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0일 목요일

양경숙 사건, 창피하지도 않나?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9-19일자 기사 '양경숙 사건, 창피하지도 않나?'를 퍼왔습니다.
(박정원의 따스한 눈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지난 14일 양경숙씨 사건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양경숙 전 대표는 비례대표 후보자로 공천받게 도와주겠다는 명목으로 돈을 받았고, 나머지 세 사람은 공천받을 목적으로 돈을 줬다는 혐의를 적용해 구속 기소하였다는 것이다. 공직선거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기소 사유라고 한다.


중수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의 수사 경과 부분에 따르면, 8월 중순경 세 사람이 공천 명목으로 양경숙씨에게 40여억원을 주었다가 돌려받지 못하자 민주통합당 대표 면담을 신청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는 첩보를 자체 입수, 네티즌에게 영향력이 큰 인터넷 매체의 운영자가 국회의원 공천과 관련하여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사건이므로 신속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인지 수사에 착수한 지 10여일만인 8월25일에 4명을 체포하였고,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한 뒤, 28일에 구속영장을 발부하였으며, 이후 한차례 구속기간 연장을 하면서까지 수사를 하고 나서 9월14일에 구속 기소한 것이다. 발표대로라면 사건을 인지한 지 무려 한달이 걸렸다.

그러나 수사 결과를 보면 공천 헌금과 관련한 것은 별로 없다. 보도자료에는 양경숙씨의 정치 관련 활동 부분이 첫번째로 나와 있고, 두번째 부분에서 양씨가 모 의원을 위하여 모바일 선거인단 모집을 지원한 과정이 나와 있다.

정작 공천헌금 부분은 세번째 부분에 언급하고 있는데, 내용을 보면 양씨가 모 의원에게 공천 청탁을 하였다고 진술했다는 것이고, 공천 청탁 대가로 양씨에게 돈을 건네주었다는 이아무개씨 등이 모 의원에게 법이 정한 범위 내의 후원금을 입금했다는 사실만 분명히 하고 있을 뿐, 도와줄 것으로 믿고 양경숙 씨에게 돈을 주었다는 등의 진술이 있었다는 정도가 발표 내용의 전부이다.

보도자료에는 수수한 돈의 사용처를 추적한 결과도 있다. 사업 경비, 모바일 선거인단 관련 문자메시지 발송 등에 들어간 경비, 다수 정치인에 대한 후원금 등으로 사용된 사실은 확인했지만, 양경숙씨가 전당대회 과정에 모바일 선거인단을 모집하기 위해 수억원의 경비를 지출하였다고 한 진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실 여부의 확인과 어떤 명목으로 얼마가 쓰였는지를 특정하지는 못했다. 문자메시지를 보낸 숫자만 구체적으로 표시하고 있는데, 엄청난 금액도 아니다.

대검 중수부는 앞으로 현금화한 자금 중 일부가 정치권에 유입되었는지를 계속 수사할 예정이라면서, 당내 경선 과정에서 특정 후보를 위해 모바일 선거인단 모집을 지원하고 비용을 사용한 행위 등에 대하여는 해당 자료를 서울 중앙지검 공안부로 넘겨 정당법 위반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한다.

거창하게 보도자료라고 배포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라고 보기엔 참으로 부실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다.


합리적 의심이 드는 첫번째 부분은 중수부가 인지수사를 하게 된 경위에 있다. 8월 중순경 세 사람이 공천 명목으로 준 돈의 반환 문제로 민주통합당 대표와의 면담을 신청하는 등 반발하고 있음을 자체 첩보로 입수해 수사에 나섰다는 부분이다.

적어도 정치권에서 공천헌금 운운은 그야말로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는 사안인데 과연 민주당 측에서 대선을 목전에 두고 공천헌금 운운하는 문제 제기를 그냥 무시한 것이 사실이냐는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야말로 민주당이 거의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아니나 다를까 일부 보도를 보면 당시 민주당은 자체 진상조사까지 했으며 개인간의 투자금 반환 등의 사유인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대검 중수부가 나서기 전에 이미 민주당 내부에서 사건의 정황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민주당이 대놓고 떠들면서 자체 조사를 했을 리는 만무했을텐데 어떻게 대검 중수부가 이런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느냐는 것이 첫번째 드는 의심이다. 한마디로 누군가 내부에서 제보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당내 대선후보 경선 중에 모바일 선거를 두고 한창 시끄러운 시기였으니 이런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추측일 수도 있지만, 과도하게 포장된 양경숙씨의 동원력을 실제로 믿었던 누군가가 경선 와중에 양경숙씨의 발목을 묶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또는 이 사건을 통해 모바일 선거의 문제점을 부각해야 할 필요가 있는 누군가가 검찰에 의도적으로 제보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 의문은 과연 천하의 대검 중수부가 공천헌금 사건인지 아닌지를 모르고 달려들었겠느냐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검의 보도자료만 보더라도 공천헌금보다는 모바일 선거인단 모집 방법 등에 수사의 초점이 몰려 있다는 것이고, 더군다나 양경숙씨와 관련 있을 만한 정치인은 대개가 친노 성향의 정치인일 수밖에 없는데 의도적으로 모바일 선거와 친노 진영을 겨냥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었겠느냐는 의문이 든다.

