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4일 화요일

반값 등록금을 넘어 국립대학 무상교육을 요구하자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03일자 기사 '반값 등록금을 넘어 국립대학 무상교육을 요구하자'를 퍼왔습니다.
[권재원의 교육창고] 4대강에 쏟아 부은 돈이면 10년간 학비 지원 가능

요즘 박근혜 후보의 대학 반값 등록금 약속 번복에 대해 논란이 분분하다. 박근혜 후보가 39개 대학 총학생회가 주최한 자리에서 반값등록금을 약속했다는 기사가 나간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명목 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인다는 것이 아니라 등록금 부담을 반값으로 줄인다는 것”이라며 한 발 물러서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박후보가 거짓말을 했다 안했다 논란이 분분하다.
하지만 박후보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박후보가 “등록금 반값”이 아니라 “등록금 부담 절반”이란 사용한건 엄연히 사실이며, 단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 박 후보의 화법으로 미루어 볼 때 굳이 이 용어를 선택한 것에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그 까닭은 보수진영이 절대로 놓을 수 없는 선별적·시혜적 복지관을 고수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이 문제는 여기서 덮자. 박후보는 오히려 거짓말을 했다기 보다는 고백을 한 것이다. “내가 진보적인 줄 알았니? 오해하지 마. 사실 나는 보수적이야.”라고 더 이상 차마 진보 코스프레를 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진실한 자기 모습을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 반값 등록금이라는 슬로건을 진보진영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반값 등록금”이라는 용어는 너무도 선명하고 매혹적이다. 이렇게 선명하고 매혹적이다보니 도리어 대학 등록금 문제의 본질을 놓치고 등록금을 “반값”으로 만드는 것으로 문제를 편협하게 만들 수 있다.
 “값”이라는 용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액수가 많다는 것에 있지 않다. 값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제 값을 한다.”라는 말도 있듯이, 치루는 값에 해당되는 만큼의 편익을 줄 수 있다면, 액수 자체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약 우리나라 대학이 그만큼의 교육적 편익을 제공하고 있다면 등록금 액수 역시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그 액수가 부담이 되는 계층에게는 각종 장학금 혜택등을 통해 이를 경감해 주면 되는 일이다.

