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9일 수요일

MB정부 들어 성범죄 보도 폭증


이글은 시사IN 2012-09-19일자 기사 'MB정부 들어 성범죄 보도 폭증'을 퍼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나주 성폭행 사건’뿐 아니라 여러 성범죄에 대해 직접 대책을 지시하거나 질책성 경찰 방문을 했다. 대통령이 움직일 때마다 언론은 공포를 조장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지난 8월31일, 이명박 대통령은 경찰청을 ‘깜짝 방문’했다. 공식 일정에 없던 방문이었다. 이날 이 대통령은 ‘나주 성폭행 사건’ 가족에게 위로를 보낸다고 밝혔다. (연합뉴스)는 “대통령이 개별 사건에 대한 수사를 독려하려고 경찰청을 방문한 것은 이례적이다”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되돌려보면 이 대통령이 아동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여러 차례 언급했고, 모습을 드러낸 것을 알 수 있다. 2008년 3월26일 경기도 고양시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여아가 성폭행범에게 끌려갈 뻔한 사건의동영상이 보도되었다. 그날 이 대통령은 해당 경찰서에 질책성 방문을 한 바 있다(그리고 당일 범인이 체포되었다). 

또 2009년 10월5일, 이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조두순 사건을 언급하며 “아동 성범죄자는 재범가능성이 높은 만큼 신상정보 공개 정도를 높여 사회에서 최대한 격리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대책을 주문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 ‘나주 사건’으로 다시 경찰청을 방문했다. 언론들이 너나없이 아동 성범죄 사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때였다.

9월5일 언론인권센터 주최로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언론도 가해했다, 나주 현장’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사건을 보도한 언론의 문제점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였다. 토론자로 나선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론 보도가 정치적이다”라고 말했다. 아동 성폭력 사건이 정치와는 무관한 가치중립적인 사건인 것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이런 보도가 정권의 관심에 부응하는 측면이 있고 또한 대중의 공포를 빌미로 형사정책의 패러다임을 회귀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설명이었다.

‘아동 성범죄 보도의 정치성’이라는 측면에서  권인숙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가 지난해 말에 발표한 논문([성폭력 두려움과 사회통제])을 주목할 만하다. 권 교수는 이화연 명지대 영문학과 교수와 함께, 이 논문에서 김길태 사건에 대한 신문과 텔레비전 보도 기사를 통해 언론이 아동 성폭력 사건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검토한 바 있다. 

권인숙 교수에 따르면, 한국에서 아동 성폭력 사건 보도는 2008년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신문 검색 사이트인 카인즈에서 ‘아동 성폭력’에 관한 기사를 검색했는데, 2007년까지 100건에서 200건 사이에 머물던 기사 수가 2008년 이후 두 배 이상 늘어났다(2004년 176건, 2005년 158건, 2006년 232건, 2007년 202건, 2008년 402건, 2009년 624건). 2010년에는 10월 말까지 관련 기사가 930건에 이른다.

ⓒ청와대 제공 8월31일 경찰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화상으로 ‘나주 사건’ 관련 보고를 받고 있다.

특이한 점은 아동 성폭력 사건 가운데 김길태 사건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언론 보도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김길태 사건도 초기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보이는 것은 3월8일에 있었던, 이 사건에 전력투구하라는 대통령의 특별 지시다. 

이 지시 이후 언론은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은 아동 성폭력 사건에 자주 자기 존재를 드러냈고, 직접 지시 등을 통해 대안 마련의 방향과, 아동 성폭력이 최근 3년간 최고의 사회적 현안으로 떠오르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라고 기술했다.   


“신문의 상업적 경쟁도 한 원인”

범죄 가해자 개인에 초점을 맞춘 보도가 주를 이룬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가해자에 대한 보도는 대중의 공포로 연결되고, 결국 ‘포퓰리즘적 형사정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0년 초 ‘김길태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2010년 상반기에 여러 법률이 급하게 개정되거나 제정되었다. 

성폭력범 유기징역의 상한이 20년에서 30년으로 상향되었고, 가중처벌 시 50년까지 선고가 가능하게끔 되었다. 성범죄자들의 DNA를 채취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도록 했고, 전자발찌 부착 기간이 10년에서 최고 30년까지 상향 조정되면서 제도 시행 전 3년 이내 출소자들에게까지 이를 소급 적용토록 했다. 

일반 성폭력 범죄자까지 신상정보를 등록해 온라인상에 공개하게 되었고, 화학적 거세 법안도 통과되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언론이 범죄와 형벌에 대해 과장해 보도하고, 정치권이 여기에 편승하는 게 포퓰리즘적 형사정책이다. 그런데 범죄 예방에는 별반 효과가 없다”라고 말했다. 

언론인권센터에서 주최한 긴급 토론회 자리에서는 언론의 선정적 보도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흉악범죄자 초상 공개와 (조선일보)의 ‘나주 사건 피의자 사진 오보’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김준현 변호사(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면서 언론이 초상 공개를 당연시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신상 공개를 할 수 있는 법이 있긴 하지만 이 법이 언론사 신상 공개의 근거는 아니다. 또 (조선일보)는 다른 사람의 사진을 피의자 사진인 양 1면에 올려 대형 오보를 냈다. 언론은 이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인 박록삼 (서울신문) 기자는 언론의 선정적 보도 원인을 상업적 경쟁에서 찾았다. 박 기자는 “신문시장이 축소되고, 신문 자체의 영향력이 줄고 있다. 줄어드는 시장에서 종합 일간지만도 스무 개가 넘는 신문 매체들이 눈길을 끌려고 너도나도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내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9년 1월31일 조인스닷컴([중앙일보])이 강호순의 사진을 처음 공개했을 때, 그 기사는 며칠 동안 조회 수가 106만 건이 넘었다. 단일 기사 조회 수가 100만 건 넘은 것은 조인스닷컴이 생긴 이래 처음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경찰은 이참에 불심검문을 하겠다고 나서고, 법무부는 전자발찌 관리 등 인력과 예산을 늘리는 데 골몰하고 있다. 정치권도 그저 정치적 쟁점으로 이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미국의 사회학자 배리 글레스너는 흉악범죄, 질병 등에 대해 과장 보도하고 치안을 강조하는 것이 공포를 조장하고, 이러한 공포 문화가 사회복지와 임금 등 다른 문제에 대한 관심을 앗아간다고 분석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아동 성범죄 관련 보도가 폭증한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차형석 기자 |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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