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8일 화요일

인성교육 강화하겠다고? 이주호 장관이 할 말은 아니죠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17일자 기사 '인성교육 강화하겠다고? 이주호 장관이 할 말은 아니죠'를 퍼왔습니다.
[권재원의 교육창고] 학력신장 외치며 학교경쟁·교사경쟁 부추길 땐 언제고

9월 들어 인성교육에 대한 인기가 높다. 새해 벽두부터 문제가 된 학교폭력문제는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고, 여기에 더해 아동 성폭력 사건까지 겹쳤다. 이런 흉악한 일이 생기면 거의 모든 언론에서 “학교에서 인성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운운 하는 기사나 사설을 쓴다. 여기에 부응하여 교육과학기술부도 인성교육부로 변신했다. 인성교육주간이라는 기간을 설정하여 모든 학교에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라는 공문을 보내어 성가시게 하는가 하면, 교과부 장관이 그 귀한 몸을 이끌고 거리 홍보에 나섰다.
교육개발원, 교육과정평가원 같은 각종 국책연구기관도 여기에 가세하여 갖가지 인성교육 방안을 쏟아내고 있다. 장관 역시 직접 강연을 통해 “실천과 체험으로 실력을 키우는 곳, 학생과 학부모의 자율적 참여로 사회성을 기르는 곳이 바로 학교라는 인식이 생기도록 학교 인성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인성교육을 역설했다.
다 좋은 말씀들이고 많이 하면 좋은 활동들이다. 하지만 말로야 전두환도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사회정의를 세우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그 말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말한 자의 과거 행적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교과부와 이주호 장관의 과거 언행을 살펴보면 이들이야말로 학생들로부터 그런 좋은 활동들 하기 적당한 시간들을 빼앗아 간 주역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입시교육에 치우친 학교현실을 비판하고 개탄하면서 인성교육을 역설하고 있지만 누가 그렇게 학교를 입시교육에 올인하고 인성교육이 뒷전으로 밀리는 삭막한 곳으로 만들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과거를 돌아보지 말자고 외치는 자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바로 범인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교육을 인성교육이 실종된 삭막한 교육으로 만들어 놓은 주역들이 지금 인성교육 강화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광화문 KT 앞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통해 아이들의 인성을 키우는 '밥상머리 교육'을 장려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증거는 명백하다. 1년 전만 해도 이주호 장관은 여러 지역과 학교들을 돌아다니면서 “학력 신장”을, 그리고 학력신장을 위한 교사들 간의 또 학교들 간의 경쟁을 부추겼다. 이런 경쟁주의가 이주호 장관의 잠깐의 생각이 아니라 오래된 신념이라는 것은 2008년 대통령 인수위 시절부터 이를 설파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통해 증명된다.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보자. "경쟁 중에서 교사들 간의 경쟁, 학교간의 경쟁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바람직하다".
이주호 장관은 "문제는 학생들 간의 지나친 경쟁이 소모적이고 피해야 되는 것"이라고 말하긴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지나치지 않은 수준의 경쟁조차도 이미 경쟁 과잉 상태에 있는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경쟁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나라 학교가 공교육을 시작한 이래 경쟁의 부족이 문제가 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인성의 파괴 운운하는 이야기는 이미 수 십년 간 반복되어온 단골메뉴였다. 여기에 대고 “적당한 수준의 경쟁을 좀 하라”는 주문은 이미 설탕 다섯 스푼 넣은 커피에다가 각설탕 하나만 더 넣으라고 말한 뒤 “각설탕 하나 쯤 뭐가 문제냐?”라고 말하는 격이다.
