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1일 금요일

‘한국의 드레퓌스’, 유서대필 조작사건


이글은 대자보 2012-09-21일자 기사 '‘한국의 드레퓌스’, 유서대필 조작사건'을 퍼왔습니다. 
[우리의 주장] 대법원은 즉각적으로 ‘유서대필 조작사건’ 재심 개시하라

“수사 당시 검찰은 적어도 스스로 의도적으로 은폐한 각종 필적 자료와 세 사람이 작성한 업무일지가 한 사람이 쓴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사건을 종결하고 수사를 그만두었어야 했다. 지금은 대법관이 된 강신욱 검사와 실무 총책임자였던 신상규 검사는 적어도 이미 1991년 6월말 경 검찰청 11층 조사실에서 ‘좀 무리는 있지만 여하간 한번 해보자(재판을 하자)’고 말했을 정도로 내 무고함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재판에서 검찰의 주장이 이길 것이라는 확신도 동시에 갖고 있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만큼은 아니어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서’가 있는 한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국의 드레퓌스’로 불리는 강기훈씨가 ‘유서대필 조작사건’에 대해 자신의 불로그에 쓴 글 중의 일부이다. 

1991년 5월8일. 김기설씨의 분신사건 이후 함께 일하던 동료의 자살을 도와주었다는 ‘오명’을 뒤집어쓴 강기훈씨. 금세 밝혀질 것 같았던 유서대필 사건의 진상은 구속, 수사, 재판, 대법원의 유죄확정 판결로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김기설씨 분신전후의 정황과 각종 증거, 경찰과 검찰의 수사기록, 법원의 재판 관련 서류 등을 검토해 법원에 재심을 권고했다. 고등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2008년 무죄취지의 재심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항고해 대법원으로 넘겨졌다. 3년이 훨씬 지난 현재까지 대법원은 특별한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결정을 미루고 있다.

▲ 1991년 당시 고 김기설 씨가 남긴 유서와 강기훈 씨의 자술서 ©CBS노컷뉴스

21년 동안 고통과 분노를 감내하면서 한 순간도 용납하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강기훈씨. 사실이 확연히 드러날 희망에 대한 기약도 없이 흘러온 세월의 무게에 지쳐갔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현재 간암으로 투병중이다. 지난해 간경화가 확인됐으나 올해 들어 간암으로 악화했다. 강 씨는 지난 4월 암세포 제거 수술을 받았으나 수술부작용으로 폐수종이 발병해 아직 항암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상태가 지속되면서 얻은 마음의 병이 육체의 병으로 확대됐다. 국가폭력에 의해 마음의 병과 육체의 병을 얻은 강씨가 어려운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추악하고 부끄러운 역사를 간직한 검찰과 사법부는 역사의 멍에를 집어던질 의지가 없다. 검찰의 조작과 증거 은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엉터리 필적 감정, 사법부의 한심한 판결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도 민주적 절차에 의해 사건이 마무리된 것처럼 주장한다. 정권의 안위를 위해 무고한 개인을 허위와 거짓의 덩어리로 덮어씌운 자들은 아직도 한 치의 반성도 없다. 게다가 당시 수사검사들은 대법관으로, 특수부장으로, 지청장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수사검사의 상당수가 새누리당(한나라당)에 이력을 남겼다.

▲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과 관련한 당시의 언론보도 ©<미디어오늘>
김기춘 검사는 박근혜 후보의 측근인 ‘7인회’ 멤버로 활동 중이다. 강신욱 당시 강력부장은 대법관을 지낸 뒤 2007년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법률지원특보단장을 역임했다. 남기준 검사 도 박근혜 캠프에서 클린검증 소위원장을 맡았다. 광상도 검사는 박근혜 후보의 싱크탱크로 알려진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에 참여했다. 윤석만 검사는 올해 대전 지역에서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출마했으며, 박 후보를 지지하는 외곽 조직에 있다. 임철 검사는 2008년 총선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강기훈씨의 조속한 쾌유를 기원하며 이유없이 3년이상 진행되지 않는 재심개시를 촉구하는 범사회적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강기훈 모임’은 우선 지난 10일부터 매일 오전 8시30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희대의 조작극, 91년 유서대필사건, 억울한 누명 20년, 강기훈이 죽어간다!, 대법원은 즉각 재심개시를 결정하라!’는 내용이 쓰여진 피켓을 들고 나섰다. 이창복 전 민주당 의원을 필두로, 인재근 민주통합당 의원, 심상정 새진보정당추진회의 의원 등이 참석했다. 1인시위는 10월 8일까지 약 한달 간 진행된다. 

‘강기훈의 쾌유와 진실을 위한 후원콘서트’도 열린다. 10월 9일(화) 저녁 7시 30분 서울시립대 강당에서 안치환과 자유, 이은미, 조관우, 평화의 나무 합창단 등이 공연에 나선다. 이들 중 대부분은 무료로 출연한다. 콘서트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성근씨, 박래군씨, 정혜신씨 등이 토크에 나선다. 입장료는 후원금으로 3만원이다. 

사회 각계 원로인사들이 힘을 합쳐 대법원에 탄원서를 내는 운동도 진행중이다. 학계 언론계 문화계 종교계 등의 원로인사 50여명은 탄원서를 내기 위해 연명으로 서명을 받고 있다. 국회에서는 민주통합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대법원의 재심개시 촉구 결의안을 추진중이다. 

“검찰과 사법부는 부끄러운 과거의 일을 숨기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은 심정으로 살아온 세월에 이젠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온전한 상식으로 세상을 보는 것, 그리고 그들 스스로 마음 깊은 곳에서 알고 있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지금이 그 때다.” 강기훈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에서 “사건의 피해자가 주는 기회와 아량은 더 이상 없을지 모른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이다.”라고 밝혔다. 대법원의 즉각적인 재심개시 결정을 촉구한다. 강씨가 부르짖었듯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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