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4일 화요일

선정적인 성폭력 보도, 범죄 예방에 전혀 도움 안 된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04일자 기사 '선정적인 성폭력 보도, 범죄 예방에 전혀 도움 안 된다'를 퍼왔습니다.
[긴급기고] 과장된 공포가 피해의식 내면화… 남성에 대한 의존성, 성폭력의 악순환 구조 고착화

연일 성폭력과 관련된 뉴스가 나온다. 지난 몇 달 거의 매일 포털 사이트 메인에 성폭력 뉴스를 본 것 같다. 지난 주 금요일만 해도 ‘잠자던 여아 이불 째 납치 성폭행. 어떻게 이런 일이(나주 7세 여아 성폭행사건)’라는 충격적인 보도가 아침신문과 뉴스에 나오더니 오후에는 ‘집안에 숨어 있다가 주부 성폭행 시도‘라는 뉴스가 포털 사이트 메인에 떴다. 주말 내내 온통 성폭력 뉴스뿐이다. 빈번한 성폭력 관련 뉴스는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그럴수록 대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이웃이 범인인 ’통영어린이 성폭행사건‘이나 ’나주 7세 여아 성폭행사건‘은 그동안 모르는 사람만을 경계했던 아동성폭력에 대한 편견을 바꾸는데 일조할 수 있다. 아동성폭력은 대부분 아는 사람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주변인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은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폭력 보도는 많이, 자주 하는 것이 성폭력 근절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언론에 보도되어 시선을 끄는 사건들은 대부분 전형적인 성폭력의 모습은 아니다. 실제 성폭력의 80%는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하고 심한 폭력이 개입되거나 살인까지 이루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언론에서는 극소수의 ‘싸이코패스’나 ‘환자’에 가까운 자극적인 사건을 주로 선택한다. 이는 성폭력에 대한 한정되고 왜곡된 정보만을 전달할 가능성이 크다. 성폭력에 대한 미디어의 예외적인 관심이 만들어 낸 또 다른 오해는 요즘 성폭력 사건이 부쩍 늘었다는 착각이다. 성폭력의 발생비율은 신고율과 관계가 높아 판단하기 어렵다. 수치만 놓고 보자면 서구 국가의 아동성폭력 발생률이 우리보다 훨씬 높다. 신고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처벌수위뿐만 아니라 피해에 대한 주의를 더욱 많이 기울이는 요즈음 성폭력이 더 많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세상이 갈수록 흉흉해지고 있다는 판단은 실제적인 범죄율에 기초하기 보다는 언론의 보도방식에 대한 정서적 반응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 성폭력 관련해 언론의 힘은 지대하다. 최근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함께 필자가 수행한 연구에 의하면 주로 언론의 보도를 통해 여성들은 성폭력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두려움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극단적인 성폭력 사건에만 높은 빈도로 쏠리는 언론보도 방식은 그 선정성이나 과도한 공포의 확산 때문에  역기능이 큰 보도로 서구 문화권에서는 오랫동안 비난받아왔다. 특정의 극단적인 사건에 대한 과장된 보도는 일반적인 성폭력 발생에 대한 관심과 대처능력을 오히려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성폭력 외의 다른 중요한 현실을 가리며 강경한 공안통치의 명분이 되기도 한다. 유괴나 아동 성폭력 등 큰 불안을 낳을 범죄를 알리면서 치안에 대한 강경대처를 통해 지도자의 리더십을 국민에게 인식시키는 것은 많은 우파정권에서 사용해온 방법이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이후 이전 정권의 몇 배 이상의 성폭력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동성폭력사건에 직접적 개입을 즐겨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동이 납치당할 뻔했던 사건을 직접 해결하려고 이 대통령이 경찰서를 방문했던 모습은 꽤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0년 부산 여중생을 성폭력 살해하고 엄청난 언론보도를 이끌었던 김길태 사건도 그렇다. 갑자기 언론이 이 사건에 폭발적인 보도를 시작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한 관심을 보인 직후였다. 검거 된 이후에도 온갖 기사로 거의 보름여를 끌었던 김길태 사건을 보도하면서 법무부장관이 보호감호제의 재도입을 천명하였던 것을 우연의 연속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성폭력 두려움은 성폭력 피해와 또 다른 차원에서 여성에게 문제가 된다. 과장된 공포로 여자아이를 보호할수록 여자아이들은 자기 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우고 트라우마적 피해의식을 쉽게 내면화한다. 아동보호는 아이 자신보다는 어른과 사회가 자연스럽게 수행해야할 덕목이지 아이에게 공포와 피해의식을 강조하고 자기 몸단속을 강조해서 해결될 수 없는 일이다. 자기 몸단속, 피해의식은 여성이나 아이가 피해를 입을 경우 자기 비난을 키우고 과장되게 피해를 확대해석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공포가 큰 여성일수록 막상 그런 현실에 닥쳤을 때 오히려 대처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무력함에 빠지게 된다. 

성폭력의 두려움은 여성의 삶을 위축시키고 주체적 활동 범위를 제한한다. 상당수의 여대생이 부모님의 귀가시간 통제를 받고 있다. 명분은 성폭력 위험이다. 여성은 보호의 대상으로 한정되고 남성 일반에 대한 과장된 피해의식을 키우는 동시에 보호자로서 남성에 대한 의존성을 강화시킨다.  여성이 위축되고 옷차림을 조심하고 밤길을 나다니지 않는 등 자기를 통제하는 여성성을 내면화할수록 남자다움은 더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형태로 규정된다. 여성의 성폭력 두려움이 커질수록 일상적인 성폭력의 이유가 되는 성별 고정관념이 더욱 강화되는 성폭력의 악순환 구조가 계속된다.  

성폭력 보도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성폭력 사건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정성과 과장된 공포의 확산에 대한 성찰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성폭력 보도를 많이 한다고 정의가 실현되고 성폭력 없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권인숙 명지대 교수 | medi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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