이주호 장관은 학생들 간의 경쟁을 강화하라고 말하지는 않았다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교사들이 경쟁하고, 학교들이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하지만 이건 견강부회다. 교사가 학업성취도 일제고사를 치지 않는다. 결국 경쟁의 결과는 학생의 시험 점수다. 교사의 경쟁은 학생의 경쟁일 수밖에 없으며, 오히려 학생들간의 경쟁을 측은하게 여기던 교사들마저 학생에게 경쟁을 다그치게 만드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다.일제고사 결과를 토대로 교육청 평가가 달라지고, 그 평가에 따라 중앙정부가 시도교육청에 지원하는 교부금 규모가 수백억씩 차이가 나게 만든 것이 누구인가? 이렇게 되면 서울이나 경기처럼 살림이 넉넉한 교육청이 아니라면 교육감들마저 “성적지상주의”를 내세우며 학생들을 몰아붙일 수밖에 없게 된다. 여기에 한가롭게 인성교육 타령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주호 장관은 자신의 이런 반인성교육적 정책에 대해 일언반구 성찰도 없으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른 말을 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까지 국영수 위주로 진행된 입시경쟁교육은 그대로 두고 자꾸 인성교육이란 명목으로 갖가지 다른 활동을 덧붙여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기존 교육체제는 손대지 못하고 그때 그때 여론에 밀려 여기에 자꾸 새로운 활동을 덧붙여서 결국 학생들의 시간표만 더 복잡하고 무겁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이번 교과부와 장관의 전형적인 문제해결방식이다.
장관의 인성교육 강조에도 불구하고 국영수위주의 시간표로, 국영수 위주의 각종 방과후 학습으로 입시학원으로 뒤바뀐 학교의 모습은 그대로일 것이다. 일제고사 점수경쟁으로 초등학교까지 야자를 시키는 미친 풍속도도 그대로일 것이며, 멀쩡한 학생들을 성적에 따라 레벨을 붙이는 수준별 이동수업도 그대로일 것이다. 다만 여기에 “인성교육” 시간만 더 추가되어 안 그래도 피곤한 학생들을 학교에 더 붙잡아 둘 것이며, 정규수업, 각종 입시 경쟁 활동 외에 억지로 추가되는 체육활동이니 예술활동이니 하는 것을 강요할 것이다. 이게 인성교육인가?
도대체 인성교육에서 말하는 인성이 뭔지나 알고 하는 소리들인가? 인성(CHARACTER)이란 도덕적 가치와 관련된 사람의 속성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요구하는 인성, 도덕적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교육과정 총론에서조차 명시하고 있는 “민주시민성”이다. 그런데 교과부는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인 사회과, 도덕과를 끊임없이 위축시키고 변방으로 몰아내고 있다. 한 학기에 8과목만 이수하라는 집중 이수제를 발표해서 인성의 중요한 요소인 감수성을 기르는 예술과목들을 절멸상태로 몰아넣더니 이번에는 음미체를 집중 이수제에서 제외하라고 발표해서 도덕, 사회 과목을 절멸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도대체 이 사회에서 감수성, 도덕성, 민주시민성을 희생하면서까지 가꾸어야 할 인성이란 또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러니 지금 이주호 장관과 교과부가 인성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모습은 자신이 실컫 두드려 패서 그로기로 만들어 놓고는, 이제와서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한 손으로는 계속 때리고 있으면서 다른 손으로 상처를 쓰다듬어 주는 괴이한 모습에 다름 아니다. 이런 평가가 너무 지나친가? 그렇다면 그들에게 속죄의 방법이 있다. 그 동안의 경쟁위주 교육정책의 잘못을 인정하고 국영수 시간을 줄여서 인성교육 과목을 강화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9월 5일 한국교육개발권, 교육과정평가원, 교원대학교가 공동개최한 인성교육 세미나에서 교육전문가와 교수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던 내용도 자꾸 뭘 더 하려 하지 말고 학생들이 학교와 학원에 붙잡혀 있는 시간을 줄이고,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는 시간 여유를 만들어주라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지금 일선 학교는 준비없는 주5일제에다 장관이 강요한 스포츠 클럽활동 등으로 중학생들이 일주일에 3일씩이나 7교시 수업을 하고 있다. 그러니 억지로 늘린 체육시간 원 상태로 돌리고, 국영수에서 한 시간씩만 줄이면 학생들의 여유시간은 크게 늘어날 것이며, 인성교육 따로 하지 않아도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각종 폭력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갑자기 시수를 줄이고, 수준별 이동수업 안하면 혼란이 우려된다고? 한 두달 만에 교육과정 뜯어고쳐 학교를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것이야 교과부의 특기 아닌가? 

권재원 풍성중 교사 | hagi8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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