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0일 월요일

경찰이 이 모양인데, 성범죄 대책이 나올까?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9-09일자 기사 '경찰이 이 모양인데, 성범죄 대책이 나올까?'를 퍼왔습니다.
[게릴라칼럼] MB의 호통에만 움직이는 경찰, 4년 전과 똑같다

기시감이라고 하던가. 내게는 이 모든 일들이 재방송처럼 보였다.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으로 나라가 발칵 뒤집히자, 이명박 대통령은 경찰청을 '전격 방문'한다. 경찰청은 대통령의 기습방문에 비상이 걸리고, 경찰력을 총동원해 6시간만에 범인을 잡아들인다. 사태가 한 치 앞을 모를 만큼 정신 없이 전개되었으나, 분명히 어디선가 본 장면이었다.  

▲ 2008년 3월, 일산에서 초등생 납치미수사건이 일어나고 여론이 들끓자 이 대통령은 일산 수사본부를 직접 방문했다. ⓒ 청와대

과연 그랬다. 4년 반 전인 2008년 3월, 일산에서 초등생 납치미수사건이 일어났다. 그때도 대통령이 나섰다. 그것도 경찰청이 아니라, 일산의 수사본부를 찾아가 호통을 쳤다. 대통령은 검은 점퍼를 입고 직접 회의를 주재하기까지 했다. 일산 경찰서는 대통령의 기습방문에 비상이 걸렸고, 이어 가용 경찰력을 모두 동원해 범인을 체포했다. 공교롭게도, 검거가 이뤄진 것은 대통령 방문 후 6시간 만이었다. 

사건 해결에 적극 나선 대통령을 비판하려는 것도 아니고, 두 사건의 닮은 점을 연결해 가당찮은 음모론을 쓰려는 것도 아니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단 하나다. 대통령과 경찰이 치안 문제 해결에 관심이 있느냐는 것이다. 웬 바보 같은 질문이냐고 받아치기 전에 생각해 보라. 2008년 3월 그 '생난리'를 친 후 뭐가 나아졌는지 말이다. 

경찰청 통계를 보자. 온갖 무성한 각오, 약속, 대책에도 불구하고 강간과 강제추행 등 성범죄는 2008년 1만 5017건에서 2011년 1만 9498건으로 30%가 늘었다. 같은 기간, 아동과 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범죄는 1203건에서 2054건으로 무려 70%나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말만 요란했을 뿐 문제는 더 악화된 2008년과 현재의 상황이 무엇이 다른가? 

2008년 '총선 치안쇼'와 2012년 '대선 치안쇼' 

2008년과 지금, 모든 것이 비슷했다. '성폭행 전과자 관리 강화'와 '성폭행 전담반' 이야기가 나온 것도, '경찰의 미온적 대처'와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도 같았다. 심지어 선거를 코 앞에 두고 있는 상황까지도 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2008년은 대선이 아닌 총선이었고, 그 때는 대통령이 힘 빠진 상태가 아닌 서슬 퍼런 집권 초였다는 것 뿐이다.

▲ 전남 나주의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 등 최근 발생한 강력사건과 관련해 민생치안 점검에 나선 이명박 대통령이 8월 3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김기용 경찰청장에게 나주 사건 등에 대한 보고를 받으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다시 한 번 정부에게 묻는다. 선거용 '치안 쇼'가 아니라 정말 문제 해결을 바라는가? 그렇다면, 경찰을 권력의 하수인으로 부리는 일부터 그만 둬라. 경찰을 본래의 존재목적인 국민의 파수꾼 자리로 되돌려 놓으라는 것이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며 딴청 피우지 마라. 8월 말 여의도 칼부림 사건 때, 1개 중대의 경찰이 코 앞에 있었으면서도 즉시 달려오지 않았다. 새누리당 당사를 지키기 바빴던 탓이다. 

국민이 눈 앞에서 피를 흘리며 쓰려져 있는 데도, 경찰은 권력의 경비 노릇에 여념이 없었다. 무엇으로부터 권력을 지키고 있었을까? 우습게도 '국민'으로부터다. 당시 새누리당사 앞에는 쌍용자동차 노조 해고자들의 집회와 농성이 진행되고 있었다. 부당해고로 삶이 위태롭게 된, 몇 명 되지도 않는 국민의 절박한 목소리는 득달같이 나서서 차단하는 경찰이, 국민의 꺼져가는 목숨은 멀뚱거리며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놀랄 일은 아니다. 국민들의 생존권 요구를 틀어막기 바쁜 경찰이 그들의 생명을 존중할 수는 없으니까. 주린 국민의 외침을 외면하는 경찰이 고통의 비명에는 제대로 반응하겠는가. 오히려 죽어가는 희생자를 지혈해 목숨을 살린 건 경찰과 대치하고 있던 노동자였다. 시민들이 나서서 범인을 막다른 길로 몰고 난 후에야 경찰이 한두 명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경찰이 왜 존재하는지 회의가 들 정도다. 사건 목격자가 당사 앞 경찰에게 달려가 빨리 와달라고 했으나, 경찰은 머뭇거리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농성자들이 '우리가 새누리당 당사에 안 들어갈 테니 빨리 가 보라'고 재촉할 정도였다. 뒤늦게 도착한 경찰은 흉기에 찔린 여성이 피를 흘리고 있는데도, 옆에서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시민들이 나서서 지혈을 시작했다. 

경찰, 무수한 대책과 각오 내놓았지만...  

