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8일 화요일

교도소, 수감자 구독신문 가위질


이글은 미디어스 2012-09-17일자 기사 '교도소, 수감자 구독신문 가위질'을 퍼왔습니다.
‘자신의 치부, 수용자 인권’ 드러내기 싫어

2009년 11월 부산구치소는 구치소장을 다룬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의 기사를 삭제했다. 구치소장의 예산 유용 혐의를 폭로한 기사였기 때문이다. 당시 국제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이모 부산구치소장은 법무부의 정기 감사 직후 사표를 제출했다. 이모 소장은 국감에서 현금으로 쓸 수 없는 기관운영비를 현금으로 만들어 사용해 지적을 받았다.
또 부산교도소는 2011년 교도소장이 체육대회 협찬금 등을 유용한 사실이 감사 결과 밝혀져 면직당한 기사도 삭제했다. 당시 부산교도소장은 민간인인 교정협의회 위원에게서 협찬금을 받아 이 중 150만 원가량을 유용한 혐의를 받았다.

▲ 천주교 인권위가 공개한 부산교도소 '열람 제외 기사 삭제검토부' 캡처화면. 부산교도소는 소장이 법무부 감사로 면직 당한 기사를 검열, 삭제했다. 당시 부산일보 기사에는 당시 부산교도소장이 민간인인 교정협의회 위원에게서 체육대회 협찬금을 받아 이 중 150만 원가량을 유용한 혐의를 받은 것으로 보도됐다. 또 당시 이를 보도한 부산일보, 국제신문은 해당 기사에서 소장이 면직된 것은 협찬금 뿐 아니라, 교도소 내 '인사청탁'과 관련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17일 ‘교도소·구치소 신문 검열 실태’를 공개하고 “교도관 범죄 기사·신문 사설까지 무차별 가위질되고 있다”며 “법적 근거 없는 신문 검열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형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아래 형집행법)’은 수용자가 자신의 비용으로 신문·잡지나 도서를 구독할 수 있고, 소장은 유해간행물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독을 허가해야 한다. 하지만 일선 교도소나, 구치소는 ‘수용자 교육교화 운영지침(법무부 예규 983호)’에 따라 일부 기사, 광고, 내용 등을 ‘수용질서 교란’이란 이름으로 삭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천주교 인권위원은 “수용 처우에 관한 기사, 특히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법원 판결이나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을 다룬 기사를 검열하는 것은 동일한 처우 문제에 대해 다른 수용자가 문제 제기하는 것을 가로막기 위한 것”이라며 “(일선 교도소와 구치소는)판결이나 결정 내용을 검열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처우 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가 공개한 ‘교도소·구치소 신문 검열 실태’에 따르면 교도관 범죄, 수용자 처우개선 요구나 판결 기사가 주로 검열, 삭제되고 있다.

▲ 서울구치소 '열람제외 삭제 검토부' 캡처화면. 2009년 12월 18일자 문화일보 “교도행정 구멍 낸 ‘부패 교도관’” 기사를 ‘안전한 수용관리와 질서유지’를 이유로 검열, 삭제해 수용자에게 배포했다.

서울구치소는 2009년 12월 문화일보 기사를 삭제했다. 이 기사는 서울구치소 전·현직 교도관들이 구치소 내 반입이 금지된 물품을 몰래 수용자들에게 전해 주고 금품을 받아 오다가 검찰에 적발됐다는 내용을 전했다.
또 서울구치소는 2012년 4월 수감 중인 전일저축은행 전 대주주 은인표 씨로부터 각종 편의 제공을 빌미로 89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한모 출정과 교위에 대한 문화일보 기사를 ‘안전한 수용관리 및 질서유지’를 이유로 삭제했다.
안양교도소와 여주교도소 역시 ‘수용관리’를 이유로 같은 내용의 한국일보, 국민일보 기사를 삭제했다.
2010년 2월 청주교도소는 자신의 소속 교도관과 수용자들의 불·탈법행위를 고발한 충청투데이 기사를 이틀 연속 삭제했다. 2010년 10월 인천구치소 역시 소속직원이 택시기사를 성추행한 혐의로 입건됐다고 보도한 인천일보 기사를 삭제했다. 부산교도소 역시 2011년 8월여고생 앞에서 성기를 노출하고 자위행위를 한 소속 교도관에 대한 부산일보, 국제신문 기사를 삭제했다.

