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5일 토요일

조선일보, 인혁당 논란 닷새만에 박근혜 훈수


이글은 미디어스 2012-09-14일자 기사 '조선일보, 인혁당 논란 닷새만에 박근혜 훈수'를 퍼왔습니다.
[분석]걱정어린 조언과 충고로 가득한 사설, 박근혜 구할까?

‘사면초가’지만 ‘고립무원’은 아니었다.
현재까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처지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인혁당 사건을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발언 이후 박근혜 후보의 위기는 정말 심상치 않다. 사방을 둘러봐도 아군은 눈에 띄지 않는다. 사과, 논평 혼선에서 보듯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박 후보의 발언을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재오 의원 같은 이는 “거꾸로 가고 있다”는 비판을 가하고 있고 공교롭게도 정의화 전 국회부의장은 “장준하의 유골이 타살을 말하고 있다”며 또 다른 유신체제의 어둠을 고발하기도 했다.
이틀 사이 지지율이 3% 이상 빠졌다. 지지율이란 것이 오름세가 있으면 내림세도 있고, 일희일비할 것은 아니겠지만 이번엔 조금 다르다는 분석이다. 박 후보의 인혁당 발언은 “그래도 어떻게 독재자의 딸을 뽑느냐”는 대중적 반감에 불을 질렀단 평가다. 박 후보의 역사관이 유신통치 박정희 시대에 머물러 있단 점이 최악이다. 가뜩이나 ‘불통’의 이미지가 강한 박 후보는 이번 사건을 통해 ‘퇴행’의 아이콘이 됐다.
사면초가의 신세임은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고립무원은 아니었다. 보수 언론의 침묵과 방송의 물타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은 박 후보의 인혁당 발언을 거의 보도하지 않거나 보도하더라도 축소해 다뤘다.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집권여당 후보가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렸지만, 조중동은 이에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를 보였다. 방송 뉴스 역시 박 후보의 역사관 그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여야 간의 공방이 벌어지고 있단 점에 초점을 맞춰, 사안을 의례적인 정쟁으로 보도했다. 의제 설정력이 강한 이들의 보도가 이렇게 흐르면서 박 후보의 발언은 근원적 문제보다는 오히려 주변적 상황이 더 주요하게 보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중동이 인혁당 발언 논란 사흘이 지나도록 흔한 사설 한 번 쓰지 않았다는 점은 단적이다. 애써 외면하며 묻고 가려했던 것인지 아니면 입장을 밝히기가 곤혹스러워 미룬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관련 논란을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았단 점에서 전자에 가까워 보이기도 하고 조선을 제외한 중앙과 동아가 오늘까지도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단 점에선 후자가 아닐까도 싶다. 어찌되었건 박 후보의 인혁당 발언 논란이 닷새가 돼서야 조선은 이제 겨우 사설을 썼고, 중앙과 동아는 아직도 어떤 ‘주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14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인혁당 발언 관련 사설. 논란 발생 닷새만에 등장한 이 사설은 중앙과 동아가 아직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보수 언론이 이번 사건을 어떻게 몰아갈지를 엿볼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논란 닷새 만에 사설을 출고한 조선일보 14일자는 박 후보를 향해 ‘박근혜 시대’ 열려면 ‘아버지와 딸’ 개인사 넘어서야 한다고 충고했다. 보수언론의 맏형 성격인 조선의 이 사설은 향후 박 후보 역사관 논란의 어떤 ‘가이드라인’ 성격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중앙과 동아가 아직 정확한 논리적 포지션을 잡지 못한 채 관망하고 있는 상황에선 더더욱 그렇다.