올 4월, 수원에서 경찰이 112 전화에 부실대응해 한 여성이 살해되자, 경찰은 무수히 많은 각오와 대책을 내놓았었다. 그후 무엇이 나아졌는가? 여의도 칼부림 사건의 목격자는 112에 전화를 걸었지만,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이니 잠시 후에 다시 걸라"는 안내가 나왔다며 허탈해 했다. 수원 살인사건 후 경찰청장이 '112 운영 실태를 점검하고 개선하겠다'고 발표한 게 불과 넉 달 전 아니었던가. 

바로 그 수원에서 최근 일어난 일을 보자. 지난 달, 20대 여성들이 길을 가다 술취한 남성 두 명에게 '묻지마 폭행'을 당해 코뼈가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었다. 마침 순찰차가 근처를 지나고 있었기에 피해자가 달려가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다른 신고 때문에 가봐야 한다'며 그냥 가버렸다. 경찰의 허술한 대응에 대해 여론이 나빠지자, 경찰은 '위급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변명했다. 

4개월 전 살인사건에서도 '위급성' 이야기가 나왔다. 신고자가 고통스럽게 절규하는데도 경찰은 '부부싸움이네' 하며 7분 넘게 그 소리를 듣고 있던 것이다. 이런 경찰을 어떻게 봐야 할까? 시민이 운행중인 순찰차에 달려들어 울면서 구해 달라고 외쳐도 위급하지 않은 상황이고, 112에 전화를 해 비명을 질러도 위급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경찰을 말이다. 

권력의 경비병으로 전락한 경찰에게는 국민의 안전문제 자체가 '위급하지 않은 일'일 수밖에 없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지키는 일이 본연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를 호위하던 경찰이 '사람이 죽어간다'는 신고를 받고서도 멀뚱거리며 자리를 지키던 모습은 한국 경찰의 현실을 극적으로 말해준다. 이런 경찰이 시위대 몇 명만 보여도 득달같이 달려가 '닭장차'로 사방을 겹겹이 에워싸는 기동력을 발휘하는 모습은 경이로울 정도다. 

▲ 김기용 경찰청장이 3일 오후 서울 미근동 경찰청 북관 1층에서 "잇단 성폭력 등 강력범죄 발생에 대해 치안 총책임자로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성폭력ㆍ강력 범죄 총력 대응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한 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 권우성

물론 경찰은 '최선을 다 했다'고 주장한다. 여의도 사건때도 그랬고, 나주 성폭행 사건에서도 그랬다. 피해자가 집에서 불과 300미터 거리에 버려졌는데로 경찰이 제대로 찾지 못했다는 여론의 비판을 받자, '악천후에도 가능한 인력을 동원해 최선을 다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나서자 마자 경찰청장은 '범죄를 예방하지 못한 것'까지 사과한다. 

대통령이 나서서 범인을 몇시간만에 체포할 수 있다면 경찰이 수사력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의지가 없는 것이다. 경찰이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다면, 대통령이 나선다고 해서 태도나 결과가 달라질 이유가 없다.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두려워해야 

사실 대통령이 나주 사건에서 보여준 역할은 경찰서장이 할 일이었다. 대통령이 발벗고 뛰어서라도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는 역으로 한국 치안의 미래가 매우 어둡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경찰이 권력의 눈치 아래 움직인다는 사실을 확인시켰을 뿐이기 때문다. 대통령이 계속해서 치안대장 역할을 맡지도 않을 것이다. 선거가 365일 계속되지 않는 한 말이다. 

설사 대통령이 매일 수사본부를 찾아가 고함을 치고 경찰청을 기습방문해 경찰청장 얼굴을 노랗게 만들더라도, 경찰조직을 자신의 도구로 부리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면에서 대통령은 한국사회의 치안 부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이 관행을 바꾸지 않는 한 차기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경찰이 정부보다 국민을 더 두려워하도록 만들지 않는 한, 날로 험해져 가는 한국사회를 구할 수 없다. 

▲ 경찰 불심검문 2년만에 부활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시장역 인근에서 경찰관이 불심검문을 하고 있다. 이날 경찰청은 '묻지마' 범죄와 아동 성폭행 등 강력 범죄 예방을 위한 특별방범 활동 차원에서 이달부터 대로상에서 불심검문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라는 지침을 전국 지방경찰청과 경찰서에 내려 보냈다. ⓒ 연합뉴스

경찰이 '권력의 몽둥이' 역할을 해 온 것은 비민주적 철권 통치의 유물이다. 여기에 한국처럼 정치 권력이 위계화된 사회에서 대통령이 경찰청장 임명권을 쥐고 있는 한, '정치경찰'은 피할 수 없는 귀결이다. 그런 면에서 치안 문제 해결은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하는 민주적 정부를 탄생시키는 것과도 맞닿아 있다. 

권력이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하수인이 국민을 두려워 할 수는 없다. 국민을 두려워할 때는 오직 선거일 뿐이다. 그러기에 지금 정부가 여론을 두려워하는 시늉을 하는 것이고, 경찰도 '주인'을 따라 바짝 엎드리는 것 뿐이다. 국민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선거가 끝나면 정부와 경찰 모두 '본래 자리'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흉악 범죄는 계속해서 국민의 삶을 위협할 것이다. 2008년에 그랬고, 올 4월에 그랬고, 지금 더욱 그렇듯 말이다. 

이제 경찰에게 묻는다. 치안문제를 해결하기 바라는가? 그렇다면 권력의 '꼬붕' 노릇부터 그만 둬라. 오래 전 퇴색한 '민중의 지팡이' 이야기를 꺼낼 생각은 없다. 다음의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5년마다 권력을 갈아치우는 데서 알 수 있듯,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그리고 경찰 월급은 국민 주머니에서 나온다. 누가 섬겨야 할 주인인지 똑바로 보라.

강인규(fouc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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