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8일 화요일

‘묵우회’ 녹음파일, 천안함 예견했다?


이글은 시사IN 2012-09-18일자 기사 '‘묵우회’ 녹음파일, 천안함 예견했다?'를 퍼왔습니다.
현 정부 장관 보좌관들의 모임 ‘묵우회’의 녹음 파일을 최재천 의원이 폭로했다. 이들은 선거 국면에서 ‘북한과의 충돌’이나 ‘박근혜 견제’ 등도 언급했다. 최 의원은 이들이 사찰팀과 연계돼있다고 주장했다.

2010년 3월 초, 어느 수요일이었다. 청와대 내 연풍각 2층 회의실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국방·행안·통일·외교 등 10개 부처 장관 보좌관들이었다. 이날, 이들은 2010년 6월2일로 예정된 지방선거의 대책을 논의했다. ‘6·2 지방선거’는 집권 2년차에 들어선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간 심판의 성격이 짙었고, 야권의 승리가 점쳐지고 있었다. 

이들의 만남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모임 이름은 ‘묵우회(墨友會)’. 2008년 촛불 정국 이후 구성돼 매주 수요일마다 모임을 이어오다가 2010년 9월 총책임자였던 비서관이 해임되면서 모임도 해산됐다. 총책임자는 정인철 전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 실무 책임자는 김형준 수석행정관이었다.

ⓒ뉴시스 9월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묵우회의 존재를 폭로하는 최재천 의원.
최재천 민주통합당(민주당) 의원은 9월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 같은 내용을 폭로하며, 묵우회가 ‘청와대 비선조직’이라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묵우회는 수사기관과 사찰팀으로부터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회의를 했으며, 논의 결과는 보고서로 작성해 청와대에 올라갔고, 사안에 따라서는 수사·사정·정보기관 및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팀에까지 전달되어 통치 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녹음 파일은 묵우회에 깊숙이 관여했고 직접 참여했던 사람이 제보한 것이었다. 

“사소한 국지적인 충돌이나 이런 것도 나는 오히려 보수 성향의 표심을 자극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그런 어떤 이후의 논의가 활성화되어야겠지만, 적어도 야당이 만들고 있는 프레임으로 선거를 치러서는 안 된다.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그 직후인 3월26일, 천안함 침몰사건이 발생했다. 이 녹음 파일을 최초로 제보받은 MBC 이상호 기자는 “이 녹음 파일이 마치 예견서라도 되는 것처럼 천안함이 침몰했다”라고 말했다. 최 의원 역시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믿어지지는 않는다”라고 전제하면서도 이 같은 발언들이 국가 안보조차 선거에 종속시키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남북 간 국지적 무력충돌이 선거에 도움이 된다고 인지하고 있고, 그러한 충돌을 유도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지 않나.” 

녹취록에 따르면 이들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 대한 ‘대책 마련’에도 부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내에서는 다수파인 친이계와 소수파인 친박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선거 결과가 안 좋을 경우 친이계가 선거의 책임을 박(근혜)한테 물을 수 있는 여지를 주자는 거지. 그렇게라도 박근혜를 몰아놓지 않으면 그다음에 친이계가 당하잖아. 다음 정권 때 그런 부담감이 있는 거지.” 

“제일 좋은 것은 박근혜가 알아서 ‘이런 데랑 같이 못 있겠다’ 해서 ‘이혼하자’ 해가지고 나가주면 제일 좋다 이거지.”

“박근혜를 자꾸 긴장시키면 안 되고 박근혜가 자만하게 만들어야 하거든. 우리 친이계 내에서 짜고, 자꾸 박근혜 예우론을 내세우는 사람들도 좀 나와주고 하면서 혼란시키고, 그런 전략들이 필요할 거 같아요.” 

최 의원은 이러한 대화가 “당내에서 박근혜 후보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이명박 대통령의 힘이 줄어들기 때문에 박근혜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려던 시도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묵우회가 정파적 이익을 위해 같은 당내 인사조차 공격 대상으로 삼는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는 뜻이다. 

정치 공작 담당 청와대 비선조직? 

그러나 박근혜 후보는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2년 4월 총선에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권을 틀어쥔다. 4월 총선에 나섰던 묵우회의 총책임자 정인철 비서관은 경남 진주갑에서, 실무 책임자였던 김형준 수석행정관은 부산 사하갑에서 공천장을 받는 데 실패했다. 결국 이 두 사람이 ‘당한’ 친이계의 대표 선수가 된 셈이다. 

이 밖에도 녹취록에는 “이번에 인천 진짜 위험해. 인천 잘못하면 다 넘어가” “남경필이 오라 하면 뭐하냐. 그건 완전 패착이야”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최 의원은 이러한 발언이 “선거를 통제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발언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답변에 나선 김황식 국무총리는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정해서 의견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바람직하지는 않다. 저럴 수는 없을 것이다. 공식 조직으로 공적 논의가 됐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 의원은 “어떤 정치 공작이 있는지는 청와대와 당시 장관들이 밝힐 일이고, 언젠가는 국정조사·특검을 통해 밝혀야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러한 정치 공작이 어디선가 내밀하게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 12월 대선에서 되풀이될 가능성에 대해 진심으로 염려한다”라고 말하며, 선거관리 중립내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장일호 기자 | ilhostyle@sisain.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