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일 토요일

쥐약 먹고 죽었던 ‘구미호’가 살아났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8-31일자 기사 '쥐약 먹고 죽었던 ‘구미호’가 살아났다'를 퍼왔습니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 소백산 자락의 국립공원종복원센터 여우복원팀 야외방사 계류장에서 자연 방사를 기다리고 있는 토종 여우. 풍기/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생명 / 소백산 가는 여우들
동물 종 복원은 산속 깊은 곳에 해당 동물 몇 마리쯤은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시작합니다. 산속에 들어가 짝을 짓고 새끼를 낳아 야생 무리의 몸집을 불리라는 것이죠. 반달가슴곰의 경우도 2000년 지리산에서 야생 개체가 카메라에 잡힌 뒤 본격적인 복원사업이 시작됐고 지금은 27마리가 지리산에 삽니다.(아직 야생 무리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올가을 소백산에 보내질 여우는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토종 ‘붉은여우’입니다. 이들이 어디선가 살고 있을 야생의 동지를 만나길 기대해봅니다.

1960년대 쥐잡기 운동과
대대적인 수렵열풍 속에서
생존력 강한 여우들 대몰살

다음달 2마리 야생방사
죽은 고기 산 고기 안 가리고
땅속에 묻어 꺼내 먹는 습성
긴 굴 파 조그만 방 만들기도

여우는 공동묘지에 산다고 전해진다. 구미호 전설에서도 공동묘지가 등장한다. 조선시대 사료에서 동물 기록을 수집·분석하는 김동진 서울대 수의대 연구교수는 여우가 땅을 파헤치는 습성이 있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조선시대 양반은 몇 달 동안 무덤을 지켰지요. 반면 민중은 사람이 죽으면 갖다 버리기 급급했어요.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땅을 얕게 파고 묻었죠. 풀로 대충 덮어두는 ‘초장’을 한 사례도 있고요. 얕은 땅은 여우가 다 파고 들어가지요. 여우가 썩은 고기를 먹잖아요.”우리가 여우에 대해 아는 건 많지 않다. 여우의 생태에 대해 기록한 문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우는 동물학이 연구되기도 전에 한반도에서 사라졌다. 논문 한 장조차 남겨진 게 없다.그런 여우가 야생으로 돌아간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산하 종복원기술원은 여우 야생방사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북 영주의 중부복원센터에서 일하며 이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정철운 연구원이 말했다.“여우가 일본에선 도심지에서 출몰하고 미국에선 야생의 초지에서 나타나요. 한국에선 어디에서 살았을까요? 민담이나 전설 말곤 생태적인 기록이 없어요. 한국 여우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니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지난 29일 종복원기술원이 운영하는 경북 영주시 순흥면의 여우 야생적응 훈련장을 찾았다. 훈련장은 9600㎡(2900평) 넓이로, 작은 산 하나에 울타리를 쳐 만들었다. 이 훈련장에 여우 5마리가 살고, 개중 2마리는 10월 소백산 산중으로 거처를 옮긴다. 모두 한국 토종 ‘붉은여우’와 유전적으로 같은 종으로, 중국 등에서 들여와 번식한 개체들이다. 이날 여우들은 태풍 볼라벤과 덴빈 때문에 실내 사육장에 들어와 있었다.여우는 겁이 많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개를 낮추곤 귀를 쫑긋 세운 채 불안스럽게 쳐다봤다. 정 연구원이 설명했다. “올해 가을 방사될 2마리는 지난 5월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인간 접근이 차단됐어요. 그래서 사람을 모르죠. 먹이를 줘도 사람 없을 때 먹어요.”이 2마리는 지난 27일 서울대공원에서 야생적응 훈련장으로 왔다. 나머지 3마리는 지난 5월에 미리 와 터전을 잡았다. 5~6살로 추정되는 3마리는 한때 개인이 사육했는데도 오자마자 여우의 본성을 되찾았다.“생전 사냥을 해보지도 않았는데 바로 꿩과 메추라기를 잡아먹더라고요. 쥐를 풀어놓으니까 툭툭 건드리면서 따라다니다가 물어 죽여요. 그다음엔 여기저기 파묻어놓지요. 죽은 고라니도 마찬가지였어요.”

