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0일 목요일

“경제민주화 핵심은 재벌개혁…금산분리가 최우선 과제”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19일자 기사 '“경제민주화 핵심은 재벌개혁…금산분리가 최우선 과제”'를 퍼왔습니다.

지난 17일 서울 필운동 서울경제사회연구소에서 만난 원로 경제학자 변형윤(85) 서울대 명예교수. 변 교수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재벌개혁”이라고 강조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인터뷰/원로 경제학자 변형윤 교수
재벌 규제하면 경제 망한단 논리
성장 혜택 독점하려는 구실 불과
장하준-김기원-이병천 논쟁 관련
“의견 다르지만 접점 찾아 정리를”

경제민주화는 10~20년 노력 필요
실천 옮길 정치세력이 집권해야
재벌 망하게 하자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일 하도록 만들자는 것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재벌 개혁입니다. 특히 재벌이 금융을 좌지우지 못하도록 확고하게 금산분리를 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올해 대선 정국의 쟁점 가운데 하나인 경제 민주화를 놓고 원로 경제학자 학현 변형윤(85) 서울대 명예교수가 내놓은 해법은 명쾌했다. “기득권 세력은 ‘재벌을 규제하면 경제 성장 못한다, 나라 경제 망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퍼뜨리는데, 성장의 혜택을 독점하려는 구실에 불과하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국내에 근대 경제학을 정착시킨 선구자이자 ‘학현학파’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노학자의 말이라 무게감이 남달랐다. 최근 자신의 삶과 사상을 제자 윤진호 인하대 교수와의 대화로 정리한 책 (지식산업사)를 펴낸 그를 지난 17일 서울 필운동 서울경제사회연구소에서 만났다.변 교수는 시장만능주의를 내세우는 주류경제학을 비판하며, ‘효율보다 형평, 성장보다 분배’를 추구하는 경제학 전통을 만드는 데 평생 노력해왔다. ‘평등과 분배의 정의’, ‘균형 발전’, ‘자립경제’ 등을 주요 가치로 삼는 경제민주화론을 역설해온 것도 이런 소신 때문이었다. 그는 “경제민주화가 오늘날 시대정신이란 사실은 확고한데, 아직 그 알짜(핵심)가 확실치 않은 것 같다”며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중심임을 거듭 강조했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 이병천 강원대 교수 등 ‘경제민주화론자’로 꼽히는 제자들 주장이 그의 영향 아래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그가 가장 강하게 비판한 것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성장지상주의’였다. 성장지상주의가 재벌의 경제력 독점을 허용하고, 결과적으로 분배 정의를 망쳐놓았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은 그 혜택이 사회에 골고루 돌아가는 것을 전제로 삼아야 합니다. 박정희·이명박 정권 등은 경제성장률에 목을 매는 ‘성장지상주의’를 내세웠는데, 기득권층 배만 불렸을 뿐 성장의 과실을 균점하는 제도적 장치는 외면했습니다.”‘성장 과실의 균점’을 위해선 재벌에 집중된 경제력을 분산시켜야 하며, 금산분리는 그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라는 생각이다. 변 교수는 박정희 정권 때 박 대통령 면전에서 당시 경제성장 정책이 서민 생활을 희생시키는 고물가 정책에 기대고 있어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된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재벌 활용론’을 내세워 김기원·이병천 교수 등과 경제민주화 논쟁을 벌이고 있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서로 다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한 덩어리가 될 수 있도록 정리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재벌을 망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도록 만들자는 겁니다. 다만 재벌 스스로 문어발식 확장을 안 하겠다고 하면 모르겠지만, 그걸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규제를 위한 일정한 제도적 장치는 불가피합니다.”대선과 관련해 변 교수는 “경제민주화를 실천에 옮길 정치세력이 ‘집권’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어떻든 간에 야권에서 정권을 잡아야 이 문제(경제민주화)를 풀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추진하려던 여러 시도들이 기득권층의 거센 반발에 막혔고, 결국 이명박 정권까지 후퇴해오지 않았습니까? 경제민주화는 몇 개 정책만으로 실현될 과제가 아니며 실천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뽑아 10년이고 20년이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그는 학문적으로 영국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을, 삶의 자세에선 일본 도쿄대 총장을 지낸 야나이하라 다다오를 자신의 모델로 꼽았다. “마셜은 경제학을 ‘인간에 관한 연구의 일부’라고 했는데, 이 말을 늘 제 경제학의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또 권력에 굴하지 않고 늘 꼿꼿이 ‘선생으로서, 연구자로서, 교수로서’ 자신을 지켰던 다다오처럼 살았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요.”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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