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7일 월요일

‘무슬림의 무지’, 이것까지도 표현의 자유일까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17일자 기사 '‘무슬림의 무지’, 이것까지도 표현의 자유일까'를 퍼왓습니다.
[이안의 컬처필터] 표현이 아니라 모욕이고 공격, 선전포고에 다름없는 영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 이전 까지는 대부분의 영화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뒷모습으로만 재현되곤 했다. 인간이 감히 ‘신의 아들’의 모습을 흉내내는 것은 신성모독이라는 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커다란 교회 건물에 새겨진 조각이며 그림, 스테인드 글래스, 사사로이 부적 삼아 가지고 다니는 십자가며 성패에 원래 생김새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백인 꽃미남 캐릭터로 무수히 재현되어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굳이 영화로는 재현하기 꺼려한 것은 그 영향이 현실에 미치는 실제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14분짜리 영상물 하나가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독재와 인권 탄압, 정부의 부패 따위에 저항하는 시위의 물결이 이어졌던 ‘아랍의 봄’ 이후 안정을 되찾아가던 중동에서 불붙은 반미 시위와 무장 공격을 일으킨 영상물의 제목은 (무슬림의 무지)로 번역되고 있다. 처음 영어로 배포된 원래 제목은 (Innocence of Muslims).

그렇다면 ‘무지’로 번역되는 ‘innocence’란 어떤 말인가? 대개 ‘무지’보다는 ‘순수’ 또는 ‘순진함’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이 말은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선악의 구별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원죄 이전의 상태다. 원죄란 바로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아담이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선악을 구분하게 된 이래 모든 인간은 원죄를 지니고 태어나게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 이후 ‘세례’를 통해서만 죄사함을 받는다고 믿는다. 어찌되었든 종교든 문화든 역사든 인간은 선악을 판단하게 된 인간은 도저히 ‘순수’든 ‘무지’든 ‘innocence’한 상태에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리비아 미국 대사와 외교관들이 죽음을 당한 것을 시작으로 이집트 카이로 미국대사관이  공격당하고 튀니지, 팔레스타인 등 중동 지역 전역을 넘어 이제 아프리카와 아시아까지 번지고 대상도 미국뿐 아니라 영국, 독일 등 서방 국가들로 반미시위의 불길이 일어나도록 한 이 제목의 영상물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집트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한 기독교 분파 콥트 교도인 유대계 미국인이 제작했다는 (무슬림의 무지)는 이슬람 최고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어린 아내 말고도 여러 여자를 탐하는 바람둥이, 변태적인 소아성도착자, 그러다 부인들에게 신발로 등짝을 두드려 맞는 한심한 팔푼이, 심지어 자기 할머니 팔 다리를 찢어 죽이는 거열형에 내모는 잔혹한 괴물로 묘사한다. 

이렇듯 인물의 성격을 비틀고 조롱하는 것을 넘어서서 전세계 인구의 25%나 되는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욕으로 쓰이는 당나귀를 이슬람교도에 비유하는가 하면, 선지자인 무함마드가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율법을 어기고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쿠란을 왜곡하는 장면이나, 기독교의 신약성경과 유대교 율법 토라를 짜맞춘 것이 이슬람이라고 말하며 근본을 부정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제작자 나쿨라 배슬리 나쿨라는 유대인 100명으로부터 500만 달러를 후원받아 이 영화를 찍었고, ‘샘 배실’이라는 지어낸 이름으로 지난 7월에 먼저 14분짜리 동영상으로 압축 편집한 영상물을 유튜브에 올렸다. 만듦새 엉성하고, 내용이며 배경이며 캐릭터까지 허술하기 짝이 없다보니 별로 주목하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영어로 된 이 영상물을 이슬람 경전을 불태우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슬람과 개신교의 갈등과 충돌을 부추기면서 매해 9월11일 ‘국제 무함마드 심판의 날’ 행사를 벌여온 개신교 근본주의자 목사 테리 존스가 앞장서 홍보하자 반 이슬람 운동가들이 아랍어판으로 만들어 퍼뜨리기 시작하면서 아랍권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미국 정부는 유튜브 쪽에 동영상 삭제를 요청했으나 유튜브를 소유하고 있는 구글은 지난 13일 성명을 통해 (무슬림의 무지)가 '종교에 근거해 대중을 선동하거나 공격을 하게 하는 연설을 포함한 적대적 연설은 금지한다'는 자체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있기 때문에 ‘영상에 대한 제한은 정치적 압력보다는 현지 법률에 따라야 한다’며 삭제를 거부했다. 표현의 자유를 지킨다는 명분이다.

이에 대해 미 합참의장 마틴 뎀프시는 이 영상물은 포르노라고 규정하며 유튜브가 아니라 테리 존스에게 자제를 당부하는 지경이 되었다. 더구나 사태가 이 지경이 되고서야 영상물이 미치는 파장을 알게 된 출연자와 제작진들은 “영화의 각본이 많이 수정되는 등 우리 모두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돼 충격을 받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처음 제목은 (사막의 전사들)이었으며, 2000년 전에 이집트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관한 영화일 뿐 이슬람을 모독하는 내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슬림의 무지)는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기에는 이미 큰 죄를 저지른 셈이다. 출연진과 제작자를 속여 촬영에 임하게 하더니, 만들어진 영상을 악의적으로 편집해 전 인구의 4분의 1을 모욕하기 위한 목적으로 관람 대상에 대한 아무런 제한이나 안전장치 없이 배포된 것이다. 

더구나 스스로를 ‘이슬람 문제에 관심 있는 아랍 사상가 제작자’라고 밝힌 나쿨라는 미국 대사의 피습 사실은 슬프지만 영화를 만든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며 앞으로 영화 전편을 올리는 것도 생각 중이란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과 가족이 피해를 볼까 두려워하고 있단다.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고 만든 영상물이 아니라 바라던 것보다 영향이 더 커진 것이 그가 몰랐던 한 가지고, 그것은 ‘순수’하지도 ‘무지’하지도 않다. 교활하고 파렴치하다.

포르노가 다루는 욕망과 배설과 음탕함이 사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무슬림의 무지)처럼 이토록 전방위적으로 공공연히 다른 종교에 대한 적대를 드러내고 부추기는  영상물은 표현의 자유를 넘어 ‘선전포고’에 다름 아니다.

종교적 광기를 자극해 서양 세계의 권력과 부를 체계적으로 구조화하면서 악명 높은 흡혈귀 ‘드라큘라’의 전설을 만들었던 십자군 전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평화가 무너지면 웃음 짓게 될 집단은 무기를 팔아먹어야 배가 부른 현대판 흡혈귀 ‘군수산업’이다. 이 군수산업을 틀어쥐고 있는 나라, 거기에 뒷돈을 대고 있는 세력은 누구인가? 

(아이언 맨)이 중동 무장 세력에게 무기를 팔러 갔다가 자신이 된통 당한 다음에야 정신 차리고 본 것은 군수산업으로 떵떵거리고 살아왔던 자신의 원죄였다. 심장을 다치고서야 평화를 지키려는 아이언맨을 못마땅해 없애려하는 건 군수산업을 유지하고 확장하려는 미국 정부였다. 

지구 평화를 지키는 것, (어벤저스)에게 맡길 수 없는 현실이건만 (무슬림의 무지)는 기어코 분쟁을 도발하는 불을 붙였다. 이런 파렴치한 짓거리를 '영화'의 범주에 넣고 보는 게 참담하다. 이 따위는 그저 불쏘시개일 뿐인 것을.

이안 영화평론가 | angela41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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