세번째 의문은 돈을 건넨 세 사람의 황당한 행동이다. 누구를 관심있게 봐달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불법이 성립되지 않는다. 대가성이 입증되는 금품의 수수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은 양경숙씨 본인은 모 의원에게 돈을 건네지 않았다고 하는데, 검찰 발표대로라면 나머지 세 사람이 공천 과정에 도와줄 것으로 믿고 돈을 주었다고 진술했다는 것뿐이니,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큰 사람은 오히려 돈을 건네준 세 사람뿐이다.

돈이 많은 사람은 이런가? 투자금 반환 요구일 경우 그들은 단순 피해자이니 구속될 리도 만무하다. 또 앞으로 반환을 받을 수도 있는데, 공천 대가로 인식하고 돈을 건넸다고 진술하면 무슨 도움이 될까? 오히려 돈받기마저 어려워질 뿐,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상 공범이 되거나, 제공 행위로 자기들만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큰데 이런 진술을 했다니. 정말 시중에 떠도는 말처럼 바보 삼형제인가?

이미 알려진 대로라면 양경숙씨와 세 사람 간에 맺어진 투자계약서도 있다. 검찰의 보도자료를 보면 실제로 투자된 것도 검찰이 확인했다. 8월 15일 양경숙씨 자택으로 세 사람이 찾아와 투자금을 내놓으라고 독촉하는 자리에 합석했던 참고인 이아무개씨가 “언제까지 반환되지 않으면 공천헌금이라 떠들어서라도 민주당을 곤란에 빠뜨리겠다”라는 세 사람 중 누군가의 협박성 발언을 분명히 들었다고 검찰에 증언했다. 아울러 당시 세 사람 중 1인이 녹음까지 했다고 하는데, 이를 대검 중수부가 녹음 상태가 좋지 않아 공개하지 않겠다고 한 점은 앞으로 대검 중수부가 어떻게 설명하는지 지켜보아야 할 부분이다.

보도자료 끝에 중앙지검 공안부로 인계해 정당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도록 할 예정이라는 부분은 솔직히 논할 가치조차 없어 보인다. 정당법 내에서 처벌할 수 있는 부분은 금품이나 향응 등으로 선거인을 매수하는 경우가 거의 유일한 처벌 규정인데 대검 중수부 발표에서 이미 그런 부분이 없었다는 점을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슴 아픈 점은 어떤 기자가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한 말들이다. "사기라는 표현은 검찰도 언론도 한 적이 없는데, 이 말이 어디서 먼저 나온지 아세요? 민주당에서 먼저 나왔어요!"


안 그래도 검찰은 정치하는데 오히려 정치한다는 정당이 선악의 잣대와 섣부른 선입관으로 개인사기 운운하며 논평을 내는 것을 보면서 어이도 없던 참이라 말문이 막혀 있던 터였다.

또다시 그 기자는 "노무현 정신은 가치 아닌가요? 제가 보기에 양경숙씨는 전체적으로 보건대 개인적 착복도 없었고, 오랜 기간에 걸쳐 오히려 그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받은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어떻게 이렇게 비겁할 수 있는지 실망했다"라는 등의 말을 세시간이 넘도록 다그쳤다. 입맛 쓴 그 밤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분신을 시도했던 어떤 분, 이명박 정부 내내 투쟁의 맨 앞에서 싸워온 어떤 분과 통화하던 중에 그가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양경숙이 친노 아니면 누가 친노냐? 나도 도움 많이 받았다!” 그의 분노는 친노를 향한 것이 아니라 '칭노'를 향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지난 5년 동안 애꿎게 고생한 이름없는 시민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치인은 과연 누구인가?  고민 끝에 그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박정원 편집위원  |  pjw@pressbyple.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