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8일 토요일

[사설] 내곡동 특검 거부권이라니 국민 우롱하나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07일자 기사 '[사설] 내곡동 특검 거부권이라니 국민 우롱하나'를 퍼왔습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최근 국회를 통과한 내곡동 사저 특별검사법에 대해 엊그제 기자들에게 이명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강력하게 내비쳤다고 한다. “결정은 대통령이 (해외순방에서) 돌아온 뒤” 할 것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법 자체만 보면 받아들이기 곤란한 내용”이라며 ‘위헌’ 주장을 폈다. 사건 당사자인 대통령의 의사도 묻지 않고 그런 주장을 했을 리는 없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이 처리돼온 과정을 돌이켜보면 거부권 행사가 법리적·정치적으로 설득력이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이 그런 발상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청와대 관계자는 헌법재판소 판례를 거론하며 특별검사가 대통령과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야당이 특검을 추천한다는 점 때문에 그런 논리를 펴는 모양이나 현직 대통령이 사건의 핵심이란 점을 고려하면 그런 주장 자체가 타당성이 없다. 그동안 줄곧 대한변협이나 대법원이 특검을 추천해왔다고는 하나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 그들이 과연 현직 대통령의 비리를 엄정하게 추궁할 인사를 추천할 수 있을까? 오히려 여야 합의대로 야당이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중 1명을 임명하는 게 수사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도 이미 여야가 어렵게 합의를 이룬 사항을 청와대가 뒤집는다는 건 의회정치를 무시하는 발상으로 간주될 수 있다. 여당 원내대표조차 “(검찰 수사가)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는 데 미진하다”며 특검의 필요성을 인정한 사안이란 점도 간과할 수 없다.대통령이 자기 재산 챙기려 국고를 축냈다는 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것 자체가 국가적으로 창피한 일이다. 특검이 나서야 할 정도로 국민적 의혹이 크다면, 어떤 수사라도 감수하고 모든 걸 책임지겠다는 자세로 나오는 게 지도자의 도리다. 그런데 참모를 내세워 거부권 운운하며 책임을 모면해보겠다고 한다면 이는 공인의식이나 책임의식을 갖춘 국가지도자의 자세라고 할 수 없다.청와대의 거부권 시사가 지난 2일 이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단독 회동 이후 나온 사실 또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여당이 국회 법안 처리 단계에서부터 소극적이었던 점을 들어 야당 일각에서는 청와대와 여당이 ‘짜고 하는 정치쇼’를 벌이는 게 아니냐는 의문까지 제기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박 후보에게도 대선까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각 재고하기 바란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