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4일 금요일

정권 바뀔 때마다 변신, KBS 이사장의 ‘노욕’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12일자 기사 '정권 바뀔 때마다 변신, KBS 이사장의 ‘노욕’'을 퍼왔습니다.
독재정권 땐 보도본부장, 정권 바뀌니 대구방송 사장… 이길영 이사장의 인생 역정

지난 5일 새벽 여당추천 이사들의 강행처리로 KBS 이사장에 선임된 이길영 KBS 이사의 지나온 이력을 보면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엔 KBS에서, 정권이 바뀐 뒤엔 고향인 대구에서 늘 조직의 수장을 맡은 것으로 나타난다. 8년 간의 대구방송 사장에서 물러났을 땐 한나라당 경북도지사 선거대책위원장과 인수위원장을 지냈다가 경북도의 산하기관장까지 했다. 그가 공무원에서 KBS 직원으로 신분 변화가 생긴 이후부터 한 차례도 어려운 생활 없이, 한마디로 잘나가는 방송인으로 살아왔다.

▷대구달성 출신·문공부 TV방송국 서기에서 KBS 보도본부장으로=이 이사장은 1941년 대구 달성에서 태어나 서울 대신고를 나왔다. 문화부(구 문공부) 인사자료에 따르면 이 이사장은 고교를 졸업한 뒤 1961년 4월 문화공보부 서울텔레비젼방송국 서무과 행정서기로 신규채용됐다. 3년 뒤 방송관리국 관리과(1964년 11월~66년 3월)와 국제방송국 제2과 겸 서울중앙방송국 방송과(66년 3월~68년 7월)를 거쳐 중앙방송국 보도부 보도과에서 재직했다. KBS가 공사창립(1973년) 이전엔 문공부 산하의 일개 국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이 이사장은 문공부에서 12년 동안 방송업무를 했다.
정부부처의 한 국에 불과하던 KBS가 한국방송공사로 독립하면서 이 이사장의 신분도 공무원에서 KBS 보도국 기자로 탈바꿈했다. 그가 조인스 인물정보 등에 기재한 이력을 보면, 그는 경제부 차장으로 재직해오다가 1980년 광주항쟁과 관련해 많은 언론인들이 기관원의 보도검열에 저항하다 해직당하고 언론통폐합으로도 쫓겨났을 때 경제특집부 부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그는 LA지국장 겸 주미특파원(1982년), 보도본부 해설위원(1985년)을 거치는 등 요직을 두루 거치기 시작했다. 

KBS 새노조·기자협회 구성원들이 11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에서 이길영 이사장 선임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보도지침 등 신군부의 언론통제가 극에 달했던 1986년 이 이사장은 KBS 보도국장에 올라 이듬해 대선 보도를 총괄했다. 보도국장이 되기 직전인 그해 4월 21일 전두환 내외의 유럽순방 귀국일 실황중계 때 해설위원이던 그는 패널로 나와 “이번 전두환 대통령의 EC 4개국 순방은 우리 경제의 국제화, 우리 경제를 선진국 경제에 진입시키는 초석을 다지는 획기적 계기다라는 평가”라며 낯뜨거운 찬양을 하기도 했다. 또한 그의 보도국장 시절인 1987년의 KBS는 ‘노태우 대통령 만들기’ 편파방송을 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사상 첫 여소야대 정국이 펼쳐진 1988년에 이 이사장은 대구방송총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이듬해 다시 보도본부 부본부장을 거쳐 1991년 3월 보도본부장에 올랐다. KBS 기자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지위까지 이른 것이다. 그가 보도본부장을 맡은지 이듬해 대선 때도 KBS는 편파보도의 멍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의 재임기간(1991~93년) 동안 KBS 노동조합은 KBS 보도에 대해 비판하는 성명서만도 여러차례 붙였다. 1993년 이 이사장이 자회사인 KBS문화사업단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의 KBS(본사) 생활은 마무리됐다.

▷역사상 첫 정권교체…KBS 떠나 대구로=역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1997년 대선이 끝난 뒤인 이듬해 3월 이 이사장은 대구방송(TBC)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는 KBS가 아닌 대구의 지역민방이었다. 그는 대구 달성 출신인데다 1988년 KBS 대구총국장을 역임한 인연이 있다. 방송사 지역총국장(방송국장)은 지역에서 유지대접을 받을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방송계 종사자들의 말이다.
이 이사장은 대구방송에서 무려 8년이나 사장으로 롱런했다. DJ-노무현 정권 때 그는 그의 고향에서 민영방송 CEO로 노년을 맞은 것이다.
이 이사장은 대구방송 사장 임기를 마치고는 돌연 경북도지사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김관용 경북도시자 한나라당 후보캠프의 선거관리위원장을 하다 김 후보가 당선되자 경북도지사 인수위원장까지 했다. 이듬해(2007년)엔 경북도가 설립한 대구경북한방산업진흥원(현 한국한방산업진흥원) 원장에 취임했다. 최민희 민주통합당 의원은 그의 원장 입성을 두고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라고 비판했다.

▷다시 KBS 감사로·이사장으로…비리·허위학력 드러나=그러다 다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KBS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KBS 사장 공모 때 이사 공모 때마다 신청서를 냈다. 그는 진흥원장 임기를 3개월이나 남겨놓고 KBS 감사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KBS와 대구에서의 그의 화려한 이력의 이면엔 ‘5공 부역자’, ‘대구경북한방산업진흥원장 시절 친구 아들 채용 비리’, ‘대학교 학력 위변조 의혹’ 등이 따라붙었다. 결국 KBS 이사장이 될 무렵 이런 그의 수많은 과거사 의혹과 풍문이 사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KBS 새노조는 이 이사장에 대해 “한마디로 말해 그는 평생 권력을 쫓으며 허위와 기만으로 살아온 사람”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김성일 KBS 복지국장은 최근 집회에서 “노욕을 하루빨리 버리고 집에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길영 이사장은 땡전뉴스의 주범이라는 비판에 대해 “양심에 걸리는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해왔다.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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