된 젊은 영희가 이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힘겹고 어려운 싸움을 해 나간다. 공선옥 작가는 이 소설이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썼다는 것을 작가의 말에 밝히고 있다. 꼭 밀양 땅이 아니더라도 국가와 기업의 횡포에 늙은 농민들이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 많이 있나 보다.
이 시골 노인네들에게 집이란, 그리고 농사짓는 땅이란, 공시지가로 표현할 수 없는 자기 삶의 일부다. 집과 함께 살아가고, 집과 함께 늙어가다가, 사람이 먼저 죽고 집만 홀로 남겨지면 집도 따라죽는다.
“내가 아직 이승사람일 때, 나는 집이 심심하다고 한번씩 몸을 떨 때마다 텔레비전을 틀거나, 옛이야기 한자리를 풀거나, 노래를 한가락 부르거나, 그도 아니면 일부러 이 빠진 사기 접시를 깨거나 스뎅 그릇을 무쇠솥 위로 달팍 엎었다. 그러면 집이 잠잠해졌다.”(8쪽)
혼자 살던 무수굴떠기 할머니가 죽고 빈집이 되자 동네 할머니들은 집이 심심하지 않게 해 주려고 지나가면서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이미 죽고 없는 무수굴떠기 할머니를 부르기도 한다. 공장이 생기고, 도로가 뚫리고, 재개발을 하면 집값이 얼마나 올라가나 계산 먼저 하는 사람들에겐 수굴떠기 할멈의 저 독백이나 동네 할머니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도시로 떠난 자식들은 시골 노인네가 데모질 다니는 게 마땅치 않다. 마을에 공장이 들어서면 집값이 올라가고, 그러면 그 집 팔아서 남는 돈으로 이제 힘든 농사일 안 하고 편하게 사시면 된다고 생각한다.
“엄마, 어차피 우리 집값이 얼마나 하겠어. 나 같으면 공장 들어와, 도로 놔져, 발전하면 땅값 올라가, 그러면 집 팔아서 그 돈으로 도시에서 편안히 살겄네. 그러니까, 데모하지 말라고오.”(111쪽)

▲ 공선옥 소설가의 꽃같은 시절

시골에 사는 늙은 부모들은, 저희들이 물장구 치고 놀던 냇가가 돌가루에 썩어가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딸이 서운하고, 저희들이 맛있다고 먹는 된장 간장 나는 밭이 돌공장 때문에 망가져가는 것을 모르는 아들이 야속할 따름이다.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다. 일본 나리타 공항 건설에 맞선 농촌 마을 이야기를 그린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에서도 도시로 나간 자식들은 부모님한테 데모하지 말라고 하고, 늙은 부모님들은 이 땅이 어떤 땅인데, 하시며 오열한다. 아마도 밀양 송전탑 반대하시는 할머니들도 비슷한 경험을 다들 하셨을 것만 같다.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다.
꼭 자식들만 그런 셈법을 가지고 살아가겠나. 도시에 사는 우리 모두가 원죄가 있다. 밀양에 송전탑을 세워 수송하는 전기는 서울 수도권 사람들이 쓰는 전력이다. 밀양 사람들은 그 많은 전기를 평생을 써도 다 쓸 수 없을 거다. 돌공장이든, 송전탑이든, 골프장이든, 군사기지든 시골 마을에 원래 살던 주민을 내쫓고 짓는 것들은 대부분 도시 사는 사람들의 욕심을 채워주고 편리한 삶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것들이지 않은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통쾌하고 속이 시원한 부분은 경찰서에 끌려간 할머니가 조사를 받으며 의도치 않게 경찰을 괴롭히는 장면이다. 사회운동 경력은커녕 한글도 떼지 못한 할머니들은 아무 의도를 가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하고 행동하지만, 그 말들이 우리에게 아주 근본적인 고민을 던져준다. 사람이 사는데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국가가 사람들을 통제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국가의 언어에 맞서는 우리의 언어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오명순씨, 본적이 어딥니까?""본적? 시앙골.""정확하게 말씀해주십시오.""시앙꼬올. 울 아부지 울 어매가 나를 시앙골서 났당게. 시앙골서 났응게 거가 내 본적지제에."형사는 얼굴이 벌게진다. "주소는요?""내동 아까 영살리 김기택이 큰어매라고 해놓고는 그러요. 영살리제 어디여어?""영살리 몇번집닝까?""번지수는 내가 모르겄소.""주민번호요.""고무차대기라 암것도 몰러 나는.""주민등록증 내놔보세요.""안 갖고 왔는디.""직업이 무엇입닝까?""직업이 뭣이여?""현재 오명순씨가 하시는 일 말입니다.""땅 파묵고 살제 나 같은 고무차대기가 뭔 재주가 있겄소이? 이날 평상토록 땅 파서 씨 뿌리고 거둬서 나도 묵고 새끼들 멕이고 입히고 갈쳐서 이우고, 그러고 살았제에."(64쪽)
할머니들이 아무리 열심히 싸워도, 대책위원장 영희가 온몸과 마음을 다해 뛰어 다녀도 결국 늙은 시골 사람들은 돈 있고 권력과 친밀한 사람들을 이기지 못한다. 소설에서는 판사가 돌 공장 편을 들어주며 영희와 마을 주민들에게 벌금을 선고하는 것으로 사건은 끝이 난다. 이 소설의 실제 배경이 되었던 사건도 법원이 공장 편을 들어주는 것으로 재판이 끝났다고 한다.
하지만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는 지지 않을 거라 믿는다. 돈 없고 권력 없는 사람들이 국가와 거대 기업과 싸우는 일이 어렵다는 걸 알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전 본사 앞 천막에서 만났던 한 할머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일식당 아줌마들이 투쟁하는 영상을 봤는데, 단결하니까 다시 식당에서 일할 수 있게 되더라. 우리도 단결하면 이길 수 있다.” 이 할머니의 말을 꼭 지켜드리고 싶다. 

그저 돈이나 벌 생각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경영진들의 폭력을 보고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평화주의자의 시선으로, 노동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모든 폭력에 저항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용석 / 출판노동자  |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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