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5일 화요일

[사설] 박근혜, 행동으로 과거사 인식 변화 진정성 보여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24일자 사설 '[사설] 박근혜, 행동으로 과거사 인식 변화 진정성 보여야'를 퍼왔습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요지부동의 태도를 보여온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결국 뒤로 물러섰다. 박 후보는 어제 기자회견을 자청해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박 후보가 뒤늦게나마 박정희 시대가 우리 헌정사와 민주주의에 끼친 폐해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특히 전임 대통령의 딸이 아니라 선거에 나선 공직 후보의 입장에서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한 것은 진일보한 면이 있다. “박 후보가 최선을 다했다”는 새누리당의 평가처럼 박 후보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고민의 결과일 것이다.하지만 박 후보의 노력을 흔연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없지 않다. 누가 봐도 박 후보의 이날 회견은 ‘두 개의 인혁당 판결’ 발언 등으로 지지율이 크게 추락한 데 따른 응급처방의 인상을 피하기 어렵다. 만약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계속했더라도 이런 회견이 나왔을까 하는 질문을 해보면 답은 더욱 명확해진다.결국 문제의 초점은 박 후보의 진정성 여부로 모아진다. 무엇보다 짤막한 기자회견 하나로 과거사 문제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기에는 박 후보의 과거 숱한 발언들과 이번 발언 사이의 간격이 너무나 아득하다. 그런데도 박 후보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이런 간극을 메우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비행기 시간’을 이유로 기자들의 질의응답도 받지 않고 원고만 읽고 떠난 것부터 실망스럽다.박 후보가 ‘대통합’을 강조하면서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해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겠다”고 말한 대목도 일방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사실 과거사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기구는 지난 정부 시절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등이 이미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과거사위원회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조사 권한을 약화시키려 한 것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었고, 박 후보 역시 이 대열에 앞장섰다. 가해자가 ‘시혜적 대통합’을 하겠다는 오만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진정한 통합은 요원하다.박 후보가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면 미래가 없다. 과거에서 미래로 가자”고 말한 대목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좌표가 잘못되면 미래의 항로도 어긋난다. 국가지도자의 과거사 인식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 후보는 과거사 인식 문제가 불필요한 정치논쟁이라는 사고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박 후보는 자신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탓할 게 아니라 스스로 진정성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멀리 국민대통합위원회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실천 가능한 일부터 행동에 옮기는 것이 순서다. 고 장준하 선생 의문사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재조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그 하나다. 박 후보의 진정성을 판단할 사람은 결국 유권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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