우리나라 교육비 지출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높은 교육비 지출보다 더 높은 것은 개인 가계 부담 비율이다. 200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자녀 한 명에게 지출되는 양육비는 출생 이후 대학 졸업까지 22년 동안 2억6204만원에 이른다. 사진은 한 대학교 졸업식. 연합뉴스 자료사진.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 문제는 단순히 그 액수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아니다. 액수로만 따지면 오히려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편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PPP)은2011년 현재 32,000달러이며, 미국은 49,200 달러, 그리고 일본은 35,200 달러다. 그런데 사립대학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대학의 등록금은 1년에 7930(국민소득의 1/4) 달러 내외, 미국은 무려 50000달러 내외(국민소득과 1:1 수준), 일본은 17000(국민소득의 1/2) 달러 내외로 우리보다 훨씬 높다. 같은 신흥 선진국 중에서도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은 비교적 낮은 편에 속한다. 우리보다 소득이 월등히 높은 홍콩이나 싱가포르 대학의 연간 학비가 우리와 비슷하여 사실상 더 저렴한 것이 아니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이들 나라 대학이 대부분 국립대학이라서 비롯된 현상이다. 우리나라도 국립대학 학비는 4000달러 수준이다. 국민소득 38000달러로 우리보다 높은 대만이 사립대 기준으로 연 4000달러이긴 하지만 예외적인 현상에 속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은 소득수준을 고려 하더라도 미국, 일본 등 기존 선진국에 비해서는 월등히 저렴하고, 대만을 제외한 신흥 선진국들 중에서도 그렇게 비싼 편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는 그 편익과 가치가 전혀 증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일종의 가격 담합처럼 대학 등록금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대학을 다니면 매우 고차적인 지식과 기능을 익히고, 그 대학을 졸업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 이후 인생의 경로와 직업선택의 기회 등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면,  등록금이 비싸다고 아우성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비싼 돈을 내고라도 그 대학을 다니려 할 것이며, 그 대학을 다닌 보람은 다니는 동안, 또 졸업한 이후 충분히 뽑아내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웬만한 대학을 졸업해도 거의 무보수인 인턴사원을 전전하고, 대학 때 받은 교육과 전혀 무관한 각종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하는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이 돈은 너무 비싼 돈이다. 그런데 그 웬만한 수준도 되지 않는 대학들마저 웬만한 수준 이상의 등록금을 받고 있다. 모든 대학이 그 정도 등록금을 받고 있으니 다른 대학을 선택할 여지도 없다. 이건 마치 대학들이 거대한 담합이라도 이룬 것이 아닐까 의심 갈 정도다.
둘째는 이미 오래 전부터 대학 등록금이 비쌌던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와 달리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은 물가상승률이나 소득증가율에 비해 훨씬 높은 비율로 인상되어 왔다는 것이다. 1992년 이후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은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평균 물가상승률 보다2배 이상의 상승률을 기록해 왔다. 그나마 1990년대까지는 대학졸업장의 효용가치가 그 상승률을 상쇄하였으나 2000년대 이후에는 이미 그만한 가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승률만 계속 하늘을 찔렀다. 갈수록 대학 졸업의 효용이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 등록금만 10년 만에 두 배가 될 정도로 치솟아 올랐으니 체감 상승률은 네 배, 다섯 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 요인은 바로 국립대학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나라에서도 사립대학의 등록금은 최소한 국립대학의 두 배라는 이상한 불문율이 생겼다. 따라서 국립대학 등록금을 높이면 사립대학 등록금은 반드시 그 이상 오르게 되어 있다. 즉 경제학 용어로 국립대 등록금의 1.5배는 사립대에게는 등록금의 가격하한선 역할을 해 왔으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2000년 219만3천원이었던 국립대학의 등록금이 2011년에는 440만2천원으로 두배 이상 올라갔다. 이게 사립대학에 주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사립대 역시 2000년 당시 451만1천원이었던 등록금이2011년에 776만1천원으로 오르는 등 대폭 상승하였다. 상승률로 놓고 보자면 오히려 국립대가 더 높을 정도였다. 국립대가 앞장서서 등록금을 큰 폭으로 올리면서 사립대학을 어떻게 나무라겠는가? 오히려 국립대가 두배 올리는데, 겨우 두배만 올린 사립대학에게 고맙게 생각해야 할 판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대학 등록금 문제는 1) 대학의 값어치와 등록금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점, 2) 정상적인 수준을 상회하는 자의적인 등록금의 상승, 3) 그리고 어이없게도 정부, 즉 국립대학이 이 흐름을 주도했다는 점 에 있지, 등록금 자체가 비싸다 싸다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해결도 등록금을 반값 혹은 반의 반값으로 낮추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값만 받도록 하고 함부로 올리지 못하도록 하고, 국립대가 등록금 인상을 주도하는 나쁜 흐름을 차단하는데 있다. 

설사 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춰도 여전히 제값보다 비싼 대학이 있을 수 있고, 반값으로 낮추더라도 다시 거기서부터 고도 상승을 시작하면 언제든지 두 배, 세 배 오를 수 있으며, 국립대의 등록금이 일종의 높게 책정된 하한선의 역할을 하는 한 등록금 인하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보적인 의원들이 발의한“4인 가구 평균 월소득의 1.2배”라는 기준이 작동된다면 좋기는 하겠으나, 1년간 대학교육의 값어치가 무슨 근거로 4인가구 평균 월소득의 1.2배로 산정되었는가 하는 부분에서 자의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에 나는 진보진영이나 진보정당에게 대학 등록금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대안으로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국립대학 무상화”를 제안한다. 이것은 서울대학이 제외됨으로서 앙꼬 빠진 찐빵이 된 “국립대 네트워크,공동 학위제”에 대한 강력한 지지방안이 될 수도 있다. 국립대학을 네트워크화 한 다음 일체의 학비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4대강에 쏟아 부은 돈이면 앞으로 10년간 모든 국립대학생의 학비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국립대학이 무상화가 되면 재능은 있으나 등록금이 부담되는 학생들이 대거 몰려 들 것이다. 국립대학은 소위 중위권 대학 이상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수준의 대학이 등록금이 무상이라는 사실은 대학의 값어치와 등록금에 대한 강력한 표준으로 작용하게 된다. 대다수의 사립대학들은 강력한 등록금 인하 압력에 직면할 것이다. 수준이 되는 학생들을 받고자 한다면 현 수준의 등록금으로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더구나 이 인하 압력에는 사실상 하한선도 없을 것이다. 결국 사립대학들은 자기 값어치에 부합되는 등록금을 책정하지 않고 뻥 튀기 등록금을 고집하면 살아남기 어렵게 될 것이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반값 등록금보다 국립대학 무상화, 이게 진보의 가치에도 보다 더 부합하는 안이 아닐까?  

권재원·풍성중 교사 | hagi8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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