경북 영주시 풍기읍 소백산 자락의 국립공원종복원센터 여우복원팀 야외방사 계류장. 풍기/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여우는 먹이를 땅속에 묻고 나중에 꺼내 먹는 습성을 지녔다. 굴도 판다. 긴 굴 사이에는 조그만 방을 만들기도 한다. 공동묘지를 파헤치는 여우 이야기도 이와 관련됐을 것이다. 야생적응 훈련장의 여우들도 죽은 고기와 산 고기를 가리지 않는다.한반도에서 여우가 갑자기 사라진 건 ‘미스터리’다. 다른 포유류와 달리 여우는 잡식성이 강해 서식지가 훼손되더라도 생존력이 강한 편이다. 길고양이처럼 민가 주변에서 먹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도 여우의 개체수가 줄어들기는 했으나, 우리나라처럼 아예 사라진 경우는 흔치 않다.전문가들이 멸종 원인으로 추정하는 건 1960년대 대대적으로 벌어진 ‘쥐잡기 운동’이다. 1961년 농림부는 쥐잡기 운동을 선포하면서 이듬해 8억2900만환의 예산을 책정한다. 신년 예산이 6900억환이었으니, 한해 예산 0.1% 이상이 쥐잡기 운동에 편성된 것이다. 장경순 농림부 장관은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예산심사특별위원회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쥐 한 마리가 하루 10g의 곡식을 없앤다. 7497만마리로 추산되는 전국의 쥐에 적용하면 1년 동안 쥐에게 빼앗기는 전국의 양곡은 대일수출 미곡보다 훨씬 많은 182만섬이 된다.”여우는 쥐약에 의한 ‘2차 중독’으로 대규모 몰살됐을 가능성이 크다. 전국에 뿌려진 쥐약을 먹고 죽은 쥐를, 여우가 먹고 죽은 것이다. 또다른 원인은 1960년대 불어닥친 수렵 열풍이다. 농림부는 1965년 10월 ‘사냥 붐’으로 들짐승이 줄어들고 있다며 여우와 늑대, 노루, 족제비 등 10종을 금수조수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이미 여우는 시야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1970년대 이후엔 생포나 사체 발견이 뉴스가 되었고 1980년대엔 시야에서 사라졌다.이러던 중 2004년 강원도 양구군 대암산 자락에서 ‘낭보’가 전해진다. 20여년 만에 여우 사체가 발견된 것이다. 환경부는 여우가 이 지역에 살 것이라고 추정하고, 무인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3년간 조사를 벌였다. 배설물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등 결과는 실망적이었다. 그다음에 이뤄진 건 주민들에게 ‘목격담’을 묻는 청문 조사였다. 국립공원 20곳 주변 주민들에게 물어본 결과, ‘1980년대 목격’이 1건, 1990년대 1건, 2000년대 2건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환경부는 ‘여우가 어디엔가 살아있을 것’이라고 봤다. 곧이어 여우의 야생방사를 통한 복원 사업을 결정했고, 덕유산, 소백산, 오대산 중 어느 산이 야생방사 환경에 적합한지를 점검했다. 특히 소백산의 경우 “2000년대에 도솔봉 근처에서 한 마리를 목격했다”는 증언을 얻어냈다. 위협 요인이 적고 쥐의 서식 밀도가 높은 소백산이 최종 선정됐다.여우의 방사는 다른 종에 비해 어려운 편이 아니다. 캐나다는 북미 대륙에서만 사는 스위프트여우가 사라지자, 앨버타 주와 서스캐처원주 남쪽에 1983~97년 942마리를 방사했고, 현재는 1000마리 이상이 서식하는 등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엔 코요테가 잡아먹어 개체군의 3분의 1에서 2분의 1이 사라지기도 했다.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올해 가을 여우가 소백산에 들어가면 어떤 종과 경쟁관계를 이룰지 모른다. 코요테처럼 직접 위협하는 동물은 없겠지만, 삵·너구리·오소리·담비 등과 먹이를 두고 경쟁할 수 있다. 이들과 경쟁을 포기하고 마을에 내려올 수도 있을 것이다. 정 연구원이 말했다.“문제는 사람이죠. 마을 다니면서 쥐약 놓지 말라, 큰 개는 묶어 달라, 올무 놓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고 있어요.”

영주/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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