조선의 이번 사설은 비판의식을 담은 것이라기 보단 충고에 가깝다. 박 후보의 역사관을 문제 삼기보다는 유신시대의 명암을 따뜻하게 언급하며, 박 후보의 당선을 위한 어떤 전략을 조언하는 성격이다. 지난 몇 번의 대선에서 조선일보가 ‘보수후보의 가장 유능한 참모’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설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조선은 박 후보가 “당 대변인의 발표를 뒤집으면서까지 ‘사과’라는 표현을 뺀 까닭이 무엇인지 혼란만 더해졌다”고 현재의 상황을 정리하며, 보수언론과 방송뉴스들이 취해온 ‘인혁당 관련 혼선’을 강조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이번 사안을 ‘과정이 어떻게 되고, 경위와 진심 여부와는 상관없이 박 후보가 사과만 하면 될 일’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방송뉴스는 향후 박 후보가 어느 정도 사과의 제스처를 취하면 역사관 검증 자체를 구태로 몰아붙이며 국면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조선의 사설에서도 예고되는 바이다.
조선은 “2012년 대선에서 가려야 할 국가 대사(大事)가 50년 전 5·16과 40년 전 10월 유신의 성격 규정밖에 없는 양 물고 늘어지는 야권(野圈)의 태도가 딱하고 답답한 것은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과거사 논란이 잦아들 만할 때마다 일반 국민의 역사 인식과 동떨어진 발언을 하면서 다시 불씨를 살려 놓고 있는 것은 박 후보 자신”이라고 양비론적 입장을 취하긴 했지만, 이 문장은 박 후보에게 ‘출구 전략’을 일러주는 성격이 짙어 보인다. 조선의 시각은 역사 검증을 국가 대사에 미치지 못하는 지엽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국가 대사를 다뤄야 할 박 후보가 왜 역사관에 발목이 잡히는 실책을 저지르는 것이냐고 나무라는 투다.
박정희 시대를 ‘빛나는 역사’와 ‘역사의 판단을 기다려야 할 대목’ 그리고 ‘어두움의 역사’로 구분 규정한 조선은 “'사형선고 18시간 만에 8명 전원 사형 집행'으로 유신 시대의 성격을 상징하는 2차 인혁당 사건 등은 어두움의 역사에 속한다는 게 일반 국민의 공감대”라고 충고하며 “자연인 박근혜가 개인적으로 품고 있는 유신에 대한 생각은 쉽게 바꿀 수 없겠지만, 차기 대통령이 되겠다는 집권당 후보의 유신에 대한 공식 입장은 '아버지와 딸'이라는 개인사의 굴레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신에 대한 조선식 구별법에 주목하면, 개인사의 굴레를 뛰어 넘어 유신을 말하면 유신의 ‘빛나는 역사’를 말할 수 있단 논법이 가능해진다. 박 후보의 인기가 상당 부분 박정희 시대에 대한 낭만적 회고층에 기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조선의 충고는 실용적이면서도 효과적인 국면 전환 제안이다.
조선의 충고는 따뜻했다. 야권의 문제나 안철수 교수를 힐난할 때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예컨대, “박 후보의 유신에 대한 인식은 40년 전 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 식탁에 마주 앉아 직접 들었던 '박정희식 유신관(維新觀)'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청와대 밖에서 공포와 두려움으로 유신 시대를 겪어냈던 국민이 유신 시대를 감싸고도는 듯 한 박 후보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를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야 한다”고 한 대목은 부드러움이 유명한 커피 광고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조선은 박 후보가 “추석 연휴를 앞두고 과거사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밝힐 것”을 예고하며 박 후보를 향해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기억하는 박정희 시대가 아니라, 5000만 국민을 대표해 나라를 이끌겠다는 국가 지도자의 눈으로 다시 평가한 박정희 시대에 바탕을 둬야, 국민도 박 후보에게 국정(國政)을 맡겨도 괜찮겠다는 믿음을 갖게 될 것”이라는 조언으로 마무리했다. ‘추석 민심’이 대선 국면에 결정적 가늠쇠가 될 상황이니, 그 전에 문제를 털고 가라는 깨알 같은 가르침이다.  박 후보가 조선의 충고와 조언을 통해 ’사면초가‘의 위기를 벋어날 수 있을까? 아니면 조선을 비롯한 보수언론이 박 후보와 함께 ’고립무원‘에 빠져 민심의 외면을 받을까? 이번 대선의 향방을 가를 ’대회전‘이 시작됐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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