▲ 부산교도소 '열람제외 삭제 검토부' 캡처화면. 2011년 8월 4일자 부산일보 “‘바바리맨’ 30대 교도관 입건” 기사를 수용자 교육교화 운영지침(법무부 훈련 예규 944호) 54조 도주, 자살, 난동 등 교정사고에 관한 기사로서 수용질서를 현저히 교란할 우려가 있는 기사로 보고 삭제했다. 삭제된 기사는 부산교도소에 근무하는 직원이 여고생 앞에서 성기를 노출하고 자위행위를 해 형사 입건됐다는 내용이다.

법원판결이나 국가인권위원회 결정 보도 역시 검열을 거쳐 삭제당하고 있었다. 지난 4월 부산구치소는 수용자가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한 보도 기사를 삭제했다. 이 기사는 부산구치소 수용자가 소장을 상대로 징벌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는 판결을 전했다.
또 부산교도소는 2011년 7월 국제신문의 “부실 진료로 수감자 사망, 부산교도소 등 국가 책임” 기사를 삭제했다. 당시 수용자는 과도하게 계구(보호장비)를 사용해 입게 된 척추장애로 생긴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진통제를 상시 복용하다 약물중독으로 자살하게 됐다며 유족이 부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부산지법은 원고에서 3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11년 6월 충주구치소는 인권위가 가림막 등 차단시설이 없는 곳에서 수용자의 속옷을 벗겨 몸 검사를 한 것은 인권침해라고 결정했다는 중앙일보 기사를 삭제했다.
인권단체나 수용자의 처우개선 요구를 담은 기사를 삭제한 사례도 있었다. 2008년 10월 김천소년교도소는 목포교도소 수용자가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청와대에 청원했다가 징벌방에 감금됐다고 보도한 한겨레 기사를 삭제했다.

▲ 부산구치소의 '열람제외 삭제 검토부' 캡처화면. 부산구치소는 재소자 관리를 비판한 국제신문의 사설 ‘부산구치소 또 자살사건, 재소자 관리 문제없나’를 삭제했다. 부산구치소는 “도주, 자살, 난동 등 교정사고에 관한 기사로서 수용질서를 현저히 교란할 우려”를 이유로 해당 사설을 삭제했다.

수감시설의 문제점과 수용자 인권 보호 등을 지적한 사설을 삭제한 경우도 있었다. 경남도민일보, 경인일보, 부산일보, 국제신문 등 지역신문이 수용자 인권을 지적하는 사설을 부산교도소, 부산구치소, 창원교도소, 안양교도소 등지에서 삭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설을 삭제한 경우는 부산 교도소가 3건으로 가장 많았다.
수용자 기고문을 삭제한 경우도 있었다. 2009년 3월 수원구치소 평택지소 수용자 고희철 씨가 면회자 접견 때 교도관 배석은 인권침해라는 주장을 담을 한겨레 ‘왜냐면’ 기고문을 평택지소가 삭제했다. 2010년 10월 부산구치소는 수원구치소 수용자 이용덕 씨의 한겨레  ‘왜냐면’ 기고문 역시 삭제했다.
또 해외 토픽으로 보도된 집단 탈옥, 교도소 내 폭동 등의 기사 역시 통영, 청주, 대전교도소 등에서 삭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공개된 ‘신문검열 실태’는 지난 5월 전국 48개 교도소·구치소 및 구치지소를 대상으로 진행한 정보공개청구 결과이다. 이 가운데 경북북부제1교도소, 경북북부제2교도소, 경북북부제3교도소, 울산구치소 등 4개 구금시설은 검열 현황을 거부했다.
천주교인권위는 “정보를 적극 공개한 나머지 44개 교도소·구치소의 판단과 배치된다”면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4개 구금시설이 정보를 비공개한 이유가 불법적이거나 과도한 검열 사례가 외부에 드러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북1·2·3 교도소와 울산구치소는 ‘열람제외기사 삭제 검토부’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교정에 관한 사항과 의사결정과정 등이 포함되어 있어 공개할 경우 직무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해명했다.

도형래 기자  |  media@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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