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0일 월요일

가난한 당신들이 새누리당 찍는 걸 ‘자해선거’라 부르는 이유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09일자 기사 '가난한 당신들이 새누리당 찍는 걸 ‘자해선거’라 부르는 이유'를 퍼왔습니다.
[서평] ‘돈+가치+언론’ 복합체 선거 끝나면 가면벗고 정체를 드러내는 이들

지난 4·11 총선이 끝난 뒤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조사한 결과는 재미있는 현상을 보여준다. 월 소득이 100만 원 이하인 계층에서는 보수 여당을 찍은 비율이 76.2%, 101만~200만 원은 49.7%, 201만~300만 원인 계층은 48.6%였다. 500만 원 이상인 계층은 45.1%가 보수 여당을 찍었다. 놀랍게도 소득이 낮을수록 보수정당을 더 지지한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미국 50개 주에서 가장 가난한 웨스트버지니아 주 유권자 56%가 조지 부시에게 투표한 것이다. 미국은 조지 부시가 집권한 8년 동안 두 번의 전쟁을 치렀다. 부시 집권 말기였던 2008년에 터진 월스트리트 금융위기는 전 세계 경제를 휘청거리게 했다.


미국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토마스 프랭크 역시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 대해 궁금해 했다. 프랭크는 해답을 얻기 위해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캔자스 주를 들여다봤다. 그는 정치가와 풀뿌리 운동가 34명을 만나 인터뷰하며 그 이유를 밝혀나갔다. 캔자스는 19세기 미국 진보 개혁운동의 온상이었지만 극우 지역으로 바뀌었다.


캔자스는 미국의 축소판이다. 미국 경제의 모든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캔자스시티 외곽의 부자 동네 존슨 카운티에서는 사무직노동자들이 라떼를 마시면서 사업계획을 짜고, 위치토에서는 노조에 가입한 육체노동자들이 항공기를 제작하는 공장에 다닌다. 가든시티에서 서쪽으로 벗어나면 저임금의 이주민 노동자들이 소를 도축한다. 그 중간지대에서는 농민들이 세상에서 가장 비옥하고 곡물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농지를 일군다.


캔자스 주는 레이건-부시 정권이 밀어붙인 규제 철폐와 민영화, 자유방임 정책으로 병들었다. 농촌인구는 감소하고 소도시는 해체됐다. 대도시들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부자들은 보안장치가 설치된 원격 제어 대문 안에서 화려한 삶을 영위한다.


캔자스에는 격노한 농민과 계급의식을 가진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과거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분노를 내뱉는다. 그런데 주민들의 요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연방 정부의 농업정책을 폐기하라, 공공시설을 민영화하라, 누진세를 철폐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두고 “오늘날 캔자스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황금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을 수 있게 좀 도와달라는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이 책의 옮긴이 김병순씨는 캔자스 주민들이 이처럼 극우로 돌아선 이유에 대한 프랭크의 분석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2000년 미국에서 보수대반동을 일으켰던 공화당의 주도 세력은 과거 전통적인 미국의 보수 중도파와 달리 네오콘이라고 불리는 기독교 우파였다. 이들은 캔자스 민중의 불만과 우려를 기독교 근본주의와 절묘하게 결합시켜 공격의 화살을 모두 자유주의 민주당과 지식인들에게 돌렸다. 민중들의 고단한 삶과 지역의 피폐함이 경제 구조와 그에 따른 계급 문제임에도 본질적인 문제는 피한 채 낙태와 동성애, 진화론, 총기 소지 문제와 같은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문화 현상에 민중의 분노를 집중시킨 것이다. 기독교 우파는 결코 경제 문제를 정치 의제로 내세우지 않는다.”


캔자스에서 기독교 우파가 득세하기 시작한 것은 1991년 낙태 반대 운동이 성공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프랭크는 캔자스가 극우 지역으로 바뀐 이유를 단순히 공화당 보수 우파의 치밀한 음모 때문만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미국 민중들의 삶이 클린턴 집권 기간에도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1996년 클린턴은 중간선거에서 대패한 뒤 중도층을 아우르는 삼각화 전략을 썼다. 그 사이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자들이었던 노동자와 농민, 서민층은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기 시작했다. 반면 “공화당의 기독교 우파는 갈 길 잃은 민중들의 분노를 문화 영역으로 돌리며 자신들이 바로 노동자, 농민을 위한 정당이라며 나름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옮긴이 김병순씨는 “지난 4·11 총선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 해묵은 이념 논쟁, 세대 갈등과 성차별을 부추기는 막말 논란은 정작 중요한 정책 논쟁은 뒷전으로 내몰았다”며 “정권 편향적인 공영방송과 강력한 주요 보수 언론, 매우 정치적인 보수 기독교계가 힘을 모아 이런 분위기로 몰아가는 행태는 프랭크가 책에서 묘사한 미국 기독교 우파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진단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보수파의 벤치마킹 능력은 탁월하다는 것.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토마스 프랭크 지음/ 김병순 옮김 / 갈라파고스 펴냄
김씨는 “캔자스 주를 비롯해 미국의 중서부 지역이 꾸준하게 공화당을 지지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경상도 지역은 한결같이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며 대구 경북지역의 보수주의 정서는 캔자스에 견줄 만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투철한 사명감으로 보수 이념을 전파하고 선거에 참여하는 민중들이 있다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극우적 성향의 보수 우파와 기독교, 수구 언론이 결탁할 때 그리고 진보 세력이 경제 문제를 기반으로 하는 계급 문제를 도외시하고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계산기만 두드릴 때, 민중들은 경제 상황이 악화될수록 점점 더 냉소적이 되고 훨씬 더 보수적으로 바뀔 수 있다.”
장행훈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추천사에서 “프랭크는 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가치를 강조하는 ‘돈+가치(종교)+언론’ 복합체가 선거 때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지만 선거만 끝나면 가면을 벗고 기업인으로 돌아가 그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노동자와 서민의 이익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경고한다”고 밝혔다. 

조현미 기자 | ssal@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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